[비즈니스포스트] 국내 상장지수펀드(ETF)시장도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 충격을 직격타로 받고 있다.
미국,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 폭락에 국내 ETF 순자산은 8조 원 넘게 증발했다. 금융시장 변동성을 피하려는 머니마켓 ETF 등 파킹형 상품으로의 자금이동도 두드러지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 영향으로 글로벌 증시가 폭락하면서 국내 상장지수펀드(ETF)시장 순자산총액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사진은 상호관세 조치를 발표하는 트럼프 대통령 모습. <연합뉴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7일 종가 기준 국내 ETF시장 순자산총액은 178조6235억 원으로 집계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계획을 발표하기 전인 3일(186조9793억 원)과 비교하면 2거래일 사이 ETF 전체 순자산이 8조3558억 원 줄어든 것이다.
주식형 ETF 자산가치가 크게 타격을 받은 탓이다.
미국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관세조치 발표 뒤 이틀 동안 각각 10.81%, 11,79% 떨어졌다. 미국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발표 당일 9.88% 내려앉은 뒤 다음날도 7.60% 하락했다.
이에 국내 주식형 ETF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S&P500의 순자산은 2거래일 사이 8천억 원 가까이 감소했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S&P500’ 순자산도 같은 기간 4300억 원가량 줄었다.
이밖에도 ‘TIGER 미국나스닥100’, ‘TIGER 미국필라델피아반도체나스닥’ 등 ETF도 순자산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미국 증시뿐 아니라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 증시 상황도 마찬가지다.
코스피(-6.37%) 코스닥(-4.70%) 등 국내 증시도 관세조치 발표 뒤 급락했고 중국 상해종합(-7.58%) 홍콩 항셍지수(-14.74%) 일본 닛케이225(-10.58%) 등 주요 아시아 증시 대표지수가 최근 이틀 일제히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세계적 증시 폭락 사태에 시장의 자금도 상대적으로 안정적 투자처로 여겨지는 파킹형 상품들로 이동하고 있다.
주로 단기채권과 양도성예금증서, 예금과 같은 현금성 자산 등에 투자하는 ‘머니마켓’ ETF가 대표적이다.
코스콤 ETF체크 집계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머니마켓액티브’에는 7일 하루 동안 투자자 자금 1028억 원이 순유입됐다. 국내 전체 ETF 상품 가운데 자금유입 1위를 차지했다.
하나자산운용의 ‘1Q 단기금융채액티브’(535억 원) KB자산운용의 ‘RISE CD금리액티브(합성)’(495억 원) ‘RISE 머니마켓액티브’(469억 원)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25-12 금융채(AA-이상)’(306억 원) 등도 7일 기준 순유입 금액 10위 안에 들었다.
레버리지와 인버스 상품을 제외하면 파킹형 ETF 인기가 눈에 띈다.
▲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머니마켓액티브’는 2024년 11월 말 순자산 3조 원을 넘어섰고 2025년 4월7일 기준 순자산은 5조6천억 원 수준에 이른다. <삼성자산운용>
수익률을 기대하기보다 관세충격을 피하면서 잠시 대기할 수 있는 안정적 ‘피난처’를 찾는 수요가 많아진 것이다.
국내외 증시 변동성이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점을 고려하면 한동안 머니마켓 ETF와 채권형, 금리형 등 단기 자금 관리용 ETF로 자금 쏠림이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EU) 등이 보복관세 부과 의사를 보이면서 글로벌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라며 “대부분 국가 지도자들은 자국의 높아지는 반미 감정을 외면하고 트럼프가 원하는 협상에 나서기 쉽지 않은 만큼 이번 무역전쟁의 전개 방향을 예상하지 어렵다”고 말했다.
전략적 측면에서 패닉을 경계해야 하지만 증시 바닥을 예측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예상보다 높은 트럼프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며 불확실성이 걷힐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의사를 보였다”며 “증시가 하락하면 파월 의장이 통화정책 전환으로 하락을 방어해줄 것이란 시장 기대감이 약화됐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용둔화 우려보다 높아진 상황”이라고 바라봤다.
미국은 9일 국가별 상호관세 조치 시행을 앞두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지시각 7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를 유예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중국의 보복관세 34% 부과 결정을 놓고 이를 철회하지 않으면 추가 관세 50%를 물리겠다고 맞불을 놨다.
미국의 관세정책에 따른 글로벌 갈등이 더욱 격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형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전망이 어려운 시장의 불확실성을 보면 괜히 머니마켓펀드에 자금이 몰린 게 아니다”며 “다만 머니마켓 ETF 등 파킹형 상품도 종류가 다양해진 만큼 각 상품의 운용보수, 포트폴리오 전략과 환금성을 위한 거래량 등을 잘 살펴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