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박정부 회장, '천 원의 고집'이 만든 다이소 팬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박정부 회장, '천 원의 고집'이 만든 다이소 팬덤
유명 브랜드들이 즐비한 서울 명동 중심가, 12층짜리 '저가(低價) 요새'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난 3월 20일 오후 4시, '다이소 성지'라 불리는 명동역점은 외국인 고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1층 계산대의 바코드는 쉴 새 없이 찍히고 있었다. 다이소의 천원 경영이 어떻게 세계인의 지갑을 여는 무기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실시간 현장이었다.다이소를 운영하는 ㈜아성다이소가 명동에 12층짜리 건물 전체를 임대해 단독 매장을 오픈한 건 2017년이다.3만여 종의 상품은 창업자 박정부 회장(81)이 전 세계 협력업체를 발로 뛰며 찾아낸 집요함의 결정체들이다. 그런 박 회장의 경영 철학은 '본질에 대한 지독한 몰입'으로 요약된다.'다이소 성지'라 불리는 서울 명동역점. 2017년 12층짜리 건물 전체를 임대했다. <이재우>◆ 천 원의 가치…박정부 회장의 지독한 본질 경영1층부터 12층까지 매장들을 둘러보며 박정부 회장의 저서 '천 원을 경영하라' 속의 대표 문장을 복기해 보았다. "천 원짜리 물건은 있어도, 천 원짜리 품질은 없다."이 말은 박정부 회장의 타협할 수 없는 생존 법칙이었다. 천 원에 대한 지독한 몰입은 '본질 경영'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그에게 '천 원'은 고객과 맺은 신뢰의 단위였다.경영학에는 '깨진 유리창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이라는 게 있다. 사소한 결함 하나를 방치하면 결국 전체가 부서진다는 이론이다. 박 회장에게 '천 원짜리 불량품 하나'는 브랜드 전체를 무너뜨리는 깨진 유리창과 같았다."천 원짜리니까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안일함이 침투하는 순간, 다이소 이미지가 추락한다는 사실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매장 진열 상태 하나하나까지 직접 챙기는 현장 중심 경영을 펼쳤던 이유다.그런데 경영 측면에서 보자면, 가격(천 원)을 고정한 채 품질을 높이는 것은 수익 구조상 불가능에 가깝다. 박 회장은 이 모순을 '물류의 혁명'으로 돌파했다.수천억 원을 투입해 용인 남사(2012년 12월 오픈)와 부산(2019년 7월 오픈)에 축구장 수십 개 크기의 최첨단 물류 허브센터를 구축했다.남사허브센터를 만들 당시 주위에선 "당신 제정신이요? 천 원짜리 물건 팔아서 언제 그 돈을 다 뽑겠냐"며 비아냥거렸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의 박정부 회장이었지만 상황이 녹록지는 않았다.2012년 남사허브센터 완공 이후 물류대란이 일어나면서다. 매장이 텅 비자 고객들이 발길을 돌리면서 다이소는 2013년 26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정말 암담했다"던 박정부 회장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박리다매 비즈니스에서 승패는 매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물류)에서 결정됐다.그런 자동화된 물류 시스템은 단위당 처리 비용을 극한으로 낮추는 지렛대가 됐다. 물류 최적화를 통한 한계 이익을 확보하려는 전략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다이소는 남사허브센터 구축 5년 뒤인 2018년 2조 원, 2021년 3조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당시 박정부 회장은 "3조 매출을 지탱해 준 것이 바로 천 원짜리 한 장의 힘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균일가라는 단단한 디딤돌 위에 물류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다이소는 현재 매출 4조 고지에 육박했다. 공급망(SCM) 관리를 이론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접근했기에 가능했다.서울대 경영대학원의 김병도 교수는 다이소의 성공 요인으로 이런 물류 허브 구축과 균일가 가격 정책, 상품개발 능력을 꼽기도 했다.다이소 명동역점 2층 뷰티 코너. 외국인들의 발길이 잦아들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하루 100만 명 이상의 고객이 다이소 매장을 거쳐 간다고 한다. 균일가숍은 진열된 모든 상품을 하나의 고정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단일 균일가 소매점과 몇 개의 고정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복수 균일가 소매점으로 나뉜다. <이재우>◆ 다이소, 유통 공간 넘어 사회적 현상으로 진화다이소는 이제 유통 공간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됐다. 우리의 언어(다이소하다), 공간(다세권), 관계(모바일 상품권)를 규정하는 새로운 인프라로 진화했다.젊은 세대는 쇼핑하러 간다는 말 대신 "나 다이소하고 올게"라고 말한다. 능동적인 소비 행위 자체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된 것이다. 여기에 역세권과 스세권(스타벅스)을 빗댄 '다세권'이란 신조어는 다이소가 지역 상권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는 걸 증명한다.이런 소비 진화의 정점은 모바일 상품권이다. 필자는 얼마 전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다이소 3만 원권 상품권을 선물했다. 습관적으로 보내던 커피 쿠폰 대신이었다."오 이런 게 있었어? 스타벅스보다 훨씬 실속 있겠는데."친구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다이소 매장에서 수십 가지 취향을 골라 담을 수 있는 '풍요로운 선택권'을 선물 받은 셈 아닐까?전국에 1600여 개 매장(2025년 8월 기준)을 거느린 '다이소 제국'의 시작은 평범했다.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전구 생산회사(풍우실업)의 관리자로 일하던 박정부 회장은 마흔다섯이 되던 1988년 돌연 사표를 던졌다.그해 한일맨파워(일본에 기업연수를 보내는 회사로, 현 아성다이소의 모태)를 창업했다. 한일맨파워는 점차 일본 균일가 숍에 상품을 수출하는 무역회사로 업태를 바꾸었고 박정부는 1992년 국내 균일가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아성산업을 만들었다.흥미로운 건 '아성(아시아에서 성공하라는 뜻)'이란 이름을 박 회장의 어머니가 지어주었다는 사실.그런 박 회장이 정작 국내 균일가 숍 1호 매장을 오픈한 건 1997년 5월이었다. 서울 천호동에 13평 남짓한 '아스코이븐플라자' 1호점을 열었다. 이것이 한국 다이소의 시초다.운명의 장난이었을까. 1호점 오픈 그해 말, 대한민국을 뒤흔든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국가적 재난이었던 불황은 역설적으로 박 회장에겐 기회였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워진 소비자들에게 '천 원의 가치'는 생존을 위한 대안이자 작은 위안이었다. 당시 1천원 숍이라는 개념이 생소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2012년 12월 오픈한 경기도 용인 남사 물류허브센터. 지하 2층, 지상 7층 축구장 15개 크기 규모로 다이소 물류혁명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아성다이소>◆ 일본 다이소 창업자 야노 히로다케와의 인연? 악연?박정부 회장의 인생에서 일본 다이소 창업자 야노 히로다케를 빼놓을 수 없다. 야노 히로다케는 일본 100엔숍의 대표주자인 대창산업(大創産業: 이하 다이소산교)을 일군 인물이다. 대창(大創)의 일본어 발음이 다이소다.한일맨파워를 통해 다이소산교에 상품을 수출하던 박정부 회장은 야노 히로다케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야노 히로다케는 물건 보는 눈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상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엄격했다."어디서 이런 쓰레기를 가져와요?"상품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욕을 주거나 가혹할 정도로 퇴짜를 놓았다. 박 회장은 그런 모멸감을 곱씹으며 자신을 담금질했다.그러던 2001년 박정부 회장은 전략적 선택을 했다. 다이소산교로부터 약 38억 원(4억 엔)의 지분 투자를 받은 것이다.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아성다이소의 2002년 12월 감사보고서를 찾아보았다. 당시 다이소산교 지분율이 34.21%, 박정부 회장 지분율이 35.79%였다.지분출자가 이뤄지면서 ㈜아성산업은 ㈜다이소아성산업으로 회사명을 변경했다.(이후 2018년 지금의 아성다이소로 다시 변경)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일본 다이소와 동일한 브랜드를 쓰면서 "일본 기업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 시작했다. 박 회장에겐 뼈아픈 지난날이었다."다이소라는 브랜드명이 오랜 기간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될 줄 몰랐다. 만일 아스코이븐프라자라는 점포 이름을 그래도 유지했다면 오늘날 일본 기업이란 오해를 받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다이소로 브랜드명을 바꾼 것을 뒤늦게 후회도 해보았지만 이미 고객들에게 익숙한 이름을 바꾼다는 것도 쉽지 않었다."(박정부 저, '천원을 경영하라', 쌤앤파커스)오랫동안 이어진 지배구조 논란을 끝내기 위해 박 회장은 2023년 12월 결단을 내렸다. 다이소산교가 보유한 지분(34.21%)을 거둬들인 것이다.아성다이소의 2023년 12월 감사보고서는 "2023년 중 대창산업(다이소산교)의 지분을 취득하여 이익 소각하였다"며 "주요 주주는 아성에이치엠피(76%)"라고 밝히고 있다. (아성에이치엠피는 옛 한일맨파워를 말한다.)22년 만에 일본 지분을 청산하고 한국 토종 다이소 제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사실, 다이소는 출발부터 순수 한국회사였다.박정부 회장, 그는 천 원 균일가의 본질 경영을 30년 동안 한결같이 지켜왔다. 지금의 다이소 성공을 두고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세상에 꾸준함을 이기는 것은 없다." 이재우 경영어록서 '일언천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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