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리포트 8월] 인생 세 번의 기회, 누구에게나 그 기회가 평등하게 오지 않는 나라
- 누구나 태어나 인생을 살면서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주역은 사람에게 18년마다 큰 변화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풀이한다. 18세, 36세, 54세를 전후로 인생의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는 평균 수명이 60세에도 미치지 못하던 먼 옛날의 해석일 뿐이다. 그렇다면 2026년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똑같이 찾아오는 세 번의 기회는 무엇일까. 아마도 배울 기회, 직업을 선택할 기회, 결혼할 기회가 그것일 것이다.먼저 배울 기회를 보자.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니 형식적으로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 진학률의 지역별 격차 가운데 92%가 거주지역 효과, 즉 강남·서초·송파 등 고소득 지역에 밀집한 사교육 인프라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다시 말해 어느 동네에 사느냐가 입시 결과를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라는 뜻이다.맹자가 환생해 우리네 부모들을 본다면 '맹모삼천지교'의 표본 국가로 꼽을 법하다. 좋은 학군이 몰린 지역의 집값이 고강도 규제 속에서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방의 흙수저 자녀들은 '인(in) 서울'을 언감생심 포기하기 십상이고, 서울에 산다고 해서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결국 배울 기회는 지역과 소득에 따라 촘촘하게 갈리고 있다.소득에 따른 교육 격차는 숫자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국가데이터처와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7조5천억 원으로 학생 수 감소 등의 영향으로 5년 만에 소폭 줄었다.그러나 가구 소득 800만 원 이상 가정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66만2천 원인 반면, 소득 300만 원 미만 가정은 19만2천 원에 그쳤다. 세 배가 훌쩍 넘는 격차다. 사교육 참여율도 고소득층은 84.9%, 저소득층은 52.8%로 벌어졌다. 좋은 대학에 보내려면 높은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두 번째, 직업을 선택할 기회를 보자.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6월 청년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19만7000명 줄어 44개월 연속 감소했다. 청년층 고용률은 43.9%로 전년 동월 대비 1.7%포인트 하락하며 26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청년 실업률도 7.0%로 0.9%포인트 상승했다.특히 구직도, 취업 준비도 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고 답한 '쉬었음 청년' 수가 줄지 않고 있다. 6월 청년 '쉬었음' 인구는 35만9000명으로 전월보다 4만9000명 감소했다. 지난 2월 48만5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월평균 40만 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좋은 일자리는 여전히 드물고, 그 드문 자리마저 이미 준비된 소수의 몫이 되는 구조는 이미 고착화된지 오래다. 흙수저 자녀들은 이 사회를 '헬조선'이라 자조하고, 정부와 정치를 향한 냉소는 좀처럼 걷히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을 넘어 낯선 말이 되어가고 있다.세 번째로 인생의 반려자를 맞을 기회는 어떤가 보자. 통계청의 2025년 출생·사망 통계(잠정)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은 0.80명으로 2년 연속 반등했다. 올해 들어 6월까진 0.9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이는 OECD 평균 1.43명에 한참 모자란 수치로 38개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압도적 꼴찌다.혼인 건수는 2025년 24만326건으로 2022년 저점(19만 1,690건)보다 25.4% 늘어나며 3년째 증가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1996년(43만 4,991건)의 55%, 불과 10여 년 전인 2014년(30만 5,507건)의 79% 수준이다.우리나라 혼인 건수는 2025년24만326건으로 불과 10여 년 전인 2014년 30만5507건의 79% 수준에 불과했다. <연합뉴스>청년 혼인 건수 반등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은 주거비다. 지난해 말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15억 원을 넘어섰다. 올해 3월 기준 서울의 중산층 가구(소득 3분위)가 같은 수준의 주택을 사려면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 6개월을 모아야 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소득이 느는 속도가 집값이 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내 집 마련의 문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가진 집 자녀는 여전히 좋은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하지만, 그렇지 못한 집 자녀는 결혼 자체를 미루거나 포기해야 한다.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담도 줄지 않았다. 여러 조사기관의 데이터를 종합하면, 자녀 한 명을 낳아 대학을 졸업시키기까지 드는 비용은 공교육 위주로도 3억5천만~4억 원, 사교육을 포함하면 4억~5억 원에 이른다. 좋은 대학에 보내려면 고액 과외를 해야 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만만찮은 등록금을 감당해야 한다. 맞벌이를 해도 집을 구하기 힘들고, 아이를 낳아 키우기는 더 힘든 것이 현실이다.인생 세 번의 기회, 누구에게나 올 법한 그 기회는 공정하고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배울 기회의 격차가 사는 동네의 사교육 인프라에서 비롯된다면, 지역균형 선발이나 기회균형 전형처럼 출신 지역과 소득에 따른 격차를 좁히는 입시 제도를 흔들림 없이 확대해야 한다.일할 기회의 문제는 '쉬었음' 청년 개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청년 개개인의 상황에 맞춘 일 경험 제공과 취업 역량 강화 프로그램은 물론 애초에 괜찮은 일자리 자체를 늘리는 성장 전략이 함께 가야 한다.결혼과 출산의 발목을 잡는 것이 결국 집값이라면, 신혼부부와 청년을 위한 공공주택 공급을 흔들림 없이 늘리고, 사교육비 부담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교육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움과 일자리, 주거는 서로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정부는 소외 계층과 저소득 가구 청년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여겨선 안 된다. 그 청년이 사는 동네와 상관없이 제대로 배우고, 노력한 만큼 좋은 일자리를 얻고, 원하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다는 공평한 기회와 희망을 줘야 이 땅의 미래가 밝아진다.그 누구든 인생 세 번의 기회를 땀 흘려 노력하면 크게 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 기회를 발판으로 더 큰 일을 하고, 더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 땅의 어른들은 공정한 세 번의 기회를 청년들에게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김승용 산업&IT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