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파업' 피했지만 우려는 커졌다, '영업익 성과급 확산' 기류에 정부 산업계 고심
- 삼성전자 노사의 극적 타결로 총파업 위기는 넘겼지만, 이번 노사 합의가 산업계 전반에 미칠 파장에 대한 정부와 재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까지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모델 도입에 나서면서 앞으로 산업계 전반의 노사 협상과 비용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22일 재계와 노동계의 관측을 종합하면 삼성전자 노사가 잠정 합의한 반도체(DS) 부문 특별성과급 제도는 앞으로 대기업 노사협상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삼성전자 노사는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과 별도로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해 사업 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삼고 성과급 지급 상한선은 폐지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40%는 DS부문 전체에 공통 배분하고 60%는 사업부별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제도는 10년 유효기간을 두며, 최소 영업이익을 달성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사실상 국내 대기업 성과급 체계의 '표준'을 만들어온 만큼 이번 합의가 다른 기업 노조들의 요구를 자극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LG유플러스와 카카오, HD현대중공업 등 일부 대기업 노조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특히 이번 삼성전자 합의는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체계 변화와 맞물려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선점으로 역대급 호황을 누리며 지난해 9월 임금교섭을 통해 '향후 10년 동안 영업이익의 10%를 초과이익분배금(PS) 재원으로 활용하고 지급 상한선을 폐지한다'는 합의안을 도출한 바 있다. 삼성전자 노조 역시 이를 주요 요구 근거로 제시해 왔다.정부도 이번 사안을 단순한 노사갈등이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와 연결된 문제로 보고 있다.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이번 삼성전자 임금협상 과정을 두고 "인공지능(AI) 시대에 급격한 생산력 증대와 이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분배할 것인가 하는 논의의 문을 열었다"며 "삼성전자 노사가 우리 사회 모두가 해결해야 될 성장통을 크게 겪었다"고 말했다.실제 AI 반도체 호황으로 메모리 사업 수익성이 급증한 반면 파운드리와 시스템반도체 부문은 적자를 이어가면서 사업부별 격차가 커졌고, 이에 따라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둘러싼 내부 갈등도 커졌다.특히 엔지니어 중심의 성과 보상 요구가 확대되면서 기존 제조업의 연공·집단 보상 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첨단 엔지니어들의 성과급 요구가 단순히 '더 많은 보너스'를 달라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몸값을 제대로 인정받겠다는 글로벌 인재 시장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김 장관 역시 "의대 망국론을 펼칠 때 이분들은 묵묵히 이공계 현장을 지켰다"며 첨단 엔지니어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인재 유출 방지 필요성을 동시에 언급했다.다만 산업계에서는 'N% 성과급' 모델이 급속히 확산할 경우 투자 여력과 고용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반도체와 2차전지, 우주항공 등 대규모 선행 투자가 필요한 첨단 산업에서는 수년 동안 적자를 견뎌야 하는 사례가 많다.경기 하강 국면에서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구조가 사실상 고정비 성격으로 굳어질 경우 기업의 리스크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장기적으로는 이런 성과급이 정기성·지속성을 인정받아 '통상임금'으로 법적 판단이 나올 경우 퇴직금과 각종 수당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반면 노동계에서는 삼성전자 사례가 그동안 기업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온 성과 배분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삼성전자 노조가 잠정 합의안 찬반투표를 시작한 22일 경기 수원시에 위치한 삼성전자본사 모습. <연합뉴스>정부는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요구가 과도하게 확산하는 데는 명확하게 경계선을 긋고 있다.이재명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회의에서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와 관련해 "세금도 떼기 전에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제도적으로 나눠 갖는 것은 투자자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노동 3권이라고 하는 것도 연대와 책임이라는 아주 중요한 원리가 작동을 한다"고 말했다.정부 안팎에서는 AI·반도체 산업의 초과이윤 배분 요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성과급 구조가 과도하게 고정비화하거나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에 앞으로 정부가 노사 자율 교섭 원칙을 유지하되 국가 전략산업 차원의 생산 차질이나 경제 충격 가능성이 커질 경우 중재와 조정 역할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거론된다.정부가 이번 사태에 이례적으로 깊숙이 개입하며 파업을 강제로 중단시키는 강력한 법적 권한인 '긴급조정권' 카드까지 시사한 배경에는 단순한 기업 손익을 넘어 국가 산업경쟁력과 거시 경제적 파급력에 관한 우려가 깔려 있었다.이런 정부 개입을 두고 일각에서는 기업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질수록 노조가 '국가경제 타격'이라는 여론 부담을 짊어지거나 정부 개입 명분을 제공해 결국 노동권 제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다만 정부는 노사 교섭 과정에서 협력업체 상생과 산업안전, 사회적 재분배 문제 등을 함께 논의 테이블에 올리며 중재에 나섰다.실제 이번 삼성전자 노사 잠정 합의안에는 협력업체 동반성장, 지역사회 공헌, 산업안전 재원 조성 방안 등이 포함됐다. AI·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원청 정규직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하고, 대기업 생태계를 떠받치는 1700여 개 협력업체와 현장 노동자들에게까지 흘러가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최근 정치권에서 번지는 'AI 초과이윤 사회 환원' 논의 역시 이런 맥락과 궤를 같이한다.정치권과 노동계에서는 과거 제조업 시대의 핵심 갈등이 '기본급 인상률'이었다면 AI 시대에는 기술 혁신으로 발생한 초과이윤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 사례를 계기로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논쟁'이 한국 산업계 노사 관계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