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직무 수행 지지도
박남춘은 2018년 8월 광역단체장 직무 수행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17개 시도 가운데 꼴찌를 했다.
여론 조사기관 리얼미터는 8월29일부터 9월2일까지 17개 광역단체장을 대상으로 도(시)정수행을 얼마나 잘하는지 직무 수행 지지도를 조사했다. 박남춘은 '잘한다'는 평가가 33%에 그쳐 최하위를 보였다.
7월 여론조사 때는 지지율 33.5%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앞서 16위였는데 한 달 새 지지율과 순위가 모두 하락했다. 6.13지방선거 때 박남춘은 수도권 광역단체장 최고 득표율인 57.7%를 얻었는데 석 달 만에 20%포인트 이상 지지율이 빠졌다.
다만 민선 5기와 6기 때도 인천시장은 시민에게 높은 지지를 받지 못한 편이다. 송영길·유정복 전 시장 역시 직무 수행 여론조사에서 대부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 ▲ 박남춘 인천광역시 시장이 7월2일 오전 인천시청 앞 미래광장에서 취임사를 발표하고 있다. |
△인천광역시장 당선
박남춘은 2018년 6월13일 열린 지방선거에서 인천광역시 시장에 당선됐다. 제물포고등학교 1년 선후배 사이였던 유정복 전 시장을 제지고 박남춘이 표심을 얻었다.
인천은 전국 표심의 '바로미터'라고 불릴 정도로 정국상황에 따라 표심이 움직여왔다. 인천 표심이 전국 득표율, 정치지형과 비슷하게 나타나면서 여야는 인천시장 선거에 심혈을 기울였다.
박남춘은 인천시장 후보로 선거 유세를 하면서 기자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적 스승이고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를 같이 했던 사람이 바로 나"라며 "나는 유정복 인천시장이 가장 싫어할 후보"라고 말했다.
박남춘은 인천시의 새 비전으로 역사문화 도시, 녹색성장 도시, 행복체감 도시를 제시했다.
박남춘은 공약으로 문재인 정부와 정책적으로 발맞추기 위해 서해 평화협력청 설치, UN 평화사무국 유치, 인천~해주~개성을 연계한 ‘남북 공동경제자유구역’ 추진, 남북 공동어로구역 설치, 한반도 해양 평화공원 조성 등도 내걸었다. 또 원도심을 개발해 신도시와 균형개발 등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공약에 맞춰 인천시는 2018년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시행되는 전국 99개 사업 가운데 5곳을 확보했다.
박남춘은 시장 직속의 도시재생위원회를 설치하고 정무부시장을 균형발전정무부시장으로 임명해 원도심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따라 5년 동안 인천광역시 20곳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밖에 55억 원을 투입해 빈집, 폐가 등이 범죄의 온상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방침도 정했다.
박남춘은 인천시장으로서 조직 개편을 했는데 그 키워드가 원도심, 협치, 평화, 일자리다.
△20대 국회의원 당선
박남춘은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인천 남동갑 후보로 재선에 성공했다.
당시 박남춘은 새누리당 후보로 나온 문대성 후보를 1만9586표 차이로 이겼다.
박남춘은 도시철도 3호선(남부순환선)을 건설해 서창-도림-논현-남동산단-송도를 바로 연결한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수도권광역 급행철도(GTX)를 추진해 인천과 서울을 30분 안에 오가는 시대를 열고 월곶과 판교 복선 전철을 조기 완공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남촌동에 주거와 상업, 업무시설이 복합된 도시첨단 산업단지를 새로 조성하고 6천억 원 규모의 남동공단 리모델링을 추진할 것도 약속했다.
이밖에 랜드마크가 될 국립 해양박물관을 짓고 대규모 복합 체육시설단지를 조성하는 것과 중학교 무상급식을 실현하겠다는 것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대 국회에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로 활동했다.
박남춘은 2018년 5월14일 인천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았다.
△19대 국회의원 당선
박남춘은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인천 남동갑 후보로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당시 박남춘은 4선 의원에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이윤성 무소속 후보와 남동구 3선 구청장인 윤태진 새누리당 후보와 경쟁했지만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박남춘은 "젊다! 의리있다! 능력있다! 노무현의 브레인"을 표어로 내걸고 '인천을 위해, 60만 중앙부처 공무원을 움직일 사람! 서민들의 뜨거운 눈물부터 닦겠습니다'라는 문구로 홍보활동을 했다.
박남춘은 당시 국회의원 연금 폐지 및 각종 수당 투명화, 남동공간 첨단 디지털화 및 혁신 중소기업 육성, 인천도시철도 2호선 인천대공원-논현택지 연장, 인천도시철도 2호선 KTX 광명역 연결, 수인선 논현동 도심 구간 터널형 방음벽 설치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법률소비자연맹에 따르면 박남춘의 공약은 이행 가능성 등 충실도가 높기로 전체 10위권 안에 들었다.
2016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따르면 박남춘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관석·홍영표 의원 등과 함께 116건의 공약 중 60건(52%)을 달성했다.
박남춘은 법률소비자연맹총본부의 19대 국회 의정활동 종합평가에서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7위에 올랐다. 또 민생 법안을 113건 발의해 인천 지역 국회의원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박남춘이 임기 동안 확보한 지역예산은 모두 4820억 원이다.
| ▲ 박남춘 인천광역시 시장이 2012년 4월11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선거사무실에서 딸의 입맞춤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
△참여정부 시기 정치계 입문
박남춘은 스스로를 '뼈노(뼛속까지 친 노무현)'라고 할 만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계에 입문한 계기도 노 전 대통령의 손에 이끌려서다.
박남춘은 노 전 대통령이 당선돼 참여정부가 출범하자 청와대에서 국정상황실 상황1팀장, 국정상황실장, 인사제도비서관, 인사관리비서관, 인사수석비서관으로 일했다.
당시 박남춘은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해 국내에서 벌어지는 국정상황을 모니터링했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생활한 5년 동안 이틀 반나절 쉬었다고 한다.
박남춘은 예리한 인사 선구안으로도 회자됐다.
2005년 수자원공사 사장 인사 당시 환경부 장관 출신의 곽걸호씨를 추천할 때였다. 당시 환경부 직원들은 '장관 출신이 어떻게 공기업에 가느냐', '격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지만 박남춘은 직원들을 설득해 곽 사장을 임명했고 그가 뛰어난 경영성과를 거둬 반대론자들을 무색하게 했다고 한다.
비외교관 출신으로 처음 외교부 차관에 오른 김호영씨를 외교부 2차관으로 임명할 때도 그랬다. 박남춘은 외교부의 폐쇄적 순혈주의문화를 깨겠다며 김 차관을 선임했고 외교부 출신이 주로 맡아왔던 주유엔 대표부 대사에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임명하기도 했다.
박남춘은 당시 기존의 1~3급 제도를 폐지하고 국장(3급) 이상 고위급 공직자들의 부처간 인사 교류와 승진을 행정안전부에서 별도로 관리하는 고위 공무원단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박남춘은 당시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살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려면 누구보다 투명하고 흠결없이 공직생활을 해야하며 금붕어처럼 투명하지 못하면 참여정부에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 야당, 보수언론의 트집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노무현과 만남
2000년 박남춘은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총무과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박남춘은 국장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장관의 최종 결재만 남겨둔 상태였다.
박남춘은 당시 과장으로 진급한 동기들이 이미 한 단계 더 진급한 상태이기 때문에 총무과장을 맡으면 혼자 뒤쳐지는 모양이 되는 데다가 인사라인(차관-기획관리실장-총무과장-인사계장)이 고려대학교 라인으로 채워져 편향인사 시비가 생길 수 있다며 고사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박남춘이 계속 거절하자 당시 차관을 불러 "장관의 진심어린 설득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공무원을 국장에 진급시킬 수 있겠나, 진급 심사가 전반적으로 잘못된 것 같으니 다시 해 오라"고 지시했다. 그뒤 차관까지 나서 박남춘을 간곡하게 설득하면서 결국 그는 총무과장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박남춘이 온라인상에서 업무 처리와 지식 관리를 할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사람, 직원들이 직무 관련 학습활동을 하도록 만들면서 조직 혁신을 할 사람, 회의를 토론 방식으로 바꿀 사람이라며 총무과장에 선임했다.
박남춘은 국장 진급에서 탈락한 마음을 추스릴 새도 없이 곧바로 그날 오후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제목에 '혁신', '학습' 등 단어가 들어있는 책 21권을 사들고 집에 가 주말 내내 통독한 다음 월요일 아침 향후 추진 계획을 세 페이지로 요약해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