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이완구 전 국무총리

철두철미한 성격의 충청권 맹주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5-01-21 18: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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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이완구 전 국무총리
▲ 이완구 전 국무총리.


이완구는 1950년 6월 2일 충남 청양군에서 태어났다.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소속으로 당선돼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1998년 정권교체가 되자 공동여당이자 충청권 지역정당인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바꿨다.

제16대 총선에 나서 재선에 성공했으며 2006년 5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해 충청남도지사에 당선됐다.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겠다며 도지사에서 물러났다.

2013년 4.24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로 복귀했으며 2014년 5월 8일 새누리당의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2015년 1월23일 정홍원 국무총리의 후임 국무총리에 내정됐고 2월17일 제43대 국무총리로 취임했다.


2015년 4월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났고 2015년 8월부터 제19대 국회 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40년간 정치와 경제, 치안, 민선행정을 두루 거친 3선 의원이다. 정치인 가운데 이렇게 다양한 이력을 갖춘 인물도 흔치 않다.

자민련 부대변인 시절 박태준 총재에게 '철두철미하다'는 평을 들었고, 김종필 명예총재에게 '번개가 치면 먹구름이 낄지, 천둥이 칠지를 아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적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충남도지사 시절 외자유치에 성과를 냈고 민생도 세세하게 챙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에도 새로운 '충청권 맹주'로 단박에 떠오를 수 있었다.

2009년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충남지사직을 던져 이후 ‘친박’으로 분류됐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충남도당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아 당시 박근혜 후보를 돕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무총리 등 입각 가능성이 거론됐다. 2013년 4월 부여청양 재보궐 선거를 통해 원내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으나 9년이라는 긴 원내 공백으로 세력기반이 약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5월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되면서 당내 입지가 강화됐으며 당청 및 여야 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보수색채가 강한 완벽주의자이면서 카리스마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박’의 핵심인사로 꼽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후임이지만 정치경력으로 한참 선배다. 최 부총리보다 나이(5년), 행정고시 기수(7년), 국회 입성(8년)이 모두 위다.

원내대표가 되기 전까지만해도 친박 내에서 비주류로 분류됐으나 원내대표 취임 뒤 국정현안을 매끄럽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아 핵심 친박인사로 급부상했다.

정치권에서 '외유내강형' 정치인으로 불린다. 상대를 배려하는 특유의 친화력을 갖췄으면서도 원칙에 있어서 물러서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충분히 얘기가 통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라고 평가했다.

자민련 원내대표를 맡았던 재선 의원시절부터 장차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감추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주팔자를 봤는데 '관운'이 무지하게 좋다는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여러 측면에서 비교되기도 한다. 나이는 김 대표가 한 살 어리다. 두 사람은 1996년 15대 국회에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원내에 진출한 국회 입성 동기다.

경력도 엇비슷하다. 김무성은 5선 의원으로 여당 대표가 됐다. 이완구는 3선이지만 도지사를 거쳤다.

박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김 대표보다 훨씬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부처에서 공직을 시작했고 재경위에서 활동한 점을 들어 국회에서 ‘경제통’으로 꼽힌다. 16대 국회에서 2002년 증권거래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성균관대 행정학과 3학년 재학중이던 1974년 제1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권오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동기다. 20대에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했다.

경찰로 옮겨 최연소 경찰서장(31세), 최연소 경무관, 40대 초반 최연소 충북충남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충남 경찰청장 시절 관내 200여 파출소를 모두 방문하는 열성을 보이는 등 지역에서 이름을 알렸다.

1995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자민련 바람을 일으키며 민자당 홍성청양지역 의원을 영입할 때 홍성청양지역구 위원장을 맡았다.

1996년 15대 총선에 충남에서 유일한 신한국당 의원으로 당선됐다. 신한국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충남이 기반이란 점 때문에 당적을 자민련으로 바꿨는데 이 때부터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자민련 대변인 등을 맡다가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해 원내총무를 지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자민련을 탈당해 한나라당으로 옮기면서 이른바 '이적료 파문'에 휩싸였다.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UCLA대 교환교수로 1년여를 보냈다.

2006년 6월 지방선거에 한나라당 충남지사 후보로 당선되며 2년 만에 공직에 복귀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에 단식투쟁을 벌이면서 반대입장을 고수하다가 도지사를 사퇴했다. 당시 세종시 원안을 고수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면서 줄곧 ‘친박’으로 분류돼 왔다.

2012년 1월 뜻하지 않은 다발성 골수종(혈액암) 발병으로 병상에 누웠다.

투병생활 끝에 2013년 제19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나서 부여청양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충청권의 신맹주로 떠오르며 당내에서 세종시지원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세종시 지원에 앞장섰다.

2014년 5월 경선 없이 의원들의 추대로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2015년 2월부터 4월까지 제43대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맡았다.


2015년 3월 광복70년기념 사업추진위원회 정부위원장을 맡은 뒤 2015년 8월부터 제19대 국회 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학력

덕명국민학교를 나와 대전중학교를 졸업했다.


양정고등학교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미시간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형사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단국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 가족관계

부인 이백연씨와 사이에서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 상훈

2001년 한국언론인연합회로부터 ‘올해의 정치인’에 선정됐다.

2007년 대한민국 혁신경영인 대상을 수상했다.

2008년 한국 최고의 경영자대상 광역지방자치단체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2008년 제1회 국제최고경영자상을 수상했다.

2008년 외국기업의 날 대통령 상을 받았다.

◆ 상훈

2001년 한국언론인연합회로부터 ‘올해의 정치인’에 선정됐다.

2007년 대한민국 혁신경영인 대상을 수상했다.

2008년 한국 최고의 경영자대상 광역지방자치단체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2008년 제1회 국제최고경영자상을 수상했다.

2008년 외국기업의 날 대통령 상을 받았다.

어록


“삼인성호, 즉 거짓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곧이들린다는 선현들의 말씀이 오늘따라 제 가슴을 울린다.” (2016/01/05 성완종리스트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제게 1996년 정치입문을 권유하신 분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시라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많이 아프다.” (2015/11/23 김영삼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으로 믿으며 오늘은 여백을 남기고 떠나고자 한다.” (2015/04/27 국무총리 이임식에서)


“충청도 말투가 원래 그렇다.” (2015/04/16 ‘성완종리스트’ 관련 대정부질문에서 “왜 자꾸 말이 바뀌냐”는 질문에 한 답변)


“김영란법이 운용되면 친척이 대접받는 일로 제재를 당해야 한다. 그러면 언론이 취재를 마음대로 못할 것이다. 이 법(김영란법)은 기본적으로 사회를 맑고 깨끗하게 하자는 것인데, 언론자유가 침해될 때 이게(언론자유) 더 우선돼야 한다.”(2015/01/19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과 관련해 기자들과 만나)


“개헌이 정치개혁의 전부인 양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으니 종합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2015/01/15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새누리당 지도부의 개헌논의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며)


“칭찬도 며칠 들으면 그런 법인데 이제 대통령 공격 그만하자. 매일같이 하니까. 여당도 좀 반성하고 생각하고 야당의 바람을 취합해서 우리도 청와대와 얘기하겠다. 대통령도 생각하지 않겠나. 조금 숨 돌릴 틈을 주면 감사하겠다. 야당은 파트너다. 숨 쉴 틈을 좀 달라. 쇄신하도록 당도 노력하겠고, 청와대 노력하겠다.”(2015/01/15 국회 새정치연합 당대표실에서 열린 ‘여야 2+2 회동’에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총리직 제안은 전혀 모른다. 대한민국에 총리하실 훌륭한 분들이 굉장히 많다. 5월 7일까지가 내 (원내대표) 임기다. 자꾸 밀어내려는 것 같아서 섭섭하다. 5개월 뒤를 어떻게 알겠느냐. 정당이란 원래 시끄럽다. 언론에서 친박과 친이를 만들었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2015/01/04 MBC TV '시사토크 이슈를 말한다'에 출연 총리제안설과 당내 계파 갈등설에 대해)


“헌법은 대한민국 그 자체이며, 헌재 판결은 마땅히 존중돼야 하고 그 어떤 부정도 있어서 안 된다.”(2014/12/22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과 관련해)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이 된 원인을 여러 각도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일본정부가 당시에 비정규직을 양산해 버렸다. 자칫하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대승적으로 생각해서 비정규직을 좀 줄이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2015/01/04 한 방송에 출연해 정부가 추진중인 비정규직 대책에 반대하며)


“어느 조직이나 친소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정당은 용광로에서 쇳물이 나오듯 다양한 목소리를 녹여내 건강한 민주주의를 이뤄나가는 곳이므로 파열음이 있다고 해서 걱정할 게 없다.”(2015/01/02 당내 계파갈등설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야당(새정치민주연합)은 그런대로 괜찮은 정당이다. 여야 모두의 승리다. 앞으로 국정의 중요한 축으로 인정하며 해나가겠다. 과거 (여당) 원내대표가 야당 원내대표 방을 거의 찾지 않은 점에 주목하고 10번 넘게 야당 원내대표방을 찾아서 회담했다. 일방적으로 (한쪽이) 승하고, 패하면 반드시 후유증이 온다. 여야가 서로 윈윈해야 한다.”(2014/12/24 공무원연금개혁 특위·자원외교국정조사 특위 구성 및 운영 등 주요 현안에 여야 합의결과에 대해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초별로 다 까발리는 게 온당하다고 보나요. 지구상에 어떻게 그런 나라가 있어요"(2014/08/01 오마이뉴스 기자와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방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1000일 같이 느껴진 100일이다.”(2014/08/14 원내대표 취임 100일을 앞둔 소감에서)

◆ 평가

40년간 정치와 경제, 치안, 민선행정을 두루 거친 3선 의원이다. 정치인 가운데 이렇게 다양한 이력을 갖춘 인물도 흔치 않다.

자민련 부대변인 시절 박태준 총재에게 '철두철미하다'는 평을 들었고, 김종필 명예총재에게 '번개가 치면 먹구름이 낄지, 천둥이 칠지를 아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적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충남도지사 시절 외자유치에 성과를 냈고 민생도 세세하게 챙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에도 새로운 '충청권 맹주'로 단박에 떠오를 수 있었다.

2009년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충남지사직을 던져 이후 ‘친박’으로 분류됐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충남도당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아 당시 박근혜 후보를 돕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무총리 등 입각 가능성이 거론됐다. 2013년 4월 부여청양 재보궐 선거를 통해 원내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으나 9년이라는 긴 원내 공백으로 세력기반이 약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5월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되면서 당내 입지가 강화됐으며 당청 및 여야 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보수색채가 강한 완벽주의자이면서 카리스마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박’의 핵심인사로 꼽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후임이지만 정치경력으로 한참 선배다. 최 부총리보다 나이(5년), 행정고시 기수(7년), 국회 입성(8년)이 모두 위다.

원내대표가 되기 전까지만해도 친박 내에서 비주류로 분류됐으나 원내대표 취임 뒤 국정현안을 매끄럽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아 핵심 친박인사로 급부상했다.

정치권에서 '외유내강형' 정치인으로 불린다. 상대를 배려하는 특유의 친화력을 갖췄으면서도 원칙에 있어서 물러서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충분히 얘기가 통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라고 평가했다.

자민련 원내대표를 맡았던 재선 의원시절부터 장차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감추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주팔자를 봤는데 '관운'이 무지하게 좋다는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여러 측면에서 비교되기도 한다. 나이는 김 대표가 한 살 어리다. 두 사람은 1996년 15대 국회에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원내에 진출한 국회 입성 동기다.

경력도 엇비슷하다. 김무성은 5선 의원으로 여당 대표가 됐다. 이완구는 3선이지만 도지사를 거쳤다.

박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김 대표보다 훨씬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부처에서 공직을 시작했고 재경위에서 활동한 점을 들어 국회에서 ‘경제통’으로 꼽힌다. 16대 국회에서 2002년 증권거래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 기타

권오규 전 부총리,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 김용덕 전 금융감독원장 등과 행시동기이며 정계, 관계, 학계 등 인맥이 넓다.

천주교 신자로 영세명 바오로다.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가 멘토다.

2012년 1월 다발성골수종 판정을 받고 8개월간 치료 끝에 완치했다.

2015년 1월 리얼미터가 발표한 1월 2주차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4.6%로 여당 내에서 6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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