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덕장 스타일의 정통 신한맨, 따뜻한 금융 강조 [2016년-2]
이규연 최석철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2016-12-05 08: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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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한동우는 신한금융지주 회장이다. 1982년 신한은행 창립멤버로 합류한 뒤 30년 넘게 신한금융에 몸담은 정통 ‘신한맨’이다.

1948년 11월10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신탁은행에 입행하며 금융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신한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창립멤버로 활약했고 기획조사부장과 인사부장, 종합기획부장을 지냈다. 이사와 상무이사을 거쳐 개인고객본부 신용관리 담당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신한생명 사장을 거쳐 신한생명 부회장을 끝으로 신한금융그룹을 떠났다가 신한사태가 터지면서 신한금융지주 회장으로 복귀했다.

신한금융지주 회장 임기는 2017년 3월까지다. 임기를 마치기에 앞서 경영권 승계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신한은행 여신담당 임원으로 재임할 때 융자 신청 서류만 보고도 연체 가능성을 예견할 정도로 여신에 있어서 '달인' 경지에 이르러 동료와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회장에 취임하기 전 주변으로부터 ‘언젠가는 은행장을 한번 할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다. 한동우는 뛰어난 친화력과 업무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고속승진을 할 수 있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임직원들을 지휘하는 ‘용장’이라기보다 부드러운 미소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덕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꾸준히 ‘따뜻한 금융’을 강조하는 것도 온화한 리더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동우는 신한인의 행가인 ‘새롭게 알차게 따뜻하게’ 제작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독서경영으로도 유명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일반소설에서 전문 경영서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경영 구상을 하고 임직원과 지인들에게도 책을 자주 선물한다고 알려졌다.

2016년 1월 있었던 경영포럼에서는 문화인류학 분야 세계적인 석학인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저서를 인용하며 인류의 진화과정을 통해 인류 생존에 대한 시사점을 기업 생태계에 접목하기도 했다.

33년 동안 중앙의 핵심 요직과 영업현장을 두루 거친 인물로 신한금융지주의 대표적인 ‘영업통’이자 ‘기획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발생한 신한사태로 신한금융지주가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회장에 취임해 성공적으로 상처입은 조직을 보듬으며 갈등을 해결하고 업계 1위 금융지주회사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지털 금융을 강화하는데 힘쓰면서 아문센 경영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아문센 경영은 남극탐험에 나선 아문센이 험한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기보다 철저한 준비와 전략으로 밀어붙여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것이다.

2011년 취임 직후 지주회사 내에 ‘스마트금융팀’ 신설을 지시했고 2012년에는 그룹 내 혁신 인재들로 구성된 ‘신한 스마트 이노베이터스’를 만들었다. 2016년에는 스마트금융팀을 디지털전략팀으로 독립시켰다. 또 국내 핀테크 기업 및 투자회사 등을 모으고 그룹의 대표적 스타트업 프로그램인 ‘신한 퓨처스랩’ 2기 모집 설명회도 열었다.

실적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면서 취임 이후 6년 연속 순이익 1조 원을 달성하면서 국내금융그룹 1위를 이끌고 있다. 2014년부에 이어 2015년에도 2년 연속 2조 원 이상의 순이익을 이끌었다.

이는 한동우의 보수적인 리스크관리정책과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으로 평가받는다. 신한금융그룹의 고정이하 여신에 대한 부실대출채권 비율은 0.95%로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또 비은행 그룹사들이 은행과 시너지를 통해 비은행부문과 비이자부문의 이익도 늘어났다.

정치권이나 사내 파벌에 얽매이는 금융권 기업문화를 없애려고 노력했다고 평가받는다. 지주사 CEO의 자격요건에 임기 중이라도 만 70세가 되면 퇴임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또 주요 자회사 대표와 임원이 참여하는 ‘그룹 경영회의’도 도입했고 자회사 CEO를 선임할 때 은행 임원 출신에서 벗어나 다양한 자회사 출신 임원을 임용하고 있다.

한동우가 거둔 성과에 대해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신상훈 전 사장이나 라응찬 전 회장이 일군 밭에서 한동우가 열매를 거둬들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2005년 나라사랑카드 1차 사업자로 선정돼 10년 동안 독점 운영해왔으나 2015년 말 2차 사업자 선정에서 국민은행과 기업은행에 사업권을 빼앗겼다.

다음카카오 컨소시엄에 참여해 인터넷 전문은행에 도전하려 했지만 KB금융이 컨소시엄에 참여하면서 기회를 잃기도 했다. 신한금융은 인터넷 전문은행 참여를 위해 다음 기회를 기약하게 됐다.

2016년 세 가지 핵심과제로 디지털 금융 구현과 해외진출, 리스크 관리를 내걸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한동우는 1970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이듬해 한국신탁은행에 입행하면서 금융권에 들어왔다. 이후 1977년 신용보증기금으로 직장을 옮겼다.

1982년 신한은행이 공식 출범했을 당시 개설준비위원을 맡으며 신한맨으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1983년 신한은행 기획조사부장을 맡았고 1986년 서울 종로지점으로 자리를 옮겨 지점장에 임명됐다. 1987년에는 인사부장을 맡았다.

1989년 신한생명 설립사무국 국장으로 임명돼 생명보험사를 탄생시켰다. 이듬해 다시 신한은행으로 돌아온 한동우는 종합기획부장을 역임했다.

1993년 신한은행 이사에 임명됐다. 임원 승진 당시 그의 나이가 45세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에 가까운 인사였다. 그만큼 신한은행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95년 신한은행 중소기업본부장겸 상무이사에 임명됐고 4년 뒤 신한은행 개인고객본부 신용관리담당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부행장시절 대표적 위험관리 지표인 ‘고정이하여신비율’을 6.94%에서 1.78%로 크게 줄여 신한은행의 자산건전성을 크게 높였다.

이어 기획조사부장과 인사부장, 종합기획부장 등 핵심 요직을 거친 뒤 1993년 파격적으로 45세에 신한은행 이사로 승진한 이후 1999년 신한은행 부행장에 임명돼 신한은행을 이끌 차기 주자로 부상했다.

2002년 신한생명으로 자리를 옮겨 사장을 맡았다. 신한생명 사장 시절 뛰어난 리더십으로 신한생명을 업계 4위로 성장시켰다. 2001년 약 120억 원에 불과했던 순이익은 2006년 1235억 원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2007년 인사에서 신한생명 상근 부회장에 임명됐다. 외형상 승진이었지만 맡은 일이 경영고문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난 격이었다. 당시 그는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이을 유력한 차기 회장후보 가운데 한 사람으로 거명되고 있었다.

2009년 5월 신한생명 부회장을 끝으로 신한을 떠나 야인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2010년 9월 신한금융을 뒤흔든 ‘신한사태’가 터지며 라응찬 전 회장과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이 동반 퇴진하자 그에게 신한금융 회장 자리가 맡겨졌다. 신한사태란 2010년 라응찬 당시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신상훈 당시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배임과 횡령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을 시작으로 서로 법적 다툼을 이어간 사건을 말한다. 두 세력 간의 권력 다툼이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2011년 3월 정식으로 신한금융 회장에 취임했다. 그가 신한금융을 맡은 뒤 신한금융은 2015년까지 8년 연속 국내 금융그룹 중 순이익 1위를 달성했다.

2014년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이로써 2017년 3월까지 3년 더 신한금융의 선장을 맡게 됐다.

2015년 2월 차기 신한은행장으로 조용병 신한BNP파리바운용 사장을 임명했다. 조 사장은 신한사태 당시 중립으로 분류됐고 글로벌 부문과 영업, 인사, 기획 등을 두루 거친 점이 강점으로 꼽혀 발탁됐다.

해외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미 2009년 베트남에 설립한 신한베트남은행이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해외 매출이 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기 때문에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에서도 베트남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영업에 나설 계획이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하는 ‘글로벌 지속가능경영 100대 기업’에 국내 기업 가운데 최고 순위인 18위에 선정됐다. 국내 금융회사로는 유일하게 4년 연속 100대 기업 순위에 올랐다.

◆ 학력

1966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해 학사학위를 받았다.

황선태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과 부산고-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이다. 황 전 이사장은 2011년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양건 전 감사원장과 양승태, 김용담 전 대법관과 서울대 법대 동기다.

◆ 가족관계

부인 정영희씨 사이에 두 아들을 뒀다. 두 명 모두 10여 년 전에 결혼해 분가했다고 한다.

◆ 상훈

2012년 매경이코노미가 선정한 올해의 CEO에 선정됐다.

2013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이 주관하는 ‘2013년 대한민국 금융대상’에서 올해의 금융인 상에 선정됐다.

2014년 금융연구 기관인 아시안 뱅커가 주관하는 ‘2014 리더십 대상’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고 금융 CEO로 선정됐다.

2016년 5월 한국능률협회가 선정한 ‘제48회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했다. 한금융그룹의 지속가능성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됐다.

9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한 ‘제40회 국가생산성대회’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따뜻한 금융’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고객만족 생산성 혁신활동을 전개해 국내 금융권 최고 수준의 생산성을 빚어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11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이 주관하는 ‘2016년 대한민국 금융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 상훈

2012년 매경이코노미가 선정한 올해의 CEO에 선정됐다.

2013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이 주관하는 ‘2013년 대한민국 금융대상’에서 올해의 금융인 상에 선정됐다.

2014년 금융연구 기관인 아시안 뱅커가 주관하는 ‘2014 리더십 대상’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고 금융 CEO로 선정됐다.

2016년 5월 한국능률협회가 선정한 ‘제48회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했다. 한금융그룹의 지속가능성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됐다.

9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한 ‘제40회 국가생산성대회’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따뜻한 금융’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고객만족 생산성 혁신활동을 전개해 국내 금융권 최고 수준의 생산성을 빚어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11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이 주관하는 ‘2016년 대한민국 금융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어록


“최근 세계 경제는 저성장, 저금리가 일상화된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정상) 시대를 넘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까지 더해진 뉴 애브노멀(new abnormal, 새로운 비정상)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2016/09/01, 신한금융지주 창립 15주년 행사에서)

“올해 한 해 또 열심히 잘해서 마무리를 잘 해야겠다. 우리나라는 마무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마무리가 잘못되면 지난 5년이 다 잘못되는 거다. 금년에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겠다.”(2016/03/24, 주주총회를 마친 뒤 취임 5주년 소감을 밝히며)

“우리 사회는 디지털이 변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사회로 접어들었다. 창조적 혁신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 신한인에게 주어진 과제다.” (2016/01, 신년사에서)

“진화는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변화의 결과다. 신한도 앞으로 ICT의 발전이 가져올 새로운 세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금융업 본업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2016/01, ‘2016 신한경영포럼’에서)

“그룹 전체가 하나의 회사처럼 움직여야 한다.” (2015/12/23, 그룹 시너지 추진방향을 ‘하나의 고객, 하나의 기업’으로 수립했다고 밝히면서)

“기업문화와 개인의 고유한 개성을 조화시켜야 한다. 기업문화는 그 기업의 색깔이고 신한도 고유의 ‘신한 문화’가 있다. 각자의 다양한 개성과 가치관을 잘 살리면서 그 기본가치를 잘 지켜나가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에서 직업에 대한 보람을 찾기 바란다.” (2015/12/08, 신한은행연수원에서 신한그룹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10% 참여해서는 금융회사가 주도적으로 인터넷 전문은행의 그림을 주도적으로 그리기 어렵다. 앞으로 2차 인터넷 전문은행 모집 때 다시 설립을 추진할 수 있다.” (2015/10/19, 핀테크 협업 프로그램 ‘신한 퓨처스랩’ 데모데이 행사에 참석해서)

“경쟁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신한의 미래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저금리로 인해 수익성마저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돌파구는 해외 시장 뿐이다. 신한의 사업 영역을 세계로 확장해 나가자.” (2015/09/01, 창립 14주년 행사에서)

“저를 비롯한 임직원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미래를 함께하는 따뜻한 금융’을 구현해 신한금융이 대한민국 금융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도록 하겠다.” (2014/03/26, 서울 중구 신한금융지주 본사에서 열린 제 13회 정기주주총회에서)

“최고의 산악인은 정상에 오르는 것만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오를 것인지도 함께 생각하는 등로주의(登路主義) 등반을 추구한다. 신한도 실적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더 큰 목표를 향한 새로운 방식을 찾는 ‘금융의 등로주의’를 실천할 때다.” (2014/01/09, 서울 중구 신한금융지주 본사에서 열린 출입기자 오찬 간담회에서)

“과거 신한 사태와 관련된 분들은 이제 신한을 위해 마음을 내려놔야 한다.” (2013/12/12, 서울 중구 신한금융지주 본사에 출근하면서 기자들에게 한 말)

“조직은 후배들이 들어와 새로움을 전파하고 선배들이 비켜주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신진대사가 이뤄지는 곳이다.” (2013/12/06, 경기도 기흥의 신한은행 연수원에서 신입사원들에게 한 말)

“‘무지명(無智名) 무용공(無勇功)’이란 말을 가슴에 새기며 묵묵히 맡은 일에 집중하면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 (2013/12/06, 경기도 기흥의 신한은행 연수원에서 신입사원들에게 한 말. 무지명 무용공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로 ‘전쟁을 잘하는 장수의 승리는 지략이나 명성, 용맹이나 공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는 뜻인데 자신의 좌우명으로 알려졌다. 생색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며 남보다 더 많이 앞서 생각하고 고민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새로운 시대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원칙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찾아야 한다.” (2013/09/02, 서울 중구 신한금융지주 본사에서 열린 신한금융지주 창립 12주년 기념식에서)

“100년 전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탐험가 아문센은 ‘승리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를 행운이라 부른다’라고 말했다. 우리도 아문센 성공방식을 배워 철저하게 현장에 맞게 준비하면서 최고의 실력을 키워나가 새로운 미래를 신한의 것으로 만들자.” (2013/01/02,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신년사에서)

“신한은 재일교포 주주들이 만든 은행이다. 교포들의 창업 이념을 계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11/02/14, 차기 신한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친 라(라응찬 전 회장) 후보이니 반 라 후보이니 하는 것들이 많았다. 앞으로 부모와 선배 같은 마음으로 모두를 끌어안을 것이다.” (2011/02/14, 차기 신한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 평가

신한은행 여신담당 임원으로 재임할 때 융자 신청 서류만 보고도 연체 가능성을 예견할 정도로 여신에 있어서 '달인' 경지에 이르러 동료와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회장에 취임하기 전 주변으로부터 ‘언젠가는 은행장을 한번 할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다. 한동우는 뛰어난 친화력과 업무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고속승진을 할 수 있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임직원들을 지휘하는 ‘용장’이라기보다 부드러운 미소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덕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꾸준히 ‘따뜻한 금융’을 강조하는 것도 온화한 리더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동우는 신한인의 행가인 ‘새롭게 알차게 따뜻하게’ 제작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독서경영으로도 유명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일반소설에서 전문 경영서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경영 구상을 하고 임직원과 지인들에게도 책을 자주 선물한다고 알려졌다.

2016년 1월 있었던 경영포럼에서는 문화인류학 분야 세계적인 석학인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저서를 인용하며 인류의 진화과정을 통해 인류 생존에 대한 시사점을 기업 생태계에 접목하기도 했다.

33년 동안 중앙의 핵심 요직과 영업현장을 두루 거친 인물로 신한금융지주의 대표적인 ‘영업통’이자 ‘기획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발생한 신한사태로 신한금융지주가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회장에 취임해 성공적으로 상처입은 조직을 보듬으며 갈등을 해결하고 업계 1위 금융지주회사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지털 금융을 강화하는데 힘쓰면서 아문센 경영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아문센 경영은 남극탐험에 나선 아문센이 험한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기보다 철저한 준비와 전략으로 밀어붙여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것이다.

2011년 취임 직후 지주회사 내에 ‘스마트금융팀’ 신설을 지시했고 2012년에는 그룹 내 혁신 인재들로 구성된 ‘신한 스마트 이노베이터스’를 만들었다. 2016년에는 스마트금융팀을 디지털전략팀으로 독립시켰다. 또 국내 핀테크 기업 및 투자회사 등을 모으고 그룹의 대표적 스타트업 프로그램인 ‘신한 퓨처스랩’ 2기 모집 설명회도 열었다.

실적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면서 취임 이후 6년 연속 순이익 1조 원을 달성하면서 국내금융그룹 1위를 이끌고 있다. 2014년부에 이어 2015년에도 2년 연속 2조 원 이상의 순이익을 이끌었다.

이는 한동우의 보수적인 리스크관리정책과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으로 평가받는다. 신한금융그룹의 고정이하 여신에 대한 부실대출채권 비율은 0.95%로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또 비은행 그룹사들이 은행과 시너지를 통해 비은행부문과 비이자부문의 이익도 늘어났다.

정치권이나 사내 파벌에 얽매이는 금융권 기업문화를 없애려고 노력했다고 평가받는다. 지주사 CEO의 자격요건에 임기 중이라도 만 70세가 되면 퇴임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또 주요 자회사 대표와 임원이 참여하는 ‘그룹 경영회의’도 도입했고 자회사 CEO를 선임할 때 은행 임원 출신에서 벗어나 다양한 자회사 출신 임원을 임용하고 있다.

한동우가 거둔 성과에 대해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신상훈 전 사장이나 라응찬 전 회장이 일군 밭에서 한동우가 열매를 거둬들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2005년 나라사랑카드 1차 사업자로 선정돼 10년 동안 독점 운영해왔으나 2015년 말 2차 사업자 선정에서 국민은행과 기업은행에 사업권을 빼앗겼다.

다음카카오 컨소시엄에 참여해 인터넷 전문은행에 도전하려 했지만 KB금융이 컨소시엄에 참여하면서 기회를 잃기도 했다. 신한금융은 인터넷 전문은행 참여를 위해 다음 기회를 기약하게 됐다.

2016년 세 가지 핵심과제로 디지털 금융 구현과 해외진출, 리스크 관리를 내걸었다.

◆ 기타

자타 공인 독서광이다. 틈만 나면 책을 읽으며 영감을 얻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임직원과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한다. 분야도 일반 소설에서 전문 경영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2016년 1월 경영포럼에서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언급하며 “생존하려면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로 유명한 짐 콜린스의 책은 거의 모두 읽는 편으로 알려졌다. 2013년 신년사에서 이른바 ‘아문센 경영’을 언급했는데 이는 짐 콜린스의 책인 ‘위대한 기업의 선택’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평일에는 시간이 없어 간단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만 주말처럼 여유가 나면 주로 골프와 등산을 즐기는 편이다. 특히 골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다. 이는 필드를 돌며 주변 사람들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골프를 통해 냉정한 상황판단 능력을 단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퇴근하면 최대한 회사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이른바 ‘온오프’ 시간관리습관이라고 한다. 밤낮없이 일만 계속할 경우 긴장이 지속돼 오히려 업무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음식 중 국수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유명 국수 전문점들이 있는 서울 성북동과 삼청동, 북창동 등을 돌며 ‘맛집 탐방’을 즐긴다. 특히 양념맛이 강하지 않고 담백한 메밀국수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첫 직장이었던 서울신탁은행에서 7년 만에 나온 이유는 그가 맡았던 명도소송 결과 추운 겨울 거리로 쫓겨난 가족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라고 한다. 명도소송이란 경매 등으로 임차인이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잃었음에도 비워주지 않는 경우 소유주가 제기하는 소송을 말한다.

고 한기선 범양상선 회장을 인생의 멘토로 삼는다.

한기선 회장은 서울대 법대 선배이자 서울신탁은행에서 일하던 시절 관리부 차장을 맡았던 직장 선배였다. 그가 1990년대 후반 신한은행 상무로 재직했을 때 범양상선이 발주한 선박 건조를 맡은 조선사가 부도를 내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했다. 이 때 한기선 회장은 남의 약점이나 불행을 이용해 이득을 보는 것은 정도에 어긋난다며 원래 계약대로 선박을 인수해 조선사뿐만 아니라 신한은행도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야구에서 포지션을 잘 잡은 수비수는 몸을 던지지 않고도 공을 쉽게 처리한다. 하지만 그의 플레이는 눈에 띄지 못한다"가 그의 좌우명이다.

2016년 상반기에 12억500만 원을 받아 은행과 카드, 보험업계 최고경영자 가운데 상반기에 최대 보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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