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다음 봉준호 감독 영화에 투자
CJENM은 기생충 이후에 나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두 편에도 투자한다.
이미경은 2020년 2월18일 CNN뉴스에 출연해 ‘봉 감독 차기작에 참여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함께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미경은 “앞으로 한국 영화와 방송, 게임을 케이콘과 같은 국제 무대에 포함해 해외에 더 알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봉 감독은 한국 영화 한 편, 영어 영화 한 편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영화를 놓고 봉 감독은 “뉴욕이나 시카고에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며 “서울처럼 모든 사람들이 피부색이 같아야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CJENM은 2003년 ‘살인의 추억’부터 봉 감독에게 투자했다.
특히 2013년 ‘설국열차’로 해외시장을 본격 공략했다.
CJENM은 투자처를 못 찾는 설국열차에 400억 원을 지원했다. 당시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이었다.
설국열차는 북미에 개봉했을 때 상영관이 8개에 그쳤지만 호평을 받으며 350개로 점차 늘려갔다.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 시상식 등에서 수상
이미경은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조명받았다.
‘기생충’은 2020년 2월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받았다.
기생충은 작품성뿐 아니라 ‘오스카 캠페인’에 CJENM이 인력과 자금을 대거 투입한 데 힘입어 수상의 쾌거를 이뤄냈다.
봉준호 감독은 제작진 및 출연진,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등과 함께 촬영기간보다 오랜 시간 세계를 돌며 영화를 홍보했다.
영향력이 큰 인물들과 영화단체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개최하고 봉 감독은 600회 가까운 인터뷰를 소화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문화사업을 확장하는 데 자금을 지원했다. 오스카 캠페인에 100억 원 정도를 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경은 숨은 공신으로 꼽혔다. 미국에서 형성한 엔터테인먼트업계 네트워크를 동원해 우호 여론을 형성했다. 이미경은 기생충 제작에 책임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이미경은 2019년 5월 칸 국제영화제 때부터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미경이 영화제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업계는 기생충이 개봉을 하기 전부터 CJ그룹이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바라봤다.
이미경은 당시 5년 만에 공식석상에 나왔고 기생충은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기대감을 모았다.
| ▲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미국 현지시간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 이후 무대에 올라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
△CJ라이브시티
CJENM 자회사 CJ라이브시티가 경기도 고양시 한류월드 부지 30만㎡(축구장 46개 크기)에 복합문화공간 ‘라이브시티’를 만든다.
CJ라이브시티는 2019년 4월 사업변경안을 경기도에 제출했다. CJENM이 2016년 일산에 테마파크를 조성할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K컬처밸리’로 사업을 진행하려 했는데 사업이름과 방안을 바꿨다.
1조8천억 원을 들여 콘텐츠 놀이공간과 아레나, 호텔 등을 지어 2024년 개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애초 2021년 열기로 목표를 잡았으나 늦어졌다.
CJ라이브시티는 미국 AEG와 공동으로 한국 첫 아레나를 짓는다. 2만 석 규모다. 아레나는 관객을 1만 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실내 공연장을 말한다.
CJ그룹 자체 호텔 브랜드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실제 진행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경이 호텔 콘셉트 등을 짜는 데 참여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때 경영일선 물러나
이미경은 박근혜 정부의 눈 밖에 나 퇴진압박을 받았다.
2018년 10월25일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조원동 전 경제수석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조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이미경의 퇴진을 강요했다가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됐다.
조 전 수석은 2013년 7월 CJ 손경식 회장에게 연락해 "대통령의 뜻"이라며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강요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이미경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CJE&M(현재 CJENM)의 영화 및 방송이 좌편향됐다고 바라보고 이미경을 물러나게 하려고 압력을 넣었다.
방송으로는 시사·정치 풍자코너 '여의도 텔레토비'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내용이, 영화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변호인' 투자 검토 등이 이런 판단을 하도록 만든 것으로 파악된다.
조 전 수석 재판 1·2심은 “증거들에 의하면 대통령이 피고인에게 ‘이미경을 물러나게 하라’고 지시한 사실, 피고인이 그런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CJ 손경식 회장에게 연락해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달한 사실 등이 인정된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다만 결국 이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볼 수밖에 없고 다행히 결과적으로 범행이 미수에 그친 점 등을 고려해 실형은 선고하지 않는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미경은 지병 치료 등을 이유로 2014년 경영일선으로 물러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현지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활동은 지속적으로 해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 ▲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오른쪽)이 2014년 1월22일 벨베데레호텔에서 열린 '2014 한국의 밤' 행사에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씨와 악수하고 있다. |
△이재현 경영공백 메워
이미경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경영공백이 발생하자 그룹 경영전면에 나섰다.
2013년 5월 검찰은 횡령·배임·조세포탈 혐의로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겨냥해 수사에 착수했고 이 회장은 같은해 7월 구속됐다.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뒤 이미경과 손경식 CJ그룹 회장, 이채욱 CJ그룹 부회장, 김철하 CJ제일제당 사장 등이 그룹 경영위원회 회의를 만들어 매달 2차례씩 모여 주요 안건을 논의하면서 경영공백을 메웠다.
그러나 이미경은 외부에서 자기 사람을 대거 영입하고 조직개편을 실시하면서 여러 논란을 일으켰다.
노희영 전 CJ그룹 고문 등 외부에서 이미경이 영입한 인사와 기존 CJ 임원 사이 갈등이 심해졌고 이재현 회장 측근인사들이 연이어 이직하면서 CJ그룹 내부에서 조직이 동요했다.
이미경은 ‘미디어·엔터테인먼트사업에 밝지만 그룹 전체를 장악할 능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미경은 CJ그룹 경영에서 물러났고 2014년 10월 미국으로 출국했다.
손경식 회장은 법정에서 “당시 이 부회장의 출국은 유전병이 악화돼 치료받기 위해서가 첫 번째 목적이었다”며 “또 다른 이유는 회사 내에서 여러 사람들과 약간의 문제가 있어 미국에서 엔터테인먼트 관련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산업의 큰손
이미경은 CJ그룹이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뒤 제일제당 중심의 식품사업에서 벗어나 엔터테인먼트사업부문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CJ그룹에서는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을 C1과 C2로 불렀다. C는 Chairman의 약자다. 그만큼 그룹 내 이미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이미경은 CJ엔터테인먼트를 세우고 CJ그룹의 엔터테인먼트사업을 이끌었다. 1997년 케이블TV 엠넷을 인수해 방송채널을 확보했으며 1998년에는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극장 CGV강변을 설립하며 영화관사업도 시작했다.
영화투자와 배급, CGV 극장 건립 등을 주도해 한국영화 발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 음악, 공연, 방송 등의 분야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고 CJ엔터테인먼트를 국제적 브랜드로 키우고 영상을 넘어 인터넷, 케이블TV 분야까지 진출한 걸출한 비즈니스 리더라는 평가도 들었다.
이후 CJ그룹의 모든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사업을 총괄하기 위해 CJE&M을 세웠다. 이미경은 CJE&M에서 콘텐츠를 직접 세밀하게 챙겼다.
방송부문에서 ‘슈퍼스타K’를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해 성공했다.
영화사업부문도 마찬가지다. 이미경이 영화투자 결정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설국열차’ 등 영화 제작에 참여해 흥행영화를 세상에 내놨다.
반면 2011년 강제규 감독이 제작한 ‘마이웨이’는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투자를 밀어붙인 끝에 흥행에 실패하기도 했다.
△드림웍스 배급권 따내
학업을 끝내고 계속 미국에 머물며 삼성전자 미국 현지법인 삼성아메리카에 근무했다. 1995년 드림웍스와 제일제당의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제일제당으로 소속을 옮겼고 이후 엔터테인먼트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드림웍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이 창립한 영화사다. 이미경은 삼성아메리카 이사로 재직하면서 드림웍스와 협상을 주도했다.
당초 드림웍스는 삼성그룹의 자본 투자를 원해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까지 협상에 응답했다. 그러나 경영권을 보장해달라는 삼성의 요구를 스필버그 감독이 거절해 협상이 깨졌다.
1995년 3월 이미경은 동생 이재현 회장을 불러 드림웍스와 협상을 성사했다. 당시 이 회장은 제일제당 상무로 재직했지만 실질적으로 제일제당 경영권을 쥐고 삼성에서 분리독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이미경의 도움으로 드림웍스에 3천억 원을 투자해 지분 취득과 함께 아시아 배급권을 따냈고 제일제당은 엔터테인먼트사업을 시작했다.
2013년 한국을 방문한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CEO는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이미경 부회장의 협업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드림웍스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