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기정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이 2019년 11월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
△청와대와 지역 사이 현안 소통의 가교
강기정은 지역현안을 직접 챙기는 등 청와대와 지역 사이 소통 강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 경제투어 점검을 위해 광역지방자치단체를 직접 방문해 향후 계획과 후속 지원방안 등을 논의했다.
강기정은 2019년 12월13일 강원도청을 방문해 지역현안과 건의사항을 점검하고 간담회도 열었다.
그는 "지자체가 발표한 경제 비전이 종이쪽지로만 남아 있는지 실제로 진도가 나가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왔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내에서 지역경제 현안 소통 창구 역할에도 충실한 모습을 보여왔다.
강기정은 충청남도 혁신도시 지정, 울산시 한국조선해양 본사 이전, 파주시 지하철3호선 연장 등 지역현안을 두고 지자체장들과의 면담에 적극적 행보를 보였다.
△국정감사 파행 논란
강기정은 2019년 11월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반말로 고함을 쏟아냈다.
나 원내대표가 북한 미사일을 현재의 방어체계로 막을 수 있다는 취지로 답변한 정의용 안보실장에게 "억지로 우기지 말라"고 말하자 정 실장 뒷자리에 앉아있던 강기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기다가 뭐냐"고 소리치며 항의했다.
국정감사는 여야 의원 사이 고성과 반말을 주고받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하면서 파행했다.
강기정은 다음날인 11월2일 새벽 본인의 발언으로 정상적 회의 진행에 지장을 초래한 것에 관해 유감을 나타냈다.
이 일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논란 이후 차갑게 식어버린 여야관계는 더 얼어붙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에서는 강기정의 개인 캐릭터와 청와대의 오만이 겹쳐진 사건이라며 경질을 요구했다.
2019년 11월6일 여야는 강기정 출석을 놓고 대립하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사를 파행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 관련해 야당과 마찰
강기정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과 관련해 야당과 마찰을 빚었다.
강기정은 2019년 8월19일 야당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 부정입학 등 가족 문제를 제기하자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민들은 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누구의 청문회인가'라고 질문을 하고 있다"며 "국회는 그에 관해 정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사촌, 팔촌의 인사검증이 아닌 후보자의 청문회"라며 인사청문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 일정과 관련해서도 국회와 갈등을 빚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인사청문요청안이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날로부터 15일 이내, 청문보고서 채택은 청문회 후 3일 이내로 명시돼 있어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9월2일까지 절차를 종료해야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9월3일로 합의했다.
이를 두고 강기정은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과 여야 합의가 나온 뒤 국회 본관에서 우연히 만나 적법성을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강기정은 2019년 8월30일 춘추관에서 입장문을 내고 "일부 야당에서는 일정을 더 늦추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며 "사실상 청문회를 무산시키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강기정은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에 관한 수사를 진행하던 2019년 9월26일 검찰에 '조용히 수사하라'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해 수사 외압 논란에도 휩싸였다.
강기정은 2019년 11월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것"이라며 "적절성은 국민이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정협의체 회동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2018년 11월 첫 여야정협의체에서 머리를 맞댄 데 이어 분기마다 한 번씩 열기로 했지만 후속 회동이 이뤄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5당대표 회담을 제안했지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여당에 협조했던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을 제외한 3당 대표 회담을 주장했다.
강기정은 회동 방식에 이견을 보이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을 방문해 회동 성사를 위해 힘썼다.
강기정은 2019년 5월20일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를 만나 "대통령과 당대표 1대 1 회담 방식에 대해 사실은 어떤 형태의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저희도 잘 알고 있다"며 "그런데 순리대로(5당 대표 회담) 갔으면 하는 게 대통령의 뜻"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2019년 6월4일 강기정이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의 만남을 물밑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기정은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심하니 4당 대표라도 만나야 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회동 범위를 두고 이견을 주고 받던 2019년 6월11일 강기정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해산해 달라는 청원에 정당에 관한 평가는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라고 답변하며 "국회법이 정한 6월 국회는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편성된 추경안은 48일째 심사조차 못하고 있다" 짚었다.
이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한마디로 선거운동과 다름이 없다”며 국회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 ▲ 강기정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왼쪽)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10일 국회의장실을 예방해 문희상 국회의장과 환담하고 있다.<연합뉴스> |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강기정이 문재인 정부 정무수석을 맡은 뒤 정국이 급랭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24일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을 국회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국회 보이콧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강기정은 국회가 합의하지 못하면 임명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야당 원내대표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기정의 강공법이 그대로 나타난 사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강기정은 2019년 1월8일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됐다. 전병헌 전 수석과 한병도 전 수석에 이어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정무수석을 맡았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강기정을 두고 “특유의 책임감과 검증된 정무능력을 바탕으로 국민, 야당, 국회와 늘 소통하며 여야정 상설협의체의 성공적 운영, 그리고 협치를 통한 국민 대타협의 길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기정은 “정무수석이 하는 일은 정책에 민심의 옷을 입히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뜻을 잘 국회에 전달하고 국회의 민의를 대통령께 잘 전달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기정 임명을 두고 여야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당정청 사이 긴밀한 소통은 물론 국회 및 각 정당들과 원활한 소통과 협치를 이끌어 낼 적임자”라고 평가하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반면 윤영석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원조 친문사단의 청와대 귀환으로 그나마 협소하던 국민 소통의 길은 더욱 막혀버릴 것”이라고 바라봤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강기정의 폭행 전과를 들어 “청와대의 독선과 전횡을 그대로 반영한 구제불능 인사”라고 평가했다.
△19대 국회 공무원연금 개혁
강기정은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 국민대타협기구 공동위원장을 맡아 공무원연금 개혁의 합의를 이뤄냈다.
2015년 공무원연금개혁은 헌정 사상 최초의 국회 주도 국민대타협으로 의의가 있다. 강기정은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야당 간사와 국민대타협기구 공동위원장으로 200여 일 동안 논의에 참여해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2014년 10월 박근혜 정부에서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하자 새정치민주연합은 강기정을 단장으로 하는 공적연금발전TF를 구성해 맞섰다. 강기정은 연금개혁을 위해 사회적 대타협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무원연금뿐 아니라 공적연금 전반을 동시에 개혁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2015년 1월6일 국회 특위와 함께 정부, 공무원노조,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대타협기구가 구성됐고 치열한 논의를 전개했다. 대타협기구는 활동기한 동안 합의안을 마련하는 데는 실패했으나 기여율을 높이고 지급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간격을 좁혀 나갔다.
이후 실무기구를 구성해 2015년 5월2일 특위 활동을 종료할 때까지 기여율 9%, 지급률 1.7%로 단계적 조정하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기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상향을 주장했다. 이를 놓고 논의 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하면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은 5월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강기정은 이 과정에서 야당 내부와 공무원단체를 설득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3선 의원 정치활동
강기정은 3선 의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초선 의원 때는 열린우리당 복지특별위원회 위원장, 보건복지위원회 간사 등을 맡았다. 65세 이상 어르신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법을 2006년 대표 발의해 2007년 법안 통과를 이끌어냈다.
재선 의원 때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정세균계 정치인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행정안전위원회 간사로 활동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된 의료 민영화와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저지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3선 의원 때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전당대회에서 이해찬, 김한길, 추미애 후보에 이어 4위에 올라 호남 출신으로 유일하게 지도부에 올랐다. 2013년에는 당대표에 도전장을 냈으나 이용섭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 중도 하차했다. 이 후보는 김한길 후보에게 패배했다.
2014년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터지자 새정치민주연합 신용정보유출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세월호 참사가 터진 이후에는 참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관피아 근절을 위한 관피아방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5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전월세 종합대책, 4대 민생고 해소를 위한 가계부채 대책 등을 내놓았다. 그러나 메르스 피해병원 지원을 위한 자체 추경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종걸 원내대표와 갈등을 빚으면서 정책위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선거이력
강기정은 총선 네 번, 재보선 한 번 등 모두 다섯 번의 선거를 치러 3선 국회의원에 올랐다.
2000년 16대 총선에 광주 북구갑 지역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하지만 19.9%의 득표율로 박광태 새천년민주당 후보에게 뒤져 낙선했다. 2002년 박광태 의원이 광주시장 출마를 위해 사퇴하고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는 18.0%의 득표로 역시 김상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59.82%를 득표했다. 현역 의원인 김상현 후보를 꺾고 설욕에 성공하면서 국회에 처음 입성했다.
2008년 18대 총선 때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63.28%를 득표하면서 4선 의원을 지낸 한화갑 무소속 후보를 꺾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광주 북구갑에서 57.71%를 득표하며 3선에 성공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공천에서 배제돼 출마하지 못했다. 그러나 광주 북구갑에 공천된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김경진 국민의당 후보에게 42%포인트 뒤지면서 낙선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광주광역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민형배, 최영호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했으나 경선에서 이용섭 전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밀려 탈락했다.
△학생운동
강기정은 전남대학교 재학 중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82년 사회조사연구회에서 선배였던 박관현 열사를 알게 됐다. 그는 전남대 학생운동을 이끌다가 1982년 4월 체포된 후 교도소에서 단식투쟁을 하다 사망했다.
강기정은 그의 시신을 지키다가 경찰과 충돌을 빚어 처음으로 경찰서에 연행됐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85년 삼민투(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투쟁위) 위원장에 올랐다. 5.18 진상 규명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미국 문화원 점검 농성에 참여했다. 이들은 ‘광주학살 지원한 미국의 사과’와 ‘전두환 독재정권 지원 중단’을 요구했다.
정확히는 서울 을지로와 광주 황금동에서 각각 미국 문화원을 동시 점거하기로 했는데 서울은 실제 점거 농성을 벌였고 광주에서는 미수에 그쳤다.
하지만 강기정은 삼민투 위원장으로 국가보안법, 집회시위법 등 위반으로 체포됐다가 징역 8년을 받고 복역했다. 교도소에서 재소자 처우 개선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1988년 특별 사면·복권돼 풀려났다.
이후 새날청년회 등을 만들어 시민운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