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희 고문의 별세, 한솔그룹의 동일인 변경
2019년 1월30일 이인희 전 한솔그룹 고문이 세상을 떠나 한솔그룹에 동일인 변경사유가 발생했다.
조동길은 2002년 그룹 회장에 올랐지만 이 전 고문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한솔그룹의 동일인 자리를 별세하기 전까지 지키고 있었다. 한솔그룹은 동일인을 조동길로 변경했다.
2019년 5월15일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지정을 발표하면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동일인으로 직권지정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도 각각 기업집단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조동길은 공정위로부터 한솔그룹 동일인으로 지정받지 못했다. 한솔그룹의 자산 총액이 5조 원 밑으로 떨어져 공시대상 기업집단에서 제외된 탓이다.
한편 이 전 고문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 남짓 지난 2019년 3월4일 조동길의 부친인 조운해 전 고려병원 이사장도 작고했다.
△한솔그룹을 지주사체제로 전환
조동길은 2015년 한솔그룹을 지주사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한솔제지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물적분할해 투자회사 한솔홀딩스를 지주사로 삼았다. 동시에 그룹의 순환출자고리를 끊어내기 시작했다.
한솔홀딩스는 2016년에 신주를 내어주고 한솔제지 지분을 공개매수하는 주식교환 작업을 진행했다. 주식을 교환한 뒤 한솔홀딩스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에서 조동길 외 5인으로 바뀌었다.
2017년 6월 한솔시큐어가 보유한 한솔넥스지 지분 18.42%의 매각을 결정하면서 그룹의 순환출자고리를 모두 끊고 지주사체제를 확립했다.
그런데 한솔그룹이 지주사체제로 전환하자 그동안 순환출자 구조에 가려 있었던 오너일가의 미약한 지배력에 시장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대표이사 교체 등 주요 안건이 주주총회에 상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33.3%를 초과하는 지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솔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끝난 직후 조동길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한솔홀딩스 지분은 20.4%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조동길은 2018년부터 한솔홀딩스와 한솔제지로부터 급여를 받을 때마다 한솔홀딩스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솔홀딩스의 지배구조는 외부 공격으로부터 취약하다.
2019년 10월 말 기준으로 조동길은 한솔홀딩스 지분을 10.28%(485만904주) 보유하고 있다. 한솔홀딩스의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21.82%(1029만5566주)다.
△한솔그룹 구조조정 지속
한솔그룹은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해 나온 뒤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2000년 자산 기준으로 11위에 오른 대기업 집단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그룹 회장에 오른 조동길은 한솔그룹의 구조조정을 지속 추진하며 계열사와 자산을 매각하거나 새 회사를 인수합병하기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한솔그룹은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산 5조 원이 넘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대규모기업집단’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한솔그룹은 2013년 다시 자산 5조 원을 넘기며 대규모기업집단에 42위로 합류했다.
조동길의 오랜 구조조정을 거쳐 한솔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한솔제지를 중심으로 화학소재(한솔케미칼), LED소재(한솔테크닉스), 인테리어자재(한솔홈데코), IT서비스(한솔피앤에스), 플랜트 및 산업설비(한솔이엠이), 물류(한솔로지스틱스) 등 다양한 사업군을 갖춘 기업집단으로 거듭났다.
한솔그룹은 2019년 다시 공정위가 지정하는 공시대상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2천억 원대 자산을 보유한 보일러 계열사 한솔신텍을 매각해 자산이 5조 원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2019년 8월에는 한솔오크밸리 리조트의 운영사 한솔개발의 경영권을 HDC현대산업개발에 매각했다.
한솔제지의 새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2019년 3월 그룹의 모태인 전주페이퍼(신문용지사업)와 태림포장(골판지사업)의 인수를 타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2019년 8월 한솔그룹이 최종적으로 인수전에서 발을 빼며 무산됐다.
한솔제지가 2019년 상반기 기준으로 보유하고 있었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205억 원에 그쳐 대형 인수합병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솔그룹 회장 첫 해, 경영혁신으로 흑자전환
조동길은 2002년 한솔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는 그룹 총수가 된 직후 상무보,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 등 5단계의 임원직급 체계를 상무, 부사장, 사장 등 3단계로 축소하는 임원직제 개편을 시행했다.
구조조정이 끝난 직후의 한솔그룹이 아직 위기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재빠른 의사결정을 통한 경영 효율화를 추구한 것이다.
조동길의 경영혁신은 2002년 한솔그룹이 5년 만에 흑자를 거두는 결실로 돌아왔다.
그는 공을 임직원들에게 돌렸다. 2003년도 한솔그룹 임원인사에서 모든 임원들은 최소한 자리를 지키거나 승진했다.
△한솔그룹 부회장으로 그룹 구조조정 담당
한솔그룹 3세 경영자들은 1998년 모두 그룹 부회장에 오르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금융부문 부회장은 삼형제의 첫째 조동혁 현 한솔그룹 명예회장이, 정보통신부문 부회장은 조동만 전 한솔아이글로브 회장이, 제지부문 부회장은 조동길이 맡았다.
조동혁 금융부문 부회장은 한솔종금(당시 대아금고, 현재는 폐쇄)과 한솔창투(당시 동서창투, 그린기술투자로 바뀐 뒤 현재는 폐쇄)등을 각각 인수했고 조동만 정보통신부문 부회장은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을 따내는 등 사업 확장에 열을 올렸다.
반면 조동길은 사업 확장 대신 한솔제지의 내실을 다지는 데 힘썼는데 이는 한솔그룹이 외환위기에도 제지사업을 중심으로 살아남는 밑거름이 됐다.
이 시기 한솔그룹의 금융 계열사와 정보통신 계열사들은 대부분 무너졌지만 조동길의 제지사업은 여력이 남아있었다.
그는 IMF 외환위기 직후 그룹의 모태가 된 신문용지사업(전주페이퍼)을 매각하고 팬아시아페이퍼 등 합작법인 설립을 주도하는 등 이인희 당시 한솔 고문이 진두지휘한 한솔그룹 구조조정에서 일익을 담당했다.
특히 팬아시아페이퍼의 설립은 조동길이 경영능력을 제대로 보여준 일로 평가됐다.
그는 전주페이퍼 지분을 매각하는 대신 신문용지사업을 진행할 새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해외자금의 유치로 눈을 돌리고 한솔제지 내부에 외자유치나 인수합병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과장급 이상 직원 8명을 모아 태스크포스 ‘타이거팀’을 꾸렸다.
조동길은 타이거팀을 직접 이끌고 해외를 돌며 투자자들을 물색했다. 해외 기업들과 문화나 경영관습의 차이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해외경험을 살려 조정에 나서기도 했다.
조동길은 결국 노르웨이 노스케스코크, 캐나다 아비티비콘솔리데이티드 두 회사와 한솔제지가 함께 3자 조인트벤처 형태로 팬아시아페이퍼를 설립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당시 그가 유치한 투자의 규모는 모두 9억4천만 달러였다.
그는 한솔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인 경영수완을 토대로 2002년 한솔그룹 회장에 올라 경영권을 승계했다.
조동혁 부회장은 한솔그룹 명예회장에 임명돼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조동만 부회장은 한솔텔레콤, 한솔아이벤처스, 한솔글로브, 한통엔지니어링 등 4개 회사를 들고 계열분리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