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이 2019년 9월2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국과 미국의 정상회담에 배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윤제 주미대사,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 중단 결정 과정에서 역할
정의용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서 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 보호협정(GSOMIA)을 종료하는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한국 정부는 8월22일 일본과 맺은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연장하지 않고 종료하기로 했다.
정의용은 같은 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며 군사정보 보호협정의 연장 여부를 논의했다.
정의용은 8월6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본이 안보상 문제가 있어 수출통제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보상의 협력이 필요해 지소미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두 개의 주장에는 모순이 있다”며 “군사, 외교적 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 군사정보 보호협정 종료의 계기가 된 일본 정부의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 제외 결정이 나오기 전에 정의용이 일본으로 가서 협상을 벌였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아에라(AERA)의 보도에 따르면 정의용은 7월 말 극비리에 일본으로 파견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보국장과 담판을 벌였다.
아에라는 “정 실장과 야치 국장이 담판에 나섰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타협을 허락하지 않아 마지막 협상이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일본이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한다는 각의 결정을 내린 8월2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브리핑을 하며 “7월 중 정부 고위인사 파견이 두 차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에라의 보도와 김현종 차장의 브리핑 내용을 토대로 청와대가 파견한 고위인사 가운데 한 명이 정의용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2019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
정의용은 2019년에도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합의의 진전과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위해 양측 주요 인사들과 접촉하며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여 왔다.
청와대가 6월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외교적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언론의 비판을 반박할 때 예를 든 것이 정의용의 활동일 정도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에서 정의용의 비중은 크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언론의 비판과 관련해 “우리는 공개되지 않은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며 “정의용이 6월 초 중국을 방문했기 때문에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북 가능성 등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의용은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14개월 동안 5번 만나고 52번 통화했다”며 “비공개 대북채널을 통한 북한과의 소통도 원활하다”라고 덧붙였다.
정의용은 활발한 대북 접촉을 바탕으로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대안정치연대 의원은 2019년 6월 북한이 보내온 고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위한 조전과 조화를 수령하는 자리에 참석한 뒤 “김여정 부부장이 ‘외교안보실장께서 나오신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밝은 미소를 띄는 것을 봤다”며 “정 실장이 나온 것을 굉장히 환영하고 기대했다는 표정으로 읽혔다”고 말했다.
△2018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
정의용은 2018년 12월21일 청와대 춘추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을 문재인 정부의 한 해 외교안보 성과로 꼽았다.
정의용은 “2018년은 한마디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새로운 원년”이었다며 “65년 동안 남한과 북한의 적대적 분단관계가 이제 거의 사실상 종식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해 북한도 이 과정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정의용은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놓고 남한이 과거에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수세적 자세를 취했다면 이번에는 적극적이고 주도적 태도로 평화 합의를 끌어냈다고 짚었다.
정의용은 북한의 핵실험 등 도발행위도 줄어들었다고 짚었다. 2017년 북한은 핵실험을 비롯해 모두 16회 전략적 도발을 감행했지만 2018년에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남북관계 접촉과 대화도 2017년에는 전혀 없었지만 2018년에는 정상회담 3차례를 비롯해 모두 36회 남북회담이 다양한 형태로 진행됐다.
정의용은 남북관계 개선을 상징하는 획기적 사건도 10가지를 뽑았다.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김여정·김영남 및 김영철·리선권 특사단이 남한을 방문한 일, 4월27일 1차 남북 정상회담, 5월1일 남한과 북한 상호비방 중지와 5월4일 군사분계선 확성기 철거를 들었다.
또 5월26일 판문점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 6월12일 미국과 북한 정상회담, 9월14일 남북 공동연락소 개성 설치, 9월19일 평양 공동선언, 11월1일 남북 사이 군사분계선 일대 모든 적대행위 중단, 12월7일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에서 유해 발굴을 위한 지뢰 제거작업 완료, 12월12일 남북 군사검증단의 상호방문을 통한 감시초소(GP) 파괴 상호검증 등도 골랐다.
정의용은 “과거 비핵화 협상 때는 쉬운 과제부터 해결하는 바텀업(상향식) 방식을 선택했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인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추진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며 “쉬운 것부터가 아니라 어려운 것부터 정면돌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양 정상회담
정의용은 2018년 9월18일부터 9월20일까지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데 기여했다.
정의용은 2018년 9월5일 대북 특별사절단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 평양에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리 위원장과 만나 20분 동안 얘기를 나눴다.
정의용은 문 대통령의 친서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한 정의용은 평양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비핵화 실천을 위한 방안과 4·27 판문점선언 이행 성과 등을 살폈다. 정의용은 서훈 국정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과 함께 공식수행원으로 문 대통령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다.
정의용은 평양 공동선언 이후에 군사 분야 합의를 놓고 “사실상 남북간 불가침 합의”라고 평가하며 “국제사회 불신을 해소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 및 종전 선언 합의 이행에 총력
정의용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협상이 남한 북한 미국 관계에서 선순환하며 빠르게 추진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회담에서 이룬 약속을 이행하는 데 다소 더딘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체제 보장을 맞바꾸는 거래에서 실무적 협상이 답보상태로 멈췄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정의용은 제자리걸음하는 북미관계를 풀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2018년 7월21일부터 1박2일 동안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났다.
2018년 10월30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만났으며 12월21일에도 비건 대표를 만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한국과 미국 사이 공조를 더 강화하기로 했다.
△대북특사 뒤 잇단 정상회담 성과
정의용은 대북 특사로서 북한과 미국을 오가며 남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큰 성과를 거뒀다.
정의용은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과 함께 2018년 3월5일 북한을 방문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을 논의했다. 당시 북한은 추가 도발을 중단할 것을 약속하고 북미대화의 여건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2018년 3월9일에는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이때 미국에 북한의 의중을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5월 안에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정의용이 중심이 된 대북 특사단을 파견한 뒤 남북미 관계의 급진전이 이뤄졌다.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 5월22일 한미 정상회담, 5월24일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5월26일 판문점 2차 남북 정상회담,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 등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이런 여정을 통해 북한은 남한과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겠다,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 등을 담은 ‘판문점선언’을 내놓았다. 북한과 미국은 미군 유해 송환, 비핵화 노력 등의 내용을 담은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성과를 놓고 정의용은 문재인 정부의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의용을 ‘적임자’라고 평가한 게 정확했다는 말도 들었다.
△사드배치 문제로 트럼프 정부 신임
정의용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를 놓고 기존 정권에서 한국과 미국 사이에 맺었던 약속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자세를 통해 미국에서는 한미 동맹 균열설을 일축하고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신임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지지층을 고려할 때 미국으로 치우친 성향이 짙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에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자 사드 관련 자세를 대미외교 지렛대로 사용해 회담을 이뤄낸 것으로 평가가 달라졌다.
△사상 처음 민간 출신 국가안보실장
정의용은 사상 처음으로 군출신이 아닌 민간인이자 외교 분야 인사로서 안보실장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조직개편으로 비서실 산하의 외교·국방·통일정책 보좌 기능을 안보실로 옮기면서 안보실 기능을 크게 강화했다.
안보실은 1차장(차관급) 정원 22명에서 1,2차장 정원 40여 명으로 확대됐다.
국가안보실장 아래에는 국가위기관리센터, 1차장과 2차장이 있다. 1차장 아래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사무처)와 안보전략과 국방 개혁, 평화군비 통제, 사이버정보 등의 비서실이 있다. 2차장은 외교정책, 통일정책 등의 비서실 업무를 다룬다.
특히 사이버 안보는 기존에 국가정보원이 중심이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가안보실이 컨트롤타워가 됐다.
외교·안보는 정권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첫걸음인 만큼 초대 국가안보실장으로서 역할이 더욱 주목받았다. 정의용은 북핵 문제에 만족스러운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이전 정부의 외교 실패를 만회하는 과정 등에서 초대 안보실장으로 성과를 평가받고 있다.
△문재인 캠프 외교자문그룹에 합류
2017년 2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외교자문그룹인 국민아그레망 단장으로 합류했다. 국민아그레망은 정의용을 비롯한 전직 외교관 24명으로 구성돼 문재인 후보의 외교정책 밑그림을 그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발 빠르게 주변 4강 특사를 보내고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아그레망을 이끈 정의용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여겨진다.
정의용은 대선을 앞두고 마크 내퍼 주한 미국 대사대리, 알렉산더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 추궈홍 주한 중국 대사,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 등을 두루 만났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외교안보태스크포스 단장으로 매튜 포틴저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만나는 등 외교 공백을 메웠다. 이후 민간 출신 첫 안보실장에 임명돼 외교에 무게를 두는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안보’ 정책을 주도하게 됐다.
6월1~3일 한미 정상회담 조율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압박 기조를 이어가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화 통로를 마련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또한 사드배치가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로 늦어질 수 있음을 설명했다.
△국회의원 시절 미국 오가며 북핵 의원외교 활발
의원 시절에는 외교관 경험을 살려 국회 내 외교 전문가로 활약했다.
열린우리당 국제협력위원장을 비롯해 한미 의원외교협의회 간사장, 한미일 3국의원협의회 간사장 등을 맡아 활발하게 의원 외교 활동을 벌였다. 특히 주미공사 출신답게 미국을 여러 차례 오가며 북핵 문제를 논의했다.
17대 국회에서 자유무역협정(FTA) 포럼을 만들고 간사로 활동하며 한미 FTA 체결을 지원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외교관 출신인 박진 전 한나라당 의원과 함께 2006년 미국을 방문해 기업인들과 의회 지도부를 만나 한미FTA 체결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17대 국회에서 마지막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불참하면서 한미 FTA 비준안은 상임위 통과가 무산됐다. 정의용은 17대 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을 마무리하는 게 옳았다며 아쉬워했다.
아시아 국가의 정당 네트워크인 아시아 정당 국제회의(ICAPP)에 2004년부터 국회 대표단으로 참석했고 2006년 서울에서 열린 ICAPP 행사에서 조직위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ICAPP 회장에 올랐고 2009년 서울에 상설 사무국을 설치하면서 초대 사무총장에 추대됐다.
또 여수세계박람회 유치특위 위원으로서 여수 아젠다(Agenda)를 설정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여수박람회 유치에 성공한 뒤 특위 위원들과 함께 여수시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외교관 시절 다자외교 분야에서 경력 쌓아
외무부에서 통상정책과장과 통상국장, 외교통상부에서 통상교섭조정관을 지낸 통상 전문가다. 다자외교 분야에서도 경력을 쌓으면서 주제네바 대사를 지냈다.
우루과이라운드 발효를 앞두고 통상국장을 지내면서 미국, EU 등과 통상협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자동차시장 개방 등 민감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협상 타결을 이끌어 내는 등 외교부에서 우루과이라운드 최고 전문가로 꼽혔다.
주제네바 대사로 유엔에서 북핵 폐기와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직접적 표현은 피했지만 탈북자 문제를 상기하며 북한 인권 문제를 들기도 했다.
2003년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첫 한국인 사무총장인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당선될 때도 주제네바 대표부에서 리셉션을 열고 지지를 호소하는 등 막후에서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주제네바 대사를 지낼 때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 부의장과 의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2003년 6월 국제노동기구 전체회의에서 노사정 이사국 만장일치로 의장에 선출됐다. 정의용은 한국이 1991년 국제노동기구에 가입한 뒤 첫 의장을 수행했다.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각료회의에 교체수석대표로 참가하는 등 통상전문가로서 역할도 꾸준히 이어갔다. 2002년에는 WTO 무역협상위원회(TNC) 산하 협상그룹 가운데 하나인 지식재산권 이사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