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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
류근영 기자  rky@businesspost.co.kr  |  2019-09-25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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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 생애

김현종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다.

정부의 외교와 통일정책부터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된 통상정책에 관여하고 있다. 

1959년 9월2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에서 법무 박사학위(JD)를 받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받았다.

미국 대형 로펌에서 일하다 귀국해 홍익대학교 무역학과 조교수로 일했다.

통상 전문가로 외교통상부에 영입돼 고문 변호사, 통상전문관, 통상교섭조정관을 지냈고 노무현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아 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주도했다.

유엔대사를 역임한 뒤 공직에서 물러나 삼성전자 사장, 한국외대 교수를 지냈다. 문재인정부의 첫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다시 발탁됐고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했고 유학과 해외업무 경험이 많은 만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유력인사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둑한 배짱으로 협상에서 좀처럼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평을 듣고 있다.

◆ 활동의 공과
▲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019년 8월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2차 경제보복 조치인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일본 경제보복 대응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 등 통상 분야에서 경제보복에 나서며 미국 등 해외인맥이 두텁고 통상 분야의 높은 전문성을 인정받는 김현종의 역할이 더 부각됐다.

김현종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한국의 처지를 전달하며 일본 경제보복에 관한 외교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김현종은 2019년 7월10일 미국을 방문해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직무대행과 찰스 쿠퍼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등을 만나 일본 수출규제 문제와 북한 문제 등을 논의했다.

김현종은 미국 방문을 마친 뒤 “생각했던 목표를 충분히 이뤘고 개인적으로 그 결과에 관해 만족한다”며 미국 측이 한국 의견을 잘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일본 경제보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한국-일본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폐기 결정을 주도한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정치권과 외교가 일각에서는 김현종이 한국 외교의 ‘자주파’를 주도하고 있다는 말도 나돌았다.

김현종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우리를 두고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점을 두 번이나 언급하며 우리를 적대국과 같이 취급하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 기본적 신뢰관계가 훼손된 상황에서 지소미아를 유지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김현종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로 한미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반박하며 한미관계가 굳건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현종은 “한미동맹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공통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66년 동안 굳건히 뿌리내린 거목”이라며 “한일 지소미아 문제로 한미동맹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발탁과 남북미 대화 추진
김현종은 미국과 북한의 하노이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던 2019년 2월28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김현종 차장은 다양한 현장 경험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정부의 외교, 통일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미국을 상대로 교섭도 하고 새롭게 펼쳐지는 한반도 상황, 동북아 정세 속에서 미국을 직접 상대하면서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역할의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김현종이 임명된 날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며 북한과 미국 대화를 조율해 미국 쪽을 상대하는 김현종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김현종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한 달여 뒤인 2019년 3월30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4월 한국과 미국 정상회담과 의제와 북미 대화 재개 등을 논의했다.

방미를 마친 뒤 김현종은 “한국과 미국 정상 사이 의제를 논의해 다음주 정상회의에서 아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은 대북정책에 관한 한미 사이 엇박자 우려를 놓고 “엇박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최종 목적지나 로드맵에 관해서 한국과 미국의 의견이 다 일치하기 때문에 균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2019년 4월11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답방하기로 하고 2019년 6월30일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 때 남한과 북한, 미국의 판문점 회동과 북미 정상회담이 이어졌다.

△한국-미국 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
김현종은 노무현 정부 때 한국-미국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이끈 장본인으로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개정 협상을 맡았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개정을 원하며 2017년 7월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동위원회의 특별회기 개최를 요청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7년 8월22일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1차를 열었다. 당시 양측은 자유무역협정의 효과와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 자유무역협정 재개정 필요성에 상호 이견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이 회기에서는 어떤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후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가 2배로 늘어난 점을 문제로 제기하면서 자유무역협정의 개정 또는 수정을 통해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좋다는 태도를 보였다. 자유무역협정 효과에 대한 조사·분석·평가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 어떠한 결정도 상호 호혜성의 원칙 하에 양측 간 합의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2차, 2018년 1월에 1~2차 개정 협상, 2018년 3월 3차 개정 협상을 하면서 합의를 마쳤다.

개정 협상에서 한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 면제국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불확실성을 완화했다. 농산물 개방이나 자동차부품 사용 의무화 등의 이슈도 방어했다.

다만 자동차부문에서는 자동차 안전기준 인정 범위 확대, 픽업트럭 관세 철폐 기간 연장 등 미국 측의 자동차 관련 관심사항이 반영됐다.

2018년 7월 한국과 미국은 자유무역협정 분야별 문안을 놓고 진행된 협의를 사실상 완료했다. 2018년 9월24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안에 서명했다.
▲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019년 8월12일 백악관에서 찰스 쿠퍼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과 면담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두번째 통상교섭본부장 임명
김현종은 2017년 7월30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됐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경제통상분야 전문가로서 주요 교역국과 자유무역협정 체결 업무를 수행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당면한 통상현안들을 차질없이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발탁에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김 신임 본부장의 임명은 전문성과 국익을 고려한 합리적이고 실리 중심의 인선”이라고 평가했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김 신임 본부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통상교섭 분야 전문가”라며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 준비를 철저히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은 “현 시점에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고 기대했다.

김현종은 2017년 8월4일 취임식에서 “통상교섭본부 직원 모두가 전략가가 되기를 원한다”며 “우리가 예측 가능하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건 협상 상대방뿐으로 수동적이고 수세적 골키퍼 정신은 당장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017년 8월4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 선출
2016년 5월 장승화 전 세계무역기구 상소기구 위원이 미국의 반대로 연임에 실패하자 정부는 후임으로 김현종을 추천했다.

세계무역기구 상소기구는 국제통상법분야의 최고 심판기관으로 국제통상과 세계무역기구 협정의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정부로부터 독립되며 회원국을 다양하게 대표하는 위원들로 구성된다. 위원 숫자는 7명인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관행적으로 1석씩 유지하고 있고 나머지 5자리를 지역·선진-개도국 사이 안배에 따라 뽑는다.

장 전 위원의 공석에 김현종을 포함 중국 2명, 일본, 호주, 대만, 네팔 각 1명 등 모두 7명이 입후보했다. 김현종은 10월8~26일 동안 스위스, 벨기에, 미국 등을 방문해 세계무역기구 인터뷰와 선거운동 활동을 벌였다.

김현종은 세계무역기구 사무국 근무와 통상교섭본부장, 유엔대사 역임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자질을 강조했다. 한국 정부도 재외공관을 통한 지지 확보, 주요국 통상장관과 통상당국 접촉 등으로 지원에 나섰다.

결국 2016년 11월23일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기구 정례회의에서 상소기구 위원에 공식 임명됐다. 상소기구 위원은 세계무역기구 분쟁의 최고 판단자로서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직위로 우리나라에서 상소기구 위원이 연속 배출된 것은 통상 분야의 쾌거로 여겨졌다.

△정치 출사표
2016년 2월18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영입인사 1호라서 더욱 주목받았다.

김현종은 입당 인사에서 “‘경제와 외교안보 글로벌 2.0’시대를 열고 있는 대한민국은 정치도 이 시대에 맞는 정치인이 필요할 것”이라며 “글로벌 진출 2.0시대를 정치인으로서 국민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종은 20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갑 예비후보로 출마했다. 김현종은 “제 능력과 네트워크로 이 지역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똑같은 정치신인인 유동수 후보와 경선에서 맞붙었다. 한미 FTA의 주역이었던 김현종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유동수 후보는 30년 동안 이 지역에서 공인회계사로 활동하고 인천도시공사 상임감사, 송영길 전 인천시장 후원회 등을 지내며 지역기반을 다져 김현종은 결국 밀렸다. 공천 심사결과는 유동수 66.85%, 김현종 43.15%였다.

김현종은 경선 탈락 후 블로그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계양 주민 여러분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에 감사드린다”며 “공정하고 당당한 경쟁을 함께 한 유동수 후보께 축하드리고 본선에서 꼭 승리하시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남겼다.

△삼성전자 애플 특허소송 관여
2009년 3월 삼성전자 글로벌법무담당 사장에 영입돼 해외특허, 반덤핑 등 해외 법무와 지적재산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글로벌시장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가 수시로 변하고 있어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며 “김 사장은 뛰어난 법무 실무가인 동시에 기업의 생존과 미래 전략을 이끌고 나갈 전략가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검증된 인물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특허경영을 강화해 나가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2011년 4월부터 벌어진 애플과 특허소송을 이끌었다. 애플이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삼성전자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자 삼성은 이에 반소하는 등 두 회사가 세계에서 특허전쟁을 벌였는데 김현종이 맞불전략을 주장한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현종은 애플과 특허 분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2011년 12월31일 삼성전자를 퇴직했다. 삼성전자 퇴직 예우 규정에 따라 3년 임기의 상담역으로 활동할 수 있으나 이를 거절했다.

재직 중이던 2011년 11월 대형 로펌으로 이적설이 나오기도 했으나 삼성전자는 이를 부인했다. 삼성 퇴직 이후에도 로펌으로 가지 않았다.
▲ 김현종 전 유엔대사가 2016년 2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입당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유엔대사 활동
김현종은 2007년 8월 제21대 유엔대사에 임명됐다.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성공적으로 타결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와 함께 본인의 의사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통상 전문가인 만큼 다자외교·안보분야에 취약해 유엔대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역할을 고려하면 차라리 제네바 대사에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성공적 추진에 크게 기여했고 미국 정·재계나 유엔 산하 각종 국제기구 등에 지인이 많고 국제사회의 인지도가 높은 점을 감안해 유엔대표부 대사에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박 수석은 또 “국제규범으로 움직이는 유엔기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법률에 대한 소양과 능력”이라며 “변호사 출신인 김 본부장의 '리걸(legal) 마인드'를 감안했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에서 정부 대표로서 다자외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해 유엔대사로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현종은 2007년 10월 53개 아시아 회원국가로 구성된 유엔 아주그룹 의장에 선임됐다. 아주그룹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물론 안전보장이사회 등 유엔 주요기관과 산하기관 등의 선거에서 회원국 사이 입후보를 조정하고 각종 회의에서 아주 지역 뜻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2008년 1월에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에 선출됐다. 경제사회이사회는 개발과 인권 등 경제사회 문제 전반을 관할하는 유엔 주요 기관으로 김현종은 장 마르크 호샤이트 룩셈부르크 대사 등 3명과 함께 1년 동안 부의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2008년 5월 유엔대사에서 귀임했다.

△노무현 정부의 통상교섭조정관 통상교섭본부장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에서 통상현안 브리핑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눈에 들어 참여정부 통상부문을 사실상 주도적으로 이끌게 됐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 직후인 2003년 5월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발탁됐다. 노 대통령의 깊은 신임을 받으면서 자유무역협정 추진 로드맵을 만들었고 사실상 자유무역협정 추진의 전권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개방형 공무원 채용과 한국-미국 자유무역협정 기획단 신설 등 인사와 조직개편 권한까지도 행사할 수 있었다.

2004년 7월 통상교섭조정관이 된지 1년3개월 만에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해 40대의 젊은 나이로 통상부문의 사령탑이 됐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45세의 젊은 나이지만 통상법을 공부했고 4년 동안 세계무역기구(WTO)의 수석고문변호사를 역임했으며 지난해부터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대외협상 업무를 차질없이 수행해 조직 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아세안, 유럽연합, 캐나다, 인도 등 동시다발적 대형 자유무역협정을 함께 추진하면서 한국 자유무역 지도를 확대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6년 2월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발족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쌀·쇠고기 등 농축산물 문제, 자동차 ·섬유 등 제조업 문제, 스크린쿼터 등 문화예술 문제, 개성공단 생산품 지위 등 외교안보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지 않은 과제로 여겨졌다. 김현종은 “궁극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지니고 추진한다”고 밝혔다.

협상 만료 시한이 닷새 남은 2007년 3월26일부터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카란 바티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와 '끝장 협상'에 들어갔다. 마지막날인 31일 양쪽은 4월2일 새벽 1시까지 협상 연장에 합의하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끝까지 첨예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결국 2007년 4월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타결했다. 김현종은 국회 보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이면합의가 없으며 재협상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로 추가 협상이 진행돼 7월1일에야 서명이 이뤄졌다.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2010년 한 차례 더 추가협상을 거쳤다.

2007년 5월6일 한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의 협상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8월 김종훈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수석대표에게 통상교섭본부장 자리를 넘기고 유엔대사로 임명됐다.

◆ 비전과 과제
▲ 김현종 삼성전자 글로벌법무담당 사장(가운데)이 2011년 1월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칠순기념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북미 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대미 외교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에서 김현종의 책임도 막중하다.

특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를 폐기하기로 한 한국 정부의 결정을 두고 미국 측이 우려와 불만을 제기하고 있어 미국 측에 한국 의견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필요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장기화하고 한국 측의 대응조치가 이어지면 두 나라 모두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익과 국가적 자존심을 모두 고려한 외교적 조율도 필요하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오랫동안 교착상태에 있던 북미관계가 회복 조짐을 보임에 따라 북한과 미국 사이 중재자 역할도 중요해졌다.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과 북미 실무협상 진행, 대북 강경파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경질 등에 따라 북미 관계에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김현종은 이런 상황들을 고려해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에 임명된 뒤 미국을 수시로 방문해 일본 경제보복 조치와 북미 대화에 관한 사항들을 미국 측과 논의하는 등 활발한 대미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한-북한 자유무역협정 추진을 건의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밝히면서 남북 경제공동체를 언급해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남북 자유무역협정 추진 가능성도 떠오른다.

◆ 평가
▲ 김현종 유엔대사가 2008년 7월3일 서울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에서 열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환영만찬에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외교안보라인을 맡고 있지만 통상분야 전문가로서 명성이 더 높은 편이다. 그래서 처음 국가안보실 2차장에 임명됐을 때 남한과 북한의 경제협력을 염두에 둔 인사가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청와대는 김현종이 미국 각계에 다양한 인맥을 지니고 있으며 오랜 미국 경험으로 미국을 상대할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임명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 콜럼비아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유엔대사를 지낸 만큼 정무적 감각과 국제정치 경험도 쌓은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파’로 꼽히지만 민족주의 성향도 강해 경제보복을 하는 일본을 향한 강경 외교노선을 주장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외교가 내에서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와 달리 전통적 동맹관계보다 국익을 우선시 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자주파’를 주도하는 대표적 인물로도 거명된다.

김현종의 민족주의 성향을 두고 어린 시절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과 한국, 일본 등을 오가다가 14세 때부터 혼자 미국에서 기숙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부친의 신념에 따라 집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했고 방학마다 나이에 맞게 국어와 국사 교과서를 공부해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노 전 대통령의 편애를 받는다는 시각까지 나왔고 그만큼 적도 많아져 자유무역협정 정책을 마음대로 추진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받았다.

2003년 미국보다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먼저 추진했으나 유럽연합 쪽에서 한국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적 없어 관련 부분을 잘 모르지 않느냐며 부정적 뜻을 나타내자 미국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김현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먼저 추진해야 다른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할 때 전략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를 설득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부터 추진하게 됐다.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진행하던 도중 유럽연합에서 자유무역협정을 제안하자 “할 수 없고 지금은 약혼자(미국)가 있다”며 퇴짜를 놓기도 했다.

외부 출신 인사로 정부 일을 맡았지만 ‘공무원의 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관료들과 사이는 썩 좋지 않았던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한 소신에서 비롯된 독선적 성격도 공무원들 사이에서 배척당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유엔대사로 내정됐을 때에도 외교통상부 안에서 고위 외교관이 맡아 온 유엔대사에 비외교관 출신이 임명된 데 외교안보적 역할에 취약할 수 있다며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송민순 당시 외교부 장관은 자리를 걸고 이를 막겠다며 불만을 나타냈고 외교부는 물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도 관계가 원활하지 않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김현종은 저서 ‘김현종,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말하다’에서 “외교부는 외무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기수별로 승진하면서 배타적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몇몇 고위 관료들은 본인이 통상업무를 한 번도 안 해본 데 대한 자긍심마저 있었다. 마치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조선 관료들이 보인 태도와 흡사했다”고 공무원 조직을 강하게 비판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협상의 전문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어디서도 그의 협상 능력 자체에는 이의를 거의 제기하지 않는다.

세계무역기구 등에서 국제활동을 하면서 쌓은 폭넓은 통상 인맥과 과감성, 결단력 등이 탁월하며 협상에 임해서는 좀처럼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 카리스마도 갖추고 있다.

심지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놓고 오롯이 김현종 개인의 협상능력으로 일궈낸 성과라고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미국 변호사로 활동해 법률감각도 뛰어나 삼성전자에서 해외법무담당으로 영입했으며 세계무역기구 상소위원까지 지냈다.

황두연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김현종을 두고 “통상교섭본부장에겐 협상장에서 상황 판단력과 직결되는 통상 전문지식, 그리고 토론·설득·끼어들기·화제 전환 등을 능란하게 주도하는 언어능력이 무엇보다 요긴한데 둘 다 출중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통상교섭본부 비상근 자문관을 역임한 정인교 인하대 교수도 김현종을 "명확한 논리, 두둑한 배짱, 해박한 법률지식, 치밀한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협상에서 강한 설득력을 발휘하는 ‘터프가이’"라고 바라봤다.

2005년 11월 부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이 출신 고교를 물어보자 “각하가 나온 학교보다 좋은 곳을 나왔다”고 대답해 웃음을 이끌어 냈다. 그는 미국에서도 명문으로 알려진 미국 윌브램앤맨슨 아카데미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변호사 시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 사건사고
▲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007년 5월6일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브리핑실에서 피터 만델슨 EU 통상담당 집행위원과 함께 한-EU FTA협상 공식 출범을 선언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불화설
김현종이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 순방 때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언쟁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정부 내 외교 라인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9년 9월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 장관에세 “문 대통령 해외순방 당시 김현종 2차장과 다툰 적이 있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강 장관은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김현종과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김현종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에 “외교안보라인 사이의 이견에 관해 우려들이 있는데 제 덕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자세를 낮췄다.

그는 “소용돌이 치는 국제정세에서 최선의 정책을 수립하려고 의욕이 앞서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며 “앞으로 제 자신을 더욱 낮추며 열심히 일하겠다”고 덧붙였다.

△정의당의 교체 요구 직면
정의당은 2017년 10월에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태도를 놓고 김현종의 교체를 촉구했다.

정의당은 여차하면 우리 정부도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이 아닌 폐기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김현종이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봤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놓고 막무가내 전략으로 폐기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정의당은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가 김현종을 대신해 철저하게 국익을 대변할 사람에게 사령탑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폐기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김현종의 시각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세계무역기구 상소위원 포기 논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7년 7월 신설 직위인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되면서 세계무역기구 상소위원에서 물러나게 되자 3년 넘게 남은 임기를 포기하는 것은 아깝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더욱이 일본, 호주, 대만, 네팔 등 다른 나라 후보와 치열한 경쟁 끝에 얻은 자리를 금방 비우게 돼 다시 그 자리를 우리나라가 차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 있었다.

또한 상소기구 위원이 사퇴한 뒤 90일 동안 정부직을 맡지 못하도록 한 세계무역기구 규정도 있어 통상교섭본부장 임명에 절차상 문제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이 규정의 취지는 해당 위원이 맡은 소송사건을 같은 기간에 마무리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소송을 더 맡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며 “김 본부장은 이미 맡은 소송 업무를 다 마무리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세계무역기구는 2017년 8월3일 김현종의 사직서가 수리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친기업 논란
김현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하면서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한 반면 농민 등 사회적 약자에 불리하게 협상을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7년 7월26일 김현종의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내정소식이 전해지자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시민단체는 “김현종은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주도하며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내 공공정책을 말살한 인물”이라고 반대성명을 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대기업에 취업한 것도 논란거리다. 2009년 공직에서 물러난 지 1년도 안돼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으로 영입되면서 공직자윤리법 위반 여부가 논란이 됐다. 공직자윤리법이 4급 이상 공무원이면 퇴직 전 5년 이내에 맡았던 업무와 관련된 사기업에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김현종 전 대사가 한국에서 보기드문 국제통상 전문가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주도한 그의 삼성전자 취업이 공직자윤리법에 어긋나는 것인지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조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아직 살아있는 변수라는 점에서 김 전 대사는 한미 정부 모두에서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 상당한 정보 접근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삼성이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 가장 영향력 있는 로비스트를 영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해 취업을 허용했다. 이에 김상조 교수는 공직자윤리법의 허술한 규정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김현종이 삼성 사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공직자윤리법에 저촉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삼성도 정부도 개의치 않았다”며 “김현종은 첫 사장단 회의에서 ‘기업 이익을 지키는 게 나라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던 만큼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대기업에만 유리한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미 성향 논란
미국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대형로펌에서 근무한 경력과 국제주의·자유주의·개방주의적 성향 때문에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활동한다는 의혹을 많이 받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초기에는 ‘미국 대 미국의 협상’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2011년 위키리크스는 2006년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가 작성한 외교전문을 공개했는데 여기에 김현종이 버시바우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발표 전에 미리 알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현종은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미국이 반대한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추진한 것을 두고 “미국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죽도록 싸웠다(fighting like hell)”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그가 국익이 아닌 미국의 이익을 대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현종이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을 때도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현종은 2016년 3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국제무대에서 상대국과 협상할 때는 국익을 챙기는 것이 최대 목표”라며 “목표 달성을 위해 허위정보를 흘릴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미국이 의약품 최저가격을 보장해달라고 했을 때 최선을 다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고 포기하라는 차원에서 강조한 것”이라며 “그래서 미국이 그 요구를 포기하고 결과에서 우리 국익을 보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7년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되자 민주노총과 정의당 등이 또다시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거론하며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2011년 5월에는 민변이 외교통상부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보낸 한국 전문직 비자 쿼터와 관련한 서한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 서한은 미국 측이 한국인 신청자의 비자 발급에 협조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외교통상부는 해당 서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 결과 김현종이 서한을 보관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요 외교 관련 서한을 개인적으로 보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 경력
▲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019년 8월2일 춘추관에서 연 브리핑에서 일본에 강력한 대응의지를 밝혔다.
1985년 미국 밀뱅크트위드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1986년 미국 스캐든압스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1989년 귀국해 김신유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했다.

1993년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무역학과 조교수로 채용됐다.

1995년 5월 외무부 고문변호사에 위촉되면서 정부와 인연을 맺었다.

1998년 7월부터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통상전문관으로 활동했다.

1999~2003년 세계무역기구에서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 법률자문관으로 활동했다.

2003년 5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으로 영입됐다.

2004년 7월 제3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됐다.

2005년 11월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 합동각료회의 공동의장에 올랐다.

2005년 12월 제6차 세계무역기구 한국 수석대표가 됐다.

2007년 8월 주유엔대사로 임명받았다.

2007년 10월 유엔 아주그룹 의장에 선출됐다.

2008년 1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을 맡았다.

2008년 5월 유엔대사에서 귀임했다.

2009년 3월~2011년 12월 동안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으로 일했다.

2015년 3월 한국외국어대 LT(Language&Trade)학부 교수에 임용됐다.

2016년 2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20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갑 출마에 도전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2017년 8월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취임했다. 

2019년 2월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에 임명됐다.

◆ 학력

미국 윌브램앤맨슨 아카데미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1981년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미국 컬럼비아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법무박사(JD)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우루과이·노르웨이 대사를 지낸 김병연 전 코리아헤럴드내외경제신문 회장과 최정심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고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명씩 있다. 여동생은 김미형 아시아나항공 고문이다.

강금진씨와 사이에 김민상, 김지상 두 아들을 두고 있다.

◆ 상훈

2009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기타

대학원을 마치고 로펌 근무 도중 귀국해 1986년 11월15일부터 1987년 5월16일까지 석사장교로 복무했다.

2010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과 세계 통상흐름 등을 담은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홍성사)를 펴냈다.

◆ 어록
▲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FTA 협상 마지막날인 2007년 4월2일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한미FTA 협상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외교안보라인 사이의 이견에 관한 우려들이 있는데 제 덕이 부족했던 것 같다. 소용돌이 치는 국제정세에서 최선의 정책을 수립하려고 의욕이 앞서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 제 자신을 더욱 낮추며 열심히 일하겠다.” (2019/09/18,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불화설이 불거진 뒤 트위터에 자신의 뜻을 밝히며)

“한국은 진심으로 편견 없이 일본과 강제징용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모든 방안을 검토할 용의가 있었고 이 점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일본의 대응은 단순한 거부를 넘어 우리의 국가적 자존심까지 훼손할 정도로 무시로 일관했으며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2019/08/23,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우리는 우리의 수출이 증가하면 할수록 일본으로부터 핵심 소재와 부품 수입이 동시에 증가하는 가마우지 경제체제로부터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 만약 20년 전에 일본이 오늘의 조치를 우리에게 취했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2019/08/02,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흥분하면 대체로 영어로 말하니까 욕은 먹어도 영어공부는 많이 됐다는 얘기도 하던데 영어 공부하고 싶으신 분은 언제든 찾아와라." (2019/03/04,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이임식에서 농담을 건네며)

“과거 한미FTA를 두고 다소 다른 입장에 서 있었지만 늘 존경했다는 걸 이제서야 늦게나마 밝힌다. 고인은 우리 국민들에게 커다란 유산을 남겨주고 갔다. 저와는 다른 삶을 살아오셨지만 저는 고인을 진심으로 존경해왔다. 앞일을 몰라 고맙고 감사드린다는 말씀 한 번 더 못드린 것이 아쉽다.” (2018/07/27, 페이스북에서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을 추모하며)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을 봤을 때 시장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수출을 다변화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인도와 관계를 4강 수준으로 격상하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중국 등 G2와 관련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인도와 관계를 4강 수준에 버금가게 높이고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 (2018/07/09,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5월까지 수출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등 수출 증가세가 이어져 연말까지 수출 상승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업일수 감소와 선박수출 기저효과 등으로 6월 수출이 주춤하고 있다는 점에 경각심을 지녀야 한다. 견조한 수출 성장을 통해 수출이 일자리와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 (2018/06/26, ‘민관 합동 수출투자 대책회의’를 열고)

“4차산업혁명에 따라 국경 간 전자상거래와 빅데이터의 국가 간 이동, 스마트 기기 등에 따른 세계 가치사슬(GVC,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 등 새로운 통상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 (2018/04/26, 경기 용인의 현대자동차 환경기술연구소를 찾아)

“2010년 이후 일본은 연 평균 2.3%, 우리는 연 평균 5.9%씩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신통상전략을 통해 수출 증가율을 6.6%까지 높여 2022년에는 일본을 추월하겠다.” (2018/04/05,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관세를 두고 미국과 원칙적 합의와 원칙적 타결을 이뤘다. 다만 아직 실무 차원에서 몇 가지 기술적 이슈가 남아있는데 곧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2018/03/25, 미국과 협상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중미FTA를 통해 한국과 중미 사이에 더욱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2018/02/21, 중미 5개국 통상장관과 한중미FTA 정식서명식에서)

“반덤핑규제와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등 조치가 보호무역주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이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18/01/28,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정부는 국익 수호를 위해 보호무역주의에 적극 대응할 계획을 세웠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상 보장된 권리를 적극 행사해 미국의 부당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 (2018/01/23,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민관대책회의에서)

“(한미FTA 개정협상과 관련해) 이제 막 시작했지만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나쁜 협상 결과보다는 협상을 타결하지 않는 게 낫다는 각오로 협상에 임하겠다. 국익 극대화와 이익균형 달성을 목표로 통상당국의 역량을 집중하겠다.” (2018/01/08,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안정적 수출 증가세를 유지하려면 수출품목 다변화와 시장 다변화가 시급하다. 동남아, 유라시아, 아프리카 국가의 수요가 높은 투자개발형 프로젝트 수주 선진화를 추진하겠다.” (2017/10/19, ‘해외 프로젝트 수주 선진화 세미나’에 참석해)

“농업은 우리에게 매우 어려운 것이고 농업을 건드리는 순간 우리 역시 미국의 제일 민감한 부분을 말할 수밖에 없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농업을 언급할 수 있지만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확실히 미국 측에 전달했다.” (2017/10/13,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첫 협상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협상에 임하겠다.”(2017/08/22,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 앞서)

“어떠한 협상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은 이익의 균형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상은 가능하지도 않고 유지될 수도 없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의 주요 교역 파트너들과 새로운 이익의 균형을 찾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경주해 나갈 것이다.” (2017/08/04, 통상교섭본부장 취임사)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주둔비용 분담 증대 협상에서 열강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반대급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합의하지 않았지만 한·미 FTA를 재-재협상할 때 우리 협상가들은 한·미 FTA가 결렬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농산물은 캐나다·유럽연합(EU)·호주산 등에 의해 대체 가능하다는 점을 직시하고 차근차근 대응할 준비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17/07/04, 중앙일보 칼럼)

“FTA를 체결하는 과거 통상정책 전략이 원교근공(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함)이었다면 이제는 성동격서(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공격함) 전략을 이행하면서 지정학과 에너지 이슈를 무역 관련 이슈와 융합해 우리 국익을 지켜야 한다. 우리 국민을 결집시키는 계기라는 계량화되지 않는 혜택을 얻을 수 있다면 한·미 FTA의 재-재협상을 하지 않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17/05/09, 중앙일보 칼럼)

“우리가 동북아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전략을 미국과 논의하려면 북핵 문제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 간의 지속적 대화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꾸준한 교류 및 일관된 남북 경제협력으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작업을 해놨어야 한다.” (2017/03/14, 중앙일보 칼럼)

“우리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317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해 1만853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미국의 대한국 서비스 무역흑자가 10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78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수입했음을 강조해야 한다.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의 득세로 틀이 바뀌었는데 기존의 예측 가능한 대응 방식으로는 백전백패다.” (2017/01/16, 중앙일보 칼럼)

“가장 열악한 상황이 저를 정치에 입문하게 하는 결정적 동기를 부여했다. 제 깊은 곳으로부터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는 단호한 음성이 들렸다. 더 늦기 전에 정계, 재계,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비상체제로 돌입해야 한다.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이제는 지역과 전략 위주로 체결하는 메가FTA를 주도하고, 우리 자유무역구와 중국 자유무역구를 상호 개방해 금융, 의료 서비스 등이 진출해야 한다.“ (2016/02/18, 더불어민주당 입당인사)

“냉정한 국제질서에서, 특히 실시간으로 지형이 변하는 동북아 지역에서 협상가들은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신(新)조선책략'을 구사하는 중국에 대비해야 한다. 경험이 많은 우리 협상가들이 좋은 결과를 내겠지만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는 마감일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이며 언제든지 깰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2014/11/06, 동아일보 칼럼)

“국민들이 안전에 대한 선진기준을 기업과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위기관리 준비와 대응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세금을 인상해서라도 국민들의 안정된 삶을 지탱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 사회는 압축성장을 한 결과 곳곳에 부족함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2014/04/22, 동아일보 칼럼)

“2007년 미국과 FTA 협상을 마무리 짓고 난 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방문을 준비하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북 FTA 추진을 건의했다. 그 당시 상황에서 6조5천억 달러의 가치로 평가되는 북한의 천연자원을 활용하는 것을 포함해 남북 FTA 추진은 분명히 고려할만한 사안이었다.” (2011/06/13, 서울-워싱턴포럼 세미나)

“EU는 세계 최대 경제국이자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의 제2의 수출시장이다. 특히 자동차와 섬유, 전자 등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관세 수준이 높아 FTA가 체결되면 가시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한·EU FTA가 체결되면 한국은 유럽, 아시아, 미국,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FTA 허브로 자리잡을 수 있다.” (2007/05/06, EU와 자유무역협정 협상 개시를 선언하며)

“한미 FTA는 상품뿐 아니라 투자와 서비스, 경쟁 등 무역관련 분야를 총망라해 북미자유무역협정 이후 세계 최대의 FTA가 됐다. 양국의 경제규모를 합치면 EU, NAFTA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한다. 향후 FTA가 성공적으로 발효되면 FTA 체결 경쟁에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케 된다.” (2007/04/02, 한미FTA 타결 직후 기자회견)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

◆ 활동의 공과
▲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019년 8월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2차 경제보복 조치인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일본 경제보복 대응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 등 통상 분야에서 경제보복에 나서며 미국 등 해외인맥이 두텁고 통상 분야의 높은 전문성을 인정받는 김현종의 역할이 더 부각됐다.

김현종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한국의 처지를 전달하며 일본 경제보복에 관한 외교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김현종은 2019년 7월10일 미국을 방문해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직무대행과 찰스 쿠퍼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등을 만나 일본 수출규제 문제와 북한 문제 등을 논의했다.

김현종은 미국 방문을 마친 뒤 “생각했던 목표를 충분히 이뤘고 개인적으로 그 결과에 관해 만족한다”며 미국 측이 한국 의견을 잘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일본 경제보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한국-일본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폐기 결정을 주도한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정치권과 외교가 일각에서는 김현종이 한국 외교의 ‘자주파’를 주도하고 있다는 말도 나돌았다.

김현종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우리를 두고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점을 두 번이나 언급하며 우리를 적대국과 같이 취급하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 기본적 신뢰관계가 훼손된 상황에서 지소미아를 유지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김현종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로 한미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반박하며 한미관계가 굳건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현종은 “한미동맹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공통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66년 동안 굳건히 뿌리내린 거목”이라며 “한일 지소미아 문제로 한미동맹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발탁과 남북미 대화 추진
김현종은 미국과 북한의 하노이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던 2019년 2월28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김현종 차장은 다양한 현장 경험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정부의 외교, 통일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미국을 상대로 교섭도 하고 새롭게 펼쳐지는 한반도 상황, 동북아 정세 속에서 미국을 직접 상대하면서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역할의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김현종이 임명된 날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며 북한과 미국 대화를 조율해 미국 쪽을 상대하는 김현종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김현종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한 달여 뒤인 2019년 3월30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4월 한국과 미국 정상회담과 의제와 북미 대화 재개 등을 논의했다.

방미를 마친 뒤 김현종은 “한국과 미국 정상 사이 의제를 논의해 다음주 정상회의에서 아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은 대북정책에 관한 한미 사이 엇박자 우려를 놓고 “엇박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최종 목적지나 로드맵에 관해서 한국과 미국의 의견이 다 일치하기 때문에 균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2019년 4월11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답방하기로 하고 2019년 6월30일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 때 남한과 북한, 미국의 판문점 회동과 북미 정상회담이 이어졌다.

△한국-미국 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
김현종은 노무현 정부 때 한국-미국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이끈 장본인으로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개정 협상을 맡았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개정을 원하며 2017년 7월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동위원회의 특별회기 개최를 요청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7년 8월22일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1차를 열었다. 당시 양측은 자유무역협정의 효과와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 자유무역협정 재개정 필요성에 상호 이견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이 회기에서는 어떤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후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가 2배로 늘어난 점을 문제로 제기하면서 자유무역협정의 개정 또는 수정을 통해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좋다는 태도를 보였다. 자유무역협정 효과에 대한 조사·분석·평가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 어떠한 결정도 상호 호혜성의 원칙 하에 양측 간 합의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2차, 2018년 1월에 1~2차 개정 협상, 2018년 3월 3차 개정 협상을 하면서 합의를 마쳤다.

개정 협상에서 한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 면제국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불확실성을 완화했다. 농산물 개방이나 자동차부품 사용 의무화 등의 이슈도 방어했다.

다만 자동차부문에서는 자동차 안전기준 인정 범위 확대, 픽업트럭 관세 철폐 기간 연장 등 미국 측의 자동차 관련 관심사항이 반영됐다.

2018년 7월 한국과 미국은 자유무역협정 분야별 문안을 놓고 진행된 협의를 사실상 완료했다. 2018년 9월24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안에 서명했다.
▲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019년 8월12일 백악관에서 찰스 쿠퍼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과 면담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두번째 통상교섭본부장 임명
김현종은 2017년 7월30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됐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경제통상분야 전문가로서 주요 교역국과 자유무역협정 체결 업무를 수행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당면한 통상현안들을 차질없이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발탁에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김 신임 본부장의 임명은 전문성과 국익을 고려한 합리적이고 실리 중심의 인선”이라고 평가했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김 신임 본부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통상교섭 분야 전문가”라며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 준비를 철저히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은 “현 시점에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고 기대했다.

김현종은 2017년 8월4일 취임식에서 “통상교섭본부 직원 모두가 전략가가 되기를 원한다”며 “우리가 예측 가능하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건 협상 상대방뿐으로 수동적이고 수세적 골키퍼 정신은 당장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017년 8월4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 선출
2016년 5월 장승화 전 세계무역기구 상소기구 위원이 미국의 반대로 연임에 실패하자 정부는 후임으로 김현종을 추천했다.

세계무역기구 상소기구는 국제통상법분야의 최고 심판기관으로 국제통상과 세계무역기구 협정의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정부로부터 독립되며 회원국을 다양하게 대표하는 위원들로 구성된다. 위원 숫자는 7명인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관행적으로 1석씩 유지하고 있고 나머지 5자리를 지역·선진-개도국 사이 안배에 따라 뽑는다.

장 전 위원의 공석에 김현종을 포함 중국 2명, 일본, 호주, 대만, 네팔 각 1명 등 모두 7명이 입후보했다. 김현종은 10월8~26일 동안 스위스, 벨기에, 미국 등을 방문해 세계무역기구 인터뷰와 선거운동 활동을 벌였다.

김현종은 세계무역기구 사무국 근무와 통상교섭본부장, 유엔대사 역임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자질을 강조했다. 한국 정부도 재외공관을 통한 지지 확보, 주요국 통상장관과 통상당국 접촉 등으로 지원에 나섰다.

결국 2016년 11월23일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기구 정례회의에서 상소기구 위원에 공식 임명됐다. 상소기구 위원은 세계무역기구 분쟁의 최고 판단자로서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직위로 우리나라에서 상소기구 위원이 연속 배출된 것은 통상 분야의 쾌거로 여겨졌다.

△정치 출사표
2016년 2월18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영입인사 1호라서 더욱 주목받았다.

김현종은 입당 인사에서 “‘경제와 외교안보 글로벌 2.0’시대를 열고 있는 대한민국은 정치도 이 시대에 맞는 정치인이 필요할 것”이라며 “글로벌 진출 2.0시대를 정치인으로서 국민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종은 20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갑 예비후보로 출마했다. 김현종은 “제 능력과 네트워크로 이 지역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똑같은 정치신인인 유동수 후보와 경선에서 맞붙었다. 한미 FTA의 주역이었던 김현종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유동수 후보는 30년 동안 이 지역에서 공인회계사로 활동하고 인천도시공사 상임감사, 송영길 전 인천시장 후원회 등을 지내며 지역기반을 다져 김현종은 결국 밀렸다. 공천 심사결과는 유동수 66.85%, 김현종 43.15%였다.

김현종은 경선 탈락 후 블로그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계양 주민 여러분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에 감사드린다”며 “공정하고 당당한 경쟁을 함께 한 유동수 후보께 축하드리고 본선에서 꼭 승리하시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남겼다.

△삼성전자 애플 특허소송 관여
2009년 3월 삼성전자 글로벌법무담당 사장에 영입돼 해외특허, 반덤핑 등 해외 법무와 지적재산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글로벌시장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가 수시로 변하고 있어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며 “김 사장은 뛰어난 법무 실무가인 동시에 기업의 생존과 미래 전략을 이끌고 나갈 전략가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검증된 인물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특허경영을 강화해 나가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2011년 4월부터 벌어진 애플과 특허소송을 이끌었다. 애플이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삼성전자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자 삼성은 이에 반소하는 등 두 회사가 세계에서 특허전쟁을 벌였는데 김현종이 맞불전략을 주장한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현종은 애플과 특허 분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2011년 12월31일 삼성전자를 퇴직했다. 삼성전자 퇴직 예우 규정에 따라 3년 임기의 상담역으로 활동할 수 있으나 이를 거절했다.

재직 중이던 2011년 11월 대형 로펌으로 이적설이 나오기도 했으나 삼성전자는 이를 부인했다. 삼성 퇴직 이후에도 로펌으로 가지 않았다.
▲ 김현종 전 유엔대사가 2016년 2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입당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유엔대사 활동
김현종은 2007년 8월 제21대 유엔대사에 임명됐다.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성공적으로 타결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와 함께 본인의 의사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통상 전문가인 만큼 다자외교·안보분야에 취약해 유엔대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역할을 고려하면 차라리 제네바 대사에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성공적 추진에 크게 기여했고 미국 정·재계나 유엔 산하 각종 국제기구 등에 지인이 많고 국제사회의 인지도가 높은 점을 감안해 유엔대표부 대사에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박 수석은 또 “국제규범으로 움직이는 유엔기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법률에 대한 소양과 능력”이라며 “변호사 출신인 김 본부장의 '리걸(legal) 마인드'를 감안했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에서 정부 대표로서 다자외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해 유엔대사로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현종은 2007년 10월 53개 아시아 회원국가로 구성된 유엔 아주그룹 의장에 선임됐다. 아주그룹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물론 안전보장이사회 등 유엔 주요기관과 산하기관 등의 선거에서 회원국 사이 입후보를 조정하고 각종 회의에서 아주 지역 뜻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2008년 1월에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에 선출됐다. 경제사회이사회는 개발과 인권 등 경제사회 문제 전반을 관할하는 유엔 주요 기관으로 김현종은 장 마르크 호샤이트 룩셈부르크 대사 등 3명과 함께 1년 동안 부의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2008년 5월 유엔대사에서 귀임했다.

△노무현 정부의 통상교섭조정관 통상교섭본부장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에서 통상현안 브리핑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눈에 들어 참여정부 통상부문을 사실상 주도적으로 이끌게 됐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 직후인 2003년 5월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발탁됐다. 노 대통령의 깊은 신임을 받으면서 자유무역협정 추진 로드맵을 만들었고 사실상 자유무역협정 추진의 전권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개방형 공무원 채용과 한국-미국 자유무역협정 기획단 신설 등 인사와 조직개편 권한까지도 행사할 수 있었다.

2004년 7월 통상교섭조정관이 된지 1년3개월 만에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해 40대의 젊은 나이로 통상부문의 사령탑이 됐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45세의 젊은 나이지만 통상법을 공부했고 4년 동안 세계무역기구(WTO)의 수석고문변호사를 역임했으며 지난해부터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대외협상 업무를 차질없이 수행해 조직 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아세안, 유럽연합, 캐나다, 인도 등 동시다발적 대형 자유무역협정을 함께 추진하면서 한국 자유무역 지도를 확대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6년 2월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발족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쌀·쇠고기 등 농축산물 문제, 자동차 ·섬유 등 제조업 문제, 스크린쿼터 등 문화예술 문제, 개성공단 생산품 지위 등 외교안보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지 않은 과제로 여겨졌다. 김현종은 “궁극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지니고 추진한다”고 밝혔다.

협상 만료 시한이 닷새 남은 2007년 3월26일부터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카란 바티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와 '끝장 협상'에 들어갔다. 마지막날인 31일 양쪽은 4월2일 새벽 1시까지 협상 연장에 합의하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끝까지 첨예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결국 2007년 4월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타결했다. 김현종은 국회 보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이면합의가 없으며 재협상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로 추가 협상이 진행돼 7월1일에야 서명이 이뤄졌다.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2010년 한 차례 더 추가협상을 거쳤다.

2007년 5월6일 한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의 협상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8월 김종훈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수석대표에게 통상교섭본부장 자리를 넘기고 유엔대사로 임명됐다.


◆ 비전과 과제
▲ 김현종 삼성전자 글로벌법무담당 사장(가운데)이 2011년 1월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칠순기념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북미 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대미 외교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에서 김현종의 책임도 막중하다.

특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를 폐기하기로 한 한국 정부의 결정을 두고 미국 측이 우려와 불만을 제기하고 있어 미국 측에 한국 의견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필요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장기화하고 한국 측의 대응조치가 이어지면 두 나라 모두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익과 국가적 자존심을 모두 고려한 외교적 조율도 필요하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오랫동안 교착상태에 있던 북미관계가 회복 조짐을 보임에 따라 북한과 미국 사이 중재자 역할도 중요해졌다.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과 북미 실무협상 진행, 대북 강경파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경질 등에 따라 북미 관계에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김현종은 이런 상황들을 고려해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에 임명된 뒤 미국을 수시로 방문해 일본 경제보복 조치와 북미 대화에 관한 사항들을 미국 측과 논의하는 등 활발한 대미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한-북한 자유무역협정 추진을 건의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밝히면서 남북 경제공동체를 언급해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남북 자유무역협정 추진 가능성도 떠오른다.


◆ 평가
▲ 김현종 유엔대사가 2008년 7월3일 서울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에서 열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환영만찬에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외교안보라인을 맡고 있지만 통상분야 전문가로서 명성이 더 높은 편이다. 그래서 처음 국가안보실 2차장에 임명됐을 때 남한과 북한의 경제협력을 염두에 둔 인사가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청와대는 김현종이 미국 각계에 다양한 인맥을 지니고 있으며 오랜 미국 경험으로 미국을 상대할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임명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 콜럼비아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유엔대사를 지낸 만큼 정무적 감각과 국제정치 경험도 쌓은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파’로 꼽히지만 민족주의 성향도 강해 경제보복을 하는 일본을 향한 강경 외교노선을 주장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외교가 내에서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와 달리 전통적 동맹관계보다 국익을 우선시 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자주파’를 주도하는 대표적 인물로도 거명된다.

김현종의 민족주의 성향을 두고 어린 시절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과 한국, 일본 등을 오가다가 14세 때부터 혼자 미국에서 기숙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부친의 신념에 따라 집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했고 방학마다 나이에 맞게 국어와 국사 교과서를 공부해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노 전 대통령의 편애를 받는다는 시각까지 나왔고 그만큼 적도 많아져 자유무역협정 정책을 마음대로 추진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받았다.

2003년 미국보다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먼저 추진했으나 유럽연합 쪽에서 한국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적 없어 관련 부분을 잘 모르지 않느냐며 부정적 뜻을 나타내자 미국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김현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먼저 추진해야 다른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할 때 전략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를 설득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부터 추진하게 됐다.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진행하던 도중 유럽연합에서 자유무역협정을 제안하자 “할 수 없고 지금은 약혼자(미국)가 있다”며 퇴짜를 놓기도 했다.

외부 출신 인사로 정부 일을 맡았지만 ‘공무원의 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관료들과 사이는 썩 좋지 않았던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한 소신에서 비롯된 독선적 성격도 공무원들 사이에서 배척당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유엔대사로 내정됐을 때에도 외교통상부 안에서 고위 외교관이 맡아 온 유엔대사에 비외교관 출신이 임명된 데 외교안보적 역할에 취약할 수 있다며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송민순 당시 외교부 장관은 자리를 걸고 이를 막겠다며 불만을 나타냈고 외교부는 물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도 관계가 원활하지 않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김현종은 저서 ‘김현종,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말하다’에서 “외교부는 외무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기수별로 승진하면서 배타적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몇몇 고위 관료들은 본인이 통상업무를 한 번도 안 해본 데 대한 자긍심마저 있었다. 마치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조선 관료들이 보인 태도와 흡사했다”고 공무원 조직을 강하게 비판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협상의 전문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어디서도 그의 협상 능력 자체에는 이의를 거의 제기하지 않는다.

세계무역기구 등에서 국제활동을 하면서 쌓은 폭넓은 통상 인맥과 과감성, 결단력 등이 탁월하며 협상에 임해서는 좀처럼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 카리스마도 갖추고 있다.

심지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놓고 오롯이 김현종 개인의 협상능력으로 일궈낸 성과라고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미국 변호사로 활동해 법률감각도 뛰어나 삼성전자에서 해외법무담당으로 영입했으며 세계무역기구 상소위원까지 지냈다.

황두연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김현종을 두고 “통상교섭본부장에겐 협상장에서 상황 판단력과 직결되는 통상 전문지식, 그리고 토론·설득·끼어들기·화제 전환 등을 능란하게 주도하는 언어능력이 무엇보다 요긴한데 둘 다 출중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통상교섭본부 비상근 자문관을 역임한 정인교 인하대 교수도 김현종을 "명확한 논리, 두둑한 배짱, 해박한 법률지식, 치밀한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협상에서 강한 설득력을 발휘하는 ‘터프가이’"라고 바라봤다.

2005년 11월 부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이 출신 고교를 물어보자 “각하가 나온 학교보다 좋은 곳을 나왔다”고 대답해 웃음을 이끌어 냈다. 그는 미국에서도 명문으로 알려진 미국 윌브램앤맨슨 아카데미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변호사 시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 사건사고
▲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007년 5월6일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브리핑실에서 피터 만델슨 EU 통상담당 집행위원과 함께 한-EU FTA협상 공식 출범을 선언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불화설
김현종이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 순방 때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언쟁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정부 내 외교 라인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9년 9월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 장관에세 “문 대통령 해외순방 당시 김현종 2차장과 다툰 적이 있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강 장관은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김현종과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김현종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에 “외교안보라인 사이의 이견에 관해 우려들이 있는데 제 덕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자세를 낮췄다.

그는 “소용돌이 치는 국제정세에서 최선의 정책을 수립하려고 의욕이 앞서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며 “앞으로 제 자신을 더욱 낮추며 열심히 일하겠다”고 덧붙였다.

△정의당의 교체 요구 직면
정의당은 2017년 10월에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태도를 놓고 김현종의 교체를 촉구했다.

정의당은 여차하면 우리 정부도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이 아닌 폐기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김현종이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봤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놓고 막무가내 전략으로 폐기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정의당은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가 김현종을 대신해 철저하게 국익을 대변할 사람에게 사령탑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폐기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김현종의 시각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세계무역기구 상소위원 포기 논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7년 7월 신설 직위인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되면서 세계무역기구 상소위원에서 물러나게 되자 3년 넘게 남은 임기를 포기하는 것은 아깝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더욱이 일본, 호주, 대만, 네팔 등 다른 나라 후보와 치열한 경쟁 끝에 얻은 자리를 금방 비우게 돼 다시 그 자리를 우리나라가 차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 있었다.

또한 상소기구 위원이 사퇴한 뒤 90일 동안 정부직을 맡지 못하도록 한 세계무역기구 규정도 있어 통상교섭본부장 임명에 절차상 문제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이 규정의 취지는 해당 위원이 맡은 소송사건을 같은 기간에 마무리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소송을 더 맡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며 “김 본부장은 이미 맡은 소송 업무를 다 마무리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세계무역기구는 2017년 8월3일 김현종의 사직서가 수리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친기업 논란
김현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하면서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한 반면 농민 등 사회적 약자에 불리하게 협상을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7년 7월26일 김현종의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내정소식이 전해지자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시민단체는 “김현종은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주도하며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내 공공정책을 말살한 인물”이라고 반대성명을 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대기업에 취업한 것도 논란거리다. 2009년 공직에서 물러난 지 1년도 안돼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으로 영입되면서 공직자윤리법 위반 여부가 논란이 됐다. 공직자윤리법이 4급 이상 공무원이면 퇴직 전 5년 이내에 맡았던 업무와 관련된 사기업에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김현종 전 대사가 한국에서 보기드문 국제통상 전문가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주도한 그의 삼성전자 취업이 공직자윤리법에 어긋나는 것인지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조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아직 살아있는 변수라는 점에서 김 전 대사는 한미 정부 모두에서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 상당한 정보 접근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삼성이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 가장 영향력 있는 로비스트를 영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해 취업을 허용했다. 이에 김상조 교수는 공직자윤리법의 허술한 규정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김현종이 삼성 사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공직자윤리법에 저촉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삼성도 정부도 개의치 않았다”며 “김현종은 첫 사장단 회의에서 ‘기업 이익을 지키는 게 나라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던 만큼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대기업에만 유리한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미 성향 논란
미국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대형로펌에서 근무한 경력과 국제주의·자유주의·개방주의적 성향 때문에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활동한다는 의혹을 많이 받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초기에는 ‘미국 대 미국의 협상’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2011년 위키리크스는 2006년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가 작성한 외교전문을 공개했는데 여기에 김현종이 버시바우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발표 전에 미리 알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현종은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미국이 반대한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추진한 것을 두고 “미국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죽도록 싸웠다(fighting like hell)”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그가 국익이 아닌 미국의 이익을 대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현종이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을 때도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현종은 2016년 3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국제무대에서 상대국과 협상할 때는 국익을 챙기는 것이 최대 목표”라며 “목표 달성을 위해 허위정보를 흘릴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미국이 의약품 최저가격을 보장해달라고 했을 때 최선을 다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고 포기하라는 차원에서 강조한 것”이라며 “그래서 미국이 그 요구를 포기하고 결과에서 우리 국익을 보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7년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되자 민주노총과 정의당 등이 또다시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거론하며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2011년 5월에는 민변이 외교통상부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보낸 한국 전문직 비자 쿼터와 관련한 서한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 서한은 미국 측이 한국인 신청자의 비자 발급에 협조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외교통상부는 해당 서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 결과 김현종이 서한을 보관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요 외교 관련 서한을 개인적으로 보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 경력
▲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019년 8월2일 춘추관에서 연 브리핑에서 일본에 강력한 대응의지를 밝혔다.
1985년 미국 밀뱅크트위드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1986년 미국 스캐든압스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1989년 귀국해 김신유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했다.

1993년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무역학과 조교수로 채용됐다.

1995년 5월 외무부 고문변호사에 위촉되면서 정부와 인연을 맺었다.

1998년 7월부터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통상전문관으로 활동했다.

1999~2003년 세계무역기구에서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 법률자문관으로 활동했다.

2003년 5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으로 영입됐다.

2004년 7월 제3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됐다.

2005년 11월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 합동각료회의 공동의장에 올랐다.

2005년 12월 제6차 세계무역기구 한국 수석대표가 됐다.

2007년 8월 주유엔대사로 임명받았다.

2007년 10월 유엔 아주그룹 의장에 선출됐다.

2008년 1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을 맡았다.

2008년 5월 유엔대사에서 귀임했다.

2009년 3월~2011년 12월 동안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으로 일했다.

2015년 3월 한국외국어대 LT(Language&Trade)학부 교수에 임용됐다.

2016년 2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20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갑 출마에 도전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2017년 8월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취임했다. 

2019년 2월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에 임명됐다.

◆ 학력

미국 윌브램앤맨슨 아카데미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1981년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미국 컬럼비아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법무박사(JD)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우루과이·노르웨이 대사를 지낸 김병연 전 코리아헤럴드내외경제신문 회장과 최정심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고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명씩 있다. 여동생은 김미형 아시아나항공 고문이다.

강금진씨와 사이에 김민상, 김지상 두 아들을 두고 있다.

◆ 상훈

2009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기타

대학원을 마치고 로펌 근무 도중 귀국해 1986년 11월15일부터 1987년 5월16일까지 석사장교로 복무했다.

2010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과 세계 통상흐름 등을 담은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홍성사)를 펴냈다.


◆ 어록
▲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FTA 협상 마지막날인 2007년 4월2일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한미FTA 협상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외교안보라인 사이의 이견에 관한 우려들이 있는데 제 덕이 부족했던 것 같다. 소용돌이 치는 국제정세에서 최선의 정책을 수립하려고 의욕이 앞서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 제 자신을 더욱 낮추며 열심히 일하겠다.” (2019/09/18,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불화설이 불거진 뒤 트위터에 자신의 뜻을 밝히며)

“한국은 진심으로 편견 없이 일본과 강제징용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모든 방안을 검토할 용의가 있었고 이 점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일본의 대응은 단순한 거부를 넘어 우리의 국가적 자존심까지 훼손할 정도로 무시로 일관했으며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2019/08/23,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우리는 우리의 수출이 증가하면 할수록 일본으로부터 핵심 소재와 부품 수입이 동시에 증가하는 가마우지 경제체제로부터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 만약 20년 전에 일본이 오늘의 조치를 우리에게 취했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2019/08/02,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흥분하면 대체로 영어로 말하니까 욕은 먹어도 영어공부는 많이 됐다는 얘기도 하던데 영어 공부하고 싶으신 분은 언제든 찾아와라." (2019/03/04,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이임식에서 농담을 건네며)

“과거 한미FTA를 두고 다소 다른 입장에 서 있었지만 늘 존경했다는 걸 이제서야 늦게나마 밝힌다. 고인은 우리 국민들에게 커다란 유산을 남겨주고 갔다. 저와는 다른 삶을 살아오셨지만 저는 고인을 진심으로 존경해왔다. 앞일을 몰라 고맙고 감사드린다는 말씀 한 번 더 못드린 것이 아쉽다.” (2018/07/27, 페이스북에서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을 추모하며)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을 봤을 때 시장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수출을 다변화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인도와 관계를 4강 수준으로 격상하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중국 등 G2와 관련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인도와 관계를 4강 수준에 버금가게 높이고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 (2018/07/09,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5월까지 수출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등 수출 증가세가 이어져 연말까지 수출 상승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업일수 감소와 선박수출 기저효과 등으로 6월 수출이 주춤하고 있다는 점에 경각심을 지녀야 한다. 견조한 수출 성장을 통해 수출이 일자리와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 (2018/06/26, ‘민관 합동 수출투자 대책회의’를 열고)

“4차산업혁명에 따라 국경 간 전자상거래와 빅데이터의 국가 간 이동, 스마트 기기 등에 따른 세계 가치사슬(GVC,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 등 새로운 통상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 (2018/04/26, 경기 용인의 현대자동차 환경기술연구소를 찾아)

“2010년 이후 일본은 연 평균 2.3%, 우리는 연 평균 5.9%씩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신통상전략을 통해 수출 증가율을 6.6%까지 높여 2022년에는 일본을 추월하겠다.” (2018/04/05,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관세를 두고 미국과 원칙적 합의와 원칙적 타결을 이뤘다. 다만 아직 실무 차원에서 몇 가지 기술적 이슈가 남아있는데 곧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2018/03/25, 미국과 협상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중미FTA를 통해 한국과 중미 사이에 더욱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2018/02/21, 중미 5개국 통상장관과 한중미FTA 정식서명식에서)

“반덤핑규제와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등 조치가 보호무역주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이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18/01/28,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정부는 국익 수호를 위해 보호무역주의에 적극 대응할 계획을 세웠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상 보장된 권리를 적극 행사해 미국의 부당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 (2018/01/23,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민관대책회의에서)

“(한미FTA 개정협상과 관련해) 이제 막 시작했지만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나쁜 협상 결과보다는 협상을 타결하지 않는 게 낫다는 각오로 협상에 임하겠다. 국익 극대화와 이익균형 달성을 목표로 통상당국의 역량을 집중하겠다.” (2018/01/08,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안정적 수출 증가세를 유지하려면 수출품목 다변화와 시장 다변화가 시급하다. 동남아, 유라시아, 아프리카 국가의 수요가 높은 투자개발형 프로젝트 수주 선진화를 추진하겠다.” (2017/10/19, ‘해외 프로젝트 수주 선진화 세미나’에 참석해)

“농업은 우리에게 매우 어려운 것이고 농업을 건드리는 순간 우리 역시 미국의 제일 민감한 부분을 말할 수밖에 없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농업을 언급할 수 있지만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확실히 미국 측에 전달했다.” (2017/10/13,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첫 협상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협상에 임하겠다.”(2017/08/22,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 앞서)

“어떠한 협상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은 이익의 균형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상은 가능하지도 않고 유지될 수도 없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의 주요 교역 파트너들과 새로운 이익의 균형을 찾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경주해 나갈 것이다.” (2017/08/04, 통상교섭본부장 취임사)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주둔비용 분담 증대 협상에서 열강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반대급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합의하지 않았지만 한·미 FTA를 재-재협상할 때 우리 협상가들은 한·미 FTA가 결렬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농산물은 캐나다·유럽연합(EU)·호주산 등에 의해 대체 가능하다는 점을 직시하고 차근차근 대응할 준비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17/07/04, 중앙일보 칼럼)

“FTA를 체결하는 과거 통상정책 전략이 원교근공(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함)이었다면 이제는 성동격서(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공격함) 전략을 이행하면서 지정학과 에너지 이슈를 무역 관련 이슈와 융합해 우리 국익을 지켜야 한다. 우리 국민을 결집시키는 계기라는 계량화되지 않는 혜택을 얻을 수 있다면 한·미 FTA의 재-재협상을 하지 않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17/05/09, 중앙일보 칼럼)

“우리가 동북아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전략을 미국과 논의하려면 북핵 문제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 간의 지속적 대화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꾸준한 교류 및 일관된 남북 경제협력으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작업을 해놨어야 한다.” (2017/03/14, 중앙일보 칼럼)

“우리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317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해 1만853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미국의 대한국 서비스 무역흑자가 10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78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수입했음을 강조해야 한다.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의 득세로 틀이 바뀌었는데 기존의 예측 가능한 대응 방식으로는 백전백패다.” (2017/01/16, 중앙일보 칼럼)

“가장 열악한 상황이 저를 정치에 입문하게 하는 결정적 동기를 부여했다. 제 깊은 곳으로부터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는 단호한 음성이 들렸다. 더 늦기 전에 정계, 재계,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비상체제로 돌입해야 한다.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이제는 지역과 전략 위주로 체결하는 메가FTA를 주도하고, 우리 자유무역구와 중국 자유무역구를 상호 개방해 금융, 의료 서비스 등이 진출해야 한다.“ (2016/02/18, 더불어민주당 입당인사)

“냉정한 국제질서에서, 특히 실시간으로 지형이 변하는 동북아 지역에서 협상가들은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신(新)조선책략'을 구사하는 중국에 대비해야 한다. 경험이 많은 우리 협상가들이 좋은 결과를 내겠지만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는 마감일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이며 언제든지 깰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2014/11/06, 동아일보 칼럼)

“국민들이 안전에 대한 선진기준을 기업과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위기관리 준비와 대응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세금을 인상해서라도 국민들의 안정된 삶을 지탱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 사회는 압축성장을 한 결과 곳곳에 부족함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2014/04/22, 동아일보 칼럼)

“2007년 미국과 FTA 협상을 마무리 짓고 난 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방문을 준비하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북 FTA 추진을 건의했다. 그 당시 상황에서 6조5천억 달러의 가치로 평가되는 북한의 천연자원을 활용하는 것을 포함해 남북 FTA 추진은 분명히 고려할만한 사안이었다.” (2011/06/13, 서울-워싱턴포럼 세미나)

“EU는 세계 최대 경제국이자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의 제2의 수출시장이다. 특히 자동차와 섬유, 전자 등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관세 수준이 높아 FTA가 체결되면 가시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한·EU FTA가 체결되면 한국은 유럽, 아시아, 미국,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FTA 허브로 자리잡을 수 있다.” (2007/05/06, EU와 자유무역협정 협상 개시를 선언하며)

“한미 FTA는 상품뿐 아니라 투자와 서비스, 경쟁 등 무역관련 분야를 총망라해 북미자유무역협정 이후 세계 최대의 FTA가 됐다. 양국의 경제규모를 합치면 EU, NAFTA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한다. 향후 FTA가 성공적으로 발효되면 FTA 체결 경쟁에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케 된다.” (2007/04/02, 한미FTA 타결 직후 기자회견)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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