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경영담당 사장 올라
2018년 9월28일 실시된 인사에서 현대차 디자인경영담당 사장을 맡게 됐다.
디자인경영담당은 기존에 없던 보직이었지만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의 디자인경영 의지에 따라 신설된 자리다.
이 인사에 따라 현대기아차를 포함한 그룹 계열사의 주요 제품 디자인 방향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게 됐다.
현대차그룹은 “2013년부터 현대기아차 디자인을 총괄해온 피터 슈라이어 사장은 그룹 디자인 역량 강화를 이끈 전례가 있다”며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창의적이고 혁신적 업무처리를 확대할 필요가 있는데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적임자로 꼽힌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조직도상 슈라이어는 2019년 9월 현재 정 수석부회장 직속 조직인 기획조정실 산하의 디자인경영담당 사장으로 있다.
디자인경영담당 밑으로는 디자인경영TFT와 디자인경영팀이 배치돼 있다.
디자인업무 실무에서는 사실상 손을 뗐다.
현대기아차의 차량 디자인 업무를 총괄하는 연구개발본부 산하 디자인센터는 루크 동커볼케 디자인최고책임자 부사장이 센터장을 맡고 있다.
△현대차그룹 디자인 총괄
피터 슈라이어는 기아차 디자인 혁신의 공을 인정받아 2013년 1월 현대기아차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은 당시 “현대기아차의 장기적 디자인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각 추구하는 브랜드 방향성에 맞춰 현대차의 ‘플루이딕 스컬프처’와 기아차의 ‘직선의 단순화’ 등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고 디자인 개발 초기 단계부터 두 기업의 디자인 차별화 요소를 점검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경쟁력 있는 디자이너를 확보하고 육성하며 세계적 디자이너로서 경험과 역량을 전수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피터 슈라이어의 디자인 총괄 사장 임명은 내실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핵심 역량인 디자인부문을 강화하고 제품 디자인의 차별화를 통한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해 질적 성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 ▲ 이형근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 책임자 사장이 2018년 1월8일 미국에서 열린 북미국제오토쇼의 사전 미디어 행사에서 프리미엄 퍼포먼스 세단 스팅어를 선보인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기아차 ‘디자인경영’의 핵심
기아차가 ‘호랑이 코’로 일컬어지는 디자인 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질 수 있었던 계기는 모두 피터 슈라이어의 손에서 나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기아차는 영문 홈페이지에 “슈라이어의 리더십 아래 기아차는 회사의 제품을 완전히 혁신했다”며 “독창적이고 널리 찬사받는 새로운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완성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피터 슈라이어는 2006년 기아차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영입된 뒤 프랑크푸르트와 어바인, 도쿄 등에 있는 기아의 디자인센터와 한국의 남양디자인센터에서 이뤄지는 모든 디자인 활동을 감독하면서 기아차의 라인업을 완전히 재구성했다.
피터 슈라이어는 기아차에 ‘직선의 단순화(The simplicity of the straight line)’를 콘셉트로 하는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차별화된 기아차만의 독자 디자인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독자적 디자인 정체성은 피터 슈라이어의 제1목표나 다름없었다.
그는 2007년 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시장은 차종이 많지 않아 소비자들이 기아차를 봤을 때 쉽게 기아차라는 것을 인식한다”며 “그러나 미국시장과 같이 차종이 많은 나라에서는 기아차의 아이덴티티가 부족함을 느낀다”고 말하며 누구나 기아차를 알아볼 수 있는 기아차만의 관통하는 디자인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라인을 찾겠다는 목표는 향후 출시된 기아차의 신차들이 기아차만의 정체성을 다지는 데 중요한 지침으로 작용했다.
200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선보인 콘셉트카 ‘키(Kee)’가 기아차 디자인에 획을 그은 시발점이 됐다. 키의 디자인은 호랑이의 코와 입을 형상화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평가받았는데 2008년 6월에 출시된 로체 이노베이션에 처음 적용됐다.
호랑이 코 모양의 그릴을 적용하는 아이디어는 디자이너들과 회의에서 나왔다고 한다.
디자이너들과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을 어떻게 디자인할지 논의하던 가운데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동물의 얼굴처럼 코와 입을 형상화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피터 슈라이어가 이를 받아들여 실제 양산차에 적용했다.
이후 출시된 K시리즈 세단에 호랑이 코 그릴이 안정적으로 더해지면서 기아차는 ‘디자인 기아’라는 명성을 얻었다.
피터 슈라이어는 2010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기아차의 디자인은) 지극히 평범했다”며 “한 번 보고 기아차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였다”며 기아차로 자리를 옮길 때를 회상했다.
K3와 K5, K7, K9로 이어지는 K시리즈 세단의 차 이름도 그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피터 슈라이어는 2008년 3월 한 남성지와 인터뷰에서 “현재 이름은 무리수가 많다”며 “차명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차 이름으로 영문과 숫자를 조합하는게 어떠냐는 질문에 “괜찮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디자인전략의 통일성을 추구하기 위해 차 이름에도 같은 방향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자동차전문매체 오토익스프레스의 스티브 파울러 편집장은 2019년 3월 칼럼을 통해 슈라이어를 포함해 루크 동커볼케 현대디자인센터장,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의 현대차그룹 영입을 현대차그룹의 전환점으로 꼽았다.
△기아차에 합류
2006년 정의선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의 노력 끝에 폴크스바겐그룹에서 기아차 디자인 총괄 책임자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아차는 피터 슈라이어에게 처음 기아차로 이직 제의를 할 때 “디자인에서 큰 발걸음을 내딛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피터 슈라이어는 기아차의 다양한 차량을 살펴본 뒤 좋은 차를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디자인 측면에서 특색이 없다는 점을 발견했다. 쏘렌토 정도만 눈에 끌렸다고 한다.
피터 슈라이어는 디자이너로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흰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디어를 선호하는 본인의 특성을 고려해 기아차로 이직하기로 결심했다.
이 과정에서 폴크스바겐그룹의 보수적 의사결정 구조를 전하며 현대차그룹에게 많은 방식에서 일하는 방식에 자유로움을 부여할 것을 요구했고 현대차그룹은 이를 수용했다고 한다.
피터 슈라이어는 한 해외언론과 인터뷰에서 기아차 영입 당시를 회상하며 “기아차가 나의 이직을 설득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가야겠다고 확신했다”며 “무언가 끌리는 것이 있었다(The chemistry was right)”이라고 말했다.
폴크스바겐그룹의 페르디난트 피에히 이사회 의장은 2006년 피터 슈라이어의 기아차 이직에 대해 “인생에서 무언가를 잃은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으나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차에 가게 둔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근무
25년 동안 폴크스바겐그룹의 다양한 자동차를 디자인하면서 아우디 브랜드의 이미지 변화를 주도한 주요 디자이너로 꼽힌다.
피터 슈라이어가 폴크스바겐그룹에서 디자인한 대표적 차량들은 A3(1996년), A4(2000년), A6(1997년), TT(1998년), 콘셉트R(2003년), 이오스(2006년), 골프(1997년), 뉴비틀(1997년) 등이다.
피터 슈라이어가 디자인한 아우디 TT는 2006년 카디자인뉴스가 꼽은 ‘최근에 가장 영향력있는 자동차 디자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우디 TT는 슈라이어의 대표작이자 아우디의 상징적 모델로 여전히 회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