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사회적 대화 불참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2019년 1월28일 서울 강서구 KBS 아레나홀에서 정기 대의원대회를 열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여부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김명환은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자고 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 환상이 있어서도 아니고, 타협하고 양보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개혁 과제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라며 참여를 독려했다.
이날 대회에서 김명환의 경제사회노동위 참여 원안과 함께 '전면 불참' '조건부 불참' '조건부 참여' 세 가지 수정안이 함께 제시됐다. 그러나 전면 불참 34.6%, 조건부 불참 38.7%, 조건부 참여 44.1%로 모두 부결되자 부담을 느낀 김명환은 원안을 표결에 아예 붙이지 않았다.
김명환은 25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요청받았다. 김명환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개혁을 위해 경제사회노동위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을 나타냈으나 끝내 조합원들의 뜻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경제사회노동위는 2018년 11월 공식 출범했다. 민주노총은 2018년 10월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고 경제사회노동위 참여 여부를 논의하려 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김명환은 10월19일 중앙집행위원회를 마치고 발표한 담화문에서 "위원장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깊이 사과드린다"며 “내년 1월 정기 대의원대회에서는 민주노총 내 소통과 토론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해 힘 있는 결정을 이뤄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2019년 1월 대의원대회에서도 참여를 결정하지 못해 민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 논의에서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 위원장은 1월29일 “민주노총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 대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2019년 1월28일 서울 강서구 KBS 아레나홀에서 열린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안건 처리를 하지 못한 채 산회를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민주노총 파업
김명환은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노총의 첫 파업을 이끌었다.
민주노총은 2018년 5월28일 최저임금법 개악 저지 총파업대회를 열었다.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 14개 지역에서 조합원 5만여 명이 참여했다.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를 최저임금에 포함해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데 반발해 파업을 진행했다.
김명환은 5월3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최저임금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 노사정 대표자회의와 경제사회노동위 등 사회적 대화기구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6월1일부터 청와대 농성투쟁을 벌이고 최저임금 삭감법 폐기를 위한 100만 범국민서명운동 등을 진행했다. 6월30일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 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민주노총 추산 8만 명, 경찰 추산 4만 명이 모여 정부 출범 후 최대 규모 집회가 열렸다.
민주노총은 8월22일 임시중앙위원회에서 노사정 대표자회의 복귀를 의결했으나 11월 총파업도 결정했다. 11월16일 2018 총파업 투쟁 승리 전국 단위 사업장 대표자 결의대회를 열었고 11월21일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등 정부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총파업대회를 열었다.
고용노동부는 11.22 민주노총 총파업에 현대차·기아차 등 80여 개 사업장 9만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했다.
△노사정 대화 참여
김명환은 노사정 대화에 참여했다.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화 재개를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석하기로 했다. 다만 노동시간 단축 및 최저임금 관련 개악을 국회와 정부가 강행하면 노사정 대표자회의 참여를 재논의하기로 조건을 달았다.
2018년 1월31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문성현 노사정위원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박병원 경총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처음 열렸다. 양대노총이 특정 현안이 아닌 포괄적 의제를 놓고 사회적 대화에 나선 것은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떠난 뒤 19년 만이다.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2018년 4월 2차와 3차 회의를 열고 기존 노사정위원회를 경제사회노동위로 확대개편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논란으로 노동계가 반발하면서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6개월간 중단됐고 2018년 10월에야 4차 회의가 열렸다.
민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 참여도 결정하지 못해 경제사회노동위 출범 역시 11월22일로 늦어졌다.
△민주노총 위원장
김명환은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2017년 10월 민주노총 직선2기 집행부 선거에 기호 1번 위원장 후보로 김경자 수석부위원장 후보, 백석근 사무총장 후보와 함께 출마했다. ‘믿는다 민주노총! 노동혁명, 현장혁명’을 대표구호로 내걸고 다른 3팀의 후보들과 경쟁했다.
2017년 12월10일 1차투표 개표결과 김명환은 1위를 차지했으나 득표율 46.5%로 과반에 미치지 못해 2위인 이호동 후보와 결선투표를 진행하게 됐다.
하지만 15일 재집계 결과 2위와 3위의 격차가 재투표 실시를 위한 기준투표수에 미달하면서 일부 투표소에서 재투표를 실시했고 재투표 결과 김명환은 득표율 47.0%로 이호동 후보와 결선투표를 진행했다.
12월22~28일 진행된 결선투표 결과 김명환은 21만6962표를 얻어 득표율 66.0%로 최종 당선됐다.
2018년 1월1일부터 임기가 시작됐고 1월2일 첫 일정으로 경기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열사 묘역에 참배했다.
1월4일 구속 중인 한상균 전 위원장을 접견해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한 전 위원장은 새정부에서 민주노총이 더 적극적 노력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명환은 민주노총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통합해 제기된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노총 지도부와 상견례 및 간담회를 했다.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등 긴급한 노동현안을 놓고 연대하기로 뜻을 모았고 사회적 대화도 함께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 오찬을 함께 했고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과도 만났다.
김명환은 2018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80만 명인 조합원을 200만 명까지 확대해 200만 민주노총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18년 1월19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초청 회동에 응해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10년7개월 만에 대통령을 만났다
|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왼쪽)과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월19일 청와대 접견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철도 파업
2013년 12월3일 수서발 KTX 민영화 반대 총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은 같은 달 30일까지 진행돼 2016년 철도 파업 이전까지 최장기 철도파업으로 기록됐다.
경찰은 12월22일 김명환의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민주노총 본부에 강제진입하기도 했으나 김명환은 이를 피해 잠적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경향신문사옥에 경찰이 강제진입한 형태가 돼 철도 파업 탄압에 여론이 불리하게 조성되기도 했다.
김명환은 12월26일 민주노총 사무실에 다시 나타나 파업을 독려했다. 하지만 코레일의 강경책에 파업은 진퇴양난에 빠졌고 결국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등 정치권의 조정 속에 철도산업발전소위 설치 등의 조건으로 30일 파업 종료를 합의했다.
약 한달간 수배생활 끝에 2014년 1월14일 경찰에 자진출석했고 16일 구속됐다. 서울서부지검은 2월6일 김명환을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김명환은 2월20일 보석을 신청해 불구속상태로 재판이 진행됐고 12월22일 서부지법은 김명환 등 철도노조 간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16년 1월 서울고법, 2017년 2월 대법원도 무죄 판결을 유지·확정했다.
2014년 김명환은 서울용산경찰서가 소재지 파악을 위해 건강보험공단에 진료기록을 요청해 요양급여 지급 내역 등을 제공받은 것과 관련해 '수사에 관해 공공 기관에 필요한 사항에 대한 보고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199조 2항이 영장주의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진료기록은 민감한 개인정보로 보호받아야 하기에 반드시 영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김명환은 파업 이후 2014년 임단협에서 마련한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총투표에서 49%의 찬성에 그치며 자동퇴진했다.
철도노조 규약에는 잠정합의안이 부결되면 지도부는 사퇴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근속승진제 폐지, 임금동결, 재해 및 휴업보상 규정 축소 등이 부결의 이유로 지목됐다.
△초기 활동
1994년 전국기관차협의회 교육부장을 맡았다. 기관차협의회는 이 해 6월23일 변형근로·승진차별 철폐, 호봉제도 개선, 해고자 복직 등을 내세우며 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정식 철도노조가 아닌 기관차협의회 파업은 불법쟁의로 규정됐고 파업 6일 만인 6월29일 진압됐다. 기관차협의회는 7월 해산됐다.
이 파업은 여객열차 운행률 11%, 화물열차 3%, 수도권 전철 40% 등 교통대란을 빚었고 2009년 철도 파업까지 최장기 파업으로 기록됐다.
김명환은 6월26일 경찰이 파업거점인 기독교회관에 진입했을 때 연행됐다가 구속됐고 7월 해임됐다. 해고노동자 시절 기관차협의회와 함께 파업했던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 사무차장을 거쳐 민주노총 공공연맹 조직실장으로 활동하며 부산·인천·대구지하철 파업을 이끌기도 했다.
2003년 철도청과 철도노조는 4.20 노사합의로 장기 해고 노동자를 복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9년 만에 청량리차량사무소로 복직했다.
2006년 3월31일 철도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수석부위원장에 뽑혔다. 3.1 총파업으로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자 자진출두했는데 김명환은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았다. 직무대리 시절 KTX 여승무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에 동참했다.
2007년 철도노조 21대 지도부선거에 출마했다. 김학경, 장량덕 후보와 팀을 이룬 가운데 현장파인 엄길용 후보와 경쟁했으나 46.22%의 득표율로 고배를 마셨다. 당시 철도노조는 국민파가 주도하고 있어 김명환의 낙선은 의외의 결과라는 의견이 많았다.
2013년 철도노조 25대 지도부선거에 박태만, 최은철 후보와 한 팀으로 단독출마했다. 투표율 82.1%, 찬성율 95.3%의 높은 지지로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