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 타결
윤여철은 현대자동차의 광주 완성차공장 투자협약을 타결했다.
2019년 1월31일 윤여철, 이원희 현대차 사장, 이용섭 광주시장, 광주시 노사민정 대표 등이 참여한 가운데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이 체결됐다.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광주 빛그린산단 내 62만8000㎡ 부지에 자기자본 2800억 원, 차입금 4200억 원 등 총 7000억 원을 투입해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내용이다.
주 44시간 근무에 연봉 3500만 원의 조건으로 현대차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에 완성차를 생산하고 광주시는 근로자들에게 복지를 제공해 낮은 임금을 보전해주는 구조다. 현대차는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연간 10만 대 규모의 경형 SUV를 생산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2018년 6월 광주형 일자리 투자의향서를 제출했지만 투자협약이 타결되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현대차와 광주시가 협상을 진행하는 가운데 광주 노동계는 '노조 패싱'을 주장하며 노사민정 불참을 선언했다. 현대차 노조 역시 협약 체결시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2018년 11월 광주시와 노동계가 투자유치추진단 구성하며 협약 체결이 가까워졌으나 12월5일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가 현대차와 광주시가 합의한 노사상생발전협정서에 수정을 요구하며 한 차례 협약이 무산됐다. 여기에는 5년 동안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유예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광주시가 중재에 나서면서 해를 넘겨 투자협약이 타결될 수 있었다. 해당 임단협 유예조항은 유지됐으나 별도의 부속합의서에 노동조합법 등 관계법령을 준수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 ▲ 2019년 1월31일 광주광역시 서구 광주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윗줄 가운데), 이원희 현대차 사장(문 대통령 오른쪽), 이용섭 광주시장(문 대통령 왼쪽) 등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
△현대차그룹 쇄신인사에서 부회장 유지
2018년 12월12일 실시된 현대차그룹 부회장단, 사장단 인사에서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을 제외한 4명의 전문경영인 출신 부회장 가운데 유일하게 자리를 유지했다.
현대차그룹 부회장에 오른 지 10년이 넘었고 부회장단 가운데서도 가장 선임이자 최고령자인 만큼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책사형 참모로 불린 김용환 부회장은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겼으며 연구개발본부를 책임진 양웅철 권문식 등 두 부회장은 동시에 고문으로 물러났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따라 노사관계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룹에서 최고의 노무관리 전문가로 꼽히는 윤여철이 재신임을 받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18년 노조와 임금협약 협상을 진행하면서 여름휴가 전 파업 없이 조기종결해 사업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현대차는 2018년 7월27일 기본급 4만5000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 성과급·격려금 250%+280만 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통시장 상품권 20만 원 지급 등을 뼈대로 하는 2018년 임금협상을 타결했다. 여름휴가 전 협상 마무리는 2010년 이후 8년 만으로 보호무역 확대와 실적부진 등의 대내외적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차, 해를 넘겨 2017년 임단협 타결
현대차 노사는 2017년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에서 사상 처음으로 연내 타결에 실패했다. 실적 악화와 판매 부진이 노사 임단협 타결에 악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조는 임금과 성과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경영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특히 해외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쌓이면서 노조가 파업하더라도 회사가 입는 타격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임금 인상에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 노사는 2017년 12월19일에 1차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는데 1차 잠정합의안에는 △기본급 5만8천 원 인상 △성과급 300%+280만 원 지급 △중소기업 제품 구입 때 20만 포인트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1차 잠정합의안이 노조 찬반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노조가 파업에 나서는 등 노사갈등이 깊어졌다.
현대차 노사는 해를 넘겨 2018년 1월10일 본교섭에서 2차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2차 잠정합의안에는 1차 잠정합의안에서 △재래시장상품권 20만 원 지급 △해고자 1명 복지 등의 내용이 추가됐다.
현대차 임금협약 협상이 해를 넘기면서 2017년에 임금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한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속출했다.
현대차를 포함해 노사가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을 진행하는 현대차그룹 소속 사업장 13곳 가운데 9곳이 해를 넘겨서도 2017년 임단협을 타결하지 못했다.
현대차 노사의 2차 잠정합의안은 2018년 1월15일 노조 찬반투표에서 61.06%의 찬성률로 가결됐다.
| ▲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8년 1월2일 현대차그룹 시무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
△2016년, 노조 파업으로 사상 최대 생산 차질
현대차 노조는 2016년 임금협약 교섭 과정에서 24차례 파업하고 12차례 특근을 거부했다. 정부가 현대차 노조 파업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힐 정도로 강도 높게 파업했다.
긴급조정권이란 노조의 파업이나 쟁의행위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거나 국민경제를 해칠 우려가 있을 때 발동되는 조치다.
현대차는 2016년 노조 파업으로 자동차 14만2천여 대, 3조1천억 원에 이르는 생산 차질을 빚은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1987년 이후 노조 파업에 따른 사상 최대 생산 차질 규모다.
게다가 현대차 노사는 2016년 임금협약 교섭에서 쟁점 현안이었던 임금피크제 확대 여부를 놓고도 합의를 보지 못한 채 교섭을 마무리했다.
노사는 임금피크제 확대 여부를 놓고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임금피크제 놓고 노조와 의견 차이 못 좁혀
현대차 노사는 2015년 12월 가까스로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을 타결했지만 쟁점현안이었던 임금피크제, 통상임금 등을 놓고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현대차가 도입하려는 임금피크제는 만 59세와 만 60세에 각각 전년도 임금의 10%를 삭감하는 것이다.
현대차 노사는 앞서 2014년 11월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를 만들었으나 2015년 9월 이후 임금협상 및 단체협약 교섭, 노조 파업, 노조 집행부 임기 만료 등에 발목이 잡혀 활동을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신규 채용 결정
2013년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자 담화문을 내고 2016년 상반기까지 비정규직 직원 3500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2014년 아산과 전주의 비정규직 4천 명을 특별 채용하기로 한 데 이어 2015년 울산의 비정규직 2천 명을 추가로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추가 특별 채용 합의내용은 2016년 3월 노조 찬반투표에서 가결됐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2017년 안에 비정규직 6천 명의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부회장 복귀하며 국내 생산 담당까지 역할 확대
2012년 1월 현대차 노동자 분신사태의 책임을 지고 부회장에서 물러난 지 16개월 만인 2013년 5월에 노무총괄 부회장으로 복귀했다.
현대차는 2013년 노조와 임금협상에서 주말특근 수당을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고 비정규직 노조가 8500여 명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 돌입을 선언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윤여철이 구원투수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재직과 퇴직 여부를 떠나 가장 적합한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는 정몽구 회장 나름의 인사 철학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어려울 때일수록 구관이 명관이라는 원칙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2014년부터 국내 생산 담당까지 맡아 좋은 성과를 냈다. 2015년 신형 투싼 공동생산 노사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생산 유연성을 높이고 차량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결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무총괄 부회장에서 물러나
현대차그룹은 2012년 1월18일 윤여철을 노무총괄 부회장에서 물러나게 하고 고문으로 위촉하는 인사를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5년 넘게 노조와 임금과 단체협약 협상을 주도하며 노사관계에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윤여철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뜻밖이었다.
2012년 1월8일 전국금속노조 현대차지부(현대차 노조) 소속의 조합원 1명이 분신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윤여철은 정몽구 회장과 직접 만나 사의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성 노조 출범과 조합원 분신 사태 등 일련의 과정에서 노사 관계를 매끄럽게 풀어내지 못한 것과 관련한 문책성 인사로 해석됐다.
△현대차 노조의 파업에 숱하게 담화문 작성
윤여철은 노조와 협상하면서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노조가 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할 때마다 직접 담화문을 발표하거나 가정통신문을 발송하는 등 노사관계를 대화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시무식에서 노조 간부의 윤여철 폭행사건이 벌어졌던 2007년에는 유독 담화문과 가정통신문 작성 건수가 많았다.
노조가 성과급 지급과 관련한 파업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파업 등으로 끊임없이 파업을 이어가자 숱하게 담화문을 썼다.
윤여철의 담화문을 보면 “파업으로 고객들이 우리차에 등을 돌린다”부터 시작해 “언제까지 정치파업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나” “파업만큼은 자제해 달라” 등으로 내용이 다양하다.
윤여철은 울산 공장장을 맡으며 생산에 힘써야 했는데 노사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 퇴근 후나 시간이 날 때마다 생각을 정리해 글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상무부터 사장까지 초고속 승진
윤여철은 2004~2005년에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윤여철이 현대차에 1979년 입사해 2003년 이사로 승진하기까지 24년이 걸렸다.
이후 2004년 1월에 상무로 진급했으며 같은 해 4월에 전무로, 다시 8개월 뒤에 부사장에, 또다시 9개월 뒤에 사장이 되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노사협상 뿐만 아니라 영업본부장 시절에도 인사노무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이는 등 내부에서 노무관리 전문가로 통하면서 그 역량을 인정받았다.
2005년에는 노조의 의견을 받아들여 국내 기업 최초로 사외 건강증진센터를 설립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IMF 당시 구조조정 직무 수행
윤여철은 1998년 IMF 사태 당시 현대차에서 국내 본부 인사업무를 맡아 구조조정의 임무를 수행했다.
윤여철은 당시를 회상하며 “조직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감행해야 했지만 한 가정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 정리해고 과정이 3차까지 갔을 때에는 적지 않은 고충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2000년에 경기남부 지역본부장이 되어 26개의 지부 가운데 25등이던 경기남부 지부를 1년 만에 전국 2등의 지부로 만드는 쾌거를 이루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