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 경영권 승계에 '성큼'
정기선은 경영보폭을 빠르게 넓혀 경영권 승계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8년 11월19일 현대중공업에서 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에 올랐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14년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의 영업조직을 통합해 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를 출범했다. 당초 가삼현 사장이 영업본부의 사업대표였고 정기선은 부문장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가 사장이 현대중공업 공동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직책이 바뀌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가삼현 사장이 영업을 총괄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직책 이름이 달라졌을 뿐이고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2018년 11월 초 가삼현 사장이 한영석 사장과 함께 현대중공업 공동대표이사에 오른 것 역시 정기선의 '3세 경영' 시대를 여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평가된다. 가 사장이 그동안 선박영업부문에서 정기선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만큼 3세 승계가도를 닦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기선은 경영전면에 얼굴을 드러내는 일도 잦아졌다. 주로 미래사업과 관련한 행사다.
2018년 5월 로봇사업과 관련해 현대중공업지주와 독일 쿠카그룹의 업무협약을 직접 나서서 체결했다. 같은 해 8월 현대중공업지주가 카카오인베스트먼트 등과 의료빅데이터 합작법인 설립계약을 맺는 자리에도 직접 나왔다.
정기선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현대글로벌서비스 역시 그룹에서 존재감이 높아지고 있다. 2018년 3분기까지 현대글로벌서비스 누적 매출은 2832억 원으로 2017년 전체 매출(2403억 원)을 일찌감치 뛰어넘었다.
정기선은 2018년 3월29일 현대중공업지주의 지분 5.1%를 확보해 경영권 승계작업을 본격적으로 구체화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전까지는 현대중공업지주 주식을 거의 보유하지 않고 있었지만 주식 매입으로 단숨에 현대중공업지주 3대주주가 됐다.
△현대중공업 선박 수주 회복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업황이 살아나면서 수주도 다시 호조를 보이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는 2018년 조선부문에서 137억 달러를 수주했다. 2017년 조선부문 수주실적보다 23%가량 늘었다.
2019년 조선부문 수주목표로는 2018년 수주실적보다 16% 높은 159억 달러를 제시했다.
정기선은 2013년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선박영업부 수석부장으로 맡은 뒤 2015년 인사에서 조선해양영업본부 총괄부문장을 맡는 등 현대중공업그룹 수주일선에서 뛰었다.
2018년 11월부터는 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를 맡고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 맡아 친환경 선박사업 키워
정기선이 이끄는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친환경 선박사업을 발판 삼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선박의 개조 및 유지, 보수사업 등을 한다. 친환경 선박 개조시장이 환경 규제의 강화 추세에 따라 블루오션으로 주목받으면서 현대중공업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급부상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2022년까지 매출 2조 원, 영업이익 4030억 원, 수주 23억 달러를 내겠다는 목표를 잡아뒀다. 2017년 매출이 2400억 원, 영업이익이 1140억 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야심찬 계획이지만 성장세를 보면 무리하다고도 보기 힘들다.
이 회사는 국제해사기구(IMO)의 새 환경규제를 앞두고 스크러버(황산화물 세정장치)와 선박 평형수 처리장치(BWTS) 설치공사 등을 잇달아 수주하고 있다.
2018년 3분기까지만 봐도 스크러버, 선박 평형수 처리장치 등 개조사업에서 일감 2억9400만 달러 규모를 따냈다. 같은 기간의 누적 매출 역시 2832억 원으로 2017년 매출을 뛰어넘었다.
글로벌사업 확대에도 분주하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유럽과 미국 법인에 이어 2018년 11월 싱가포르에 세 번째 해외법인을 세웠다. 콜롬비아에도 신규 법인 설립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황산화물을 씻어내는 스크러버는 현대글로벌서비스의 효자 품목으로 자리매김했다. 국제해사기구가 2020년 1월부터 선박 배출가스의 황산화물(SOx) 비율을 기존 3.5%에서 0.5%로 축소하는 규제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2016년 12월 출범할 당시부터 정기선의 ‘경영능력 시험대’로 불리며 관심이 높았다. 그가 친환경 선박 개조사업의 성장성을 확신하고 직접 회사 설립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에는 정기선이 현대글로벌서비스 공동대표이사에 오르면서 책임도 더 무거워졌다. 정기선이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지 8년 만이다.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은 2018년 4월 기자간담회에서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기선이 2014년부터 강력히 주장해 세우게 된 회사"라며 "스스로 책임지고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해 대표이사를 맡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람코와 중동 조선소 짓는 첫 해외사업 주도
정기선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이자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코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조선소를 짓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람코 조선소 프로젝트는 정기선이 주도하는 첫 해외사업이기도 하다.
정기선은 2015년 11월 현대중공업과 아람코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에 직접 서명해 체결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당시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이를 놓고 "아람코 프로젝트는 정기선 총괄부문장이 더 잘 안다"고 밝히며 합작사업 체결의 공이 온전히 정기선에게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기선은 2016년 7월 조선소 건설 프로젝트를 놓고 협의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장관과 아람코 경영진을 만났다. 정기선은 두 시간 전쯤 회동에 도착했고 상대방에게 줄 선물로 은 거북선도 준비했다고 한다. 거북선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특별한 손님을 만날 때 주던 선물이다.
정기선은 사우디아라비아 합작 조선소를 세우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수차례 방문하면서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모든 과정을 직접 챙겼다.
아민 알 나세르 아람코 사장은 정기선을 두고 “사업기회를 포착하는 예리함은 정주영 일가의 DNA”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2018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 합작 조선소는 ‘IMIC(International Maritime Industries company)’라는 이름으로 일부 공사를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 합작 조선소 지분은 아람코가 50.1%, 람프렐 20%, 바흐리 19.9%, 현대중공업 10% 정도 보유하고 있다.
아람코 등은 이 조선소를 짓는 데 2021년까지 모두 5조 원 정도를 투입해 해양시추설비 4기, 초대형 원유운반선 3척, 기타 선박 40여 척 등을 건조할 수 있는 규모로 짓기로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합작 조선소의 생산능력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대 규모다.
현대중공업은 IMIC를 발판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주되는 선박에 수주 우선권을 확보하고 조선소 운영에 참여해 여러 부가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기선의 할아버지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그리스 선주에게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우리는 300년 전에 세계 최초의 철갑선 거북선을 지었던 민족이오! 돈을 빌려주시오!”라고 설득해 울산의 허허벌판에 조선소를 지었다고 한다.
정기선에게 중동 합작 조선소 건설사업은 ‘정주영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 ▲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가 2016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의 합작조선소 건설예정 부지에서 열린 킹 살만 조선산업단지 선포행사에서 아민 알 나세르 아람코 사장으로부터 커피와 다기세트를 선물로 받고 있다. |
△현대중공업그룹 지주사체제 재편
현대중공업그룹은 지주사체제 구축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정기선이 수주 등 경영성과를 내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17년 4월을 기점으로 현대중공업지주(전 현대로보틱스)와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에너지시스템 등 4개 기업으로 쪼개졌다.
이 과정에서 정몽준 최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지주 지분도 25%를 훌쩍 넘어서면서 안정적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2018년 8월22일에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이 22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현대삼호중공업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고 투자회사를 현대중공업이 흡수합병하는 안을 의결하면서 지주사체제 전환을 마무리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주사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서 자회사인 현대중공업의 지분을 30% 이상 확보해 안정적 지주사체제 구축을 위한 채비를 마쳤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기존 지배구조는 '현대중공업지주→현대중공업(자회사)→현대삼호중공업(손자회사)→현대미포조선(증손회사)'으로 이어졌으나 분할 및 합병에 따라 현대중공업 아래에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이 나란히 자회사로 들어갔다. 현대미포조선이 현대중공업지주의 증손회사였다가 손자회사로 위치가 바뀐 셈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은 일반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100%일 때는 예외) 현대중공업그룹은 분할합병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국제무대에서 활동영역 확대
정기선은 국제무대에서 보폭을 꾸준히 넓히고 있다.
정기선은 2015년 10월27일부터 30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린 ‘가스텍 2015’행사에 참석하면서 국제무대에 등장했다.
이 행사는 국제 3대 가스 분야 행사로 꼽히는데 글로벌 에너지기업 관계자, 각국 정부 에너지 담당관, 주요 선주 등 국제 에너지 분야에서 핵심적 인물들이 참여한다.
정기선은 당시 현대중공업 그룹선박영업 대표였던 가삼현 사장과 함께 현대중공업 대표로서 참석했다. 2014년에도 미국에서 열린 세계 해양 박람회와 독일에서 열린 국제 선박·조선·해양 기술 기자재 박람회 등에 참석한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부장이었다는 점에서 임원 타이틀을 달고 참석한 2015년이 본격적 데뷔무대였다고 할 수 있다.
정기선은 그 뒤에도 꾸준히 국제행사에 참석하며 선주들에게 얼굴을 알리고 그룹 후계자로서 친분을 쌓았다.
2016년 4월 제18차 액화천연가스총회(LNG18)에 참석했고 같은 해 6월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박람회인 '포시도니아 2016'에도 방문했다.
2018년 6월에는 ‘포시도니아 2018’을 찾아 2017년 11월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섰다.
정기선은 2019년 1월 열린 세계 최대의 IT(정보기술) 가전 전시회인 'CES 2019'에도 처음으로 참관했다. 그가 CES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신사업 발굴과 로봇사업 확대에 힘을 쏟고 있는 만큼 관련 업계 움직임을 파악하고 아이디어를 찾으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정기선은 해외 유수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는 자리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하면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정기선은 2016년 현대중공업과 제너럴일렉트릭이 사업협력을 맺는 자리에 참석했을 뿐 아니라 그해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와 합자조선소를 짓는 데 협력하겠다는 내용의 합의서에도 직접 서명했다.
2018년 5월에는 현대중공업지주와 독일 쿠카그룹이 로봇사업에서 전략적 협력을 위해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자리에도 정기선이 나왔다. 쿠카그룹은 세계 점유율 3위의 로봇기업이다.
2018년 9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가스텍 행사에도 참석해 영업활동을 했다.
△현대중공업에서 빠르게 승진해 ‘재계 최연소 임원’
정기선은 현대중공업에서 가파른 승진가도를 밟았다.
2009년 1월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현대중공업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것은 2013년이다.
입사한 지 7개월 만인 2009년 8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MBA)과정을 마치고 2011년 보스턴컨설팅그룹 한국지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했기 때문이다.
그는 2013년 경영기획팀 선박영업부 수석부장으로 복귀해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직책은 선박영업부 수석부장이었지만 재무와 기획, 영업, 기술 등 다방면에 걸쳐 경영수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기선은 경영학과를 전공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술부문에 취약했는데 이 부문에서는 이충동 당시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경영부문은 이재성 당시 현대중공업 회장이 ‘멘토’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기선은 2014년 10월 이뤄진 2015년 현대중공업그룹 인사에서 상무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상무로 승진했다. 그룹 기획실에서 재무와 기획 등 업무를 맡았다. 입사한 지는 5년, 복귀한 지는 1년 만이다. 현대중공업 사상 ‘최연소 임원’이자 재계에서 가장 나이 어린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당시 "회사의 체질을 개선할 뿐 아니라 젊고 역동적 조직을 만들기 위해 능력 있는 리더를 발탁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며 “조직을 간소화해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하고 여기에 맞는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이 이번 인사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11월에는 전무로 승진하면서 기존에 현대중공업 기획, 재무부문장 역할만 해온 것에서 그치지 않고 조선해양영업총괄부문장까지 맡아 핵심부서를 모두 총괄하게 됐다. 2년 뒤인 2017년 11월에는 현대중공업 부사장이자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에 올랐으며 2018년 11월에는 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