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중립산업법 시행, 미국 중국 재생에너지 패권경쟁에 독자기반 갖추기

▲ 24일(현지시각) 독일 스트라센 지역에서 다음 달에 있는 선거를 위해 유세에 나선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집행위원장.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이 다음 달부터 역내 재생에너지 제조 역량을 지원하는 탄소중립산업법(NZIA)을 시행한다. 여기엔 규제 간소화, 역외 기업 물품 사용의 불이익 조항, 기술기업 집중 유치 지역 조성 등 유럽 역재 제조 역량을 키우기 위한 규정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를 놓고 유럽연합이 이번 법안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재생에너지 패권 경쟁 속에서 독자적 기반을 갖추려는 행보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27일(현지시각)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찬반투표에서 탄소중립산업법이 통과돼 6월부터 시행된다고 발표했다.

탄소중립산업법은 유럽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도 불리며 규제 간소화, 기술 인력 교육 지원 등을 통해 기술기업들을 유치하고 육성해 역내 제조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탄소중립산업법을 통해 2030년까지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열펌프 등 역내 친환경 기술 장비 제조 역량을 확보해 세계 시장 점유율 15%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2030년 기준 유럽 친환경기술 시장은 약 6천억 유로(약 887조 원) 규모의 가치를 가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집행위원장은 “탄소중립산업법을 통해 유럽연합은 이제 친환경 기술 제조 규모를 신속하게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됐다”며 “탄소중립산업법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데 최상의 조건을 제공할 것이며 유럽이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친환경 기술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이터와 유로뉴스 등 주요 외신들은 탄소중립산업법이 중국과 미국이 독주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유럽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EU 탄소중립산업법 시행, 미국 중국 재생에너지 패권경쟁에 독자기반 갖추기

▲ 스페인 나바라에 조성된 재생에너지 발전 단지. <연합뉴스>

특히 유럽 재생에너지 시장 가운데 태양광 산업 분야에서 ‘지속가능성과 회복 능력(sustainability and resilience)’ 의무평가 항목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이 항목은 공공 조달 사업 입찰자를 평가할 때 점수의 30%를 차지하는데 사업자가 유럽 역외에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했다면 점수가 크게 깎이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사실상 유럽 내에 유통되는 태양광 패널의 97% 이상을 점유한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분석된다.

또 탄소중립산업법은 규제 간소화의 일환으로 ‘전략 프로젝트’ 제도도 도입하는데 유럽집행위원회가 핵심 기술로 지정한 일부 기술 사업의 허가 기간을 단축해준다. 유럽집행위원회 핵심 기술 목록에는 이차전지, 탄소포집, 바이오매스 발전, 열 펌프, 원자력 등이 포함됐다.

전략 프로젝트로 지정되면 기존에는 몇 년 이상 걸렸던 허가 승인 기간이 최소 9개월에서 최대 12개월로 줄게 된다. 유럽집행위원회는 전략 프로젝트 제도가 기업들의 사업 부담을 크게 줄여줘 기술 기업들을 유럽 내 유치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액공제로 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유치하는 미국의 IRA와 결은 다르나 지향점은 같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 밖에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기술 연계성을 강화할 목적으로 한 지역에 기술 기업을 집중적으로 유치하는 ‘넷제로 가속화 밸리’ 조성 계획을 함께 발표했는데 이는 미국이 기술 기업을 집중 육성할 목적으로 실리콘밸리를 조성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평가되된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유럽집행위원회 그린딜 전략 대표는 “산업 생산 역량이 없으면 유럽은 순수입국으로 전락해 러시아발 가스 위기와 비슷한 경험을 다시 겪을 위험성이 있다”며 “유럽집행위원회는 탄소중립산업법이 성공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