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2024-01-05 17: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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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올해 국내 자동차시장 업황이 악화하면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내수 판매량이 지난해와 비교해 뒷걸음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2022년에 이어 작년에도 역대급 합산 영업이익을 거뒀는데 높은 수익을 내는 한국에서의 판매 후퇴는 고수익 기조를 이어나가는 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현대차 기아의 올해 실적은 미국에서 판매 순항에 달려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차와 기아가 올해에도 호실적을 이어가는 데는 지난해 최다 판매실적 신기록을 세운 미국에서의 판매 순항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올해 내수 자동차시장 업황은 2023년보다 둔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최근 '2023년 자동차산업 평가 및 2024년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국내 자동차시장 규모가 2023년보다 1.7% 감소한 171만 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올해 국내 자동차시장은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과 대기 수요의 감소, 글로벌 주요국들의 통화긴축 기조 지속 등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완만한 경기회복과 주요 전기차 등 신차 출시에도 불구하고 2023년 반도체 공급 개선에 따른 생산 측면의 역기저효과와 경기부진으로 인한 가계 가처분소득 감소, 고금리 등이 신규수요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작년 12월 판매실적을 근거로 올해 자동차 내수시장 둔화가 심각한 수준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대차·기아는 2023년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 전년보다 6.7% 증가한 합산 730만2451대를 판매하며 쾌조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특히 기아는 308만5771대를 팔아 2014년 이후 9년 만에 역대 최다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12월 국내 판매만 따로 보면 현대차는 6만2172대, 기아는 4만4803대로 전년 동월보다 각각 11.7%, 10.7%씩 감소했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와 기아의 12월 판매 실적은 조업 일수 감소를 고려해도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며 "심각한 내수 둔화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한국 시장은 현대차그룹이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차를 파는 권역이자 중·대형차 및 고급차 수요가 많아 수익성이 높은 핵심 시장이다.
내수 시장 둔화는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일군 호실적을 올해도 이어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현대차·기아는 2023년 1~3분기 누적 기준 합산 20조7945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는 역대 1~3분기 누적 기준 사상 처음으로 합산 영업이익이 20조 원을 돌파한 것이다. 기존 최고 합산 영업이익인 2022년 17조529억 원을 단 3개 분기 만에 넘어섰다.
다만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내수 판매 후퇴로 인한 실적 타격을 미국에서 만회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미국은 현대차그룹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차를 팔고 있는 국가이자 수익성 높은 라이트트럭(SUV+픽업트럭) 비중이 70%를 넘어서는 자동차 시장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2023년 미국에서 각각 80만1195대, 78만2451대를 판매하며 나란히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새로 썼다.
미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작년 현대차그룹은 처음으로 미국 '빅3' 자동차업체 중 하나인 스텔란티스를 제치고 사상 처음 미국 자동차 판매 4위에 올라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최근 북미에서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브랜드 위상을 단단히하고 있어 올해도 미국 판매가 순항할 공산이 커 보인다.
▲ 미국 현지시각 4일 유틸리티 부문 '2024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된 기아 EV9. <기아>
기아의 플래그십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EV9은 '2024 북미 올해의 차(NACTOY)' 시상식에서 유틸리티 부문(SUV 부문) '북미 올해의 차'로 최종 선정됐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3개 차종으로 구성된 2024 북미 올해의 차 SUV 부문 최종후보 자리를 기아 EV9, 현대차 코나(전기차 포함), 제네시스 GV70 전동화모델로 싹쓸이하며 수상을 일찌감치 확정지은 바 있다.
북미 올해의 차는 자동차업계의 오스카 상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으로 1994년부터 매년 승용 부문과 트럭 부문 등 2개 분야의 최고의 차를 선정해오다 2017년부터 SUV 부문을 추가했다.
현대차그룹의 북미 올해의 차 수상은 이번이 8번째로 특히 최근 6년 동안 5번 수상하는 성과를 냈다.
가장 높은 수익을 내는 현대차의 고급브랜드 제네시스가 미국에서 판매량을 크게 늘리고 있는 점도 올해 현대차그룹의 미국 실적 전망을 밝히는 요인이다.
제네시스는 미국에 진출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연간 1~2만 대 수준의 판매실적을 유지하다 GV80, GV70등의 현지 출시로 라인업을 확장하며 2021년 판매량이 4만9621대로 전년보다 3배 넘게 뛰었다.
2022년에도 5만6410대로 증가세를 이어갔고 작년엔 이보다 22.6% 늘어난 6만9175대가 팔려 7만대 돌파를 눈앞에 뒀다.
올해 하반기엔 현대차그룹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전용공장(HMGMA)의 완공이 예정된 점도 현대차그룹의 미국 시장 수익성 제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선 2022년 8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약 990만 원)의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시행됐다. 대부분의 전기차를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라인업은 모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자사 전기차 라인업에 IRA 보조금에 필적하는 수준의 자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 수익성보다 점유율 방어에 집중하는 단기 대응 전략을 펼쳐 지난해 현지 전기차 판매량을 전년보다 60%가량 크게 늘렸다.
HMGMA가 가동을 시작할 때 쯤이면 전기차 모델에 제공했던 최대 1천만 원 가까운 인센티브 지급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는 올해 국내 시장 판매 목표로 70만4천 대를, 기아는 53만 대를 제시했다. 작년 연간 내수 판매량보다 각각 4.6%, 6.0% 낮춰잡은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내수판매 부진을 뚫고 미국에서 호실적을 거두며 다시 한번 최대 이익 기조를 이어갈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미국 자동차 시장은 누적된 대기수요가 2023년에 상당부분 해소됨에 따라 성장률 둔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면서도 "현대차그룹은 시장경쟁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양호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고 제품력 및 브랜드가치 개선에 힘입어 올해도 미국 시장에서 두 자릿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