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립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이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에 닥친 풍랑이 잠잠해진 만큼 이제 배에서 내려도 좋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5일 KDB산업은행에 따르면 현재 산업은행 경영정상화관리위원회는 정 사장의 사의를 받아들일 지를 놓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경영정상화관리위원회는 2017년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정상화 과정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구성된 조직이다. 정 사장은 최근 위원회에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정 사장이 회사의 민영화가 목적일뿐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말해온 만큼 이번 결정이 놀랍지는 않다고 업계는 바라본다.
다만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절차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까지는 정 사장이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높다.
산업은행은 3월 초 이사회 승인을 거치며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현장실사를 마치면 본계약을 체결한다.
정 사장에게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는 선장 에이햅의 '모비딕'과 다름없다. 소설에서 에이햅은 그의 다리를 앗아간 흰 고래 모비딕을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대서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다시 태평양으로 지치지 않고 항해를 계속한다.
정 사장 역시 느긋한 천성에도 대우조선해양 정상화에 남다른 집념을 보여왔다. 2년 반 전 국감에 출석했을 때는 정 사장이 "자구계획을 달성하지 못하면 옥포 앞바다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로 대우조선해양을 살려내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부터 구조조정과 자구안 이행을 통해 경영 정상화에 힘썼다. 그러나 회사가 수조 원의 공적 자금을 지원받아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정 사장 역시 이런 눈총을 비켜나지 못했다.
정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오래 살겠다'는 질문을 받자 "뱃사람이 다 된 덕분에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대답한 일도 있다. '조선맨'으로서 맷집과 담력은 알아준다는 것이다.
정 사장에 관해 엇갈리는 평가와 별개로 그의 진두지휘 아래 대우조선해양이 정상화의 길에 들어섰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 불황에 허우적대다가 이제 균형을 잡고 항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 내부에서는 영업현금흐름이 플러스로 바뀐 데다 2년 연속 흑자를 내는 등 재무적 관점에서 이미 경영 정상화를 이뤄냈다고 평가한다. 지난해는 조선부문 수주목표 역시 초과 달성했다.
현대중공업이 인수에 나서면서 새 주인도 찾았다. 정 사장이 대우조선해양을 반드시 매각해 빅2 체제를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때만 해도 회의섞인 시선이 대부분이었는데 무거웠던 어깨가 홀가분해진 셈이다.
정 사장은 조선업계에서 입지전적 인물이다. 1976년 동해조선공업에 입사한 뒤로 6년 정도를 빼고는 조선분야에서만 일했으니 벌써 40년 가까이 조선업계에 몸을 담았다.
대우조선해양에 발을 디딘 것은 1981년부터다. 말단에서 시작해 2001년에는 대표이사까지 올랐다. 해양플랜트사업의 초기 성장을 이끌고 연임에 성공했으나 2006년 임기를 8개월 앞두고 사임했다.
그러나 2015년 대우조선해양 '부활'의 책임을 안고 다시 등판했다. 이후 서울사무소 사옥을 팔고 셋방살이를 시작했는데 2017년 다시 연임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4번이나 대표를 맡은 최초의 인물이다.
정 사장이 그동안 보여준 실행력과 의지는 에이햅과 비슷하면서도 다른다.
에이햅은 결국 흰 고래를 찾아내 사흘에 거친 사투 끝에 작살을 꽂지만 배는 침몰하고 그를 포함한 선원들도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정 사장이 잡으려던 흰고래는 대우조선해양의 안전한 항해 그 자체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