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 '온실가스 감축 범위형 목표' 놓고 비판 나와, 기후단체 "조기감축 추진해야"
- 여야가 합의해 마련한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두고 국내 시민사회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이번 개정안에 담긴 탄소중립 목표가 지난해에 설정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마찬가지로 일정 범위를 정하는 형태로 설정됐기 때문이다.이에 기후단체들은 이런 범위형 목표는 사실상 하한선을 기준으로 정해두고 정책을 집행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온실가스 조기감축경로를 반영한 정량형 목표로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23일 국내 기후단체들의 반응을 종합하면 전날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탄소중립기본법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통과된 탄소중립법 개정안을 두고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김주온 녹색전환연구소 기후시민팀 선임연구원은 논평을 통해 '이번 합의로 2030년에 머물던 2035년, 2040년, 204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단계별로 법에 명시됐다'며 '장기 감축경로 부재를 위헌으로 본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응답'이라고 설명했다.다만 김 선임연구원은 '2035년 목표가 상하한 구간으로 정해지면서 그 이후의 목표도 구간으로 설정됐다'며 '정책 과정에서 목표가 하한성 수준에 머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이같은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기후위기특별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탄소중립법 개정안이 204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69~80%, 2045년은 84~90%로 둔 범위형 목표를 채택했기 때문이다.2035년 목표는 지난해 정부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18년 대비 53~61%)를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논평을 통해 '범위형 목표가 도입되더라도 결국 상한선보다는 하한선 중심으로 해석돼 운영될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플랜1.5에서도 기후위기특별위의 탄소중립법 개정안 합의를 규탄하는 성명을 내놨다.최창민 플랜1.5 정책활동가는 범위형 목표를 놓고 '기후위기로부터 국민과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장기 감축경로를 설정할 것을 요구한 헌법재판소 기후소송 결정의 취지에 명백히 배치되므로 이를 강하게 규탄한다'며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생명, 신체, 환경을 훼손할 위기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이런 기후단체의 거센 비판에도 국회 기후특위가 이번에 감축목표를 범위형 목표로 설정한 것은 여야간 갈등에서 합의점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기후위기 특별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은 온실가스를 이른 시기에 빠르게 감축하는 조기감축경로를 주장한 반면 야당인 국민의힘은 산업계의 부담을 고려한 선형감축경로를 채택해야 한다고 맞섰다.선형감축경로란 한국 온실가스 감축 기준 연도인 2018년을 기점으로 탄소중립이 달성되는 2050년까지 매년 일정한 양의 온실가스를 균등하게 줄여나가는 경로를 말한다.예측이 쉬워 관련 정책 수립이 쉽다는 장점은 있으나 온실가스 감축 특성상 후반으로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기감축경로보다 탄소중립 실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이 때문에 유엔 산하 기후변화 전문가 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각국 정부가 조기감축경로를 택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실제 유럽연합(EU)은 조기 감축 방식을 채택해 2030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대 대비 절반 이하로 줄이기로 했다.기후위기특별위는 당초 임기였던 5월 안으로 탄소중립법 개정안을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감축경로에 관한 합의에 어려움을 겪으며 이번 달까지 논의가 밀렸다.현재 탄소중립법 개정안에 명시된 온실가스 감축목표 하한선은 선형감축경로를 기준으로 잡고 있다.하지만 기후단체들은 탄소중립법 개정 취지인 국민 기본권을 고려한다면 하한선이 아닌 조기감축경로를 기반으로 한 정량 목표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시민 여론도 조기감축경로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국회 기후위기특별위가 지난 4월 진행한 탄소중립법 개정에 관한 공론화 과정에서 집계한 시민 의견을 보면 전체 응답자의 74.9%는 한국의 감축목표가 전 세계 평균 감축률과 같거나 그보다 높아야 한다고 봤다.또 77.9%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전가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기에 더 많이 감축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이와 관련해 최창민 활동가는 '이번 합의는 앞서 4월에 기후특위가 진행한 대국민 공론화 결과에도 완전히 배치된다'고 강조했다.이어'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특별위가 선형감축경로를 하한으로 설정하는 개정안에 합의한 것은 헌재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이 많은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단기적 감축 부담을 완화하고자 하는 유인에 맹목적으로 휩쓸린 일'이라고 지적했다.김주온 선임연구원도 '시민 공론화가 모은 조기 감축 요구가 흐려지지 않으려면 목표를 정하고 재검토할 때마다 일회성 공청회를 넘어 시민 숙의를 상시 제도로 둬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기후위기특별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탄소중립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올해 8월에 국회 본회의에 회부될 것으로 전망된다.최창민 활동가는 '국회는 본회의에서 위헌적 합의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며 '헌법과 국제법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고 시민들의 뜻을 충실히 반영해 기후위기로부터 국민 기본권을 보호하는 탄소중립법 개정을 완수할 것을 국회에 촉구한다'고 말했다.산업계 일각에서는 탄소중립 전환에 관한 부담을 고려하면 선형감축경로를 채택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향후 기술이 발전될 것을 고려하면 감축을 최대한 뒤로 미루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하지만 세계적 추세를 보면 이는 사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글로벌 석유 메이저인 엑손모빌, BP, 쉐브론 등 기업들은 모두 최근 기술 발전 추세를 고려하면 탄소 감축이 계획한 것만큼 이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대표적으로 머레이 오친클로스 BP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2월 전략 발표를 통해 '빠른 전환과 기술 발전에 대한 우리의 낙관론은 잘못된 것이었다'며 '우리가 예상했던 것만큼 빠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심지어 이들 석유 메이저는 기술 발전이 늦고 정부 지원이 부족한 점을 들어 온실가스 감축을 더 미루려는 행보까지 보이고 있다.엑손모빌은 올해 5월 성명을 통해 '전 세계의 많은 정책들은 에너지 공급을 직간접적으로 제한함으로써 배출량을 줄이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이같은 정책이 장기적으로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더 나은 생활 수준을 달성할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