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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눈] 손쉬운 '약가 통제'만 되풀이하는 정부, 처방 구조개혁은 실종
- 정부가 13년 만에 약가 개편에 나섰다. 제약산업 혁신을 촉진하고, 약제비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목표다.하지만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를 명목으로 제네릭(복제약) 약가를 일괄적으로 삭감하겠다는 정책은 또 다시 가장 쉬운 해결책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남긴다.의약품 시장은 공급자인 제약사, 처방권자인 의사, 조제자인 약사, 그리고 소비자인 환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구조에서 제약사는 제품을 만들어도 스스로 가격을 정하지 못하고 정부의 약가 통제를 받으며, 환자 역시 약을 선택할 권리가 제한되어 있다. 어떤 약을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의사에게 달려 있다.의사와 약사는 약가에 구애받지 않고 약을 처방하고 조제한다. 이로 인해 동일한 성분의 약이 있음에도 더 비싼 약이 선택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에게 전가된다. 이 같은 구조는 반복적인 약가 거품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그동안 정부는 제약사를 향한 가격 통제를 우선시해왔다. 이번에도 제네릭 및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0%대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물론 국내 제약산업이 복제약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품목 수가 지나치게 많으며 약가가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신약으로 공식 인정받은 제품도 41개에 불과하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복제약 위주로 성장해왔던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이 장기적으로 수익성과 기업가치를 높이는 해법임을 인식하고,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며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일부 기업은 기술 수출 성과를 통해 영업이익률 회복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이 과정에서 제네릭은 제약사들의 수익 구조를 지탱하며, 신약 개발을 위한 재정적 기반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가 혁신 신약 개발사에 인센티브를 준다 해도,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자금과 리스크는 오롯이 제약사의 몫이다.보건복지부가 밝힌 약가 인하 추진 배경. <보건복지부>제약산업은 장기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복제약 개발에도 3~5년의 시간이 걸리고 신약 개발은 10년~15년 이상이 소요된다. 산업 전반의 영업이익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2026년부터 복제약 약가를 일괄적으로 낮추는 정책은 제약산업의 현금 흐름을 위축시키고, 혁신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전문가들은 시장 경쟁을 통해 제약사들의 자발적인 가격 인하를 유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서는 처방권자가 가장 싼 약을 처방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도 충분히 약가 정보를 인지시키고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가격 경쟁 구조가 만들어지면 수익성이 낮은 복제약의 난립을 자연스럽게 막을 수 있다. 제약사들도 가격을 낮춤으로써 시장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구조가 되면 과도한 리베이트를 할 유인이 떨어지게 된다.하지만 정부의 약가 개편안에 이 같은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 늘어나는 약품비를 감당하기에는 약가 인하 정책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