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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길 국제경제 톺아보기] '중국 제재'로 '중국 승리'만 빨라진다
-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이 약화되고 있다는 얘기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지난 10월30일 부산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양국 정상회담만큼 그런 현실을 잘 보여준 사례는 없다.6년4개월 만에 만난 두 사람 사이의 표정도 대조적이다. 트럼프는 시진핑을 향해 온갖 표정과 말을 쏟아냈으나 시진핑은 트럼프의 얼굴도 쳐다보려 하지 않고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회담 결과에 대해 트럼프는 '10점 만점에 12점'이라고 자화자찬했으나 그 점수는 중국에게 돌아갈 점수였다.중국은 트럼프가 취임 이후 쏟아낸 관세와 수출 규제 등을 원점으로 돌렸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실효 관세는 이제 20%안팎으로 멕시코와 캐나다를 제외하면 나머지 국가와 동일하다.그리고 중국은 무엇보다도 미국과 무역전쟁이 시작된 이래 가장 중요한 양보를 받아냈다.트럼프 1기 이후 미국이 중국에 대해 국가안보를 이유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첨단기술 수출 통제 및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가 처음으로 완화됐다. 첨단기술 접근이 금지된 중국 기업의 수를 확대하려는 조처는 1년간 유예했다.트럼프 행정부는 10월 초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외국기업 블랙리스트라 할 수 있는 이른바 '엔티티 리스트'를 확대하는 조처를 내렸는데, 이를 유보한 것이다.이 조처는 엔티티 리스트에 들어있던 외국 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소유한 자회사도 규제대상에 포함했다. 이른바 '50% 엔티티 리스트 규정'이다. 자회사를 통해서 규제를 회피하려는 시도를 차단하는 조처인데, 이번에 적용을 미룬 것이다.미국의 전·현직 관리들은 이번 조처를 두고 미국이 무역협상에서 국가안보 관련 기술통제와 관련해 처음으로 양보한 것이라 지적한다. 중국은 그동안 미중 무역협상에서 기술 수출통제와 관련해 오랫동안 이런 양보를 추구해 왔다.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수출통제 관련 업무를 했던 크리스토퍼 패딜라는 뉴욕타임스에 "그동안 무역협상에서는 '그건 국가안보 문제이고, 무역협상에서는 논의하지 않는다'고 제일 먼저 말했다"며 "수출통제는 이제 거래할 수 있는 품목이 됐고, 이는 수십년간의 전례를 폐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트럼프는 이번 회담에서 엔비디아의 최고급 반도체인 블렉웰도 공급하는 문제를 논의하려 했으나 측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트럼프의 다급한 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트럼프가 관세와 수출 규제 등으로 선공을 시작한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희토류 수출 규제와 콩 수입 중지로 반격을 가하자, 미국이 휘청거렸기 때문이다.월스트리트저널은 10월30일 '트럼프의 대 중국 무역 전쟁의 교훈-베이징은 반격했고 미국이 관세로 얻은 것을 찾기 힘들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보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무역전쟁, 특히 대등한 경쟁자와 벌이는 무역전쟁은 이기기 쉽지 않다"며 "올해 무역 분쟁이 이룬 것이 많지 않다. 기껏해야 미국은 시간을 좀 벌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뉴욕타임스의 컬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퍼는 10월29일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패했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트럼프는 미국이 지고있는 무역전쟁을 시작했다"며 "휴전이 됐다 한다면 이는 중국이 미국에 우위를 쥐고는 미국의 영향력을 쇠퇴하게 하는 것이다"고 혹평했다.파이낸셜타임스도 '시진핑-도널드 트럼프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미국의 대등한 경쟁자로 부상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의 첫 무역 공세가 베이징을 충격에 빠뜨렸던 10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잘 준비되고 경제적으로 더 강력해진 중국이 한때 훨씬 강력했던 상대와 싸워서 멈추게 했다"고 평가했다.중국이 미국 내의 평가처럼 무역전쟁에서 미국에 승리한 것은 중국의 수출 경쟁력과 공급망 구축에 기인한다.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0월23일 보도한 '중국은 왜 승리하나?' 기사를 보면, 잘 드러난다.중국의 최대 수출시장이던 미국의 관세 폭탄에도 불구하고 2025년 3분기 수출이 전년 대비 6.2% 증가했다. 동남아 등 글로벌사우스 국가들과의 무역비중이 48%로 증가해, 새로운 시장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19년의 38%에서 크게 증가한 것이다.무역흑자도 2025년 누적 기준으로 580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초기보다도 20% 이상 증가했다.위안화는 2025년 들어 달러 대비 약 4% 절하됐다.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조치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는 수출 기업에 평균 12%의 세금 환급 및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보조금 정책보다 더 직접적이고 광범위하다.무엇보다도 첨단기술 등에서 산업 및 공급망 전략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중국은 21세기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인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정보 기술 분야에서도 미국에 심각한 도전을 하고 있다.중국 내 생산되는 태양광 패널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25년 기준 78%에 달한다. 리튬 배터리 수출은 2025년 상반기에만 32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35% 증가한 것이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우리가 넘버 2이다'라는 글에서 미국은 재생에너지와 반도체 분야 등에서 역량을 키우기 위한 대책들을 스스로 파괴했다고 지적했다.조 바이든 전 행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3개의 전선을 만들려 했다.첫째, 재생에너지 지원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해 전기차 등 재생에너지 사용과 배터리 같은 핵심 장비의 국내 제조에 보조금을 제공했다.둘째, 첨단 기술 지원이다. 반도체법은 반도체 제조에 대한 보조금을 제공해 미국의 선도적 위치를 유지하고 외국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목표로 했다.셋째, 수출 통제다. 중국에 대한 반도체 및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 통제를 시행하여 중국의 인공지능(AI) 및 고성능 컴퓨팅 기술 접근을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이런 조처가 효과를 발휘했는지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 효과가 있다 해도 소용이 없게 됐다. 왜냐하면, 트럼프가 이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트럼프와 그 지지 세력들은 전기차와 재생에너지를 싫어한다. 그래서 더 이상 재생에너지 주도권을 다투려고 하지도 않는다. 트럼프는 반도체법과 보조금을 통해 국내 반도체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개념 자체를 가혹하게 비판해왔다.대신에 그는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무엇보다도 중국을 겨냥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중국의 승리였다. 트럼프가 던진 관세 폭탄에 동맹국들만 희생됐다.인공지능(AI) 경쟁에서 중국이 10년 내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던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사실 대만에서 가진 개인적 모임에서도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그가 말했다는 주장들을 옮겨보자.인공지능 분야에서 중국에는 100만 명의 전업 종사자가 있는 반면 미국 실리콘밸리의 전업 종사자는 2만 명에 불과하다.화웨이는 엔비디아의 품질에 접근하고 있다. 화웨이의 인공지능 반도체인 어센드910C의 성능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반도체인 H100 성능의 88~92%에 이르며, 매달 20만 장씩 생산된다. 2027년이 되면 중국의 인공지능 컴퓨팅 파워는 전 세계의 모든 다른 나라들의 총합을 능가할 것이다.젠슨 황은 "미국의 수출 통제는 중국에서 이 경쟁을 위한 전국적 동원을 촉진했다"며 "워싱턴은 중국을 멈춰세우고 있다고 생각하나, 실제로는 중국을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제재하고 싶으면 해라. 다만 그것을 직접 그들에게 우승컵을 건네주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경고했다.크루그먼도 냉혹한 평가를 했다. "미국이 더 이상 세계 최강국이 아니라고 말해도 무방해 보인다. 차기 대통령이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기적적으로 회복시키지 않는 한, 미래는 이제 중국의 것이다."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때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 중국을 미국 주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디커플링(탈동조화) 전략을 채택했다. 하지만, 그는 2기 집권 들어 중국에게 공급망 주도권을 넘겨주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냉혹한 현실이다.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