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 [비즈니스인사이드] '서울+자가+대기업 김부장'은 현실 속에서 어디로 갈까
- 최근 JTBC에서 종영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중년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습니다.대기업 부장에 서울 자가 아파트, 단란한 가족까지 갖춘 주인공 김낙수(류승룡 분)는 겉보기에 '위대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승진에서 밀려나고 부동산 사기까지 당하며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이런 김부장의 모습은 오늘날 대한민국 중년층의 자화상입니다. 40·50대는 고용시장의 중심축이지만 고용 안정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임금피크제와 희망퇴직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윗사람에게 충성스럽고 팀원들에게는 '꼰대' 같은 김부장은 회사와 가족 모두에게 외면 받으며 결국 기업이 밀어낼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됩니다.드라마는 자기 반성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진정한 나'를 찾아 재기하는 희망적 결말로 끝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서울+자가+대기업 부장' 세 조건을 모두 갖춘 중년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죠. 대다수는 드라마틱한 반전 없이 고용불안으로 어려움을 겪다 조용히 밀려납니다. 드라마가 위로를 주는 동안 현실의 중년 직장인들은 언제 희망퇴직 대상이 될지 모르는 불안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서보경 작가는 넷플릭스에서 3년간 아시아시장 전략을 담당했는데 그가 쓴 '넷플릭스 인사이드'는 한국의 기업문화와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줍니다. 넷플릭스는 KPI 중심의 세세한 성과 관리를 하지 않습니다. 직원 개개인이 자영업자처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문제를 해결합니다.높은 연봉만큼 누구의 지시 없이도 트렌드를 읽고 성과를 창출하며 입사 첫날부터 옆 팀이 인공지능(AI)과 시장 변화에 밀려 해체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자유와 책임의 원칙 아래 각자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며 그 결과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 받습니다. 직무와 위계의 벽이 사라진 자리에는 가혹할 정도로 투명한 피드백만이 남습니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라인'이나 충성으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반면 한국 대기업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실무와 거리가 멀어집니다. 부장을 넘어 임원으로 승진하면 현장감각을 잃고 성과보다 상급자와 관계에 집중하는 구조가 굳어져 있습니다.젊은 시절 치열하게 성과를 내며 올라간 이들도 조직 내 라인을 타고 윗사람 눈에 들기 위해 충성경쟁을 벌이다 보면 어느새 현장과 동떨어진 '꼰대'가 됩니다. 그러다 정치적 판도가 바뀌고 모시던 윗사람이 물러나면 그간의 충성은 무의미해지고 본인도 희망퇴직 대상이 되거나 대책 없이 회사를 나와야 하지요. 글로벌 기업에서는 자율적으로 성과를 창출하며 살아남는 반면 한국 대기업 중년 직장인들은 과거방식을 고수하다 어느새 변화에서 밀려나고 맙니다.결국 '김부장'이 밀려난 이유는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라인 중심으로 승진과 충성을 요구하는 조직구조 자체에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처럼 매 순간 스스로를 증명하고 성과로 말해야 하는 환경에서 단련되지 못한 채 위계와 눈치로 움직이는 문화에서 살아온 중년 직장인들은 급변하는 시장과 AI 시대 앞에서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저는 경력직 채용 플랫폼인 '비즈니스피플'을 운영하면서 채용 한파로 회사를 떠나온 수많은 임원과 간부급 직장인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비즈니스피플에 이력서를 등록한 직장인들의 상당수는 오랜 경력에도 다음 직장을 쉽게 찾지 못한 채 긴 시간을 보냅니다.물론 비즈니스피플 회원 가운데 넷플릭스의 인재상처럼 트렌드를 읽고 성과를 창출하며 조직을 리딩해 온 핵심인재에게는 여러 기업과 헤드헌터가 줄을 섭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대다수는 비즈니스피플에서 인재를 찾고 있는 수 천 개의 기업회원이나 3천 명이 넘는 헤드헌터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습니다. 과거 인정받던 경력과 직급은 더 이상 보증수표가 아닙니다. 기업이나 헤드헌터들은 냉정하게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만 묻습니다.더 큰 문제는 이들이 쌓아온 지식과 경험, 노하우가 기업과 사회에 제대로 이식되지 못한 채 사장된다는 점입니다. 많은 경력직 인재가 재취업에 실패한 뒤 자영업이나 전혀 다른 업종에서 새출발하는 상황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국가적 사회적 낭비로 이어집니다. 수십 년 기업 현장에서 다져진 실무역량과 리더십이 소멸되는 것은 기업 경쟁력과 인적자원 활용 측면 모두에서 커다란 손실입니다.이제는 현재 기업에 있는 직장인들도 자신의 능력을 현실에 어떻게 접목할지 시야를 넓히고 끊임없이 학습하며 변화에 대응해야 합니다. 기업 역시 정규직 일변도에서 벗어나 프로젝트 기반 계약직, 인터림, 자문·고문, 컨설턴트, 프리랜서 같은 다양한 형태로 경력자들을 끌어들여 노하우를 이식하는 유연한 전략이 필요합니다.국가 차원에서도 중년 경력 인재를 위한 재교육과 실질적 취업 기회를 확대해 이들이 다시 경제활동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드라마 속 김부장의 재기는 희망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 김부장들이 다시 일어서려면 개인의 의지를 넘어 기업의 투자와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정민호 비즈니스피플 본부장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