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 [현장] 국회서 열린 '정년연장' 포럼 여야·노사 이견 확인, 사회적 합의 갈 길 멀다
- 초고령사회 진입에 대비하고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정년 사이에 발생할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정년연장'이 정치권 화두로 떠올랐다.국회미래연구원이 정년연장의 사회적 합의를 위한 포럼을 열었지만 여야는 물론 노동계와 경영계가 구체적인 시행 방안과 임금체계 개편을 두고 엇갈린 목소리를 내고 있어 입법과 제도화에 이르기까지 갈 길이 멀어보인다.김기식 국회미래연구원장은 19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사회적 합의' 포럼에서 "정년연장은 불가피한 논쟁이다"라고 말했다.김 원장은 이어 "정년연장이 청년들의 일자리 부족으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라며 "정년연장을 하더라도 기업의 부담을 완화해 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 사회에서 정년퇴직은 규모 있는 기업에 속한 일부 노동자의 경로라며 정년연장 논의가 비정규직을 좋은 일자리로 만드는 '유연안정성' 확보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고 진단했다.정 부연구위원은 "주된 일자리에서 정년퇴직한 비율은 24.6%에 불과하고 평균 퇴직 연령은 52.9세"라며 "52.9세에 퇴직한 뒤 20년은 더 일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학력 등에 관계 없이 비정규직, 일용직으로 밀려난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이미 중고령층 다수는 비정규, 시간제,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는데 낮은 임금, 사회보험 사각지대 등 안정성이 없는 게 문제"라며 "이미 존재하는 비정규직을 좋은 일자리로 만드는 것이 유연안정성"이라고 설명했다.정년연장 제도화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거론되는 '연공급'에서 '직무급'으로의 전환은 '사회적 직무급'이 돼야한다고 주장했다.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이 19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개최한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사회적합의' 포럼에서 발제를 발표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정 부연구위원은 "기업 내부에서 직무급을 논의하면 성과평가 강화를 통한 임금 삭감을 위한 것이라는 오해가 고착돼 성과급 경쟁으로 왜곡됐고 현장의 큰 거부감으로 논의가 좌초돼 왔다"며 "개별 기업의 직무급 제도가 아니라 노동시장의 공통 기준을 마련해야하며 산별노조가 있는 곳에서 직무급 시범사업을 해보고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우리나라보다 정년연장 논의가 선행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연구원은 '일본 고령자 고용정책 변화와 정책적 시사점'이라는 발제를 통해 일본이 정년연장 제도 정착에 성공한 요인을 설명했다.그는 일본의 고령자 고용정책의 특징을 두고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단계적·장기적 정책 집행, 기업에 고용연장과 관련된 선택지 제공, 노동자가 오랫동안 노동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의 다양한 커리어 설계 제도 마련 등을 꼽았다.김 연구위원은 "일본은 계속 고용(퇴직 후 재고용), 65세 정년연장, 정년폐지 등 선택지를 다양화 함으로써 기업부담을 최소화했다"며 "60세 시점의 높은 수준에서 일률적으로 정년을 늘리면 기업에 큰 인건비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에 새로운 노동조건에서 노동자를 재고용하는 선택지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이와 함께 정부와 기업도 △커리어 컨설턴트 도입 △시니어 정사원(60세 시점에 역할과 업무를 조정하는 제도) 등을 통해 힘을 보탰다고 설명했다.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19일 열린 국회 정년연장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포럼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은 발제 내용을 참고하겠다면서도 정년연장에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정년 연장 논의는 은퇴 후 노년층의 빈곤 문제뿐 아니라 청년 문제,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 등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며 "직무급제 도입은 제도 설계의 결과물이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제로 기반부터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반면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IMF 경제위기 이후 값싼 노동력을 고용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한 기업이 정년연장 부분에서 많은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정 의원은 "임금 하향이 없는 직무급제를 논의하거나 직무 평가에 노동자도 참여하는 등 직무급제에 대한 노동계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며 "기업 역시 더 많은 책임을 갖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노력해야한다"고 말했다.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년연장의 다양한 쟁점들을 살펴보고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민 의원은 "정년 연장과 임금 개편은 투트랙으로 가야 하지만 직무급 개편이 필요하다는 진단에는 논의가 더 필요해 연내 입법화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정년연장 문제가 나이드신 분들과 청년들의 갈등 문제로 비쳐지고 있는데. 양보와 상생의 방법이 없는지 발제자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노동계와 경영계 쪽 토론자들은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정문주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은 "정년을 논의하는 이유를 제대로 봐야한다"며 "정년연장이 청년일자리 잠식해서 문제가 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김선애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정책팀장이 19일 국회 정년연장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경영계는 정년연장 도입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을 요구해야 한다며 방어선을 쳤다. 노사가 정년연장에 대한 입장 차를 줄이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는 이유로 보인다.김선애 경총 고용정책팀장은 "고령층 일자리 늘면 청년 일자리 줄어드는 건 통계적으로 분명하다"며 "일률적 정년연장은 대다수 기업들이 부담하기 어렵다는 점을 정책결정자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