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경제
- 이재명 '기름값 바가지' 근절 대책 지시, 29년 만에 자율가격제 변곡점 맞나
-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로 국제유가 불안이 커지자 이재명 대통령이 주유소 '유류 바가지' 근절 대책을 지시했다.이번 사태를 계기로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 동안 유지돼 온 유류 자율가격 체계가 중대한 변곡점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6일 정부 움직임을 종합하면 이재명 대통령은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를 틈타 국내 휘발유 가격이 급등 조짐을 보이자 '최고가격제' 검토와 '행정처분 근거 신설'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들었다.이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임시 국무회의에서 최근 일부 주유소가 하루 만에 크게는 리터당 200원씩 가격을 올리는 행태를 놓고 '반공동체적 바가지'로 규정하며 강하게 질타했다.그는 "(음식점 등) 바가지 요금에 대해서 영업정지 취소 이런 걸 하는데 석유류 판매 사업자에 대해서는 (담합같은 불법행위가 없는 때) 바가지 행위에 대해 제재하는 행정처분 근거가 없나"며 "유류 바가지는 행정처분이 불가능한 것 같은데 그 제도도 신속하게 만들어봐 달라. 유류만 이렇게 방치할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이 대통령은 또 "최고가격 지정이 가장 신속하게 할 수 있는 현실적 조치인 것 같다"며 제도 검토를 지시했다.이에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같은 날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산업통상부 등 관계부처는 석유사업법상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액 지정을 신속히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정부가 이처럼 강도 높은 시장 개입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것은 국제유가 상승이 국내 가격에 충분히 반영되기 전에 일부 주유소가 가격을 급격히 올리는 행태가 소비자 부담을 키운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 휘발유 가격은 정유사 공급가격 이외에도 주유소 유통 마진에 따라 달라진다.최고가격제는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물가안정법)과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에 근거한 시장 개입 수단이다.물가안정법 제2조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로서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때 정부가 중요 물품의 가격의 최고가격을 지정하고, 부당이득 전액을 환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석유사업법 제23조는 석유의 수입·판매 가격이 현저하게 등락할 우려가 있는 경우 산업통상부장관이 석유판매가격의 최고액 또는 최저액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이 같은 최고가격제는 시장 경제원리에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과거 석탄이나 연탄 등에 아주 예외적으로 운영됐다. 이번에 실제로 시행되면 1997년 유가 자유화와 함께 고시가격제가 폐지된 뒤 29년 만에 정부가 유류 가격 상한선을 직접 통제하는 첫 사례가 된다.이에 더해 이 대통령이 석유 제품 바가지 행위에 대한 행정처분 근거 마련까지 지시하면서 정부의 유류 가격 개입 수단이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동 상황 관련 경제 분야 대응방향 당정실무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현행 제도에서는 담합이 있는 경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가짜 석유 판매나 정량 미달 등 품질·유통 위반에 대해서는 석유사업법에 근거해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이 가능하다.하지만 가격은 자율에 맡겨져 있어 단순히 비싸게 판매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제재하기가 어렵다.이 대통령의 지시는 위기 상황을 악용한 폭리 행위를 '유통 질서 교란 행위' 등으로 명시하고, 적발됐을 때 6개월 이상의 영업정지나 영업 취소까지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신설하라는 취지로 해석된다.일각에서는 중동 위기를 계기로 정부가 유류 가격 결정 구조 전반을 손볼 가능성도 거론된다.현재 주유소 유류 판매 가격은 자율적으로 지정하되 즉시 주유소 입구 표시판에 가격을 반영하고,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실시간 전송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이 대통령은 전날 주유소 석유 가격을 놓고 "국민들 일상에서 느끼기에는 오를 때 엄청 빨리 오르고 내릴 때는 천천히 조금만 내린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주유소가 급격하게 가격을 올릴 때 그 근거를 소명하도록 하거나 사전 신고 절차를 강화하는 방향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구 부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위원들과 실무 당정 협의를 열고 "오늘(6일)부터 정부 합동반이 주유소를 직접 방문해 폭리를 취하는 주유소를 전면 점검한다"며 "폭리와 매점매석, 기타 상황을 포함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법 위반이 발생하는 경우 무관용 원칙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