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이란 전쟁 특수로 '석유 공룡' 돈 쓸어담아,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악재로 부상 
이란 전쟁 특수로 '석유 공룡' 돈 쓸어담아,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악재로 부상 
글로벌 석유 기업 대부분이 이란 전쟁과 해상 원유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유가 급등에 힘입어 올해 1분기에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이에 일명 '석유 공룡'으로 불리는 메이저 업체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정치적 로비를 펼쳐 그동안 이어진 친환경 에너지 전환 시도를 무너뜨리려는 조짐이 보인다는 우려가 나온다.◆ 석유 공룡, 이란 전쟁으로 떼돈 벌어11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메이저 석유 기업인 브리티시페트롤륨(BP)은 올해 1분기 트레이딩 부문에서만 지난해 4분기보다 17억5천만 달러(약 2조6천억 원)의 순이익을 더 번 것으로 추산된다.쉘과 토탈에너지스 또한 같은 기간 트레이딩 부문에서 각각 16억 달러(약 2조3700억 원)와 8억 달러(약 1조1800억 원) 순이익이 늘었다.석유 기업은 원유와 정제 제품 거래를 반영하는 트레이딩 부문의 이익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증권가 분석가의 추정치를 종합해 이 같은 수치를 추정했다.석유제품 유통을 담당하는 트레이딩부문 외에 정제마진까지 포함한 세 기업의 순이익 전체 증가분은 69억 달러(약 10조2400억 원)로 나타났다.토탈에너지스의 패트릭 푸얀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29일 진행한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전쟁 이후 유가가 치솟으면서 중동 지역의 생산 감소분을 상쇄했다"고 분석했다.세계 최대 석유 기업인 사우디아람코 또한 1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증가한 325억 달러(약 48조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CNBC에 따르면 미국에 본부를 둔 엑손모빌과 셰브론은 일단 같은 기간 표면상 순이익이 각각 45%와 36% 감소했다.다만 블룸버그는 이들 미국 정유사의 손익 감소 또한 실제 사업 부진했다기 보다는 회계 처리 방식의 영향이 컸다고 평가했다.미국에서는 회계 규정상 원유 파생상품을 실제 원유가 인도될 때까지 손실로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엑손모빌과 셰브론 모두 1분기 이런 점을 감안한 조정 기준 주당순이익(EPS)은 각각 1.16달러와 0.95달러로 증권가 예상치를 웃돌았다.주당순이익은 당기순이익을 기업이 발행한 주식수로 나눈 값으로 수익성을 판단할 때 기본적으로 확인하는 지표이다.아민 나세르 아람코 CEO는 "석유와 가스가 글로벌 에너지 안보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다시 입증됐다"고 강조했다.2026년 브렌트유 가격 추이. <자료 출처: 한국석유공사>◆ 중동 산유설비 타격에 유가 중장기 강세 전망까지이런 점은 유가 상승 전망과 맞물려 이들 글로벌 메이저 석유기업이 화석연료 시추와 생산에 더욱 힘을 싣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골드만삭스를 비롯한 투자은행과 증권가는 최근 국제유가 전망치를 대폭 상향했다.투자전문지 마켓워치는 증권사 모간스탠리가 11일 펴낸 보고서를 인용해 "올 여름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11일 국제 유가에 기준물인 브렌트유 가격은 금요일 종가 대비 3%가량 상승한 배럴당 104.21달러로 마감했다.미국 원유 가격이 기준이 되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도 전거래일보다 2.7% 상승했다.CNBC에 따르면 2월28일 이란 전쟁이 발발한 이후 브렌트유와 WTI 가격은 모두 40% 이상 올랐다.석유 공룡이 경제적 이득을 더욱 늘리기 위해 화석연료에 집중할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로이터에 따르면 BP는 6월부터 기존 3개였던 사업부를 2개로 재편하고 석유와 가스 투자에 다시 집중하기로 결정했다.월스트리트저널은 "석유 기업들은 급등하는 유가를 활용하기 위해 정유 설비를 최대 가동률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독일 겔젠키르헨에 위치한 BP의 루르오엘 정유 설비 내 저장소를 7일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연합뉴스>◆ '오일머니' 정치적 영향력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할까미국 환경단체와 학계에서는 이번 이란 전쟁에 따른 특수가 화석연료 업계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해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그동안 화석연료 기업은 기후변화 대응 추세에 맞춰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화석연료 생산은 줄이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활용 확대 기조를 정했는데 이를 철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 앰허스트캠퍼스의 그레고어 제미니우크 공공정책대학원 부교수는 가디언에 "석유기업의 막대한 현금흐름은 로비 자금 확대로 이어질 수 있으며 화석연료 산업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환경단체 프렌즈오브디얼스의 루카스 샹카스-로스 부국장은 "석유 기업이 전쟁 특수에 따른 수익을 미국 정치권에 제공해 트럼프 시대 화석연료 정책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고 바라봤다.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제한 해제와 화석연료 보조금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지난해 8월에는 해상 풍력 발전에 투입하려 했던 6억8천만 달러(약 1조130억 원)의 자금 지원을 취소했다.이에 더해 미 국방부는 민간 토지에서 추진하는 약 165개의 육상 풍력 프로젝트 관련 승인 절차를 사실상 중단·보류했다.석유 기업이 유가 상승에 따라 벌어들인 자금으로 화석연료 확대를 위한 로비 활동을 강화하면 이러한 정책이 추가로 나올 수 있다.결국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지속 여부에 따라 석유기업 실적 강세가 이어지면 세계적으로 지금껏 추진되던 재생에너지 전환이 최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트럼프 정부는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 1.5도 수준에서 제한하자는 파리협약뿐 아니라 유엔기후변화협약을 비롯한 기후대응 국제기구에서 탈퇴했다.가뜩이나 재생에너지에 적대적인 트럼프 정부의 정책기조가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CNN은 "석유 회사들의 막대한 이익은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석유와 가스에서 벗어나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투자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많은 회사들이 기후변화 대응 약속을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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