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 트럼프 미국 법원 참고하는 '기후변화 매뉴얼' 발간기관 조사 지시, 사법 단계서 기후 어젠다 밀어내기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최고 과학기관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해당 기관이 미국 법원이 판결을 내릴 때 참고하는 매뉴얼에 기후변화에 관한 내용을 따로 포함시켰던 것이 이유다.이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을 넘어 사법 단계에까지 기후변화에 관한 어젠다(의제)를 밀어내려 한다는 분석이 주요 외신에서 나온다.◆ 트럼프, 몇 개월 전 논란 다시 꺼내 들어 국립 과학기관 조사 지시20일(현지시각) 더힐, 뉴욕타임스 등 미국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 소셜을 통해 국립과학공학의학원(NASEM)이 지난 1월 미국 연방사법센터(FJC)와 협업해 발간한 '과학적 증거 참고 매뉴얼'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과학적 증거 참고 매뉴얼이란 과학에 관한 소송이 많은 미국 특성을 고려해 연방사법센터가 전문 과학기관과 협업해 내놓는 참고 문건을 말한다. 1994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후 판결문에 약 1700회 인용될 정도로 권위가 높은 문서다.올해 1월에 발간된 최신판에는 약 90페이지 분량의 '기후 과학' 단원이 따로 신설돼 포함됐다.미국 공화당 등 보수 정치권에서는 기후 과학 단원이 신설된 것을 두고 진보 진영 인사들이 법원에서 편향된 판결을 내리도록 유도하기 위한 시도라고 비판했다.이에 웨스트버지니아주를 비롯한 공화당 성향 27개 주의 법무장관들이 공동으로 연방사법센터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고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그 뒤 지난 2월 연방사법센터가 문제가 된 기후 과학 부분만 매뉴얼에서 삭제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몇 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다시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트럼프 대통령은 '이 매뉴얼은 완전히 신뢰성을 잃었다'며 '우리나라의 판사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정치적 사기나 허위 과학이 아닌 사실과 과학에 근거한 판단을 제공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이어 '이같은 진실을 바탕으로 나는 이같은 행위를 재조사할 것을 명령한다'며 '납세자들의 돈을 기후 사기에 지원해서는 안되며 판사들은 결코 그러한 사기의 결과에 의존해선 안된다'고 덧붙였다.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백악관 측에 논평을 요청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국립과학원 '매뉴얼에 문제 없어, 과학적 엄격성과 투명성 보장돼'트럼프 대통령의 조사 지시에도 국립과학공학의학원 측에서는 해당 매뉴얼에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국립과학공학의학원은 국립과학원, 국립공학원, 국립의학원이 함께 모여 구성된 연합기구다. 이 가운데 국립과학원이 가장 큰 대표성을 갖는다.이런 점때문에 외신에서는 국립과학공학의학원을 지칭할 때 국립과학원으로 줄여 부르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미국 국립과학원은 현재까지도 과학적 증거 참고 매뉴얼에 기후 과학 단원이 포함된 발간판을 그대로 홈페이지에 게시해두고 있다.해당 매뉴얼은 투명하고 철저한 검증을 거쳐 작성된 만큼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몰리 갤빈 국립과학공학의학원 대변인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우리의 활동은 과학적 엄격성, 투명성, 독립성을 보장하는 상태에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엘레나 케이건 미국 연방 대법관이 14일(현지시각) 미국 상원 예산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사법계에서 기후 어젠다 퇴출시키려 시도'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사 지시를 놓고 미국 법원들이 내놓는 판결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고려를 배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현재 미국 국내에서 여러 건의 기후소송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점이 고려된 행보라는 것이다.특히 미국 연방 대법원은 콜로라도주 볼더시와 볼더 카운티가 엑손모빌, 선코어 등 화석연료 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심리를 앞두고 있다. 이 소송은 해당 기업들이 자신들이 초래한 기후 피해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점을 들어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미국 공화당과 보수단체들은 이 소송에서 진보 성향의 엘레나 케이건 연방 대법관이 심리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이들은 케이건 대법관이 과학적 증거 참고 매뉴얼의 서문을 직접 집필한 만큼 매뉴얼을 둘러싼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케이건 대법관은 지난 14일(현지시각) 미국 상원 예산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공화당 측의 질의에 '판결에서 빠져야 할 정도로 일을 한 일이 없다'면서도 '정치적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미국 국립과학원과 협업해 매뉴얼을 발간한 연방사법센터도 판사들에 문서가 전달되기 전에 개정됐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클라라 올트먼 연방사법센터 부소장은 미국 법 전문매체 '코트하우스뉴스'를 통해 '우리 센터는 문제가 되는 장이 포함된 매뉴얼의 인쇄판을 배포한 적이 없다'며 '우리는 비판에 대응해 현재 배포된 매뉴얼에 기후 과학 단원을 생략했다'고 강조했다.케이건 대법관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매뉴얼의 진정한 목적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다'며 '판사들이 과학적 문제에 관한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