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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두려워하지 않은 토스카니니

김광현 777khkim@hanmail.net 2014-03-25  12: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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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를 두려워하지 않은 토스카니니  
▲ 토스카니니는 독재자 무솔리니(좌)와 히틀러(우)에 반대했다

지휘자와 정치.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음악과 정치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먼저 지휘자의 임명에서 둘은 연관성이 아주 높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왕가의 극장이나 오케스트라에 지휘자를 임명하는 데 있어 최종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왕일 것이다. 시립교향악단이나 시립합창단의 지휘자를 임명하는 최종 결정권자는 당연히 시장일 것이다. (물론 이는 간단하게 설명한 것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많은 단계를 거치게 되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정치적 이유로 지휘자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경우를 꽤 익숙하게 보아 왔다. 또는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다.

또한 음악은 국민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히틀러가 아리아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바그너의 음악을 이용한 것이 대표적이다.(바그너는 생전 반유대주의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음악 연주가 금지돼 있다. 세계적 지휘자이자 유태인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자신이 상임으로 있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를 이끌고 이스라엘에서 공연했을 때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음악은 음악일 뿐이라는 신념으로 바그너를 앙코르 곡으로 연주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만약 최고 권력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지휘자가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오페라 극장의 상임지휘자로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음악적으로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는 거장 토스카니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최고 권력자는 바로 무솔리니다. 사실 무솔리니는 굉장한 음악 애호가였다. 또한 토스카니니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토스카니니 자신도 한 때 아주 잠시 동안 파시스트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통일 이탈리아와 함께 태동한 파시즘 초기의 정신이 고대 로마의 영광을 상기하는 이탈리아의 부활을 위한 애국주의와 여성의 참정권 부여, 그리고 농민을 위한 토지분배 등을 포함한 평등주의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파시즘이 후에 독재주의와 인종주의로 변질되자 토스카니니는 반 파시즘으로 돌아섰다. 로마로 진격한 무솔리니가 국왕에게서 정권을 양도받게 되자 토스카니니의 무솔리니에 대한 증오는 극에 달한다. 하지만 토스카니니도 자신의 신념으로 인하여 라 스칼라 극장이 피해를 당하는 상황은 두려워했다. 이 때문에 독재자 바로 앞에서 그의 비위를 거슬리는 행동은 자제했다. 물론 명령에 결코 따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극장을 포함한 모든 공공장소에서 왕과 무솔리니의 사진이 걸려있어야만 하지만 토스카니니는 이를 묵살했다. 왕가의 행진곡이 연주될 때면 파시스트 찬가가 함께 연주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제화되었을 때에도 이를 무시했다. 또한 투란도트 초연 당시 무솔리니가 공연 전 파시스트 찬가 연주를 요구하였지만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솔리니는 토스카니니를 죽이거나 강제로 쫓아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토스카니니가 가지고 있는 세계적 명성과 이탈리아 국민들의 그를 향한 사랑을 두려워했다. 그를 끌어내지 못할 바에야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라 스칼라의 전 단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면서 토스카니니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기도 했다. 한 때 그를 상원의원으로 임명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토스카니니는 1929년 라 스칼라 극장을 사임하기 직전 단원들을 이끌고 떠났던 빈과 베를린 연주여행에서 전 유럽을 뒤흔들 만한 격찬과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자 무솔리니는 ‘라 스칼라는 당대 이탈리아의 정신을 최고의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내용의 축하 전보를 보내기도 했다.

토스카니니는 볼로냐에서 파시스트 광신자들이 파시스트 찬가를 요구하자 거부하다 테러를 당했다. 자신이 계속 위협에 시달리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것을 알게 되자 결국 이탈리아를 완전히 떠나 파시즘이 완전히 몰락할 때까지 망명생활을 계속했다. (그 이후 무솔리니는 극도로 통제된 언론을 이용하여 실각하기 전까지 그를 모욕하고 비판하는 뉴스를 내보냈다.)

그의 정치적 신념은 확고했다. 그의 예술성과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히틀러가 그를 초청해 바이로이트에서 지휘하게 하려고 하자 그는 바이로이트에서 지휘를 완전히 중단했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마저 장악한 뒤부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조차 참가하지 않았다. (그 이후 전 독일에서 그의 음반을 듣는 것조차도 금지되었다.) 또한 소련이 그를 초청했을 때에도 그는 억압적 정부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처럼 그는 비단 음악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정직했으며 결코 자신의 신념을 꺾는 일이 없었다.

라 스칼라의 국제적 찬사를 파시즘에 대한 찬사와 결부하려고 하는 무솔리니의 의중을 간파한 토스카니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열렬한 사랑으로 오직 나의 예술에 봉사하고 있으며, 그것이 나의 조국에 봉사하는 것이고 결국은 조국을 영예롭게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지휘자 김광현은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였다. 대학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되어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서울대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남서독일 콘스탄츠 관현악단,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원주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하였다. 현재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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