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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겨울 사이, 브람스 교향곡 4번

김광현 777khkim@hanmail.net 2014-11-05  10: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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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과 겨울 사이, 브람스 교향곡 4번  
▲ 브람스는 샘솟는 음악적 아이디어와 그것을 엮어내는 철저한 작곡기법이 동시대의 그 어떠한 작곡가보다도 뛰어났다.

올 봄과 마찬가지로 가을도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듯하다. 가을의 정취를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성큼성큼 겨울이 찾아와 버린 탓이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겨울 코트를 고민해야할 만큼 서늘해져 버렸다. 가을과 겨울의 사이에서 필자는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을 한번 들어보시라 추천한다.

브람스가 교향곡 1번을 작곡하는 데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보낸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만큼 브람스에게 있어서 베토벤이라는 멘토, 혹은 거인이 너무 지나치게 커다란 존재였던 탓이다. 하지만 ‘한 음도 버릴 데가 없는’ 첫 번째 교향곡을 작곡한 이후 비교적 손쉽게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4번 교향곡에 이른다.

4번 교향곡은 그간 자신을 끊임없이 짓누르던 베토벤에서 벗어나서 브람스 자신의 확고한 작곡기법을 확립하고 난 이후의 것이다. 그런데 베토벤에서 벗어났나 싶더니 베토벤 이전으로 가 버렸다. 브람스가 교향곡 4번에서 만나고자 한 작곡가는 바로 바흐다.

브람스가 매일 아침 일어나서 바흐가 확립한 대위법 문제를 풀었다는 것은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바흐 탄생 200주년이 되던 해에 초연된 브람스 교향곡 4번이 바흐를 연상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1악장의 주제 멜로디는 말 그대로 가을을 연상케 하는 누구나 쉽게 듣기 좋은 멜로디지만 사실 이 멜로디에 숨은 비밀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멜로디를 구성하는 음들이 ‘시 솔 미 도 라 파 레 시’ 그리고 ‘미 솔 시 레 파 라’ 인데, 전자는 3도씩 점점 아래로 떨어지고 후자는 3도씩 위로 올라간다는 점이다.

또 하나 이 멜로디의 숨은 비밀은 바로 이 멜로디 자체가 바흐의 ‘십자가 모티브(동기)’를 본따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바흐는 자신의 이름을 딴 ‘B-A-C-H’음들(독일에서 B음은 시 플랫, H음은 시 내추럴을 말한다)을 사용하여 곡을 쓰는 등 음들을 이용한 상징적 표현들을 자주 사용했다.

특히 브람스가 사용한 선율은 바흐의 B단조 미사 중에서 ‘십자가의 달려서’라는 곡에서 사용된 모티브를 차용한 것이다. 브람스가 교향곡 4번의 1악장에서 굳이 십자가를 이용한 이유는 그가 여기서 ‘죽음’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2악장의 클라이막스가 주는 감동은 매우 훌륭하다. 마치 브람스가 ‘그래, 내가 브람스야’라고 당당하게 선언한 듯하다. 그런데 브람스가 2악장 맨 처음에서 사용한 작곡기법은 아주 흥미롭다. 바흐보다도 훨신 이전의 중세교회 선법 중 하나인 ‘프리지아 선법’을 이용해서 2악장 처음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늘 베토벤에서 벗어나지 못한 브람스가 드디어 베토벤을 조금 떨쳐냈나 싶더니 바흐를 거쳐 이제 중세교회 선법까지 사용하다니. 브람스의 샘솟는 음악적 아이디어와 그것을 엮어내는 철저한 작곡기법은 동시대의 그 어떠한 작곡가보다도 뛰어나다.

3악장의 ‘바커스의 축제’를 거쳐서 4악장에서 웅장한 관악기의 8마디가 전면에 등장한다. 그런데 곡 전체를 통틀어 무언가 이상하다. 처음에 들었던 8마디가 멜로디 혹은 베이스 라인 혹은 화음 안에서 계속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브람스가 4악장에서 사용한 형식은 바흐의 ‘샤콘느’혹은 ‘파사칼리아’이다.

샤콘느와 파사칼리아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둘 다 3박자의 무곡이고, 하나의 주제가 곡 전체를 통틀어 반복되어 변주되는 형태를 가진다. 보통 베이스만 반복되느냐 아니면 베이스를 포함하여 멜로디나 화성적 부분 또한 반복되어 변주되느냐에 따라 이 두 형식을 간단하게 구분한다.

브람스는 특히 바흐의 샤콘느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4악장에서 자신만의 음악어법으로 바흐의 그것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또한 바흐의 칸타타 150번의 ‘예수가 죽음에 이르러 부르짖은 부분’의 선율을 4악장 모티브에 차용해 이 교향곡에 흐르는 죽음에 대한 분위기를 끝까지 연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최고의 마에스트로들이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 4번의 명반은 꽤 많이 있다. 하지만 그 명반들 중 단 하나만 고르라면 일단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전무후무한 명반을 한번 들어보라 권하고 싶다. 평생 많은 곡을 지휘하지 않은 클라이버가 넘치는 재능과 열정으로 녹음한 브람스 교향곡 4번이다.

가을이 가기 전 마지막으로 브람스 4번 교향곡을 권한다. 특히 눈을 감고 상상하듯이 들으면 더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사색에 잠긴 채, 혹은 애수 가득한 얼굴의 브람스가 당신 앞에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지휘자 김광현은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였다. 대학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되어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서울대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남서독일 콘스탄츠 관현악단,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원주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하였다. 현재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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