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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들도 태업할 수 있을까

김광현 777khkim@hanmail.net 2014-10-22  10: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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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주자들도 태업할 수 있을까  
▲ 무대 위에서 가장 좋은 연주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음악가의 기본적 의무다.

때늦은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시작되었다. 아시안게임의 여파로 시즌이 중단되었던 데다 비까지 와서 예정된 경기일정도 순연되었다. 이러다간 가을야구가 아니라 겨울야구가 될 것 같다.

올해 프로야구는 특히 4위 싸움이 아주 치열해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야 결정되었다. 그런데 그 치열했던 4위싸움 때문에 어떤 감독의 ‘져주기 논란’이 시즌 막판에 화제가 됐다.

내용은 이렇다. 이미 순위가 확정된 6위팀과 한 게임만 져도 탈락이 확정되는 5위팀의 대결에서 6위팀 감독이 의문의 선수기용으로 자신의 팀이 역전패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는 이야기다.

일단 감독은 베스트 멤버가 빠진 선발 라인업을 구성했다. 그리고 경기가 중반으로 진행되기도 전인 5회에 베테랑 주전타자를 무려 두 명이나 교체했으며 잘 던지던 선발투수도 5회까지만 던지게 하고 갑자기 교체했다.

교체되어 나온 투수들은 올해 성적이 썩 좋지 않았던 투수들이었다. 그 팀은 초반에 5점차로 리드하고 있었지만 결국 바로 동점까지 가서 연장 끝에 허무한 패배를 당하게 되었다.

선수기용이야 어차피 감독의 고유권한이니 왈가왈부해서 안되지만 위에 쓴 것과 같이 이해할 수 없는 기용이었다. 심지어 점수를 내서 역전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에도 아무런 작전없이 2진급 타자들에게만 맡겨두는 식의 방관은 많은 야구팬들의 공분을 샀다.

특히 이 경기를 해설했던 감독 출신은 "다시는 이런 식의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기가 나와서 안된다"며 분노했다. 누가 봐도 감독의 태업으로 오해를 살 것이 분명했다. 다행인 것은 이날의 경기결과가 최종 순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감독은 결국 경질됐다.

이 논란을 접하면서 클래식에도 태업이란 것이 있을까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예술 전반에도 태업이라는 것이 있을까.

필자의 생각은 ‘NO’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다. 0.1초만 실수해도 말 그대로 ‘틀린’ 것이 되는 무대예술에서는 태업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 아니 없어야만 한다. 특히 연주하는 단원들 입장에서 더더욱 그렇다. 무대 위에서 가장 좋은 연주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음악가의 가장 기본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럴 수는 있을 것 같다. 어떤 오케스트라에서 밤늦게 연주가 끝났는데 다음날 아침에 다른 곡의 리허설이 있을 경우 당연히 새롭게 연주할 곡의 연습은 부족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런저런 이유로 전체 리허설에 불충분한 개인연습시간을 가졌을 수도 있다.

충분한 개인연습 시간을 가진 오케스트라 리허설과 그렇지 않은 오케스트라 리허설은 그 집중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악보에 있는 모든 것을 연주해 내어야만 하는 무대 위 연주에서 태업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음을 일부러 틀리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자신의 모든 것이 관객에게 그대로 보여지는 무대 위인데 말이다.

또 연주자가 어떤 이유로 연주와 연습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되면 보통 프로 오케스트라에서 그 연주자를 아예 해당 연주에서 제외한다. 연습까지 다 했는데 갑작스럽게 일이 생기는 경우도 보통은 급하게 대타를 구해서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대에서 온전히 연주에 집중할 수 없는 연주자는 절대로 무대에 나서지 않는다. 아니 나서지 말아야 한다.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 모 선수처럼 부상을 숨기고 대표팀에 입성하여 고작 몇 분 출전하고 3타수 무안타에 병역혜택을 받는 일 자체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스포츠와 예술은 물론 다르다. 야구선수는 컨디션이 안 좋았거나 상대방이 잘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주자는 무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자신과 싸움이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은 연주자는 이 세상에 없다. 무대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변명할 수가 없다.

필자의 독일 유학시절 베를린 필에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헨델의 ‘메시야’전곡을 공연했을 때의 이야기다. 보통 래틀이나 아바도, 얀손스 등 대가들과 함께한 교향곡 연주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음악을 즐겼던 단원들이 그날따라 경직되어 연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특히 바이올린 맨 뒤에 앉았던 주자는 정말이지 하기 싫은 표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영국에서 날아온 지휘자와 합창단을 반주한 그날 공연의 베를린 필 사운드는 언제나처럼 정말 좋았다. 자, 이것이 태업인가 아닌가.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몇 주 전 필자는 철원의 옛 노동당사 앞 야외무대에서 진행된 평화콘서트를 지휘했다. 연주가 시작되었을 당시 철원의 기온은 10도 안팎이었다. 낮은 기온 탓에 관악기 현악기 할 것 없이 음정은 계속 변하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추워졌다. 단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집중해서 결국 한 시간 반여의 연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물론 공연을 관람했던 관객들이 단순히 그날 연주력만을 놓고 평가한다면 필자는 할 말이 없다. 모두가 최고의 연주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태업인가 아니면 투혼인가. 이 자리를 빌어 함께 연주한 코리안심포니 단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생각해 보니 음악에서 태업이 가능한 사람이 딱 한 사람 있다.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유일한 사람. 무대 위에서 소리를 내지 않는 유일한 사람. 제대로 된 공부와 실력 없이 포디엄 위에 올라 팔만 휘젓고 내려와도 박수를 받는 유일한 사람. 바로 지휘자다.

지휘자 김광현은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였다. 대학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되어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서울대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남서독일 콘스탄츠 관현악단,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원주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하였다. 현재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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