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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 앙코르, 환호와 고민 사이

김광현 777khkim@hanmail.net 2014-09-29  10: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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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회 앙코르, 환호와 고민 사이  
▲ 연주자는 청중들의 진심어린 박수에 감사하며 그 환호에 답하기 위해 기꺼이 다시 무대에 올라 앙코르를 연주한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나고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이 멈추자 청중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한다. 그리고 수차례의 커튼콜.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입장과 퇴장을 반복하던 마에스트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듯 청중들을 진정시키고 등을 돌려 오케스트라를 향해 선다. 다시 오케스트라를 향하는 그의 지휘봉에 화답하여 오케스트라는 예정에 없던 새로운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앙코르(Encore).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훌륭한 연주자들의 예정에도 없던 앙코르는 참 반갑다. 연주자들의 입장에서 봐도 내 연주에 대한 관객들의 진심어린 박수는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주자들은 청중의 환호에 답하여 기꺼이 다시 무대 위에 오른다.

앙코르 하면 떠오르는 피아니스트가 있다. 천재 피아니스트에서 거장으로 성장한 에프게니 키신이다. 그는 2009년 내한공연 당시 34차례의 커튼콜을 받았고, 10곡의 앙코르로 화답했다. 예술의전당을 꽉 채운 관객들의 – 마치 록 공연장을 방불하게 만드는 – 환호에 세계적 연주자 키신도 매우 흥분했던 것이 틀림없다.

이날 앙코르 시간만 1시간30분을 기록했고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팬 사인회의 줄은 끊길 줄을 몰랐다. 그런데 키신은 이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6년 내한공연 당시에도 3시간 연주, 10곡 앙코르의 기록을 세운 적이 있다. 정말 대단한 한국 청중 사랑이다. 물론 한국 청중들의 애정도 대단하고 말이다.

한 세기 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예전에 잠시 소개했던 최초의 지휘자 ‘한스 폰 뵐로’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연주가 끝난 뒤 뜨거운 박수가 멈추지 않자 청중들에게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이 교향곡을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몇몇 관객들이 놀라 객석을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이미 객석 출입문의 문은 다 잠긴 뒤였다. 실제로 이날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합창교향곡이 처음부터 다시 연주되었다. 그러니 박수를 치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며칠 전 한 시립교향악단 단장님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 협연자의 앙코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보통 협주곡은 1부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기 때문에 협연자가 앙코르를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는 이 때 협연자들이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즉석에서 예정에도 없던 반주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꽤 당황스러운 적이 있다고 했다.

물론 리허설 때 협연자와 미리 연습을 해 본 경우라면 흔쾌히 즐겁게 연주하겠지만 연습도 없이 갑자기 무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당연히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리허설 당시 본 공연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하는 협연자의 입장을 생각해볼 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앙코르를 하려고 하면 당황하긴 협연자들도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앙코르는 청중들의 환호에 답하는 최고의 수단이기 때문에 앙코르 곡을 연주하는 문제는 연주자들에게 언제나 즐거운 고민거리다.

때로 협연자의 앙코르곡이 너무 길어서 문제가 되는 적도 있다. 독주회라면 모르겠다. 아니 협주곡이 메인 레퍼토리가 되는 연주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엄연히 교향악단이 주가 되어야 할 정기공연에서 초청받은 협연자의 앙코르가 너무 길어지면 무대 위의 교향악단 단원들은 진이 쏙 빠진다.

단원들은 협연자의 앙코르 연주를 무대 위에서 듣는다. 따라서 연주를 하건 안하건 관객들의 시선과 밝은 조명이 집중되는 무대 위에서 사소한 동작은 하나하나가 그리 편하지 않다.

필자는 올해 초 한 시향의 정기공연에서 비슷한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협연자는 국내에서 꽤 인기가 많은 연주자였다. 그는 25분짜리 협주곡을 연주한 뒤 두 곡에 걸쳐서 20분을 앙코르로 공연했다. 그 연주자의 팬들은 환호했을지 모르나 교향곡을 고대하고 있던 필자는 그 앙코르 연주에 계속 집중할 수 없었다.

또 교향악단의 연주 순서를 아무렇게나 구성했으면 괜찮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연 프로그램도 요즘은 스토리 라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한 작곡가의 곡으로 서곡과 협주곡, 교향곡까지 쭉 짜는 경우도 많다. 또한 다른 작곡가들의 곡들이라도 관련이 있는 작곡가나 관련이 있는 곡들을 묶어서 공연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런 경우 1부와 2부도 엄연히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스토리 라인과 전혀 관계없는 앙코르가 중간에 그것도 아주 길게 끼어버리면 연주회의 집중도가 흐트러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코리안심포니 정기연주회에서 협연자 김다솔이 보여준 센스는 꽤 위트있었다. 그날 프로그램은 서곡없이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으로 이루어졌다. 쉽게 말해 ‘All Beethoven’ 이었다.

황제 연주가 끝나자 청중들은 김다솔에게 앙코르를 외치며 끊임없는 박수를 보냈다. 연주회의 분위기를 이어나가려는 듯 김다솔은 앙코르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피아노 건반 뚜껑을 덮고 인사하는 재치를 보여서 많은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진 2부의 교향곡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코리안 심포니는 앙코르로 역시 베토벤의 ‘터키 행진곡’을 연주해 베토벤 프로그램을 매듭지었다.

예전에 모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객원지휘한 필자는 앙코르 곡을 많이 연주하고 싶었던 단원들의 요구에 무려 3곡을 앙코르로 준비해서 연주한 적이 있다. 또 필자가 몸담고 있는 경기필에서 작년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지휘할 때 프로그램에 쓰여 있지 않은 3부 앙코르 스테이지를 일부러 준비해 캐롤 모음곡 등 몇 곡을 더 연주하여 큰 호응을 얻은 적도 있다.

심지어 관객들이 퇴장하고 있었지만 경기필 수석들이 피아노 반주와 함께 퇴장음악을 연주해 관객들로 하여금 크리스마스 기분을 마음껏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단원들의 요구로 많은 앙코르를 준비한 전자의 경우 관객들이 매우 지루해했다. 반면 관객들을 위해 일부러 앙코르 무대를 따로 준비한 후자의 경우 관객들이 매우 행복해 했다.

앙코르 곡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면 상황에 맞는 곡을 준비해서 연주하는 것도 연주자들의 의무다. 하지만  앙코르 자체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 되어야 한다. 앙코르 연주곡을 준비하느라 메인 프로그램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관객들은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앙코르가 아니라 미리 예고된 메인 프로그램을 더욱 기대하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지휘자 김광현은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였다. 대학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되어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서울대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남서독일 콘스탄츠 관현악단,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원주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하였다. 현재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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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영 |  2014-09-29 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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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정독했는데 김광현 선생님 글이셨네요 !! ^,^
진지한 주제의 글도 위트있게 풀어나가시는.... 멋지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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