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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고별 담은 말러의 9번 교향곡

김광현 777khkim@hanmail.net 2014-07-29  10: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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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과 고별 담은 말러의 9번 교향곡  
▲ 코리안심포니의 말러9번 연주는 매우 훌륭했다. <코리안심포니 웹사이트>

일주일 전 있었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9번 연주를 다녀왔다. ‘대작곡가들의 교향곡 번호는 결코 9번을 넘어설 수 없다’는 미신과도 같은 아이러니를 믿었던 말러는 교향곡 9번을 쓰지 않으려고 8번 이후에 작곡된 ‘대지의 노래’에 교향곡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원래 그 제목은 ‘노래로 된 교향곡’이었으나 대지의 노래가 된 것은 결국 말러 자신이 운명에 맞서길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대지의 노래 이후 9번을 완성하고 10번 작업에 착수하였으나 역시 말러도 9번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결국 그 작업을 끝마치지 못했다. 차라리 대지의 노래를 9번으로 하고 이 교향곡을 10번으로 했으면 징크스에서 벗어났을까. 

말러의 말마따나 베토벤 이후로 슈베르트, 드보르작, 그리고 브루크너 등의 교향곡 작곡가들이 9번을 넘기지 못했으니 이것 참 재미있는 일이다.

구스타프 말러. 베토벤 이후 5개 이상 작곡한 교향곡 작곡가들을 통틀어서 교향곡 전곡이 모두 사랑받는 작곡가는 아마 말러밖에 없을 것이다. 버릴 음표 하나 없는 4개의 교향곡을 남긴 브람스와 마지막 3개만 사랑받는 차이코프스키 정도를 제외하고 말이다.

물론 말러 직전에 훌륭한 9개의 교향곡을 남긴 브루크너가 있으나 그의 초기 교향곡들은 후기 교향곡들만큼 자주 연주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제외하자.

말러는 대 작곡가일 뿐 아니라 명 지휘자였다. 앞서 소개한 토스카니니와 더불어 유럽과 미국을 석권한 마에스트로였으며 역시 토스카니니처럼 오페라와 심포니에도 능했다.

그는 교향곡 뿐 아니라 가곡 작곡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교향곡에 독창자와 대편성 합창이 나오는 것은 물론, 악기가 연주하는 선율에도 가곡적 면이 많이 보인다. 1번 교향곡 1악장 주제는 아예 그의 가곡 선율을 차용하였다.

이는 마치 평생 오페라를 작곡한 모차르트의 모든 곡에서 오페라적 면모가 많이 보이는 것과 발레에 능했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에 발레적 요소가 많이 보이는 것과 흡사하다.

말러와 비슷한 가곡적 성향을 보이는 교향곡 작곡가에 브람스가 있다. 그는 여성3부합창단을 조직하여 평생 가곡과 합창작품을 남겼기 때문에 그의 교향곡에 ‘소토 보체(sotto voce)’라는 가곡 및 합창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영어로 ‘soft voice’라는 말로 간단하게 해석될 수 있으나 특히 합창에서 sotto voce가 나왔을 경우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겉으로 작게 들려도 속으로 깊은 울림과 공명을 가진 소리를 내야 하는 테크닉이 바로 소토 보체다.

마에스트로 중의 마에스트로인 말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한 달 아니 일 년 내내 연재해도 모자랄 판이니 오늘은 최근 연주되었던 9번 교향곡에 대해서만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교향곡 9번은 표제가 없는 순수 기악곡으로 작곡되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거론할 때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죽음과 고별이다.

지휘자 멩겔베르크는 ‘대지의 노래는 인류와 이별이고 9번 교향곡은 모든 사랑하는 이와 이별’이라고 메모했다. 말러 전문가 데릭 쿡은 이 곡을 가리켜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교향곡 ‘비창’을 모델로 삼았다고도 한다. 말러는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말러 자신이 자필악보에 적어놓은 문장들을 통하여 이 곡에 대한 감정을 추측할 수 있다. ‘오 젊음이여 사라진 것이여, 오 사랑이여 흩어진 것이여’라든지, ‘오 아름다움이여, 사랑이여 안녕, 세상이여 안녕히’ 라는 문장들 말이다. 또 아예 악상기호 자체를 ‘침울한 장례식처럼’ 등의 직설적 표현을 써서 이 곡을 연주하게끔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의 마지막 아다지오 악장을 통하여 감동을 받지만 지휘자들은 이 곡의 1악장을 그가 작곡한 최고의 악장으로 꼽는다. 기존의 소나타 형식으로 된 1악장의 구조를 완벽하게 탈피했기 때문이다.

또 고전 교향곡의 전 악장에 걸친 때로 엄격한 조성체계도 말러는 완벽하게 거부한다. 즉 말러의 9번 교향곡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 뿐 아니라 기존의 음악을 비롯한 모든 세상에 대한 이별인 것이다.

이 곡의 4악장 마지막에서 세상과의 이별을 고하고 떠나려 하였으나 계속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본다. 죽어가면서도 계속 여운을 남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슬프다.

만약 악보에 쓰여 있는 독일어로 된 지시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 곡을 감상해 본다면, 아니 그냥 이 곡이 가진 내용만이라도 조금 더 생각하면서 이 곡을 들어본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의 마술과도 같은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아쉽게도 말러 생전에 이 곡이 연주된 적이 없다. 말러와 평생을 교감했던 마에스트로 브루노 발터의 음반도 있지만 필자가 추천하는 음반 딱 3개를 고르라면 모두 베를린 필의 연주로 번스타인, 카라얀의 음반이다. 베를린 필 특유의 사운드가 죽음과 정화를 암시하는 이 곡의 분위기와 맞아서일까.

번스타인은 베를린 필을 단 한번 지휘했는데 그 연주가 바로 이 말러 9번이었다. 이 연주는 공연실황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번스타인 특유의 ‘캐릭터를 뽑아내는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된 음반이다.

카라얀은 말러를 그닥 지휘하지 않았지만 9번은 레코딩을 두 개 남겼다. 하나는 스튜디오 음반이고 다른 하나는 공연실황 음반이다. 실황음반을 들어본 카라얀이 그 전에 나왔던 스튜디오 녹음을 페반시켜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번스타인과 달리 카라얀은 음 하나하나에 더욱 집중한다. 특히 실황음반의 4악장은 전무후무하게 위대하다고 감히 말해도 될 정도로 압권이다.

아바도가 베를린 필을 지휘한 99년 녹음도 훌륭하다. 그 이전에 조금 심심한 말러를 들려준 아바도가 아니다. 하지만 그가 2004년에 말러 유겐트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영상물이 있기 때문에 일단 그것을 먼저 감상하라고 권하고 싶다. 마지막 악장에 어두워지는 조명을 통하여 모든 것을 숙연하게 만드는 아바도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말러9번 연주는 매우 훌륭했다. 필자가 몇 년 전에 듣고 큰 감동을 받았던 서울시향의 말러9번 연주에 비견될 만큼 좋았다. 특히 4악장은 정말이지 연주회장을 나오던 많은 사람들을 눈물짓게 할 정도로 큰 여운을 남겼다.

부천필의 말러 싸이클 이후 말러 스페셜리스트로 통하는 지휘자 임헌정과 코리안심포니의 만남은 최고의 시너지를 만들었다. 앞으로 그들의 큰 도약과 음악적 성과를 기대해 본다.

지휘자 김광현은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였다. 대학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되어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서울대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남서독일 콘스탄츠 관현악단,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원주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하였다. 현재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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