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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풍미한 로린 마젤을 보내다

김광현 777khkim@hanmail.net 2014-07-22  10: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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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풍미한 로린 마젤을 보내다  
▲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인 로린 마젤이 13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음악계의 큰 별, 로린 마젤이 지난 13일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올해는 유난히 세계적 마에스트로들의 서거소식이 많이 들리는 것 같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에 이어 반 년 뒤 로린 마젤까지. 내가 마에스트로라는 단어를 수식할 때 많이 사용하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은 그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먹먹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에 대해서 조금 후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로린 마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천재중의 천재이자 말 그대로 지휘봉 하나 들고 온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마법사같은 지휘자 로린 마젤. 그는 한국을 자주 방문하였으며 심지어 뉴욕 필을 이끌고 북한까지 다녀왔다. 요즘 지휘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장한나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1930년 마젤은 파리 근교에서 러시아 출신의 미국계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동할 정도로 실력있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의 아버지는 가수였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음악을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필자와 매우 비슷한 환경이다. 필자의 부친도 지휘자이고 필자도 음악을 하거니와 심지어 피아니스트와 결혼했다. 필자는 현재 딸만 둘인데 이 둘이 과연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 갑자기 매우 궁금해진다.

아무튼 어린 시절 마젤은 미국으로 건너가 성장했으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리고 아홉 살의 나이에 스토코프스키의 초청으로 LA 필의 포디움에 섰다. 열한 살 때 토스카니니의 초청으로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아무리 천재라도 그 나이에 지휘자로 데뷔한다는 것은 조금 의문이다. 아무리 지휘 신동이라도 그 나이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테니 말이다. 도대체 어린 마젤은 포디움 위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이가 들어서도 박자젓기 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궁금하다.

여기서 잠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미국의 스타 시스템이다. 아홉 살의 소년을 일약 전국구 대 스타로 만드는 것. 그것도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악기 혹은 어린 모차르트처럼 작곡 분야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지휘 분야에서 말이다. 미국의 매니지먼트는 그것을 가능케 했다.

개인 자본으로 설립하여 일약 스타 음악가를 만들어 내는 회사. 유명한 콜롬비아 아티스트 기획사가 대표적인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이 뛰어난 기획력으로 인하여 미국 클래식시장은 100년도 채 안 되어 세계를 제패했다. 유럽의 많은 음악가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일약 스타가 되었고 미국의 오케스트라산업은 매우 크게 성장했다. 한국의 클래식 매니지먼트시장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다시 마젤 이야기로 돌아오자. 마젤은 수학과 언어학을 공부했고 현악4중주단 멤버로도 활동할 정도로 바이올린 실력이 뛰어났다. 빈 필의 신년음악회 영상물에서 그 옛날의 요한 슈트라우스처럼 바이올린을 잡고 연주하는 마젤을 만날 수 있다. 이윽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경험을 쌓았으며 마침내 세계적 지휘자로 성장했다.

오페라 지휘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30세에 미국인 지휘자 최초로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지휘할 정도로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또 뉴욕 메트로폴리탄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오페라를 지휘했다.

필자는 그가 지휘한 푸치니의 ‘토스카’ 음반을 가끔 감상한다. 훌륭한 가수진뿐 아니라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 또한 그의 천재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작곡한 조지 오웰 원작의 오페라 ‘1984’를 2005년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초연하기도 했다.

그는 열정적으로 지휘활동을 했는데 베를린에서 도이치 오페라 극장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 자리를 동시에 맡았다. 런던 뉴 필하모니아와 미국 클리블랜드, 그리고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의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또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도 활약했으며,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맡기도 했다.

사실 마젤은 베를린 필에서 카라얀의 뒤를 잇기를 희망하였지만 아바도가 선임되자 베를린 필과 모든 일정을 취소할 정도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 뒤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되었고 2003년 70대의 나이에 다시 뉴욕 필의 지휘자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의 지휘 스타일은 매우 자유분방했지만 그의 지휘봉은 단원들로 하여금 그가 원하는 매혹적 음악을 충분히 혹은 그 이상으로 끌어내는 최고의 도구였다. 이것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와 함께 작업했던 필자의 지인들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마젤은 고령의 나이에도 세계를 돌며 쉬지않고 지휘활동을 했는데 전날 리허설까지 부지휘자가 하고 본인은 공연 당일에만 와서 지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곧바로 달라지더라는 이야기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지휘봉만 움직였을 뿐인데 말이다.

솔직히 필자는 때때로 조금 가벼워 보이는 그의 지휘 스타일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지휘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일 뿐이다. 그가 녹음한 프랑크의 교향곡과 멘델스존 교향곡 5번 ‘종교개혁’음반을 들었을 때 필자가 느꼈던 음악적 충격은 아직까지 그 음반을 CD플레이어에 집어넣게끔 한다.

세계적인 스타 지휘자라는 칭호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마에스트로. 평생을 스타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최고의 지휘자. 진정한 천재 음악가 로린 마젤의 서거를 진심으로 추모한다.  

지휘자 김광현은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였다. 대학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되어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서울대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남서독일 콘스탄츠 관현악단,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원주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하였다. 현재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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