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나온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험할 일이 없다는 의미이다.

중국 기업은 세계무대에서 다방면에 걸쳐 우리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이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이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기업이라도 이들을 이끄는 핵심 인물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리기업의 경쟁상대인 중국 기업을 이끄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경영전략과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탐구해 본다. <편집자주>

노녕의 중국기업인탐구-CATL 쩡위췬
[1] 승부사, 배터리제국 세우다
[2] 첫 창업 이후 귀향하다
[3] 고향 닝더를 배터리 도시로
[4] 비야디 왕촨푸와 맞대결

CATL이 세워지고 4년 뒤인 2015년부터 친환경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CATL의 배터리 제조 기술력과 원가 절감 능력은 이미 크게 성장해 있었다.

쩡위췬이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해마다 판매한 배터리 규모는 2.19GWh(기가와트시), 6.8GWh, 11.84GWh에 이르렀고 2018년에는 23.52GWh로 세계 1위를 찍었다.
 
[노녕의 중국기업인 탐구] CATL 쩡위췬 (3) 고향 닝더를 배터리 도시로

▲ CATL 본사.


그리고 CATL은 BMW, 폴크스바겐 등 굴지의 글로벌 완성차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쩡위췬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테슬라와 담판을 벌여 CATL이 LG화학과 마쓰시타에 이이 3번째로 테슬라의 배터리 공급업체 지위를 얻는 데에도 성공했다.

2018년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상하이에 슈퍼공장을 세우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비밀리에 쩡위췬에 접촉을 시도했다.

이때 두 사람의 회동은 큰 성과 없이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9년 8월 머스크는 ‘2019년 세계 인공지능 대회’에 참석차 상하이에 방문했을 때 쩡위췬을 또 찾아 왔다. 

당시 테슬라는 아주 오래된 공급업체인 일본 마쓰시타와 갈등을 겪고 있어 상하이 슈퍼공장의 정식 가동까지 미뤄지고 있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두 사람은 40여 분 만에 핵심 협상 조건을 조율하고 파트너쉽을 체결하기로 했다. 테슬라는 2020년 1분기에 공개한 2019년 연간실적 보고서에서 아주 짧게 ‘중국 최대 배터리 공급업체 CATL과 협력관계를 맺었다’고 밝혔고 글로벌 증시시장이 한 차례 크게 들썩였다.
 
닝더 GDP를 5년 만에 2배로

쩡위췬은 닝더시 지역총생산(GDP)이 2015년에서 2020년까지 5년 만에 2배로 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특히 쩡위췬이 태어난 지역이자 CATL을 세운 쟈오청구의 GDP는 2020년 기준 14조6천억 원으로 닝더시 지역 가운데 1위를 보였고 2015년(4조 9700억 원)보다 3배 이상 늘었다.

CATL이 세워진 쟈오청구 지역의 주민들 가운데 쩡위췬이 CATL을 지금의 모습으로 키워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닝더시 현지 정부는 기껏해야 CATL이 지역 산업가치에 300~500억 원 가량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는 소리도 있다. 당시 지역정부 입장으로서는 그것 만으로도 고마운 상황이긴 했다.

쩡위췬이 CATL을 세우기 전 닝더의 GDP 순위는 푸젠성 지역에서도 하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닝더시의 주요 산업은 소형 기계나 전기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형 공장들로 대부분 이뤄졌다. 산업의 가치사슬이 짧고 산업집약 효과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쩡위췬은 CATL을 닝더에 세운 뒤 정부와 많은 협력을 이어갔다. 쩡위췬이 부탁하면 지방정부가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 식이었다.

CATL 설립 초기엔 판매 규모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푸젠성 공업정보화청이 직접 나서서 쩡위췬과 관계자를 동원해 둥난모터스나 샤먼진룽 등 현지 전기차, 전기버스 제조업체를 방문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오늘날 샤먼진룽은 CATL의 상위 5위 고객사 가운데 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CATL의 2020년 재무보고서를 보면 현재 쩡위췬은 CATL 밑으로 기술 연구개발 인력 5592명을 두고 있다. 여기에는 127명의 박사와 1382명의 석사도 포함돼 있는데 대부분 닝더에서 생활하고 있다.

쩡위췬이 닝더에 CATL을 세운 뒤엔 식당, 호텔, 아파트, 주유소 등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지역 전체의 주거환경, 생활환경, 일자리환경도 나아졌다.

다만 현지 사람들 모두 CATL의 성장이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주택 가격도 5년 사이 4배 넘게 뛰었기 때문이다.

이는 CATL 직원의 소득수준이 크게 오른 것과 무관치 않다. CATL의 2020년 재무보고서를 보면 임직원 2만 여 명의 평균연봉은 2177만 원이다. 대도시에서는 흔한 수준이지만 1인당 연평균소득이 688만 원에 불과한 닝더에선 고소득층으로 분류된다. 

중국판 포브스로 불리는 후룬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후룬 100대 부호 리스트' 가운데 쩡위췬 자신을 포함해 총 8명의 닝더 사람이 이름을 올렸다. 2021년 5월 포브스는 CATL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9명의 억만장자를 배출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 중국 배터리 지원책, 위기를 기회로

사실 쩡위췬이 CATL을 이처럼 키울 수 있게 된 것은 지역 정부의 도움도 있었지만 중국 당국의 정책에 적절히 대응했던 이유도 크다.

쩡위췬은 승부사다. 때와 상황에 맞춰 큰 변화를 과감하게 시도한다.

2017년 3월 쩡위췬은 돌연 ATL과 관련된 모든 직책을 내려놨다. 중국 정부가 당시 실시하고 있었던 정책의 영향이 가장 큰 이유였다. 바로 자국기업 보호정책이다. 

ATL 창립멤버들은 쩡위췬과 지인들이지만 정작 대주주는 일본기업이었다. CATL은 ATL에서 분사돼 세워진 회사였기 때문에 두 회사는 밀접하게 엮여 있었다.

쩡위췬은 ATL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본격적으로 지분 양도 등을 통해 앞장서서 관계를 정리했다. 두 회사 모두에서 직책을 맡고 있던 임원진들도 한 곳에서만 일하는 것을 선택해야만 했다.

2년 전인 2015년 3월에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이미 ‘자동차 배터리 업계 규범 조건’을 발표했다. 생산조건, 기술능력, 품질보증능력 등 7가지 심사에서 통과한 기업의 명단이 공개됐는데 중국 업계에서는 이를 ‘배터리 화이트리스트’라고 불렀다. 이 리스트에는 CATL을 포함해 전체 57곳 배터리 및 관련 기업들이 있었다.

같은 해 6월 공업정보화부는 ‘신규 전기차기업 관리 규정’을 발표하면서 ‘신재생에너지자동차 보급 확대 응용 추천모델 목록’에 판매 중인 자동차 모델이 포함돼야만 정부 보조금을 수령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자본 기업이 생산한 배터리를 사용할 경우에는 어떠한 혜택도 받을 수 없다는 규정도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다.

2015년부터 2017년 사이에는 전기차나 전기버스에 관한 수요가 많지 않아 배터리 업체들은 연구개발에 몰두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2016년 말부터 시장 수요가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쩡위췬은 2017년 1분기에 바로 ATL로부터 독립했다.

그 뒤 중국 전기차 생산 업체들은 보조금을 수령하기 위해 자국 배터리 생산 업체 가운데 특히 화이트리스트에 있는 업체와 협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수혜자는 CATL이었다. 쩡위췬의 승부사 기질, 선택과 집중을 하는 판단 능력이 큰 빛을 발휘한 것이다.

중국 정부의 자국 배터리 업체 밀어주기는 2019년에 끝났으나 정부 지원이 종료되기 전에 CATL은 세계적 배터리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CATL과 ATL 두 회사는 아직까지 외부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4월 배터리 패키징 설비 제작 합작사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 배터리 넘어 전기차 생태계도 넘봐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면서 친환경에 관한 인식은 더 강화됐다. 앞으로 친환경차 수요가 더 많아질 것으로 내다본 쩡위췬은 단순히 배터리만 생산하는 것을 넘어 친환경차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생태계 확장을 향한 의지는 2017년 쩡위췬이 전체 직원들에 보낸 이메일에서 찾을 수 있다. 쩡위췬은 ‘돼지는 정말 날 수 있을까? 태풍이 지나고 나면 돼지는 어떻게 될까?’라는 제목의 내부 서신을 전체 임직원에게 돌렸다.

그는 서신에서 “우리가 정책이라는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잘 때 경쟁자들은 죽을힘을 다해 밖에서 살아남고 있다. 상대는 한 걸음 나아가고 나는 한 걸음 뒤처지는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이라 믿는다. 혹시 생각한 적 있는가. 해외 기업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 우리는 계속 재수 좋게 잠을 잘 수 있을까? 국가가 계속해서 경쟁력 없는 기업을 보호할까? 답은 말하지 않아도 마음 속으로 알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9년, 중국 공업정보화부의 새로운 규정으로 편안한 침대는 무너졌고 삼성SDI,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SK온) 등 해외 배터리 기업들이 화려한 기술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 배터리 기업인 비야디까지 크게 성장하며 CATL에 압박을 더하고 있다. 쩡위췬이 적극적으로 전기차 생태계 구축을 시도하는 이유다.

2020년 9월 쩡위췬은 세계 1위 중국 배터리 장비 업체인 선도지능장비(先导智能)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해 지분 7%를 확보한 대주주가 됐다. 2021년 2월에도 추가 협약을 체결해 연구개발(R&D)과 납품 협력 관계를 강화했다.

2021년 4월27일에는 선전증권거래소 공시를 통해 앞으로 1년 동안 중국 국내외 전기차 관련 상장사들에 최대 3조42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ATL과 배터리셀, 패키징 합작사를 설립하는 것 또한 전기차 생태계 확장의 일환이다.

장비나 제조 관련 분야에서 협력을 공격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넘어 리튬이나 코발트 등 원자재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2021년 4월에는 아프리카 콩고에 위치한 키산푸 구리·코발트 광산 지분을 25% 인수했다.

또 전기차 제조 업체 니오(NIO)와 배터리 교환 기업을 합작 설립해 교환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고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자율주행 트럭을 개발하는 중국 인셉티오와 합작사를 설립했다.

2021년 11월에는 융타이하이테크의 25% 지분을 인수했다. 융타이하이테크는 불소화리튬, 헥사플루오르인산리튬 등 2차 리튬전지 전해일과 관련 핵심 원자재를 생산하는 배터리 소재 업체이다.

CATL는 리튬, 인산, 철, 마그네슘알루미늄합금, 니켈, 음극재, 생산장비, 에너지저장장치, 충전소, 완성차, 배터리 교환, 자율주행 등 다운스트림부터 업스트림까지 전체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노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