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플레이시장은 급변 중, 손보익 LX세미콘 신사업과 사업재편으로 대응

“완제품업계 종사자보다 트렌드를 잘 읽고 앞서야 성공할 수 있다.”

손보익 LX세미콘 대표이사 사장은 예전 LG전자 전무 시절 한 강연에서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회사)의 성공 키워드를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사장이 시장 변화 대응능력을 놓고 시험대에 올랐다.

LX세미콘의 주력상품은 디스플레이구동칩(DDI)으로 전체 매출의 90% 가까이 차지한다. 그런데 디스플레이구동칩의 전방산업인 디스플레이패널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2021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LCD패널 가격이 역대 최고 수준을 나타냈는데 하반기부터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 패널 제품인 55인치 TV용 LCD패널을 예로 들면 7월 상반월 227달러에서 11월 상반월 140달러로 36% 하락했다.

디스플레이패널의 가격은 디스플레이구동칩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코로나19로 폭발했던 전자기기 수요가 진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겹치면서 LCD패널 가격의 하락세가 일시적일지 아니면 장기화할지 쉽게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디스플레이구동칩 비중이 높은 LX세미콘의 매출구조를 고려하면 손 사장이 패널시장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손 사장은 LX세미콘 디스플레이구동칩사업의 제품 구성비에서 올레드용 제품의 비중을 높이는 구조개편을 통해 일찍부터 LCD패널업황의 급변에 대비해 왔다. 동시에 모빌리티와 메타버스에서 LX세미콘의 신사업도 물색하고 있다.

업황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워 LX세미콘의 실적 체급을 높이고 더 나아가 디스플레이구동칩 중심의 사업구조 자체를 혁신해 트렌드보다 앞서 나가려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 LX세미콘 모빌리티와 메타버스 호시탐탐, 손보익 새 성장동력 찾는 발걸음 빨라

LX세미콘은 LX그룹이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해 독립한 뒤 가장 시선을 모으는 계열사로 꼽힌다. 새 동력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여럿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손보익 사장은 크게 모빌리티시장과 메타버스에서 LX세미콘의 신사업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X세미콘은 LX그룹의 계열분리 당시 전력관리반도체,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 배터리관리시스템용 반도체(BMS IC) 등 전장용 반도체를 신사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최근 LX세미콘은 연구개발 담당조직인 ‘PM개발담당’을 신설했다. 전력관리반도체 제품 개발을 위한 조직이다. 손 사장이 신사업 육성계획을 발빠르게 추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LX세미콘은 2021년 10월 LG화학이 보유한 일본 방열소재회사 FJ머티리얼즈 지분 29.98%를 68억 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반도체 설계회사의 소재회사 지분 인수에 시장에서는 다소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LX세미콘 관계자는 “전기차나 신재생에너지 영역에서 장기적으로 사업기회를 모색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다”고 설명했다.

손 사장은 전장용 반도체와 방열소재를 묶어 전장 관련한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도 있다.

LX세미콘은 지난 9월 마이크로소프트와 3D비행시간측정(ToF) 센싱시스템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메타버스시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3D비행시간측정 센싱은 기기에서 쏜 레이저가 사물에 반사돼 되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사물과 기기와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증강현실안경 등 다양한 확장현실기기에 활용된다.

그런데 이 기술은 자율주행차용 카메라의 필수기술이기도 하다. 자율주행차용 카메라의 대표적 솔루션인 라이다(LiDAR)가 3D비행시간측정 센싱모듈로 만들어진다.

손 사장이 멀리는 메타버스 신사업과 모빌리티 신사업의 시너지효과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전장용 반도체는 차량의 전장화 추세가 가속화할수록 더욱 많은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는 분야다.

메타버스는 최근 메타(옛 페이스북), 알파벳(구글 모회사),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 기술회사들이 시장 진입에 나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애플이 2022년 하반기 메타버스용 확장현실(XR)기기의 출시를 검토하는 등 시장이 본격 개화를 앞둔 것으로 파악된다.

◆ LX세미콘 디스플레이구동칩 올레드 확대, 손보익 실적 체력 더 튼튼히

손보익 사장은 LCD용 디스플레이구동칩의 매출비중을 낮추고 올레드용 디스플레이구동칩의 비중을 높이는 제품 구성비 개편작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LX세미콘은 2020년 말 기준으로 매출에서 올레드용 디스플레이구동칩이 차지하는 비중이 42%로 집계됐다. 손 사장이 LX세미콘을 이끌기 전인 2016년 12%에서 3배 이상 늘었다.

손 사장은 앞으로 올레드용 디스플레이구동칩의 매출비중을 더욱 확대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LX세미콘의 최대 고객사인 LG디스플레이가 올레드패널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하는 데 드라이브를 거는 중이기 때문이다.

최근 트렌드포스 등 시장 조사기관들은 IT기기나 TV 등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전자기기들의 수요가 머지않아 둔화할 것이라는 예상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코로나19로 폭발했던 전자기기 수요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손 사장의 올레드용 디스플레이구동칩 확대전략은 디스플레이패널 수요가 진정되는 시기에 더욱 성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올레드패널은 LCD패널보다 같은 크기의 패널 블록 안에 더 많은 수의 디스플레이구동칩을 필요로 한다.

손 사장은 올레드용 디스플레이구동칩 수요를 적극적으로 공략하면서 LX세미콘의 디스플레이구동칩 판매량 감소를 최대한 막아내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022년 글로벌 디스플레이시장에서 패널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LX세미콘의 디스플레이구동칩 출하량이 TV용은 3%, IT기기용은 15%씩 오히려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게다가 올레드용 디스플레이구동칩은 LCD용 칩보다 단가가 비싸다. 패널 구동기술 외에 영상 보정기술이 별도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손 사장은 올레드용 디스플레이구동칩의 판매비중을 확대하면서 LX세미콘의 수익성 개선도 바라볼 수 있는 셈이다.

LX세미콘은 2020년 연결기준 영업이익 942억 원을 거뒀다. 증권업계에서는 LX세미콘이 2021년 영업이익 3667억 원, 2022년 3752억 원을 낼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영업이익 급증세에는 글로벌 파운드리 공급능력 부족에 따른 디스플레이구동칩 가격 고공행진뿐만 아니라 올레드용 디스플레이구동칩 비중을 확대하는 손 사장의 전략도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LX세미콘 주가 상승세 주춤, 손보익 실적과 신사업 모두 잡아야

최근 1년 동안 LX세미콘 주가의 변화를 살펴보면 2020년 12월 4만6250원으로 최저가를 보인 뒤 2021년 7월 최고가 12만9700원을 나타내는 등 한동안 추세적 상승세를 이어갔다.

시장이 실적 호조세에 뜨겁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LX세미콘은 2021년 상반기 영업이익 1548억 원을 거뒀는데 2020년 상반기 210억 원을 7배 이상 웃돈다.

그러나 이후 LX세미콘 주가는 2021년 10월 한때 9만2500원까지 떨어지는 등 추세적 상승세에 제동이 걸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의 전자기기 수요 둔화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며 LX세미콘의 디스플레이구동칩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본격적으로 퍼지던 시점이다.

현재 LX세미콘 주가는 다시 11만 원대를 회복했다. 2021년 순이익 전망치를 기반으로 한 주가 수익비율(PER) 기준으로 6.5배 안팎이다.

동종회사인 대만 노바텍의 7배보다는 낮지만 대만 하이맥스의 4.5배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디스플레이구동칩시장에서 노바텍이 점유율 1위, LX세미콘이 3위, 하이맥스가 4위에 올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LX세미콘의 주가 수익비율이 둘 사이에 위치했다는 것은 과도한 고평가나 저평가가 아닌 LX세미콘의 실적 수준에 걸맞은 평가로 파악된다.

증권사 연구원들은 LX세미콘 주가가 레벨업하기 위한 다음 모멘텀으로 실적보다 최근 추진하기 시작한 신사업들의 가시적 성과가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다만 이런 분석은 손보익 사장이 LX세미콘의 실적 체급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 전제다. 그가 디스플레이시장의 변화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데 실패한다면 시장의 반응도 차가워질 공산이 크다.

손 사장은 LX세미콘이 계속 이전보다 높은 수준의 실적을 내도록 하면서 신사업에서 성과도 보여야 한다는 이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손보익은 시스템반도체 전문가, 오너 구본준 신뢰는 힘이자 부담

손보익 사장은 30년 이상 시스템반도체 관련사업에 종사한 기술 전문가다. LG전자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 산하의 SIC(시스템반도체)센터장과 SIC연구소장을 지내기도 했다.

특히 LX세미콘의 사업 영역이기도 한 아날로그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LX그룹의 오너 구본준 회장은 손 사장이 지닌 시스템반도체 전문가로서 면모를 일찍부터 높이 평가했다.

구본준 회장은 LG전자 대표이사를 지내던 2010년경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강화하는 것을 보면서 삼성전자가 자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LG전자의 자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개발 임무를 당시 상무였던 손보익 사장에게 맡겼다.

LG전자의 자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개발 프로젝트는 스마트폰사업이 장기 부진을 겪으며 더는 진행할 이유가 사라져 폐기됐다.

그러나 손 사장은 그룹의 반도체계열사 실리콘웍스, 현재 LX세미콘의 대표이사로 옮겨 계속 중용됐다.

손 사장은 2021년 LX그룹의 계열분리를 앞두고 진행된 2020년 LG그룹의 연말 임원인사를 통해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LX그룹 지주사 LX홀딩스 산하의 5개 계열사 대표이사들 중 사장은 LX판토스의 최원혁 대표와 손보익 사장뿐이다. 그룹의 중추로 여겨지는 LX인터내셔널(옛 LG상사)조차 윤춘성 대표의 직급은 부사장이다.

손 사장을 구 회장이 깊이 신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 회장은 LG반도체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빅딜정책에 따라 현대전자에 흡수합병될 때도 회사의 매각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등 이전부터 반도체사업에 애착을 보여 왔다. 이런 애착은 LX세미콘을 향한 관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구 회장은 LX홀딩스 산하 계열사들 중 LX세미콘에서만 미등기임원을 지내며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LX세미콘 서울 양재캠퍼스에 집무실도 마련했다.

LX세미콘은 LX그룹이 LG그룹에서 독립하던 당시부터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이 될 계열사로 여겨졌다. 그러나 전자업계 일각에서는 LX세미콘이 디스플레이구동칩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우려하는 시선도 나온다.

손 사장은 업계의 우려를 씻고 오너가 반도체사업에 보이는 애착과 기대를 실현해 줄 사람으로서 신뢰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는 손 사장이 신사업을 정력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든든한 힘이다. 동시에 반드시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부담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손 사장은 LX세미콘의 실적 측면에서 구 회장의 기대를 충족해가고 있다.

손 사장이 신사업을 통해서도 구 회장의 기대에 부응하게 되면 시장이 LX세미콘을 보는 시선도 더욱 뜨거워져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