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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정돈 사이, 러시아 지휘자들

김광현 777khkim@hanmail.net 2014-06-09  10: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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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정과 정돈 사이, 러시아 지휘자들  
▲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좌)와 마리스 얀손스(우)

4년을 기다려 온 월드컵이 1주도 채 안 남았다. 2010년 사상 첫 원정 16강의 쾌거를 달성했던 우리 국가대표팀이 이번에도 두 대회 연속 16강에 도전한다. 언론들은 월드컵 조추첨이 있었던 작년 12월 이후 앞을 다투어 우리가 조별예선에서 상대하게 될 러시아와 알제리, 그리고 벨기에의 전력분석이 한창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우리도 지금부터 3주간 차례로 이 3개국의 음악에 관한 것들을 먼저 알아보자. 이 나라 출신의 어떤 지휘자가 있는지, 어떤 곡들이 있는지 말이다.

먼저 첫 번째로 상대할 국가. 러시아다. 먼저 축구 이야기다. 구 소련이 붕괴된 이후 옛 소련의 국가들은 각자 나라의 이름으로 유럽 혹은 아시아 월드컵 예선에 참가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가용 선수의 폭이 적기 때문에 예전보다 월드컵이나 유럽선수권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국내리그가 활성화되어 있고 다른 유럽 빅리그와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도가 잘해야 8강 정도의 성적을 예상하고 있다.

솔직히 예전에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월드컵에 참가했을 당시 8강은 기본적으로 들어갔다. 그 유명한 레프 야신이라는 전설의 골키퍼도 활동했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다른 동유럽 국가들, 예를 들어 크로아티아나 체코 혹은 이번에 조별예선을 통과한 보스니아같은 나라들은 구 소련이 아니었으니 혼동하시지 마시라.

이번 월드컵의 러시아는 딱히 내세울 만한 세계적 스타는 없다. 그러나 국내리그출신 선수들의 끈끈한 조직력과 명장 파비오 카펠로의 지략으로 이번 대회 최소 16강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축구에서 러시아는 스타가 없지만 음악에서 러시아는 다르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없으면 19세기 낭만주의 이후의 클래식 음악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러시아는 최고의 스타 작곡가들과 연주자들, 지휘자들의 고향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한 사람인 차이코프스키부터 시작하여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에프, 림스키-코르샤코프를 비롯한 러시아 5인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음악인들이 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러시아가 낳은 최고의 지휘자들을 이야기해보자.

러시아의 지휘자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쉬운 마에스트로가 있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러시아 출신 지휘자들의 스승인 ‘일리야 무신’이다.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교수이자 지휘자였다.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므라빈스키와 함께 쌍벽을 이뤘던 지휘계의 전설이다.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을 이끌고 연주활동으로 명성을 얻었다면 무신은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의 교육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유리 테미르카노프, 루돌프 바르샤이, 세미안 비치코프, 그리고 뒤에 언급할 발레리 게르기에프 등은 세계 최고의 지휘자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바로 언급했던 므라빈스키다. 그는 레닌그라드 필을 이끌고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5,6번을 런던에서 녹음했다. 당시 카라얀 등의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연주에 현혹되어 조금은 차이코프스키를 지루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서방 음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감성적 군더더기 없이 오직 음악의 구조와 음향, 음악적 긴장감에 충실한 통일적이면서도 입체적이며 심지어는 아주 빠른 템포의 파격적 연주였기 때문이다.

‘므라빈스키는 악보를 깨끗하게 핥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평생 레닌그라드 필을 엄격하게 조련했다. 또 서유럽으로도 연주여행을 자주 다녔다. 므라빈스키는 러시아 음악뿐 아니라 베토벤이나 브람스 등의 정통 서유럽 레파토리도 즐겨 지휘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유명한 5번 교향곡을 초연한 지휘자도 므라빈스키이다.

므라빈스키를 잇는 러시아 지휘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세대를 건너뛰어서 우리가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그의 적자이자 라이벌이 바로 발레리 게르기에프와 마리스 얀손스이다. 얀손스는 러시아가 아니라 라트비아 출신이지만 구 소련 지역 출신이다.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을 일 년에 수도 없이 지휘하고 있는 이 두 지휘자는 모두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각기 다른 스승 밑에서 공부했다. 이들은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얀손스는 런던 필의 지휘자였는데 게르기에프는 런던 심포니를 맡았다는 재미있는 차이점도 있다.

게르기에프는 카라얀 콩쿠르 이후 러시아로 돌아와서 레닌그라드의 키로프 오페라 극장을 맡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으며 러시아 최고 극장으로 성장시켰다. 마치 므라빈스키가 과거 레닌그라드 필과 그랬던 것처럼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러시아 레파토리를 ‘가장 러시아적으로’ 소개했으며, 말러의 교향곡이나 베르디, 바그너의 오페라까지도 섭력하고 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로 꼽힌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뿐 아니라 런던과 밀라노, 잘츠부르크, 뉴욕, 빈을 오가며 거의 매일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그가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실황음반을 들으며 큰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다. CD 겉표지에서 오케스트라명을 확인하기 전까지 필자는 ‘무슨 러시아 오케스트라가 이렇게 잘하나’하고 생각했다.

마리스 얀손스는 명지휘자 아르비드 얀손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콩쿠르 이후 므라빈스키의 부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는 노르웨이의 오슬로 필을 맡아 뛰어난 음반들을 녹음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오케스트라를 일약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키웠다. 이후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들의 러브콜을 망설이지 않고 수락했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녹음을 통하여 얀손스와 게르기에프를 비교해 보면 거친 활화산같이 언제 터질지 몰라 계속 끓어오르는 열정 넘치는 게르기에프와 달리 얀손스는 구조적으로 잘 계산되고 정돈되었으며 차분한 사운드를 들려 준다.

솔직히 필자는 얀손스의 브람스 교향곡 음반을 듣고 어떤 독일 지휘자의 음반보다도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베를린에서 그의 공연을 각기 다른 프로그램으로 두 번이나 관람했던 적이 있다. 당시 그가 지휘하는 라벨을 듣고 어떻게 러시아 지휘자가 프랑스 음악을 저렇게 해석할까 하고 무척 감탄했다. 물론 베르디 레퀴엠 공연을 보았을 때 실망을 금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토록 세계적 지휘자를 배출한 러시아가 축구에서 아이러니하게도 2008년 히딩크의 성공 이후 계속 외국인 감독에게 지휘를 맡기고 있다.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불리우는 이탈리아 출신 파비오 카펠로가 러시아의 월드컵을 과연 어떤 성적으로 끝마치게 할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우리나라와 첫 경기를 마친 러시아가 마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듣고 난 후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이유는 다들 아실 거라 믿는다. 

지휘자 김광현은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였다. 대학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되어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서울대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남서독일 콘스탄츠 관현악단,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원주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하였다. 현재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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