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늘어나면서 호텔신라가 코로나19 위기에서 탈출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면세점 굴기가 호텔신라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호텔신라는 과연 다시 화려한 봄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호텔신라를 이야기하면서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을 뺴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이 사장은 호텔신라 대표이사가 된 뒤 7년 동안 삼성그룹 오너 일가 가운데 이례적으로 매년 주주총회에서 의사봉을 잡고 있다.

리틀 이건희라고 불리는 경영능력에 막대한 재산까지 상속받은 이 사장은 호텔신라를 어디로 끌고 갈까? 또 이 사장은 과연 호텔신라 하나만으로 만족할까?

◆ 호텔신라 면세점사업, 중국 '면세점 굴기' 앞에

면세점사업이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아난 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되돌아가기엔 커다란 장애물이 하나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의 면세점기업 CDFG는 연매출 기준으로 2019년까지만 해도 4위였지만 1년 만에 1위로 뛰어올랐다. 어떤 시장을 보더라도 이렇게 단숨에 4위 기업이 1위로 뛰어오른 예를 찾기는 어렵다. 중국 ‘면세점 굴기’의 위력을 보여주는 예시다.

물론 이 와중에 호텔신라는 3위를 지켜냈다. 1위가 바뀌었을 뿐이지 세계 면세점 시장에서 호텔신라 면세점의 위상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내면세점을 찾아주는 중국 보따리상, 따이공들의 힘에 기댄 바가 컸다.

문제는 중국의 면세점 굴기가 이 따이공들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1인당 국민소득을 내수로 돌리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내국인 면세가 가능한 하이난 면세점의 면세한도 상향이다.

하이난 면세점의 1인당 면세한도는 2016년 8천 위안에서 1만6천 위안으로, 2018년 1만6천 위안에서 3만 위안으로, 2020년 3만 위안에서 10만 위안으로 늘어났다. 5년 사이에 무려 12배가 넘게 늘어난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변화는 중국 내에서 따이공의 세력을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중국인들에게 여러 명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추가된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정부가 중국인들의 중국 면세점 이용을 장려하고 있다는 점, 최근 중국인들이 보이고 있는 지독한 국수주의 성향 등을 살피면 따이공들이 설 자리는 계속해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따이공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면세점들로서는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나마 한국 면세점이 중국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가격 경쟁력이나 브랜드 이미지 역시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두 나라 인터넷 면세점의 주요 인기 화장품 면세가격은 한국이 중국보다 한국 화장품은 약 11%, 수입 화장품은 약 21% 저렴하다. 

여전히 가격 경쟁력은 상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2년 전과 비교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9년만 해도 두 나라의 가격 차이는 37%, 24%였다. 2년 만에 37%가 11%로, 24%가 21%로 줄어든 것이다. 

브랜드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한국 면세점업체들이 따이공에 너무 의존해왔던 반작용으로 한국 면세점 브랜드들의 고급 이미지가 손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루이비통이 한국 면세점업체들의 시내면세점에서 철수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때 루이비통이 내걸었던 이유가 바로 ‘브랜드 고급화 전략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이 브랜드 고급화 전략은 핑계고 루이비통이 전략을 중국 면세점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바꿨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루이비통의 의도가 둘 중 어떤 것이든 우리나라 면세접업체들로서는 곤란한 이야기다.

물론 호텔신라의 면세점사업이 지금 당장 위기에 처해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중국 면세점보다 가격경쟁력, 바잉파워에서 앞서있는 상황이고 코로나19의 종료도 눈앞에 두고 있다.

심지어 이부진 사장은 이미 한차례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 사장을 직접 만나 설득해 호텔신라 면세점에 입점시킨 경력이 있다. HDC산업개발과 협력해 용산시내면세점 사업권을 따낸 것도 이부진 사장이다. 

이부진 사장은 아직 호텔신라가 중국 면세점업체들보다 경쟁우위에 있는 이 시간을 잘 활용해서 브랜드 고급화 전략, 소프트파워 강화 등을 통해 중국의 면세점 굴기를 극복할 능력이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 ‘리틀 이건희’에게 호텔신라는 너무 작다

하지만 그다지 장밋빛이라고는 할 수 없는 면세점시장 전망, 그리고 면세점 매출이 전체 매출의 91%를 차지하고 있는 호텔신라를 볼 때 과연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만으로 경영자로서 만족할까와 관련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이부진 사장은 갓 마흔을 넘겼던 2010년, 대표이사도 아니고 전무의 몸으로 당시 몸담고 있던 에버랜드의 매출을 10년 안에 4배 넘게 늘리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인물이다. 

2015년에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둘러싸고 경합에 나설때에는 “성공하면 공은 사원들에게 돌리고 실패하면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전면에 나서며 결단력과 책임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호텔신라의 대표이사가 된 이후로는 무려 7년 동안, 오너일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직접 의사봉을 잡고 있다.

아버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성격상으로나, 경영 스타일로나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해서 ‘리틀 이건희’라고 불릴 정도의 인물이 바로 이부진 사장이다.

이런 이부진 사장이 앞으로 펼쳐질 경영 커리어에 호텔신라 하나만을 달랑 올려놓고 있다고 상상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호텔신라를 넘어선, ‘삼성그룹’에서 이부진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삼성그룹에서 중책을 맡아 오빠인 이재용 부회장을 보조하게 될까, 아니면 호텔신라를 들고 삼성그룹에서 나와 별도의 사업을 하게 될까, 더 나아가, 호텔신라 뿐 아니라 삼성그룹의 여러 가지 사업들을 더 추가해서 계열분리를 이뤄내고 거기에 그만의 사업을 더해, ‘이부진의 그룹’을 만들게 될까?

◆ 이인희와 이명희가 걸었던 ‘삼성가 여성’의 길, 이부진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를 뿌리로 하는 ‘범삼성가’는 삼성그룹 오너일가는 딸을 대우하는 방법에서 유교적 장자상속에 익숙한 우리나라 대부분 재벌과 매우 다른 면모를 많이 보여왔다. 

이병철 창업주에게는 다섯 명의 딸이 있었다. 

둘째 딸 이숙희씨는 LG가문으로 출가했다. 셋째딸 이순희씨와 넷째딸 이덕희씨는 경영에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첫째딸과 막내딸은 달랐다.

이병철 회장은 첫째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에게 삼성그룹의 제지사업을 전담하던 전주제지를 물려줬다. 이 고문은 전주제지의 이름을 한솔제지로 바꾸고, 금융, 통신사업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전주제지를 한솔그룹으로 만들어냈다. 

이인희 고문의 경영능력은 아버지 이병철 창업주가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아들들이 속을 썩여서 후계자 문제로 골치가 아플 때마다, 이병철 창업주는 “인희가 남자였으면 바로 그룹을 맡겼을텐데...”라고 한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한솔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인희 고문의 아들들, 조동혁 한솔그룹 명예회장, 조동만 한솔아이글로브 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은 이인희 고문을 ‘어머니’가 아니라 ‘고문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인희 고문의 카리스마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막내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원래 경영에 뜻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병철 창업주가 “이제는 여자도 사회활동을 해야한다”며 삼성그룹의 백화점사업부를 맡겼고, 1997년에는 아예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해 신세계그룹을 설립했다. 

이명희 회장은 신세계그룹을 순수 유통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10대 그룹에 소속될 정도로 거대한 그룹으로 키워냈다. 

이명희 회장 역시 카리스마의 대명사로 통한다. 아들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아내 고현정씨와의 이혼으로 방황하고 있을 때 정신차리라면서 집(용산)에서 양재 이마트까지 뛰어서 출근하라고 시켰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후 상속문제는 현재 거의 해결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물산의 지분은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자식들이 법정상속분대로 나눠가졌지만 삼성전자 지배에 중요한 삼성생명 지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절반을 몰아줬다.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부진 사장에게 집중해 본다면, 그 합의는 훗날 있을 계열분리에 대한 ‘약속’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부진 사장은 그들만의 그룹을 만들었던 고모들과 비교해 더 다양한 경영경험, 그리고 더 많은 상속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범삼성가’의 여성 경영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부진 사장의 경영능력, 성격을 고려했을 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부진 사장이 삼성그룹에서 나와 ‘이부진의 그룹’을 만들 가능성은 매우 커보인다.

◆ '리틀 이건희'는 '이부진의 그룹'을 어떻게 만들어나갈까

이명희 회장의 자녀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그룹 총괄사장 이야기 역시 이부진 사장의 미래를 추측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신세계그룹은 끊임없이 계열분리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의 ‘남매 분리경영’체제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그룹이다.

남매 공동경영이면서도 이마트의 경영은 오빠 몫, 백화점과 면세점의 경영은 여동생 몫으로 확실하게 분리돼있다. 이 ‘분리경영’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2018년에는 광주신세계가 대형마트 사업부문을 이마트에 넘기기도 했다.

이부진 사장이 고종사촌동생인 정유경 총괄사장과 비슷한 길을 걸을 가능성도 있다. 

이부진 사장이 먼저 호텔신라를 반석위에 올려놓고, 그리고 그 호텔신라를 기반으로 호텔신라의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삼성그룹의 다른 사업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아나가고, 궁극적으로는 그 중책을 기반으로 ‘이부진의 그룹’을 만들어내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부진 사장이 과연 범삼성가의 여성경영인 독립의 역사를 계속 써나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채널Who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