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구본무 LG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구본무는 1945년 2월 1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LG그룹 명예회장인 구자경의 장남이다.

미국 애슐랜드대학교를 졸업했다. LG화학 심사과 부장으로 그룹에 입사해 그룹 부회장을 거쳐 그룹 회장에 올랐다. 현재 지주회사 LG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그룹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시장의 판을 흔드는 '게임 체인저'형 CEO라고 평가된다.

골프와 탐조를 즐긴다.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관리자들과 비공식 모임을 하는 것을 즐기지만 때론 필요에 따라 단호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구본무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백조'에 비유한다. 그만큼 겉으로는 유유자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경영해 조용한 리더십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2003년 지주회사를 출범시킨 뒤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하는 일과 대장을 정하는 일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측근들은 "구 회장이 계열사들의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세세한 지시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전하고 있다.

털털한 성격이지만 무엇이라도 대충대충 하는 것을 싫어해 틈만나면 완벽함을 강조해왔다.

2006년 새해인사모임에서 "고객가치 중시, 체계적인 미래 준비, 완벽함의 추구가 LG의 문화로 체질화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2009년 LG그룹 고유의 ‘경영혁신에 대한 지식공유의 장’인 LG스킬올림픽에서도 “그 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창의와 자율에 기반한 한 차원 높은 혁신을 통해 조직 전체가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정신이 충만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본무는 뚝심있다고 평가받는다. 1991년부터 배터리에 투자해 일본 선발업체에 뒤지자 그룹 내에서 사업을 접자는 얘기도 나왔으나 포기하지 말고 연구개발에 집중하라며 직원들을 북돋았다. 2005년에도 배터리 사업에서 2천억 원에 이르는 손실을 냈지만 끈질기게 투자를 이어갔다.

그의 뚝심과 결단력은 큰 성과를 냈다. LG화학은 GM의 쉐보레 볼트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이외에도 포드, 현대기아차, 르노, 중국 상하이자동차, 코로스, 아우디 등 20여 개 주요 완성차업체에 공급하고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2015년에는 세계 1위 ESS 기업인 미국 AES에 2020년까지 최소 1기가와트아워(GWh)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통신사업부문에서도 LG유플러스의 LTE(4세대 이동통신) 구축에 과감히 투자해 통신업계에서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탈바꿈시켰다고 평가받는다. 구본무의 과감한 투자 결단으로 LG유플러스는 3년 소요가 예상됐던 LTE 전국망 구축을 9개월 만에 완료했다.

삼성전자가 2013년 포기했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TV용 OLED 패널은 전세계에서 LG전자가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OLED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구본무는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하는 지론을 지니고 있다. 이는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정도경영을 배운 영향 때문이다. 사회에서 의인(義人)으로 추앙받은 사람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고 GS그룹과도 동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현장경영을 종종 펼치곤 해 2015년 5월 중국 난징의 계열사 사업장을 직접 돌아보기도 했다.

그룹계열사 CEO들을 관리하는 방식도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안성덕 전 LG스포츠단 사장은 구본무의 리더십에 대해 "덕담을 나누다가도 반드시 사업의 정곡을 꿰뚫는 질문 한 두개를 던진다"며 "CEO들을 부리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5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1979년 LG화학 유지총괄본부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1980년 LG전자 기획심사본부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1년 LG전자 이사로 승진했고 1984년 LG전자 일본 동경주재 상무를 거쳐 이듬해 그룹 회장실 전무, 1986년엔 회장실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1989년 LG그룹 부회장에 오르면서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1995년 LG그룹 회장에 올랐고 2003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LG가 출범하면서 지주회사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구본무는 1995년에 취임한 뒤 올해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6월에 열리는 전략보고회를 직접 챙겨오고 있다.

IMF사태를 겪으며 반도체 사업을 매각하고 이후 2000년대에 들어 GS·LS그룹을 계열 분리했다. 이후 ‘혁신’과 ‘실행’을 내세우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구본무는 4조 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R&D 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조성하고 있으며 2020년 최종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 학력

1964년에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데 이어 1968년에 미국 애슐랜드대학교에 입학해 1972년에 졸업했다.

그 뒤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 가족관계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손자다. 아버지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구인회 회장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경남 진양군의 선비집안인 하순봉씨의 3남3녀 중 장녀인 하정임씨다. 하정임씨는 2008년 1월9일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래로 동생이 다섯이 있다. 남동생으로는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겸 KBO 총재와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여동생으로는 구훤미씨와 구미정씨가 있다.

부인 김영식씨는 김태동 전 보사부 장관의 딸이다. 김영식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닌 민화작가다.

구본무는 구연경씨, 구연수씨 두딸을 두고 있다. 2004년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씨를 양자로 입적했다.

구광모씨는 현재 LG 상무로서 시너지팀에서 그룹 주력사업의 시너지 활동을 강화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구 상무는 구본무의 뒤를 이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후계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 상훈

1993년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6년에는 산학협동상을 받았다.

2009년과 2012년 매경이코노미에서 올해의 CEO로 선정했다.

◆ 상훈

1993년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6년에는 산학협동상을 받았다.

2009년과 2012년 매경이코노미에서 올해의 CEO로 선정했다.

어록


“우리 앞에 놓인 냉엄한 현실과 직면한 위기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할 때다. LG가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산업 구조의 변화와 경쟁의 양상을 정확히 읽고 우리의 사업 구조 및 방식을 면밀히 파악해 근본적으로 그리고 선제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2016/01/04 신년사에서)

“해내고야 말겠다는 마음가짐과 뼈를 깎는 실행의 과정이 없다면 우리가 해야 할 사업 구조의 고도화와 사업 방식의 혁신을 이룰 수 없다. 집념과 열정으로 마지막 1%까지 끈질기게 철저히 실행하자.” (2016/01/04 신년사에서)

“마곡 사이언스파크는 LG 미래가 달린 중요한 현장이므로 최선을 다해 조성하고 마무리도 끝까지 잘해야 한다. 특히 안전과 품질에 대해 철저히 해달라.” (2015/12/16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위치한 LG사이언스파크 건설현장을 방문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열정적으로 도전했던 여러분의 힘찬 기운을 느낄 수 있어 무척 흐뭇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러분은 우리나라와 지구촌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의미 있는 활동을 했다.” (2015/11/05 LG글로벌챌린저 시상식에서 대학생들과 만나)

“세상의 변화와 발전속도가 빨라진 만큼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도 분명히 많을 것.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뜨거운 열정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변화를 이끌어 달라. LG는 앞으로도 의지를 지니고 준비된 젊은이들에게 체험과 배움의 기회를 계속 제공할 것이다.” (2015/11/05 LG글로벌챌린저 시상식에서 대학생들과 만나)

“협력 관계를 더욱 확대해 독일의 친환경 에너지 및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 LG가 더 많이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5/10/14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을 방문한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에게 LG의 첨단, 친환경 제품과 기술들을 직접 안내하면서)

“어려운 가운데 성장의 기회는 분명히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 기회를 잡고 한번 잡은 기회는 반드시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중국 경기 둔화와 함께 더욱 커지고, 글로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등 경영 환경이 급속히 어려워지고 있다. 냉엄한 현실을 인식하고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 (2015/10/06 10월 임원세미나에서)

“남보다 앞서 방향을 정하고 한발 먼저 움직여야 한다." (2012/01/02, 신년사에서)

“상황이 어려울수록 실력을 갖춘 기업은 빛을 발하게 된다.” (2008/10/07 임원세미나에서 금융시장 혼란으로 인한 세계 경제환경 변화를 언급하며)

“학창시절에 자신의 비전을 세우고, 창의와 승부근성으로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젊은이가 LG가 원하는 인재의 참모습이다.“ (2004/06)

“아무리 경쟁이 치열해도 훌륭한 R&D 성과를 바탕으로 한 기업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2003/10)

“일등 LG는 구호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2003/09)

“깨끗하고 건전한 기업만이 오래도록 존경 받는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다.” (2003/01)

"젊음의 특권인 열정과 패기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세계 최고에 도전하라. 이것이 LG가 생각하는 인재의 모습이자 우리나라의 미래를 끌고 갈 원동력이다" (2013/11/07 'LG 글로벌챌린저' 시상식에서)

◆ 평가

시장의 판을 흔드는 '게임 체인저'형 CEO라고 평가된다.

골프와 탐조를 즐긴다.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관리자들과 비공식 모임을 하는 것을 즐기지만 때론 필요에 따라 단호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구본무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백조'에 비유한다. 그만큼 겉으로는 유유자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경영해 조용한 리더십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2003년 지주회사를 출범시킨 뒤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하는 일과 대장을 정하는 일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측근들은 "구 회장이 계열사들의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세세한 지시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전하고 있다.

털털한 성격이지만 무엇이라도 대충대충 하는 것을 싫어해 틈만나면 완벽함을 강조해왔다.

2006년 새해인사모임에서 "고객가치 중시, 체계적인 미래 준비, 완벽함의 추구가 LG의 문화로 체질화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2009년 LG그룹 고유의 ‘경영혁신에 대한 지식공유의 장’인 LG스킬올림픽에서도 “그 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창의와 자율에 기반한 한 차원 높은 혁신을 통해 조직 전체가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정신이 충만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본무는 뚝심있다고 평가받는다. 1991년부터 배터리에 투자해 일본 선발업체에 뒤지자 그룹 내에서 사업을 접자는 얘기도 나왔으나 포기하지 말고 연구개발에 집중하라며 직원들을 북돋았다. 2005년에도 배터리 사업에서 2천억 원에 이르는 손실을 냈지만 끈질기게 투자를 이어갔다.

그의 뚝심과 결단력은 큰 성과를 냈다. LG화학은 GM의 쉐보레 볼트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이외에도 포드, 현대기아차, 르노, 중국 상하이자동차, 코로스, 아우디 등 20여 개 주요 완성차업체에 공급하고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2015년에는 세계 1위 ESS 기업인 미국 AES에 2020년까지 최소 1기가와트아워(GWh)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통신사업부문에서도 LG유플러스의 LTE(4세대 이동통신) 구축에 과감히 투자해 통신업계에서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탈바꿈시켰다고 평가받는다. 구본무의 과감한 투자 결단으로 LG유플러스는 3년 소요가 예상됐던 LTE 전국망 구축을 9개월 만에 완료했다.

삼성전자가 2013년 포기했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TV용 OLED 패널은 전세계에서 LG전자가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OLED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구본무는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하는 지론을 지니고 있다. 이는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정도경영을 배운 영향 때문이다. 사회에서 의인(義人)으로 추앙받은 사람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고 GS그룹과도 동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현장경영을 종종 펼치곤 해 2015년 5월 중국 난징의 계열사 사업장을 직접 돌아보기도 했다.

그룹계열사 CEO들을 관리하는 방식도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안성덕 전 LG스포츠단 사장은 구본무의 리더십에 대해 "덕담을 나누다가도 반드시 사업의 정곡을 꿰뚫는 질문 한 두개를 던진다"며 "CEO들을 부리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 기타

재계에서 소문난 야구광으로 LG트윈스 전 구단주다.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에게 구단주 자리를 물려준 지금도 열정은 식지 않아서 1년에 몇 번은 잠실 야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한다.

한 때 LG전자에 출시되는 핸드폰은 구본무의 지휘로 만들어진다는 의미에서 ‘회장님폰’ 또는 ‘구본무폰’이라고도 불렸다.

한 분야에 '필(feel)'이 꽂히면 마니아 수준이 될 때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는 성격이다. 그래서 당구 점수가 무려 700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날아가는 모습만 보고 이름을 맞출 수 있는 새가 150마리가 넘는다고 하며 이를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저서로 <한국의 새>(2000, LG상록재단)가 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절친하다. 이 전 부총리와 가끔 만나 술을 마시고 동반 해외여행도 곧잘 다녔다고 한다. 이 전 부총리는 2008년 초 구본무의 모친인 하정임씨가 별세했을 때 하루도 빠짐없이 장례식장을 지켰다.

SBS CNBC와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 한국뉴욕주립대가 2013년 6월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재벌총수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도 조사를 진행해 발표한 결과 구본무가 3위에 올랐다.

SBS소셜미디어팀이 트위터와 온라인 웹사이트 등을 대상으로 3년 동안 구본무에 대한 연관어를 조사해봤더니 야구, 회장님폰, 대인배, 치밀 등이 나왔다. 국민들은 구본무에 대해 엄격한 구씨 가문의 가풍에 영향받아 가부장적, 유교적, 보수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구본무는 1등 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그는 2002년 신년사에서 1등이라는 말을 열세 번이나 썼다.

구본무의 자택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과 마찬가지로 서울 한남동에 있다.

구본무는 2015년 3분기까지 급여 28억4300만 원, 상여 15억4800만 원 등 모두 43억910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이는 2014년 같은 기간보다 9억 원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구본무는 2015년 1분기 25억 원에 가까운 보수를 받아 재계에서 가장 많은 보수를 받았다.

2015년 12월29일 재계 정보 사이트인 재벌닷컴에 따르면 구본무는 보유 주식 평가액이 1조4307억 원으로 주식순위에서 13위에 올랐다.

구본무는 2015년 10월 청년희망펀드 공인신탁에 사재 70억 원을 기부했다. 청년희망펀드는 노사정 타협을 계기로 조성하는 기부금 펀드로 청년희망재단의 일자리 창출 사업 지원에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