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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에 열광하는 이유

김광현 777khkim@hanmail.net 2015-08-31  18: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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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에 열광하는 이유  
▲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5번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담았다고 했다.

얼마전 흥미로운 뉴스를 접했다. 강원도 지방에 있는 3개 시립교향악단(강릉, 원주, 춘천)에서 같은 날 각 지역에서 동시에 정기연주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이었다.

심지어 그 중 100회 정기연주회를 맞은 원주시향과 이종진 상임지휘자를 새 수장으로 맞이한 춘천시향은 메인 프로그램마저 같은 곡이었다.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이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왜 원주와 춘천의 상임지휘자들은 각각의 기념비적인 연주회에서 이 곡을 메인 레퍼토리로 정했을까.

쇼스타코비치의 다섯 번째 교향곡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교향곡 중 하나이자,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대표작으로 꼽힐 정도로 명곡이다. 신기하게도 청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교향곡 중에는 5번 교향곡이 많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은 물론이거니와 말러의 교향곡 5번,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 등이다.

이유인즉슨, 1번에서 4번까지의 교향곡을 쓰면서 축적된 역량이 5번 교향곡을 통하여 마음껏 발휘된다고나 할까.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작곡가 특유의 실내악적인 세밀한 특징도 여실히 드러나면서, 때로는 대편성 교향곡으로써의 대작다운 충실함도 가지고 있다. 점점 절정으로 휘몰아쳐가는 1악장과 4악장만 들어 봐도, 왜 사람들이 이 교향곡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다.

1930년대 초반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 국민작곡가, 천재작곡가 칭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관람하던 스탈린이 공연 도중 자리를 떠나는 사건이 발생되었고, 이후 당으로부터 많은 비판에 직면하게 되어 작곡가로써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그의 교향곡 4번은 리허설까지 마친 후 초연이 돌연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작곡된 쇼스타코비치의 결과물이 바로 교향곡 5번이다. 이 곡은 ‘당국의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조적인 답변’이라는 명목으로 발표되었고, 소비에트 혁명 20주년 기념일에 므라빈스키의 지휘로 초연되어 대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당의 신뢰도 회복되었고, 다시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로써의 입지를 되찾게 된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담았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악장에서 비로소 그런 모든 감정들이 해소되고 이제까지 제시된 모든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비평가들은 쇼스타코비치가 비로소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청중에게 강한 어조로 호소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말년의 쇼스타코비치의 구술을 토대로 솔로몬 볼코프가 써내려간 ‘증언’에 따르면, 이 교향곡에서 표현된 즐거움과 환희는 무소로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와 맥락을 같이 한 ‘강요된 즐거움’이며 ‘위협 속에서 만들어진 환희’라는 것이다.

심지어 작곡가는 ‘증언’에서 이 곡 2악장의 화려한 렌틀러(왈츠의 전신)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건 마치 어떤 사람이 당신을 몽둥이로 때리며 ‘네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 네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나 행진하며 ‘우리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중얼거린다.”

이것은 당시 스탈린이 통치하던 소련 사회 전반의 무시무시한 숙청 분위기에 대한 예술가들의 고뇌를 여실하게 증명하는 말이다.

쇼스타코비치는 또한 기분 좋게 초연을 관람하러 온 사람들이 이 곡을 듣고 울었다고 말했다. 이 곡을 듣고 울었던 사람들은 쇼스타코비치의 이런 고뇌와 비애를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십년 전이었던가. 큰 CD가게 클래식 코너에서 옆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이 지긋한 두 분의 중년 신사들이 CD를 고르고 있었다. 그 중 클래식 초심자로 보이는 사람이 같이 있던 사람에게 좀 가슴 뚫리는 시원한 곡이 없냐며 질문했고, 같이 있던 분은 주저 없이 쇼스타코비치 5번을 추천했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특히 이 곡의 피날레는 작곡가의 고통을 모를 당시 많은 청중들이 느꼈듯이 고통을 딛고 일어난 환희의 악장이다. 작곡가는 베토벤 9번과 비발디의 글로리아 등 많은 작곡가들이 사용했던 환희의 조성 ‘D Major(라장조)’를 사용하여 그 느낌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극대화된 환희와 승리의 기분, 그리고 즐거움의 이면에 보이는 작곡가의 고통과 비애라는 아이러니를 생각하면서 이 곡을 감상해 보시길 권한다. 가을을 맞이하기 전 늦여름의 더위를 시원하게 잠시 식히면서 말이다.

지휘자 김광현은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했다. 대학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되어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했고, 서울대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남서독일 콘스탄츠 관현악단,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원주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했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를 역임했으며, 현재 원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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