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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혼곡이 세월호의 슬픔을 달래줄까

김광현 777khkim@hanmail.net 2014-04-22  09: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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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혼곡이 세월호의 슬픔을 달래줄까  
▲ 레퀴엠(Requiem)은 안식이라는 뜻으로 죽은 자들을 위한 진혼 미사곡을 의미한다.

슬프고도 화를 억누를 수 없는 일주일이다. 누가 봐도 사고 초기의 미숙한 대응이 화를 키웠다. 이 때문에 봄날 수학여행을 떠난 꽃다운 고등학생들이 대부분인 탑승자 수백 명이 배 안에서 탈출조차 못하고 실종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온 대한민국이 정지된 채로 슬픔에 잠겼다. 전 세계가 애도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하여 조금이나마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레퀴엠. 정식 명칭은 ‘죽은 자들을 위한 미사곡’이다. 첫 소절의 가사가 ‘requiem(안식)’ 으로 시작되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진혼곡 혹은 진혼 미사로도 번역된다. 원래 기독교에서 장례예식이 확정되지 않아서 각 수도원마다 다른 장례예식이 있었다. 16세기의 트렌토 공의회 이후 그 전례가 확정됐다. 그 이후 많은 작곡가들이 장례 미사 전례문에 따른 레퀴엠을 작곡하게 되었다. 모차르트가 병에 걸린 채로 레퀴엠을 작곡하다가 결국 끝내지 못하고 사망하여 제자였던 쥐스마이어가 완성하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특히 유명한 레퀴엠을 꼽자면 방금 언급한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포레의 레퀴엠, 그리고 케루비니와 베르디의 레퀴엠을 꼽을 수 있다. 드보르작의 레퀴엠도 요즈음 꽤 공연된다. 필자가 그 중 오늘 소개할 레퀴엠은 바로 모차르트와 포레, 그리고 베르디의 레퀴엠이다.

먼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많은 곡들이 삽입되어 있어서 우리 귀에 특히 익숙하다.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모차르트는 레퀴엠 말고도 많은 미사곡을 작곡했다. 프리메이슨이었던 모차르트가 라틴어 가사의 종교적 색채를 어쩜 그렇게 정확하게 이해하고 작곡했을까 하는 놀라움이 남는다. 물론 어려서부터 전 유럽을 여행했던 모차르트인지라 라틴어는 정확하게 해석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를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음악화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모차르트는 그냥 대주교의 요구로 미사곡을 작곡했을 뿐이다.

모차르트 전문가였던 칼 뵘의 음반 및 영상물과, 카라얀 특유의 낭만적 요소를 잘 살려낸 연주가 유명하다. 특히 카라얀 사망 10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며 아바도와 베를린 필이 연주한 영상물도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음악감독이었던 네빌 마리너의 연주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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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레 레퀴엠은 위로의 감정을 담고 있다.

다음은 포레의 레퀴엠이다. 가브리엘 포레는 프랑스 태생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며 수많은 명곡들을 작곡하였다. 특히 파리 음악원 출신이 아님에도 파리 음악원 교수를 거쳐 원장을 역임할 정도로 당대 프랑스의 최고 음악가로 인정받던 작곡가이다. 그의 음악은 드뷔시와 라벨로 이어지는 근대 프랑스 음악의 연결고리 역할을 매우 충실하게 이행한다. 낭만주의적인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포레 하면 가곡이 떠오를 정도로 성악과 선율에 대한 놀라운 음악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의 레퀴엠에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이 곡은 그가 파리 마들렌 성당의 지휘자로 있을 당시 작곡됐다. 매우 서정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색채를 띄고 있으나, 베르디나 모차르트와 달리 지옥불에 빠져 죽는 무시무시한 장면보다 위로의 감정을 더욱 많이 담고 있다. 예전에 최민수가 주연한 ‘리베라 메’라는 영화의 동명 주제곡이 바로 이 포레의 레퀴엠 안에 있는 곡이다. 앙드레 클뤼탕스의 음반이 유명하다. 나는 필립 헤레베헤의 음반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베르디의 레퀴엠이다. 롯시니가 사망하자 당대 이탈리아의 뛰어난 작곡가들이 진혼미사의 한 곡씩을 작곡하는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베르디는 여기서 ‘리베라 메(우리를 구하소서)’부분을 맡았다. 하지만 이 ‘롯시니를 위한 진혼 미사’는 공연되지 않다가 1988년에야 제대로 공연되었다. 베르디는 시인 만초니가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이때 작곡해 놓았던 ‘리베라 메’ 부분과 오페라 ‘돈 카를로’ 작곡 당시 삭제했었던 선율들을 모아서 레퀴엠을 작곡하였다.

베르디 자신은 이 작품을 종교곡으로 보았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많은 지휘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실제로 베르디 오페라를 잘 아는 지휘자가 지휘한 음반들이 특히 듣기에 훌륭하고 아무리 명지휘자라도 베르디 오페라를 잘 지휘하지 않은 사람의 연주나 녹음을 들었을 때 저게 뭔가 싶다. 그만큼 베르디의 음악 자체가 오페라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작곡자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파바로티가 죽었을 때 나는 그가 직접 녹음한 베르디 레퀴엠 중 ‘나는 탄식한다(Ingemisco)’를 하루 종일 들으며 그를 추억한 적이 있다. 바로 카라얀이 지휘한 음반인데, 카라얀은 평생 베르디 레퀴엠을 여러 번 녹음할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한 애착과 이해도가 강했다. 그리고 그 중 어떤 녹음이나 영상물을 보아도 카라얀의 뛰어난 음악성과 카리스마, 그리고 베르디에 대한 이해도가 잘 스며들어 있다. 정명훈의 스승인 카를로 마리아 쥴리니의 음반도 매우 뛰어나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나는 정명훈이 90년대 KBS교향악단과 함께 공연한 베르디 레퀴엠 연주에서 놀라울 정도의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연주가 있다. 바로 얼마 전 서거한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르디 서거 100주년을 추모하며 그 날짜에 맞추어 베를린 필과 함께 연주한 영상물과 음반이다. 베르디 오페라에 특히 일가견이 있는 알라냐와 게오르규 부부를 캐스팅하여 더욱 화제를 모았다. 위암 제거수술을 받고 갑자기 쇠약해져서 나타난 아바도가 베르디 레퀴엠 전곡을 암보로 지휘하는 장면이 전 세계를 울렸다. 이 연주는 정말이지 전무후무하게 뛰어난 공연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음악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일 중에서 내가 오늘 소개했던 레퀴엠들이 충격과 슬픔에 빠진 대한민국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지휘자 김광현은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였다. 대학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되어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서울대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남서독일 콘스탄츠 관현악단,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원주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하였다. 현재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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