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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음악에 욕설 퍼부은 연주자

김광현 777khkim@hanmail.net 2014-03-31  10: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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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음악에 욕설 퍼부은 연주자  
▲ 토스카니니는 ‘아름다움의 극치는 정확함에 있다’고 말할 만큼 악보에만 의존해 해석하는 객관주의적인 음악을 추구했다.

필자의 독일 유학 시절, 해석이란 것에 대하여 몇 년간 고민한 적이 있다. 지휘자는 작곡가들이 적어 놓은 악보만 보고 그 악보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그 악보를 제대로 해석하고 내가 아닌 다른 - 그것도 최소 수십 명의 - 연주자들이 나의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해 하나의 소리로 표현하게 만드는 과정에 여러 단계의 치밀한 공부와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팔만 휘두른다고 지휘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팔을 제대로 휘둘러서 정확한 비트와 제대로 된 음악적 표현을 하는 것도 매우 어렵지만 말이다.


귀국 직전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음악의 본고장 빈을 여행한 적이 있다. 혼자 여행이었기에 빈의 옛 시내를 오랜 시간 걸으며 사색에 잠길 수 있었다. 나는 여기서 우연히 몇 년간 해오던 해석이란 것에 대한 고민을 해결했다.


빈 시내는 예전에 하이든이 마차를 타고 다니던 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벤츠가 다니고 BMW가 세워져 있다. 또한 빈 시내는 예전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살던 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데 그 옆집에 같은 시대의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맥도날드가 성업 중이었다. 필자는 여기서 무릎을 탁 쳤다. 해석이란 것은 악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악보는 마치 예전 빈 시민들이 남기고 간 건물이나 길 같은 것이다. 그 건물 안을 그대로 보전하거나 맥도날드로 채우는 것, 그리고 그 길에 계속 마차를 다니게 하거나 찻길로 만들어 BMW를 주차하는 것은 결국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악보는 작곡가들이 후세 사람들에게 남기고 간 선물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마침내 나는 몇 년간 고민해오던 해석에 관한 의문에서 자유를 얻었다.

내가 예전에 언급한 ‘최고의 지휘자의 조건’ 중 첫 번째 조건인 ‘음악적으로 매우 뛰어나서 단원들의 존경을 얻을 것’에 아주 부합하는 지휘자가 바로 토스카니니다. 그는 바그너와 한스 폰 뵐로에서부터 말러에 이르기까지 그 당시 많은 지휘자들이 그랬듯이 지휘자 자신의 음악성에 의존하는 자유로운 해석이 아닌, 오직 작곡가가 그려 놓은 악보에만 의존하여 해석하는 객관주의적인 음악을 추구했다. 그는 완벽한 음악을 목표로 했다. 여기서 ‘완벽한 음악’이란 놓치기 쉬운 작은 쉼표 하나 빼먹지 않는 완벽한 음 길이의 리듬과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확한 음정(pitch), 그리고 악보에 쓰여져 있는 모든 음악적인 지시를 철저하게 따르는 연주를 의미한다. 실제로 그가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을 두고 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사람들은 이 교향곡에서 나폴레옹, 혹은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나에게 이 교향곡은 그냥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 베토벤이 지시한 1악장의 템포) 일 뿐이다.”


또한 그는 ‘아름다움의 극치는 정확함에 있다’고 말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나는 토스카니니의 대표적 음반인 베토벤 전집을 다시 들어 보았다. 10여 년 만에 다시 들어본 그의 음악은 충격적이었다. 마치 요즘 불고 있는 그 당시의 원전악기를 통해 원전연주의 베토벤을 듣는 듯 한 사운드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한 앙상블, 그리고 그가 항상 추구하였던 악보 그대로의 정확한 연주가 그의 오케스트라를 통하여 그대로 행해지고 있었다. 심지어 템포마저도 세련미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사실 카라얀 이전 지휘자들의 음반은 일단은 녹음상태가 불안정하고 음악도 지휘자에 따라 너무 다른 경우가 허다해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토스카니니의 베토벤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듯 그의 완벽한 음악성을 완벽한 연주로 표현해 내고 있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토스카니니 가족들이 둘러 앉아서 라디오 앞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 교향곡 7번 음악을 듣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토스카니니가 들어와서 음악을 조금 듣는 듯 하더니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노발대발하며 별의별 욕설을 다 섞어서 템포도 앙상블도 엉망인 이따위 연주를 해 대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다시는 내보내지 않게끔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 직접 방송국에 찾아가던 전화를 하던 하겠다고 일어서는 것을 가족들이 겨우 만류했다. 가족들은 라디오 방송에서 연주자 소개를 분명히 들었다. ‘지휘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토스카니니의 음반은 대개 토스카니니 자신에 의한 토스카니니 자신을 위한 오케스트라였던 NBC심포니와 함께 연주한 것이다. 베토벤도 좋고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도 훌륭하다. 사실 이 음반들은 그의 말년에 녹음된 것들이다. 오페라 지휘자로서 유럽을 정복했고 베르디로부터 극찬을 받았으며 라 보엠부터 투란도트까지 푸치니의 성공을 함께 했고 바그너부터 프랑스 오페라까지 섭렵했던 그의 오페라 녹음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안타깝다. 다행인 것은 그가 초연을 지휘했던 푸치니 ‘라 보엠’을 초연 50년만에 녹음한 음원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의 초연을 지휘했던 거장의 음반이다. 이 음악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요 행복 아닐까.


그가 87세였던 어느 날 바그너 ‘탄호이저’ 중 ‘바카날’을 연주하던 도중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이날 이후 완전히 은퇴하였다. 항상 완벽한 연주를 원했던 거장의 마지막 연주는 그렇게 끝났다.

지휘자 김광현은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였다. 대학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되어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서울대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남서독일 콘스탄츠 관현악단,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원주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하였다. 현재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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