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톡톡] 재계의 오뚝이 한라그룹, 정몽원 만도 발판으로 재건 의지
등록 : 2021-05-20 13:46:02재생시간 : 15:50조회수 : 4,621임금진
한온시스템이 매물로 나왔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도 한온시스템을 바라볼까?

정 회장이 만도에 이어 한온시스템까지 품으면 한라그룹을 완전히 재건하게 된다. 친환경자동차부품기업이라는 구상에도 한온시스템이 더해지면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물론 정 회장이 한온시스템 인수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 보인다. 한라그룹 쪽도 인수를 검토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하지만 시장의 일부 시선은 정 회장을 향해 있다.

한라그룹은 흥망성쇠를 온몸으로 겪었다.

창업주인 정인영 회장은 정부의 입김으로 무너졌던 그룹을 재계 12위까지 올렸다.

하지만 정몽원 회장의 2세시대가 시작됨과 동시에 IMF 위기를 겪으면서 그룹이 공중분해 되는 시련을 겪었다가 다시 만도를 인수하며 재건의 신호탄을 쐈다.

한라그룹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 한라그룹, 한온시스템 인수후보 될까

한온시스템 매각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온시스템의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한앤컴퍼니는 모건스탠리를 매각주간사로 선정하고 매각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매각대상은 한앤컴퍼니가 보유한 한온시스템 지분 50.5%다.

한앤컴퍼니와 함께 한온시스템을 인수해 2대주주로 있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보유 지분 19.49%를 매각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2015년 한앤컴퍼니와 함께 한온시스템을 인수할 때 주주간 계약을 통해 우선매수권을 부여받았다. 반대로 한앤컴퍼니는 한온시스템 지분을 매각할 때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보유한 지분까지 함께 매도할 권리를 얻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어 한앤컴퍼니 보유의 한온시스템 지분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보유 지분까지 함께 매각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투자금융업계는 보고 있다.

한온시스템은 자동차 열관리시스템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로 일본 토요타의 부품계열사인 덴소에 이어 글로벌 점유율 2위를 차지하는 우량 자동차부품기업이다.

입지가 탄탄하다보니 벌써 여러 인수후보군이 거명되고 있다. 자동차전장부품에 힘을 쏟는 LG그룹, 배터리 등 전기차 관련 부품을 내재화하려는 폴크스바겐그룹 등이 한온시스템을 탐낼 것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시장에서는 한라그룹도 인수후보 가운데 하나로 바라본다.

한라그룹은 한온시스템의 원래 소유주였다. 한온시스템의 모태는 1986년 한라그룹 계열 만도기계와 미국 포드가 50대 50으로 합작해 설립한 한라공조다.

하지만 한라그룹이 IMF위기 당시 부도를 맞으면서 한라공조를 팔게 됐고 이후 회사를 찾아올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지만 한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연합군에 밀려 한온시스템을 되찾아오는 데 실패했다.

한온시스템을 인수하면 한라그룹에 뿌리를 둔 기업을 다시 품에 안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한라그룹의 한온시스템 인수전 참가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 친환경자동차부품기업 도약의 열쇠

매각했던 기업을 되찾는다는 상징성을 제외하고도 한라그룹이 한온시스템을 손에 넣는다면 한라그룹의 중심인 만도와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만도는 애초 제동과 조향, 현가장치 등 자동차부품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자동차의 전장화에 따라 자율주행 등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에 투자를 늘리면서 미래차 부품회사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만도의 매출에서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관련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만해도 6.4%에 불과했으나 2020년 13.9%까지 늘었다. 올해는 비중이 17.1%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지난해 5월 발표한 만도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미래 모빌리티를 선도해 나가고자 한다”며 “자율주행의 각 레벨별 필요 기술을 확보하고 빠르게 제품·서비스화하여 운전자와 탑승자의 편의를 도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활동은 비전 달성뿐만 아니라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미래차부품회사로 변신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정 회장은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에서 사내이사로만 참여하고 있지만 만도에서는 직접 대표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만도의 체질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겠다는 의지가 여기에서도 나타난다.

정 회장이 한라그룹을 통해 한온시스템을 인수하면 이러한 만도의 변신을 가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온시스템 역시 과거만 해도 에어컨 등 자동차 공조부품만 주로 생산했지만 현재는 전기차에 특화한 열관리 솔루션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한온시스템이 지출하는 연구개발비 가운데 전기차 관련 부품의 비중은 2017년 40%에서 2019년 56%까지 늘었다.

한온시스템은 친환경차부품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2019년 초 글로벌 3위 자동차 부품기업인 캐나다 마그나로부터 유압제어사업부를 1조4천억 원가량에 인수하기도 했다.

정 회장이 한온시스템을 품에 안으면 친환경차 부품기업 도약이라는 비전을 더욱 명확히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제동과 조향, 현가장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나아가 자동차 열관리 솔루션 등 자동차 제조 가치사슬의 여러 영역을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도 있다.

고객사를 다변화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대상이 될 수 있다.

만도는 현대차그룹이라는 안정적 매출처를 두고 있지만 해외 완성차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현대차그룹 의존도는 여전히 60%가량으로 높은 편이다.

반면 한온시스템의 현대차그룹 매출 비중은 2018년 41%에서 2020년 36%까지 내렸다. 한온시스템은 포드를 주요 고객기업으로 두고 있으며 이외에도 폴크스바겐, 아우디, 스코다, 포르쉐, 메르세데스벤츠 등 다양한 완성차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한라그룹이 한온시스템을 품에 안는다면 단번에 고객사 다변화의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 인수를 검토하기에는 현금이 너무 부족하다

한라그룹이 한온시스템 인수에 나서기에는 자금조달이 너무 벅차 보인다.

한온시스템의 시가총액은 약 9조 원이다. 한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보유한 지분 70%의 가치는 6조3천억 원이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하면 7조5천억 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이나 폴크스바겐그룹 등 잠재적 인수후보로 거론되는 기업이 인수전에 뛰어든다면 한온시스템의 매물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수금액만 10조 원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한라그룹에는 이만한 자금이 없다.

한라그룹이 한온시스템 인수전에 뛰어든다면 만도를 주체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만도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020년 말 별도기준으로 3988억 원이다. 매출채권 4174억 원을 더해봐야 8천억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한온시스템 인수금액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몽원 회장이 한온시스템을 되찾으려면 사실상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 때문에 한라그룹이 한온시스템 인수에 나선다면 범현대가의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시장은 바라본다.

정 회장이 이미 범현대가의 지원을 받았던 사례가 있었던 만큼 한온시스템 인수에 또 다른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정 회장이 2008년 만도를 되찾을 때 한라그룹에 도움을 준 회사는 다름 아닌 KCC였다.

KCC그룹을 이끄는 정몽진 KCC그룹 회장은 정몽원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정몽진 회장의 아버지인 정상영 명예회장이 정몽원 회장의 아버지이자 한라그룹 창업주인 정인영 명예회장의 동생이다.

KCC는 당시 한라그룹이 만도를 인수할 때 재무적투자자 역할을 맡으며 모두 2695억 원을 지원해 만도 지분 29.99%를 보유하게 됐다.

당시 한라건설과 정몽원 회장이 만도 지분 35.57%를 확보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 정인영이 키운 한라그룹, “중화학공업에 한국의 미래 달렸다”

한라그룹의 모태는 1962년 설립된 현대양행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인영 회장이 세웠다.

정인영 회장은 동아일보 기자를 하는 등 한때 언론인을 꿈꿨으나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미군 통역장교로 근무하면서 서서히 진로를 틀었다.

정 회장은 자서전에서 “전쟁이 나를 사업가로 바꿔놓았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발주하는 공사를 형인 정주영 회장이 수주할 수 있게 다리를 놓으며 기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정인영 회장은 전쟁 중인 1951년 향후 현대건설에 합병되는 현대상운의 전무로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전쟁이 끝난 뒤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합류해 1961년 현대건설 사장까지 올랐다.

정인영 회장이 형의 품을 떠나 독립적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현대건설 사장을 지낼 당시 미국 AID차관을 얻은 뒤 AID의 소개로 미국 보스턴의 첨단 기계공업 현장을 둘러보고 큰 충격을 받은 때부터였다.

정인영 회장은 “나는 그때 한국경제의 미래가 바로 중화학공업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며 “그렇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중공업이다”고 회고했다.

중공업에 대한 확고한 확신을 통해 만든 회사가 바로 현대양행이었다. 정 회장은 처음 무역업부터 시작해 1964년 만도기계의 전신인 현대양행 안양공장을 세웠고 1969년 자동차부품분야로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했다.

그는 이후에도 한라건설과 한라자원, 인천조선, 한라시멘트 등을 설립하며 그룹의 토대를 다져나갔다.

하지만 새길을 걷기 시작한 지 20년도 지나지 않은 1979년 정인영 회장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정부는 1979년 발전설비의 과잉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중화학공업 투자조정대책’을 발표하는데 이에 따라 현대양행은 강제로 쪼개져 다른 기업에 넘겨진다.

한라그룹은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신군부의 중화학공업 투자조정조치로 한라그룹의 자동차사업은 현대로, 발전설비 제작부문은 대우로 넘어간다.

◆ 만도기계 성장으로 한라그룹 재건한 정인영, 재계 부도옹(오뚝이)으로 불리는 이유

1980년 8월 정인영 회장에게 남은 사업체는 만도기계와 한라해운, 한라자원, 한라시멘트, 인천조선 등 5개 기업뿐이었다.

정 회장은 대우에 넘어간 발전설비 제작부문(당시 한국중공업, 현재 두산중공업)에 합류하기를 포기한 임직원 18명과 함께 압구정동 자택에 모여 이곳을 ‘재기의 거점’으로 삼아 시련을 뚫고 나아갈 채비를 갖추는 계기로 만들기로 했다.

현대양행 시절부터 자동차부품에 특화한 안양 공장의 이름을 ‘인간은 할 수 있다’는 뜻을 담은 ‘만도(Mando)기계’로 바꾸며 새 법인으로 독립시켰고 1980년대 후반기에 만도기계는 연간 150만 대의 자동차를 조립할 수 있는 자동차부품 선도기업으로 성장했다.

정 회장은 자동차 핵심부품인 공조기기의 성장성을 내다보고 1986년에 미국 포드와 50대 50으로 합작해 알루미늄라디에이터를 생산하는 한라공조를 만들기도 했다.

정 회장의 중공업에 대한 뚝심은 1990년대 들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다 무너졌던 그룹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국내외 경제계와 관심의 집중이 시작됐는데 그 중심에는 만도기계의 급성장이 있었다.

한라그룹은 급기야 1996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재계순위 12위의 대기업집단에 오르기도 했다.

한라그룹 50년사를 보면 정몽원 회장은 아버지를 돌이키며 ““중공업으로 산업보국을 해야 한다는 아버님의 신념이 굉장히 강했다”며 “재기할 때 만도의 성장이 큰 힘을 보탰지만 아버님의 중공업에 대한 애착은 ‘자서전’에서도 표현되어 있듯이 중후장대한 중공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크기가 작은 자동차부품은 취급도 안 했다”고 한다.

정인영 회장은 1989년 7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몸이 불편해졌는데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타고 해마다 평균 200여 일 넘게 해외출장을 다니면서 한라그룹을 일궜다. 정인영 회장이 “재계의 부도옹(오뚝이)”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 정몽원의 계속되는 그룹 재건 도전

정인영 회장은 한라그룹을 창업한 지 35년 만인 1996년 12월24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둘째 아들인 정몽원 회장의 2세경영체제가 시작됐다.

하지만 정몽원 회장체제가 시작되자마자 한라그룹은 다시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재계 12위의 그룹을 이끌게 됐다는 화제도 잠시 1997년 터진 IMF 외환위기로 무리하게 투자한 한라중공업이 휘청거리면서 다른 계열사까지 영향을 받았고 결국 그룹의 핵심인 만도기계까지 팔면서 사실상 그룹이 공중분해 된다.

한라그룹이 IMF 때 판 회사는 한라중공업(현 현대삼호중공업), 만도기계(현 만도), 한라펄프제지 등 18개였다.

한라그룹은 2000년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30대 기업집단 지정에서 탈락하기까지 했다. 정몽원 회장에게 남은 것은 사실상 한라건설과 한라콘크리트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라그룹이 팔았던 계열사들 지분이 대부분 사모펀드 소유였다는 점이 한라그룹에는 기회가 됐다.

한라그룹이 1999년 만도 지분을 매각했던 대상은 미국계 사모펀드인 선세이지였다. 당시 한라그룹은 회사를 팔면서도 선세이지가 향후 지분 50% 이상을 매각할 때 주식을 우선 사들일 수 있다는 우선매수청구권을 걸어뒀다.

정인영 회장은 때만 되면 정몽원 회장에게 “만도를 꼭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런 의지가 회사를 팔 때부터 있었던 셈이다.

2003년부터 건설경기가 되살아나면서 한라건설 실적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2005년 선세이지가 만도를 팔겠다고 나서면서 한라그룹의 만도 인수 의지는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정몽원 회장은 범현대가인 KCC의 도움을 받아 2008년 초 그룹의 모회사나 다름없는 만도를 10년 만에 되찾아오는 데 성공한다.

한라그룹 재건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정몽원 회장은 만도 인수계약을 체결한 다음 날인 임직원들과 함께 경기 양평에 있는 정인영 명예회장의 묘소를 방문해 참배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만도 인수를 통한 그룹 재건의 약속을 지켜냈다는 소회를 담담히 전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정몽원 회장의 그룹 재건 의지는 계속됐다.

그는 만도가 재상장된 2010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그룹의 과거 계열사였던 한라공조는 자동차 핵심기술을 지니고 있고 1986년 창립 당시 임직원들이 많이 남아 있어 관심이 무척 많다”며 공개적으로 한라비스테온공조(옛 한라공조, 현 한온시스템)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한라공조는 한라그룹이 창업한 자동차 공조분야 글로벌 빅4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인수할 경우 만도와도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그룹 재건의 의지는 또다시 좌절된다.

한라비스테온공조가 2014년 매물로 나오면서 정몽원 회장은 다시금 인수 의지를 불태웠지만 한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 컨소시엄에 밀려 완벽한 그룹 재건의 기회를 놓쳤고 그 다음부터는 만도 키우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리고 한온시스템이 최근 다시 매물로 나왔다. [채널Who 남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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