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영선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나섰다.

1960년 1월22일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지리학과와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을 졸업했다.

MBC에서 22년 동안 근무하면서 경제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일했고 경제부장을 역임했다.

MBC를 나와 열린우리당 대변인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뒤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고, 다음 선거에서 서울 구로을에 출마해 선출된 뒤 같은 지역에서 세 번 역속 당선됐다.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와 위원장을 지냈고 민주당에서 정책위의장, 최고위원, 원내대표 등을 맡았다.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권력창출에 힘을 보탰다.

재벌개혁의 소신이 뚜렷한 원칙주의자다.

노자의 도덕경 8장에 나오는 구절 가운데 하나인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좋아하는 말로 꼽는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의미로 흐르는 물처럼 세상을 선하고 이롭게 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영활동의 공과


△문재인 정부 탄생에 기여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문재인 정권 탄생에 힘을 보탰고 장관, 시장 등 주요 자리 후보자로 거명된다.

2017년 19대 대선 정국에 들어서자 처음에는 민주당 경선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지지했다. 그러나 경선이 끝난 뒤 2017년 4월7일 문재인 후보가 발표한 공동선대위원장 명단에 포함됐고 4월16일 이를 수락했다. 2017년 4월23일 통합정부추진위원장 공동위원장에 임명됐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법무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의 장관 후보로도 꼽혔으나 입각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경력 때문에, 중소벤처기업부는 힘있는 초대장관을 요구하는 의견 때문에 물망에 올랐다.

2017년 5월24~26일 조승래 의원과 함께 대통령 특사로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 취임식에 파견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에콰도르 대통령으로부터 문 대통령 초청 의사를 전해 들었다. 특사로 다녀온 후 에콰도르와 협력을 증진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2017년 국정감사 때는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으로 다스(DAS) 비상장 주식 물납 특혜 의혹, 수출입은행 다스 대출 증가 의혹, 수출입은행 다스 히든챔피언 선정 의혹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다스와 관련한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2018년 6월13일 치러지는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2018년 들어 ‘박영선 서울을 걷다’, ‘영선아 시장가자’ 등 현장행보를 통해 서울시장 출마를 위한 기반을 닦았다.

2018년 3월18일 서울 영등포구 꿈이룸학교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화했다. 자연이 숨쉬는 서울, 경제가 숨쉬는 서울, 경제가 숨쉬는 서울의 3대 비전을 제시했다.
[Who Is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월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6.13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면접에 박원순 서울시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20대 국회 재벌개혁 힘써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울 구로을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54.1%의 지지율로 당선됐다. 19대에 비해 7.8%포인트 하락하면서 2위인 강요식 새누리당 후보(31.5%)와 차이가 줄었는데 제3당인 국민의당에서 정찬식 후보(12.6%)가 출마했기 때문으로 여겨졌다.

총선 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출마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영선은 “초선 의원부터 해왔던 경제 민주화를 20대 국회에서 완성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겠다”고 밝혔다.

20대 국회에서 자사주 처분을 제한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 대기업집단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자사주에 분할신주 배정시 과세하는 법인세법 개정안, 징벌적배상법안, 집단소송법안, 법인세 최고세율을 25%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법인세법 개정안,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외국인의 공동출자를 제한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재벌기업인 배임횡령죄의 경제수익을 환수하도록 하는 특정재산범죄수익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 개정안, 로봇기본법 제정안 등을 발의했다.

2016년 12월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가운데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최순실을 모른다며 끝까지 잡아뗐으나 네티즌으로부터 제보받은 증거를 조목조목 내밀면서 김 전 비서실장이 위증을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2007년 김 전 비서실장이 있는 자리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경선 후보가 최순실과 관련해 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보여주자 김 전 비서실장이 “최순실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며 “착각했다”고 말을 뒤집은 장면이 백미였다.

3차와 4차 청문회에서 최순실이 증거 인멸을 지시한 통화녹음을 공개해 주목받았다. 최순실이 “걔네들이 완전 조작이고 이걸 훔쳐서 했다는 걸로 몰아가야 한다”, “왜 정현식이 얘기한 것을 못 막았냐. 그걸 얘기를 좀 짜보자”고 말하는 내용들이 포함됐다.

12월26일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현장 청문회에서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장인 이상달씨가 최태민씨와 가까운 사이였다”며 “장모 김장자씨가 최씨가 총재로 있던 구국봉사단원이었다는 제보도 계속 들어온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원내대표·비대위원장 시절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구로을 지역구에 다시 출마해 18대보다 15%포인트 가까이 높은 61.9%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는 민주통합당이 서울 수도권 지역에서 올린 최고 득표율이었다.

3선 의원이 된 후 법사위원장에 올라 큰 주목을 받았다. 비법조인 출신이 법사위원장에 오른 전례가 드문 데다 여성으로서는 최초였기 때문이다.

법사위원장으로 법안 통과를 두고 여당과 맞설 때가 많았다. 대표적 예가 2014년 새해 예산안 처리 지연 사건이다. 박영선은 외국인투자촉진법이 재벌 특혜법이라며 쟁점법안 일괄 타결합의에 반발했고 예산안 역시 처리되지 못했다.

결국 박영선이 주장한 상설특검법을 통과하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외촉법이 통과될 수 있었다. 박영선은 이후 외촉법 원상복구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2014년 5월8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경선에서 69표를 얻어 59표의 노영민 의원을 꺾고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마찬가지로 여성 최초로 원내 교섭단체 대표에 올랐다.

원내대표에 오른 뒤 이전까지 강성 성향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온건 성향으로 돌아섰다. 박영선은 “나는 합리적 원칙주의자”라며 “서로 생각의 마지노선을 꺼내놓고 얘기하면 얼마든지 협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영선이 원내대표에 오른 것은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체제가 여당에 주도권을 다소 내주고 있는 점을 두고 반발이 작용한 것으로 여겨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이 7·30 재보선에서 참패하자 두 공동대표가 물러나고 그 뒤를 이어 박영선이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박영선은 강한 야성을 보여줄 것이라던 야권 지지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2014년 8월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놓고 여야와 유가족이 대립하는 가운데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이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유가족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것을 요구했고 야당은 수사권만, 여당은 둘 다 안된다는 자세를 보였다.

박영선은 여당이 주장한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이 제외된 특별법에 합의했다. 박영선은 유족추천 진상조사위원을 2명에서 3명으로 늘리는 선에서 합의를 이룬 것을 평가했으나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과 소통이 부재했기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유가족이 국회를 항의방문하자 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집권당이고 150석 이상 있으면 원하는대로 다 해드린다”고 말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다만 여당이 끝까지 반대한 특별조사위원회 설치를 관철한 점 등은 박영선의 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결국 2014년 9월16일 한달여만에 비대위원장에서 내려왔고 10월 초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마무리한 후 원내대표 자리도 사퇴했다. 박영선은 사퇴의사를 나타내며 동료 의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책임이란 단어에 묶여 소신도 체면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걸어온 힘든 시간이었다”며 심경을 토로하면서도 “직업적 당 대표를 위해서라면 그 배의 평형수라도 빼버릴 것 같은 움직임과 일부 극단적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며 당권을 놓고 계파갈등이 벌어지고 있음을 내비쳤다.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 사퇴 과정에서 탈당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2015년 말 새정치민주연합 내홍으로 안철수 의원 등이 탈당할 때도 탈당 가능성이 거론됐다. 박영선은 안철수 의원이 탈당한 이후에 별도로 접촉했고 박영선과 관계가 깊었던 박지원까지 탈당했지만 결국 잔류를 결정했다.

원내대표 사퇴 이후 전면에 나서는 일이 적다가 2016년 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체제에서 비대위원을 맡았고 20대 총선 승리에 일정부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해찬·정청래 의원 컷오프 탈락 등 공천파동이 일면서 비대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비대위원 전원 사퇴 초강수로 논란을 돌파했고 결과적으로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비대위를 향한 비판은 사그라들었다.

총선 전 벌어진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 정국에서 야권의 필리버스터 중단 사실을 언론에 유출한 부분이 비난받기도 했다. 박영선은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뒤 “총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필리버스터를 중단한다”며 “분노한 만큼 야당에 표를 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의원 시절
2004년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9번으로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정치 입문은 MBC 선배인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원의 권유에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정치활동 초반 정동영계로 분류됐다. 박영선은 “완고한 아버지 때문에 민주화운동을 못했는데 열린우리당에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이 많아 빚을 갚자는 마음으로 정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초선 경력의 가장 인상적 장면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저 똑바로 못 보시겠죠? 부끄러운 줄 아세요 진짜”라고 쏘아붙인 것이다. 이 후보는 “저게 미쳤나? 옛날엔 안 저랬는데”라고 옆 사람에게 말하는 내용까지 담긴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박영선이 이렇게 한 이유는 과거 기자 시절 BBK와 관련된 e뱅크코리아 회장으로 재임하던 이명박 후보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대선까지 박영선은 이명박 후보를 계속 공격하며 ‘BBK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18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을 지역구 통합민주당 후보로 나와 47.38% 득표율로 당선됐다. 18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로 활동했으며 정책위의장, 민주당 FTA대책 특별위원장, 국회 사법개혁특위 검찰소위 위원장 등을 지냈다.

이명박 정권에서 여당 저격수로 꾸준히 활약했다.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신재민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 등이 연달아 낙마해 ‘낙마왕’으로 불렸다.

함께 여당 공격수로 팀워크를 발휘한 박지원 의원은 박영선을 두고 “박영선은 기자 출신이라 분석을 잘하고 나는 정보를 잘 알아온다”며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박영선 박지원이다”고 말했다.

법사위에서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2011년 전관예우 근절과 관련된 법을 처리했고 고위공직자 관련 취업을 일정 기간 금지하는 공직자윤리법 통과를 주도했다. 경찰이 검찰에 복종하도록 돼 있는 형사소송법 조항을 삭제하고 경찰의 수사 개시권을 명문화해 검경수사권 조정도 시도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경선에서 천정배, 추미애, 신계륜 후보 등을 꺾었다. 그 뒤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한 박원순 무소속 후보와 경쟁했다.

비록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져서 서울시장의 꿈은 접었지만 정치 경력이 그리 길지 않은 여성 재선의원으로서 민주당을 대표해 서울시장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경선 패배 후 박 후보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는 등 결과에 승복한 자세도 높게 평가받았다.

△기자 시절
첫 직장은 KBS 춘천방송국이었다. 당시 아버지가 집을 나가서 사는 것에 반대해 서울에서 출퇴근을 했는데 새벽 4시에 나와 8시30분에야 도착했다고 한다. 결국 얼마 안가 그만두고 MBC에 입사했다. 이후 여기는MBC, 뉴스데이트, 마감뉴스 등을 진행하며 MBC 간판 앵커로 발돋움했다.

박영선은 2011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한 강연에서 얼굴이 너무 예쁘지도 밉지도 않아서 앵커에 발탁된 것이라고 소회했다.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보도국 기자로 자리를 옮겼고 경제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이 가운데 경제부 기자로 오래 근무했다.

박영선은 경제부 기자를 하면서 재벌에 관한 문제 의식이 생겼다며 경제부 기자 시절의 경험이 정치인이 된 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또 상속·증여, 일감 몰아주기, 금산분리 등에 소신을 품고 많은 보도를 했다고 밝혔다.

198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1987년 귀국했고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아침뉴스인 뉴스와이드 앵커를 맡았다.

1994년 육영수씨 서거 20주기를 맞아 은둔생활을 하던 박근혜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박영선은 박 이사장이 주로 TV를 많이 시청한다며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다. 동물들은 배신하지 않으니까”라고 또박또박 말한 것이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1995년 다시 미국에 건너가 로스앤젤레스 특파원으로 일했다. 1997년 귀국해 평일 오후 5시 뉴스인 뉴스센터500을 진행했고 1998년 9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메인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석을 지켰다. 2000년 아침뉴스와 아침교양프로그램을 통합한 피자의 아침을 맡았다.

2003년 경제매거진M을 진행하면서 경제부 부장에 올랐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Who Is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월18일 서울 영등포구 꿈이룸학교에서 6.13 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선서를 하고 있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에 도전한다.

서울시장 도전은 2011년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했으나 박원순 무소속 후보와 야권 단일화 후보에서 패했는데 이번에는 박원순 시장과 같은 당 소속으로 경선에서 맞붙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우상호 의원도 경쟁상대다.

출마 선언 대신 출마 선서식을 열고 공약 이행을 맹세하는 출마 선서 PPT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해 차별화를 꾀했다. 서울의 도시경쟁력이 2015년 10위에서 2017년 38위로 떨어지고 젊은 세대가 서울을 떠나고 있다며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박영선이 제시한 서울의 비전은 ‘숨쉬는 서울’이다. 가장 먼저 자연이 숨쉬는 서울을 목표로 삼았다. 수소전기차 도입과 물관리대책을 병행하고 역대 가장 많은 도심 숲을 조성하기로 했다.

경제가 숨쉬는 서울을 위해서 서민과 젊은이가 도심에 살 수 있도록 역세권 중심의 주거정책을 펴기로 했다. 철도 유휴부지를 활용해 임대주택 1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서울코인을 도입하고 서민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약속했다.

문화가 숨쉬는 서울을 위해 북악산에서 서울역까지 서울의 대표 역사거리를 조성하기로 했다. 북악산에서 광화문광장, 광화문사거리에서 시청앞광장, 시청교차로에서 숭례문광장, 숭례문광장에서 서울역까지 네 개 구간으로 나눠 역사거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 대변인제, 창업특별시, 환경부시장, 미세먼지특위 등 연이어 정책공약을 내놓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유력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서 시장 3선에 도전하고 있어 박영선이 여론조사에서 다소 밀리는 형국이다. 하지만 불리한 판세를 뒤집고 경선에서 승리하면 야권의 지지율과 후보군을 고려할 때 서울시장 당선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4선 의원과 원내대표 경력을 지닌 박영선이 광역지방자치단체장으로 행정경험까지 쌓게 된다면 이를 통해 여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영선은 2017년 초 방송에서 대선 출마 권유를 많이 받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 평가
[Who Is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자시절 손석희 아나운서와 함께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박영선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이었던 고 최상순 화백은 2004년 박영선의 성격을 드러내는 일화를 소개했다.

최 화백은 “어느 날 채점한 시험지를 나눠 줬더니 영선이가 채점이 틀렸다고 정정을 요구했다. 아무리 봐도 잘못된 게 보이지 않는데도 참고서적을 가지고 와서 여기엔 이렇고 저 책엔 이러니 정답으로 해야 된다며 울며 항의했다”고 말했다.

원칙주의자이자 소신있는 정치인이지만 자기 주장이 강해 고집불통 이미지도 지니고 있다. 구 여당은 물론 같은 야권 내에서도 “절대 타협하지 않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물러서는 일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이재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박영선이 법사위에서 추진한 사법개혁과 관련해 “본질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시각과 한번 잡았다 하면 끝장을 보는 승부근성을 보였다”며 “변호사 자격이 없는 이른바 '만주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국회 법사위원 중 검찰이 가장 두려워하는 국회의원”이라고 평가했다. 만주 변호사란 변호사 자격은 없는데 법 전문가 행세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법사위에서 금산분리법을 무산시키고 외국인투자촉진법 통과를 저지하는 등 이른바 재벌특혜법안에 끝까지 반대해 재계에서 ‘박영선 포비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계와는 각을 세워왔다. 박영선이 법제사법위원장이 됐을 때 삼성그룹이 가장 긴장했다는 후문도 나왔다.

기자 시절부터 강한 근성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경제부 기자 시절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집 앞을 새벽마다 찾아가 결국 인터뷰를 성공한 일도 있다. MBC 선배인 이인용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부사장은 “박영선은 타고난 방송인이지만 누구 못지 않은 노력파였다”고 회고했다.

기자 시절 일부 취재원들은 "똑똑하지만 오만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MBC 선배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정계 진출을 이끌었다. 메인 앵커를 하고 있는데 깨끗한 이미지의 대변인이 필요하다고 해 처음에는 거절했다. 정 전 의장이 당대표가 된 후 축하자리에서 다시 대변인을 부탁하자 남편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니 도와드리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이런 정 전 의장과 인연으로 정치권에 입문하면서 한때 정동영계로 분류됐다.

2004년 열린우리당 대변인을 맡아 총선 과반 의석 획득에 기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 후 “대변인을 잘 뽑아 몇 석은 더 건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과 친분이 깊다. 18대 국회에서 법사위에 함께 몸담고 있으면서 여당 공격수로 함께 나서 박남매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으며 원내대표 경선에 박영선이 박 의원 출마를 권유하기도 했다.

19대 국회에서 박 의원이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에 당선된 후 박영선을 법제사법위원장으로 발탁했다. 그러나 박영선이 원내대표에 올랐다가 퇴진하는 과정에서 박 의원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사이가 다소 틀어졌고 2016년 1월 박 의원이 탈당해 국민의당에 합류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언론인 출신으로 가장 성공한 정치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또한 민주당의 대표적 여성 중진의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최초로 교섭단체 여성 원내대표를 지냈고 여성 최초이자 비법조인 출신으로 박정희 정부 시절 육사 출신 서상인 의원에 이어 두번째로 법제사법위원장도 지냈다.

MBC 출신인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총괄사장보다 1년 선배다. 박영선은 2017일 1월26일 JTBC 썰전에 출연해 “MBC 기자 시절 뉴스를 같이 한 적도 있다”며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다. 박영선은 “옛날에 그 앞에서 무게를 많이 잡았는데 요즘은 많이 높아졌다”며 웃기도 했다. 2004년 함께 국회에 입성한 한선교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박영선의 후배다.

공식사이트 소개글에서 노자의 도덕경 8장에 나오는 구절 가운데 하나인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좋아하는 말로 꼽았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의미로 흐르는 물처럼 세상을 선하고 이롭게 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2월29일 3당 대표 초청 국회 기도회에서 차별금지법과 동성애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 의견을 나타내는 등 개신교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17년 5월28일 미국 플로리다 탬파한인천주교회에서 영세를 받고 공식 천주교 신자가 됐다. 세례명은 에스더다.

방송 노출도 비교적 잦은 편이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 MBC라디오 양지열의 시선집중 등 라디오 인터뷰에 자주 나온다. 2018년에는 2월 O tvN 어쩌다 어른, tvN 인생술집 등 TV프로그램에도 나왔다. 특히 3월8일 인생술집에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과 나란히 나와 화제가 됐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2년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보도국 기자로 옮겼다.

1986년 경희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시간대학교를 다니면서 '미국의 소리'방송국에서 일을 했다.

1987년 귀국해 경제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뉴스데스크 주말앵커를 맡았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보도국 경제부 부장을 맡았다.

2004년 MBC를 퇴사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대변인을 맡았다. 같은 해 제17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5년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의 비서실장, 2007년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를 지냈다.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구로을 지역구 통합민주당 후보로 나와 당선됐고 통합민주당 최고위원에 올랐다.

18대 국회에서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과 의장을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구로을 지역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와 당선돼 3선 의원이 됐다. 19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 위원장을 지냈다.

2014년 5월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8월 국민공감혁신위원장으로 당대표 직무대행을 수행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4선에 성공했다.
[Who Is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4월23일 통합정부추진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악수하고 있다.

◆ 학력

1972년 서울 운화초등학교(현 예일초등학교),1975년 덕성여자중학교, 1978년 수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2년 경희대학교 지리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언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모님은 모두 학교 선생님이었고 3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남편은 이원조 변호사다. 미국 특파원 시절 LA에서 이민가정 출신이던 이 변호사를 만나 결혼했다. 남편의 국적은 미국인이었으나 부인의 국회의원 활동을 돕기 위해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 변호사는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을 마친 후 샌프란시스코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했다. 한국에서 IBM,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에서 근무했고 글로벌 로펌인 DLA파이퍼 일본지국을 거쳐 현재는 한국총괄대표로 재임하고 있다.

이 변호사와 사이에 아들 하나가 있다. 1998년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시 미국 국적 보유자였던 부친의 국적을 따라 성년이 될 때까지 이중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 상훈

2008년, 2010년, 2011년 세 차례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로부터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2008~2009년 2년 연속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2010년 제9회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상 정치공로부문에서 수상했다.

2010년 한국문화예술유권자총연합회 한국의 미래개혁 정치발전 대상을 받았다.

2010년, 2012년, 2013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2011~2012년 한국적제3의길연구회 대표를 지내면서 우수국회의원연구단체 우수상을 받았다.

2013년 경희대 총동문회로부터 자랑스러운 경희인상을 수상했다.

2013년 제5회 대한민국 법률대상 사법개혁부문을 수상했다.

2013년 중소기업중앙회 선정 중소기업 우수 지원기관 공로상을 받았다.

2014년 수도권일보·시사뉴스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선정됐다.

2014년 유권자시민행동 국정감사 최우수 국회의원에 선정됐다.

2015년 지방자치TV대한기자협회 대한민국 의정대상을 받았다.

2015년 제3회 글로벌 자랑스런 세계인 시상식에서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을 받았다.

2015년 대한민국 모범국회의원 대상을 수상했다.

2016년 한국청년유권자연맹이 선정한 청년 통통 정치인상을 수상했다.

2016년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물대상 정치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16년 유권자시민행동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을 받았다.

2016년 자랑스런 대한민국 시민대상 국회의정부문 공로대상을 받았다.

2016년 대한인터넷신문협회 INAK 국회의정부문 국회의정대상을 수상했다.

◆ 기타

'사람향기'(2002),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라'(2012), '누가 지도자인가'(2015) 등의 저서를 냈다.

2018년 41억3793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초선의원 시절인 2004년 11억600만 원에서 네 배가량 증가했으며 2017년 35억3799만 원과 비교해도 1년만에 6억 원이 늘었다.

어록
[Who Is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07년 BBK 주가조작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금 변화와 혁신에 실패한 서울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고인 물은 썩고 흐르지 않는 강에 생명은 살 수 없다. 이제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사람,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숨 막히는 서울에서 숨 쉬는 서울을 만들겠다.” (2018/03/18, 서울시장 후보 출마선언식)

“(다스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것으로 밝혀진다면 굉장히 심각한 법적 문제를 초래한다. 김경준이 8년 동안 감옥을 산 주가조작 혐의와 140억 이 다스로 가게됐는지 소액투자자들이 소송을 건 데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을 져야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다스가 이명박 대통령이 주인이다라는 것이 밝혀지면 제가 보기에는 감옥을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7/10/26,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서 다스 실소유주 논란과 관련해)

“기소된 5개 혐의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형량은 유죄 판단시 받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을 선택했다. 아마도 상당수 국민들은 오늘 재판에 대해 법원이 대한민국의 정의를 최소한으로 규정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펼쳐질 2막과 3막의 2심과 대법원 판결을 바라보면서 최소한의 정의가 또 무너지지 않을까에 대한 의구심도 떨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2017/08/25,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판결과 관련해)

“대기업을 2000억 원 이상으로 보면 이것은 너무 세밀한 접근이 되기 때문에 과연 증세의 효과가 있겠느냐 하는 그런 반론제기도 저는 조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85%가 초고소득층하고 초대기업 증세에 대해서 찬성하고 있다. 국민적으로 얼마큼 이것을 설득할 수 있는지 설득의 문제다.” (2017/07/25,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법인세 인상과 관련해)

“재벌개혁이던 검찰개혁이던 개혁은 속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신뢰와 정당성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 개혁을 하면 지금보다 나아질것이라는 신뢰. 그리고 얼마만큼 타당한가의 정당성의 문제가 뒷받침된 개혁이 주효하고 그래야만 국민적 공감대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 (2017/06/15, 페이스북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향해)

“약자 보호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신망을 얻으며 에콰도르의 격을 한단계 끌어올린 개혁대통령의 취임선서에 시민들은 환호했다. 퇴임하는 코레아 대통령이 두르고 있던 대통령 휘장을 신임 대통령에게 둘러주는 장면은 참 훈훈했다. 전임 대통령이 신임 대통령만큼이나 큰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고 퇴장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2017/05/25, 에콰도르 대통령 취임식 참석 소감)

“저희가 제1당이긴 하지만 120석의 과반에 많이 못 미치는 그런 1당이기 때문에 끝없이 큰 품으로 야당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당의 목소리에 경청하고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을 어떻게 조율해나가는가 그것이 이제 통합정부의 가장 큰 과제이면서 임무다.” (2017/05/10,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여소야대 상황의 정부 출범과 관련해)

“정의에 동의하시는 분과는 그 누구도 상관없이, 개혁적 보수, 합리적 진보 진영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후보의 생각이다. 정당이 어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분이 정의에 동의하느냐의 가치의 기준을 가지고 통합을 하겠다는 것이다.” (2017/05/04,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서 개혁적 보수까지 통합정부 구성에 참여할 수 있다며)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세력, 모든 지역, 모든 세대가 합심해서 국정에 참여하고 협력하는 ‘대한민국 통합드림팀’, '용광로 정부’를 준비하겠다. 제왕적 대통령의 인사기득권을 과감히 내려놓고, 문턱이 낮은 정부, 누구에게나 열린 원형정부를 추진하겠다” (2017/04/23, 통합정부추진위원회 기자회견)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간의 지지율 격차가 두자리로 벌어지자 국민의당이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근거없는 호남홀대론을 지속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이제는 정책 대결로 광주·전남 희망을 이야기 하자.” (2017/04/20,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제 감사하다는 문자 폭탄이 많이 온다. 오늘 아침에도 이런 말을 보내준 분이 한 분 있다. ‘용서할 때 과거를 바꿀 순 없지만 미래를 확실히 바꿀 순 있다.’ 버나드 멜처의 명언인데 이것을 보면서 미래를 확실히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더 힘을 모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2017/04/17,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서 문재인 캠프 합류 후 비난하는 문자폭탄이 오지 않는다며)

“박 남매로서 인간적 관계는 변함이 없다. 현재도 당은 다르지만 서로에게 객관적 조언을 해 주는 조언자로서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박지원 대표가 하는 일을 늘 마음으로 응원한다.” (2017/04/17,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와 대선에서 맞서게된 것과 관련해)

“세월호 3주기. 내게 세월호는 삶의 긴 피정기간을 가져다 주었다. 묵상으로 그 아픔을 함께 해 왔지만 그럴때마다 3년을 인내로 지켜온 세월호 유가족들의 억눌린 분노를 누가 대신 해 줄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그저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3주기를 맞은 부활절인 오늘. 오늘은 그 유가족들에게 지금까지 보다는 조금덜 미안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을런지.” (2017/04/16, 페이스북에 올린 ‘퀘렌시아에서 만난 것들’ 마지막회)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보편적 상식 실현. 법앞에 평등은 정의가 아니라 보편적 상식. 이제 부정의, 불공정, 부패의 낡은시대 끝내고 상식이 상식으로 작동하는 나라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2017/03/31,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과 관련해서)

“정의가 승리했다. 이제 하나가 되자. 통합과 대한민국 미래를 향한 새출발!!!” (2017/03/10,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이후 SNS에 올린 글에서)

“‘대통령’ 박근혜가 문제지 여성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더러운잠’은 유감이다. 표창원 의원님도 박근혜 문제에 천착하다보니 다른 한가지를 간과한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들이여! 2017년 새해에는 더욱 당당해지고 우리사회를 위한 발전의 힘이 되자.” (2017/01/25, 박근혜 대통령을 패러디한 ‘더러운잠’이 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킨 것과 관련해)

“최근에 삼성 미래전략실 관련자들이 국회를 다녀갔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권력순위 1위가 최순실이라면 아직도 로비를 하고 있는 삼성은 권력 0순위다. 국민연금이 수천억 원의 손해를 보면서 삼성편을 들어준 것은 삼성이 국민들 노후자금을 도둑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삼성에게 가장 큰 아킬레스건인 이 사건의 증거인멸을 위해 뭔가 작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2016/11/24,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국민들의 마음 속 노여움을 내가 다 안고 가겠다, 나에게 분노의 화살을 쏴 달라. 제가 다 맞겠다. 대신 여러분 분노하신 만큼 4.13 총선에서 야당에게 표를 달라. 야당이 이겨야 평화롭고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 (2016/03/01,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에서 필리버스터 중단을 결정한 것과 관련해 눈물로 지지를 호소하며)

“롯데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 롯데쇼핑이라는 것을 만들 때부터 특혜를 좀 받아왔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서울 시내 안에 백화점을 못 만들도록 원래는 그런 규정이 있었다. (롯데백화점이 아니라)롯데쇼핑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게 그래서 ‘쇼핑’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걸로 경제부 기자를 하면서 제가 기억을 하고 있다.” (2015/08/05,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나와 롯데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무슨 일을 하는 데 계파의 수장들이 한 자리씩 다 차지한다거나 계파에서 한 명씩 대표로 나오는 일부터 없애야 한다.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이냐를 생각해야지 계파 수장의 대리인이 와서 무슨 일을 하는 새정치연합은 구태의 반복이다. 무슨 위원회를 꾸려도 계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피해를 보지 않는 최소한의 합의밖에 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혁신이 이뤄질 수 없다.” (2015/05/29, YTN 뉴스인 인터뷰에 나와 친노 패권주의 비판 의견과 관련해)

“원내대표직 그 짐을 내려놓으려 한다. 책임이란 단어에 묶여 소신도 체면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걸어온 힘든 시간이었다. 진상 규명이 가능한 법을 가능한 한 빨리 제정해야한다는 일념으로 끌고 온 협상 과정에서 제가 받은 비난들 중 상당 부분에 대해 드릴 말씀도 많지만 그저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한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활을 들고 협상이라는 씨름을 벌인 시간이었다. 직업적 당 대표를 위해서라면 그 배의 평형수라도 빼버릴 것 같은 움직임과 일부 극단적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한 지금 우리당이 겪고 있는 고통은 치유되기 힘들다는 것을 어렵사리 말씀드린다.” (2014/10/02, 원내대표 사퇴 의사를 밝히며 의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두 대표가 떠나고 밤섬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사실 피하고 싶었다. 지금 저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기 때문에 의원님 한분 한분이 다 도와주시면 제가 지금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 (2014/08/04, 비대위원장 수락연설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이제 우리 앞에 놓여있는 많은 과제들을 의원님 한분 한분과 상의하고 경청하고 의논해서 결정하도록 하겠다. 제가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 부족함을 의원 여러분들께서 채워 주시라. 서로서로 부족함을 함께 메워주는, 그래서 우리가 하나가 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올바른 대한민국, 새로운 야당을 만들겠다. 그래서 국민 앞에 우뚝 서는 새로운 새정치연합을 보여드리겠다.” (2014/05/08, 원내대표 수락연설에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은 정경유착법, 특정재벌인 SK와 GS 로비에 대통령과 국회가 굴복한 법이다. 대통령은 법이 통과되면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처럼 국회에 와서 시정연설했는데 '대통령에게 입력이 잘못됐다'는 게 공정거래법을 잘 아는 몇몇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응이다. 대통령이 국회에 와서 법을 통과시켜달라고 얘기할 정도의 중요한 법이면 텔레비전에 나와 국민들을 설득해야 된다. '대통령이 말한 일자리 1만5000개 증가가 사실로 판명되지 않는다면 책임져라'라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말했는데 그에 대답하지 못했다.” (2014/01/02,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외촉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비판하며)

“정치를 하면서 언론을 비판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언론과 정치인은 갑을관계이니 더욱 그러하다. 언론 기자는 정치인에게 수퍼갑이다. 그러나 방송기자 출신으로 요즘 언론의 행태를 보며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한다.” (2013/07/30, 집권세력에 무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보수언론을 비난하며 트위터에 올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