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도입이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기본소득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정책에서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고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할 미래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확실한 대안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전 세계 기본소득 도입실험 확산, 열쇠는 재원마련  
▲ 유하 시필레 핀란드 총리.
핀란드 사회보장국은 올해 국가 단위로는 최초로 기본소득 실험에 착수했다.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 2천 명을 무작위로 뽑아 월 560유로(약 70만 원)을 2년 동안 지급하기로 했다.

핀란드 민간부문 평균급여가 3500유로라는 점에 비춰볼 때 많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일정금액이 일을 하든 안 하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조건없이 지급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이 실업률을 낮추고 사회보장체계를 단순화할 수 있을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들은 2년 뒤 실험의 성과를 평가해 기본소득 지급대상을 프리랜서, 소기업가, 파트타임 근로자 등 저소득층에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에서 치러진 기본소득 국민투표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스위스는 국민투표 요건이 비교적 까다롭지 않는데 조건없는 기본소득을 위한 시민단체모임이 2011년부터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10만 여명의 서명을 받아 2013년 국민투표안을 제출했다.

연방정부와 의회는 2년간 안건을 검토한 뒤 전 국민에게 조건없이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결과는 찬성 23%, 반대 77%로 부결됐다.

하지만 국민투표에 구체적인 안이 포함돼지 않은데다 이민자 급증 가능성 등이 떠오르며 반대가 많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기본소득 논의가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한 여론조사에서 스위스 유권자의 69%는 조만간 기본소득 국민투표가 또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18~29세 가운데 41%는 몇 년 안에 기본소득이 도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탈리아 리보르노시는 지난해 6월부터 최빈곤가구 100곳에 매달 500유로(약 63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해왔다. 리보르노시는 올해 들어 지급가구를 100가구 늘렸다.

네덜란드도 위트레흐트 등 19개 지방정부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독일에서 기본소득제도 도입을 목적으로 하는 기본소득동맹 정당이 창당하는 등 유럽의 기본소득 바람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알래스카는 1976년 석유수입의 일부를 재원으로 삼아 알래스카 영구기금을 조성하고 배당금 형태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연간 1천~2천 달러가량이 지급되며 덕분에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가장 빈곤율이 낮고 소득불평등이 적은 지역이 됐다.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것으로 여겨진 서구권에서만 기본소득 실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신흥국인 인도도 기본소득 도입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인도 정부가 1월 안으로 기본소득 도입이 실현가능하며 성공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빈드 수브라마니안 인도 재무부 수석경제고문은 지난해 10월 연례 경제조사에서 기본소득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브라마니안 고문은 “기본소득이 현재 정부의 정책보다 효과적인 빈곤층 지원 수단인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는 마디아프라데시 지역에서 2번, 웨스트델리 지역에서 1번 기본소득 실험을 했는데 어린이들의 영양상태가 크게 개선됐고 학교 출석률이 올랐다. 기본소득을 받은 가정의 소득수준이 나아지는 등 실험이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 세계 기본소득 도입실험 확산, 열쇠는 재원마련  
▲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공동대표.
나미비아의 오미타라에서도 2008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2년간 지역주민 930명에게 매달 100나미비아 달러(약 1만5천 원)을 지급하는 기본득 실험이 진행됐다. 그 결과 빈곤율과 실업률은 낮아지고 소득 상승률이 증가했다. 임금과 농업생산량, 자영업 소득도 크게 늘었다.

브라질은 2004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본소득 법률을 제정했다. 하지만 재정 문제로 전면적인 시행은 되지 않고 있다.

기본소득은 사회 구성원에게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취업의사 유무 등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균등하게 지급되는 소득이다. 18세기 말 사회사상가 토머스 페인이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균등한 소득의 분배라는 개념의 기원은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20세기까지 존 스튜어트 밀, 버트런드 러셀, 밀턴 프리드먼 등의 사상가들이 기본소득의 발상을 전개했고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실험과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조건없이 일정액을 지급하면 되기 때문에 대상에 따라 차등적용되는 사회복지제도에 비해 운영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각종 복지제도를 기본소득으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일하지 않는 사람간에 형평성을 깨뜨려 오히려 근로의욕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비판도 여전히 높다.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기본소득 논의에 항상 따라오는 문제점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