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Who] 오너2세 신동환 경영 4년, 푸르밀은 이렇게 무너졌다

▲ 신동환 푸르밀 대표이사가 17일 느닷없이 회사의 사업종료와 전 직원 정리해고 결정을 내린 것을 놓고 여러 말이 나돈다. 신 대표는 불과 3년여 전만 해도 푸르밀로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을 수상한 바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앞으로도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고용 창출 및 일과 생활의 양립을 실현할 수 있는 근로환경 조성에 앞장서겠다.”

신동환 푸르밀 대표이사는 2019년 7월24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 인증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신 대표이사는 이 약속을 더 이상 지키지 못하게 됐다. 푸르밀의 사업 종료와 동시에 전 직원을 정리해고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약속은 깨졌다.

4년 넘게 계속된 적자를 해소하지 못한 것이 신 대표가 내린 결정의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시장을 선도해보지 않았던 기업문화, 유제품 이외의 새 성장동력을 찾는 데 실패했다는 점 등이 깔려 있다.

푸르밀 노동조합은 오너일가가 경영 실패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 ‘비피더스’로 유명한 45년 역사의 푸르밀, 왜 폐업까지 내몰렸나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유제품기업 푸르밀의 갑작스러운 폐업 결정을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회사로서 사업을 지속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이 유통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푸르밀은 2018년 영업손실 15억 원을 낸 뒤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푸르밀의 영업손실 규모는 2019년 88억 원, 2020년 113억 원, 2021년 123억 원으로 계속 늘어났다.

외형은 갈수록 줄었다. 푸르밀의 매출은 2018년 2301억 원에서 2019년 2046억 원, 2020년 1878억 원, 2021년 1800억 원으로 내림세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환 대표는 푸르밀의 회생을 위해 매각을 추진했다. 올해 5월 푸르밀과 LG생활건강 실무진들이 회의를 열고 지분 매각 협상을 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LG생활건강은 9월 초 푸르밀을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음료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푸르밀 인수를 검토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니 사정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 공장 설비도 노후화됐다는 것이 인수 추진을 중단한 대표적 이유로 꼽혔다.

신 대표 입장에서는 푸르밀의 생존을 위해 꺼낸 최후의 카드가 불발된 만큼 앞으로 더 이상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푸르밀이 17일 신 대표 명의로 보낸 이메일에서 “4년 이상 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에 적자가 누적돼 이를 타개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찾아봤지만 가시적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해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설명한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실적 부진과 매각 실패만을 놓고 푸르밀의 사업 종료를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는 의견도 나온다.

푸르밀이 애초 사업 다각화에 실패한 것이 결국 폐업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유제품업계가 유제품 소비 감소로 타격을 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은 산업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단백질 음료와 식물성 음료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생존 전략을 모색해왔다.

매일유업과 서울우유, hy(옛 한국야쿠르트) 등은 디저트와 치즈, 건강기능식품 등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으며 유제품 의존도를 줄이는 데 성과를 냈다.

하지만 푸르밀은 전체 매출의 90%가량을 유제품에서 내는 사업구조를 바꿔내지 못했고 이는 결국 경쟁력 상실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 푸르밀 오너 2세 신동환, 오너체제 전환 4년여 만에 사업 정리

신동환 대표로서는 푸르밀이 오너경영체제로 복귀한 지 5년도 안돼 회사의 문을 닫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뼈아플 수밖에 없다.

푸르밀은 범롯데가로 분류되는 유제품 전문기업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가 1978년 롯데유업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했다.

롯데유업은 1979년 롯데축산, 1987년 롯데햄·롯데우유로 상호를 변경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막내 동생인 신준호 롯데그룹 부회장이 1996년 신격호 회장 측과 부동산 관련 분쟁을 일으키면서 롯데햄·롯데우유는 서서히 롯데그룹에서 독립경영 절차를 밟았다.

결국 신준호 부회장은 2007년 4월 롯데햄·롯데우유에서 롯데우유를 물적분할해 롯데그룹에서 계열분리했다. 신 부회장은 이와 동시에 스스로 회장으로 승진했으며 롯데우유는 2009년에 회사 이름을 현재의 푸르밀로 바꿨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에서 독립한 푸르밀의 경영체제를 오너 1명, 전문경영인 1명의 공동대표체제로 꾸렸다. 자신이 직접 전권을 쥐면서도 실질적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위임하는 형태였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푸르밀 대표이사를 역임한 전문경영인들은 김인환, 남우식 대표 등이다.

10년 동안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투톱체제를 보낸 뒤 신준호 회장이 선택한 체제는 바로 ‘오너경영’이었다. 신준호 회장은 자신의 둘째 아들인 신동환 사장을 2018년 1월 푸르밀 대표이사로 발탁했다.

푸르밀이 10년 만에 완전한 오너경영체제로 돌아선 장면이었다.

신동환 대표는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만큼 푸르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2019년 8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푸르밀은) 과거 롯데그룹이라는 ‘큰 우산’ 아래에서 잘 커왔지만 성장 동력의 측면에서 대한민국의 톱 브랜드가 되려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전략 제품이 몇 개 있어야 한다”며 “우리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결과 ‘비피더스’ 등 3가지 품목 말고는 내세울 게 없다”며 경쟁력 강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신 대표는 “지난 20년 동안 잘 되는 다른 회사를 따라가기만 했지 우리가 먼저 시도한 적이 없었다”며 “따라가기만 해서는 실패도 없지만 성공도 없다. 실패도 성공의 과정이기 때문에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신 대표는 2019년 7월 흑당밀크티 출시, 2020년 6월 달고나라떼 출시 등으로 반전을 노렸다. 2020년 2월에는 건강기능식품 전문기업인 에이플네이처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같은해 7월에는 ‘칼로바이 퍼펙트파워쉐이크’라는 신제품도 내놨다.

2021년 1월에는 푸르밀 공식 온라인몰을 열어 이커머스에 대응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자 트렌드의 변화 속도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늦은 변화 탓에 유의미한 반등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의 냉정한 평가다.

◆ 노조는 오너경영 무능 질타, 법인세 면제 위해 법인 남긴다는 추측도

푸르밀 노동조합은 신 대표의 이번 결정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 측은 최근 신동환 대표와 만나 사업 종료와 관련한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당시 “회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합리적으로 찾아보고 어떤 고통도 감내하겠다” “안 되면 공개적으로 매각을 해서라도 직원들을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신 대표에게 전달했지만 결국 돌아온 답이 전원해고라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노조는 17일 입장문을 통해 “신준호·신동환 부자의 비인간적이고 몰상식한 행위에 분노를 느끼고 배신감이 든다”며 “강력한 투쟁과 생사기로에 선 비장한 마음을 표출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모든 적자의 원인이 오너경영의 무능함에서 비롯됐지만 모든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불법적 해고를 진행하고 있다”며 “회사 정상화를 위한 노력도 없었고 해고를 회피하려는 노력도 없이 올해 11월30일자로 모든 직원을 정리하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푸르밀이 사업만 종료하고 법인은 유지할 것이라는 말도 노조 사이에서 나돈다.

푸르밀은 최근 4년 동안 적자를 낸 탓에 법인세를 면제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법인을 청산하게 되면 면제 혜택을 받은 법인세를 반납해야 한다는 점에서 푸르밀이 사업만 종료하고 법인은 남길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푸르밀 관계자는 “소문만 돌고 있을 뿐 정확한 사항은 확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푸르밀은 아직 정리해고와 관련해 임직원 400여 명에 대한 보상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