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 기아 대표이사가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차지부(기아 노조)와 2021년 임금협상을 놓고 무파업 타결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짊어지게 됐다.

형제기업인 현대자동차 노사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에서 3년 연속 무파업 마무리를 눈앞에 두면서 기아의 노무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최 대표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아 실적은 현대차보다 더 좋아, 최준영 노조와 임금협상 부담 커져

최준영 기아 대표이사.


25일 기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2021년 임금협상 교섭과 관련해 8월 여름휴가 이후에나 본격적 협의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다.

현대차와 기아가 매년 8월 첫째 주에 여름휴가 기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기아 노사의 본격적 협상 테이블은 8월9일 이후부터 마련되는 것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 노조)가 잠정합의안을 마련한 뒤 27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하는 것과 비교하면 한참 뒤처진다.

기아 노조가 회사의 교섭 해태를 이유로 여름휴가 이전에 쟁의권 확보를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는 점에서 최 대표로서는 올해 임금협상에서도 무파업으로 교섭 타결을 이끌기 쉽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노조가 여름휴가 이후 본격적 협상에서 회사의 교섭 태도나 제시안 등이 눈높이에 밎지 않으면 바로 파업 등의 단체행동에 들어갈 수 있어 최 대표의 압박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기아는 하반기에 첫 전기차 전용플랫폼을 활용한 EV6 등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최 대표가 느끼는 파업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앞서 기아 노조는 20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 신청을 내고 28일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중지 결정이 언제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2주가량 걸린다는 점에서 기아 노조로서는 휴가가 끝난 직후나 휴가기간에 쟁의권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27일 진행되는 현대차 노조의 잠정합의안 찬반투표와 관련해 가결 여부와 관계없이 최 대표가 이미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현대차 노조의 찬반투표에서 잠정합의안이 부결되면 현대자동차그룹의 이른바 '양재동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아 협상도 지연돼 노조가 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 

잠정합의안이 가결돼도 기아의 경영실적이 좋은 상황에서 현대차와 비교해 노조가 만족할 만한 제시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못 받는다는 불만이 높아질 공산이 크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들은 현대차그룹이 내부적으로 설정한 계열사 임단협 지침인 ‘양재동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차그룹 노무관리시스템상 현대차의 노사 교섭이 타결되지 않으면 기준이 세워지지 않아 현대차 계열사들의 협상도 줄줄이 밀리게 된다는 것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의 교섭이 끝나기 이전에 다른 현대차그룹 계열사에서 임금협상이나 임금 및 단체협약이 먼저 타결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아 노조는 2020년 12월3일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2020년 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해태 규탄 및 성실교섭 촉구’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기아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을 놓고 앞서 회사에 일괄제시안을 요청했지만 20일 8차 교섭에서도 별다른 제시안이 나오지 않자 교섭결렬을 선언한 것으로 파악됐다.

상견례 이후 회사와 본교섭과 실무교섭 등 10차례 만나 요구안의 전체 내용을 같이 3번이나 살펴봤지만 반응이 없어 회사가 일부러 교섭을 지연하고 있다고 기아 노조는 바라봤다.

현대차 노조의 임단협 잠정합의안이 가결돼 3년 연속 무파업으로 교섭이 마무리되면 최 대표로서는 부담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3년 만에 쟁의권을 확보했지만 하언태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적극적인 태도로 타결을 이끌어 냈다.

최 대표는 2021년 3월22일 기아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두 번째 임기를 이어가게 됐지만 기아 노사관계와 관련해 무파업 타결이라는 성과는 아직까지 내지는 못했다.

기아 노조는 2019년 임금협상과 2020년 임단협에서 부분파업을 진행하면서 9년 연속 쟁의행위를 이어왔다.

더구나 기아 노조가 현대차 노사의 타결안과 얼마나 제시안 조건이 다른지 따지겠다는 태세를 보이는 만큼 최 대표로서는 무파업으로 가기 위한 제시안을 내놓는 것부터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세타2 엔진' 문제로 현대차가 2조1천억 원, 기아가 1조3천억 원의 충당금을 쌓은 데다 현대차가 전기차 코나 배터리 교체비용과 관련해 선제적 반영을 결정하면서 기아가 분기 기준으로 현대차 영업이익을 추월하기도 했다.

기아는 2020년 4분기 연결기준으로 영업이익 1조2816억 원을 거둬 1년 전보다 117.04%나 늘었다. 코로나19에도 당시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냈다.

같은 기간 현대차는 연결기준으로 영업이익 1조2544억 원을 냈다. 1년 전보다 7.73% 증가했지만 기아보다 낮은 영업이익을 거뒀다.

올해도 상반기까지 수익성지표인 영업이익률로만 따져보면 기아의 영업이익율은 7.3%, 현대차의 영업이익율은 6.1%로 기아가 올해 상반기까지 수익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경영실적만 놓고보면 기아가 현대차보다 앞서고 있는 만큼 이에 맞는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하지만 기아 노조는 ‘양재동 가이드라인’에 막혀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 노사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

기아 노조 관계자는 “여름휴가가 끝난 이후에나 제대로된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내부적으로 보고 있다”며 “회사는 독립적으로 교섭권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양재동 가이드라인’에 따라 현재 교섭과 관련해 아무런 제시안도 내놓지 않고 본사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