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진 KCC 대표이사 회장이 KCC를 건자재기업에서 종합소재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인수한 특수소재 전문기업인 모멘티브퍼포먼스머티리얼즈(모멘티브)가 있다.

KCC가 종합소재기업으로 발돋움하려면 모멘티브를 통해 삼성전자와 거래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정 회장이 다져온 KCC그룹과 삼성그룹의 우호적 관계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모멘티브 삼성전자 거래 뚫나, KCC 실리콘사업 도약의 열쇠

KCC가 실리콘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KCC 실리콘사업의 핵심은 2019년 사모펀드 SJL파트너스, 석영유리 제조기업인 원익QnC와 컨소시엄을 꾸려 총 30억 달러에 인수한 모멘티브다.

KCC의 실리콘사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 공급망에 KCC의 실리콘사업이 포함되느냐에 달려있다고 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실리콘시장은 크게 △산업공정 △건축·건설 △퍼스널케어·소비재 △운송업 △전기전자 △의료·헬스케어 △에너지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시장은 전기전자분야다. 모바일과 5G, 자율주행,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스마트팩토리 등 다양한 4차산업 성장에 따라 반도체 등 전기전자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실리콘(반도체 접착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KCC는 자체적으로도 “전자산업분야에서 제품의 소형화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실리콘 소재의 기능성 향상이 요구되고 있다”며 “이를 충족하는 기술 개발이 앞으로 실리콘시장의 승자를 가리는 데 주요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KCC는 모멘티브를 인수하기 전에도 전기전자용 실리콘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동안 중저가용 실리콘사업에 집중한 탓에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전기전자용 실리콘사업에서는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KCC가 미국 다우듀폰, 독일 바커와 함께 세계 3대 실리콘기업으로 유명한 모멘티브를 인수한 것은 결국 글로벌 반도체기업인 삼성전자에 납품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한 것 아니냐는 말이 인수 초창기부터 나왔다.

KCC가 모멘티브를 통해 삼성전자를 고객기업으로 유치하면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첨단소재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공격적 인수합병을 시도한 배경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KCC 관계자는 모멘티브 인수 이후 삼성전자에 납품할 기회가 열렸는지와 관련해 “영업쪽에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며 “모멘티브의 영업력을 기반으로 삼성전자와 거래를 하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바라보고 노력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KCC가 삼성전자에 반도체용 실리콘을 납품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반도체기업들이 생산 안정을 위해 현재 생산하는 반도체에 쓰이는 원료를 바꾸지 않기 때문인데 이를 감안할 때 다음 세대의 반도체를 개발할 때에 맞춰 시장 진입을 노려야만 한다.

설령 삼성전자에서 긍정적 반응을 얻어내더라도 삼성전자가 제품을 납품하는 기업(애플 등)에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점도 영업활동의 변수라고 KCC 관계자는 설명했다.

정몽진이 다져온 KCC와 삼성그룹의 관계가 통할까

KCC가 삼성전자와 거래를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정몽진 회장과 삼성그룹의 관계 때문이다.

KCC는 ‘재계의 백기사’로 불린다. KCC는 혈연관계에 있는 범현대가를 여러 차례 도왔다.

정몽진 회장의 아버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내 동생이다. 이런 인연으로 KCC는 현대중공업그룹이 계열분리를 할 때, 한라그룹이 만도를 되찾을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도움을 줬다.

KCC가 더욱 주목을 받은 것은 삼성그룹의 백기사 역할로 나섰을 때다.

KCC는 2011년에 7800억 원가량을 들여 삼성카드에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매입했다. 당시 삼성카드는 금산분리에 따라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5% 미만으로 낮춰야 했는데 이 때 해결사 역할을 한 것이 바로 KCC였던 것이다.

KCC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을 시도할 때도 백기사 역할을 자처했다.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합병을 반대하며 우호세력을 모으는데 나서자 KCC는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사주 5.76%를 매입하면서 합병을 도왔다. 이 결과로 KCC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이은 삼성물산의 2대주주가 됐다.

이런 관계를 감안해보면 정 회장이 모멘티브 인수를 결정한 배경에 삼성전자와 거래를 시작해 보겠다는 계산이 깔려있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에 무리가 없다.

실제로 정몽진 회장은 KCC를 통해 삼성물산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삼성물산을 KCC의 고객기업으로 둘 수 있었다.

KCC가 삼성물산의 지분을 보유하지 않을 때만 해도 삼성물산의 사업 현장에 범현대가 기업이 출입하는 것은 금지됐다. KCC는 단순 건자재인 석고보드를 납품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삼성물산 지분 매입 이후 삼성물산에 건자재를 납품할 수 있게 됐다. 정 회장은 당시 기획팀에 “삼성을 뚫으면 얼마만큼 이득을 볼 수 있는지 싹 연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기업 사이 거래는 기본적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놓고 공급과 가격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하지만 기업들이 다져온 신뢰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정몽진은 KCC 첨단소재기업 만들고 싶다, 실리콘사업 성장에 주목

정몽진 회장은 KCC를 첨단소재기업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 핵심에는 실리콘사업이 있다.

정 회장은 과거 KCC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KCC는 모멘티브 인수를 통한 미래 성장동력 창출에 성공했다”며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첨단소재기업으로서의 KCC 비전을 함께 실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정체성을 건자재분야에서 첨단소재분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KCC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이미 사업의 주축이 이동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KCC는 2018년까지만 해도 사업부문을 건자재부문과 도료부문, 기타부문 등으로 구분했다. 하지만 현재는 건자재부문과 도료부문, 실리콘부문, 기타부문 등으로 사업이 구성돼있다.

실리콘사업이 KCC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부문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은 매출 비중에서도 드러난다. 실리콘부문의 매출비중은 2018년(기타부문으로 분류)만 해도 25%가량이었으나 2020년에 70%를 넘었다.

KCC가 공을 들이고 있는 실리콘사업의 성장성은 높은 편이다.

글로벌 리서치기업 마켓앤마켓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 실리콘시장은 2021년 167억 달러에서 연평균 7%씩 성장해 2026년에는 23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KCC가 실리콘분야의 글로벌 선두기업인 모멘티브를 통해 실리콘사업을 확대해나갈 체력을 갖추고 있다고 증권가는 평가한다.

김기룡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실리콘부문의 성장은 KCC에 숨기고 싶지 않은 기대감”이라며 “올해는 실질적 모멘티브 인수효과를 기대해도 좋은 시점”이라고 내다봤다.

모멘티브는 2020년 3분기까지만 해도 코로나19에 따른 실리콘 수요 급감으로 실적 악화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2020년 4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실적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모멘티브는 4월부터 주요 고부가가치 제품의 가격을 세계적으로 10~20% 인상하기도 했다. 실적 개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모멘티브는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여럿 보유한 미국의 실리콘 전문기업이다. 1940년 세계 최초로 산업용 실리콘 생산기술을 확보했으며 1974년에는 건설현장에 많이 쓰이는 구조용 실란트를 개발했다. 샴푸와 린스가 결합된 투인원샴푸 실리콘을 처음 시장에 내놓은 회사도 모멘티브였다.

모멘티브는 이 밖에도 자외선 차단기술, 유기발광다이오드용 실리콘 등 다양한 실리콘 분야에서 선두기업의 반열에 오른 회사로 평가받는다.

정 회장은 모멘티브와 KCC의 실리콘사업 시너지 확대를 위해 사업구조 재편도 마쳤다.

KCC는 2020년 12월1일 실리콘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KCC실리콘을 세웠으며 이를 올해 1월 모멘티브코리아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등 그룹 내 모든 실리콘사업부문을 모멘티브를 지배하는 MOM홀딩컴퍼니 산하에 뒀다. [채널Who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