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일 현대해상 대표이사 사장이 채권금리 상승세에 대응해 재무 건전성을 관리하는 데 고삐를 죄고 있다.

금리 상승 흐름에 발맞춰 채권재분류를 실시해 지급여력(RBC)비율 하락을 막고 금리가 더 오르기 전에 후순위채 발행을 통한 자본확충으로 지급여력비율을 높이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해상 재무건전성 고삐 죄, 조용일 금리 상승 전 후순위채 대거 발행

조용일 현대해상 대표이사 사장.


10일 현대해상에 따르면 지급여력비율이 올해에는 안정적으로 200%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의 권고치는 150%이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새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 도입에 대응하기 위해서 200% 이상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있다.

새 국제보험회계기준이 도입되면 부채 평가기준이 원가에서 시가로 바뀌게 된다. 보험사 부채가 크게 늘어나는 만큼 지급여력비율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현대해상이 지급여력비율을 200%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것은 조 사장이 적극적으로 자본확충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해상은 4일 3500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애초 발행 예상액 2500억 원보다 1천억 원 늘어난 규모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확충된 자금은 안정적 지급여력비율 관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운용전략에 따라 대출, 국내채권, 해외투자 등 자산운용에 사용된다"며 "지난해 말 기준 190.1%에서 11.6%포인트 증가한 201.7%까지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조 사장은 실적 개선을 발판삼아 지급여력비율을 관리하는 데 부담을 덜 것으로도 보인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순이익 3319억 원을 거뒀다. 2019년보다 23.3% 증가했다. 올해 1분기 순이익 예상치도 1천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1분기보다 16% 증가한 수준이다.

순이익이 증가하면 이익잉여금 적립이 늘어나고 이는 가용자본에 포함돼 지급여력금액이 늘어난다. 지급여력비율의 분모에 해당하는 지급여력금액이 늘어나면 지급여력비율이 개선된다.

양호한 실적에도 조 사장이 4년 만에 후순위채를 발행한 것은 최근 금리가 많이 오르면서 금리가 더 올라 채권발행 여건이 나빠지기 전에 미리 자금을 조달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가 오르면 운용자산이익률이 오르며 투자이익이 늘어난다. 반면 채권가치는 하락해 채권평가익이 줄고 가용자본은 감소하게 된다. 채권을 높은 금리로 발행해야 하는 만큼 더 많은 자금 조달 비용도 부담된다.

채권금리 흐름을 살펴보면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해 12월 말 1.713%에서 4월 말 2.057%까지 올랐다.

일각에서는 조 사장이 재무 건전성 관리를 위해 후순위채를 선택한 것은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는 시선도 있다.

현대해상은 지주회사를 보유한 다른 금융그룹과 달리 유상증자 등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계열사가 사실상 없다. 

정몽윤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절대적으로 많은 편이 아니고 추가로 지분을 취득할 만한 자금 마련의 창구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증자를 하게 되면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희석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후순위채 등 채권 발행 이외에 공동재보험 출재해 재무 건전성을 관리할 수 있는 방안도 있지만 공동재보험은 비용부담 뿐만 아니라 보험사가 지닌 리스크를 모두 내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지난해 공동재보험 제도가 도입된 이후 현재까지 ABL생명과 RGA재보험만이 공동재보험 계약을 맺었다.

조 사장은 금리 상승에 대응해 채권 재분류를 실시하며 금리 민감도를 낮추기도 했다. 

현대해상은 2월 매도가능증권 19조9400억 원 가운데 약 2조 원을 만기보유증권으로 옮겼다. 만기보유증권은 지난해 말 기준 5조6900억 원가량이다. 지난해 여러 보험사들이 만기보유증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바꾼 것과 반대되는 모습이다.

채권은 매도가능증권 또는 만기보유증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매도가능증권은 시장가치로 평가돼 금리가 하락할 때 채권 가격이 올라 자본 증가로 이어져 지급여력비율이 상승한다. 반면 금리가 오를 때에는 채권 가격 하락으로 자본이 감소해 지급여력비율이 줄어든다.

앞으로 미국 국채의 주도로 금리가 3%까지 오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지급여력비율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조 사장은 매도가능증권 가운데 일부만 만기보유증권으로 재분류한 만큼 금리인상이 지속된다면 채권 재분류를 추가로 실시해 지급여력비율 하락을 막을 여지를 남겼다.

지난해 3분기를 기점으로 채권금리가 상승하면서 보험사들의 평가손실이 커지고 있다. 외국계를 제외한 국내 손해보험사는 14곳 모두 지난해 말 지급여력비율이 3분기보다 하락했다. 생명보험사는 24곳 가운데 17곳의 지급여력비율이 낮아졌다. 

지난해 5월 4조 원 규모의 만기보유증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변경한 DGB생명은 지급여력비율이 274%에서 228%로 약 50%포인트 하락했다. NH농협생명도 지난해 3분기 30조 원 이상의 채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하면서 지급여력비율이 315%에서 288%로 주저앉았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계약자가 일시에 보험금을 요청했을 때 제때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을 수치화한 것으로 보험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측정하는 대표적 지표다.

현대해상의 지급여력비율은 2018년 3분기 이후 꾸준히 200% 이상을 유지하다 지난해 말 금리 인상에 따른 채권평가손실 등의 영향으로 30%포인트가 넘게 빠지며 200% 밑으로 떨어졌다. 주요 손해보험사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