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운하 복구작업이 애초 예상보다 지연돼 유럽지역 원유공급 차질로 국제유가가 단기적 상승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의 1분기 원유 재고자산 평가이익이 커질 수 있다. 
 
정유4사 수에즈운하 사고로 재고평가이익 보나, 언발에 오줌누기 될 듯

▲ (왼쪽부터)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사장, 후세인 알 카타니 에쓰오일 CEO,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


다만 정유업계에선 2분기부터 사우디아라비아가 자발적 감산량을 줄일 수 있어 국제유가가 오히려 1분기보다 떨어질 수도 있는 만큼 재고자산 평가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예상도 있다.

2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사고로 가로막힌 수에즈운하의 복구 기간이 기존 예상됐던 6~7일보다 더 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이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도중 24일 좌초돼 유조선을 포함한 다른 선박들의 통행이 중단됐다.

이집트 수에즈운하관리청(SAC)은 좌초된 초대형 컨테이너선 예인작업을 시도하고 있지만 썰물 등 지형적 조건이 좋지 않아 선박의 방향만 살짝 틀었을 뿐 예인작업에 진척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인작업에 속도를 내지 못한다면 컨테이너선에 실린 화물을 모두 하역해 중량을 낮춰야할 필요성까지 제기돼 복구작업이 최소 15일 넘게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수에즈운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장 가까운 항로로 중동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유럽에 공급하는 주요 통로다.

수에즈운하의 복구작업이 지연될수록 유럽지역은 원유공급에 차질을 빚게 된다. 최근 60달러 안팎에서 횡보하던 국제유가가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수에즈운하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선박들이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경유하는 노선을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것이다”며 “이는 유럽지역 원유수급 차질로 이어져 국제유가가 현재 수준보다 상승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유럽은 코로나19에 따른 봉쇄조치를 이어가 수요가 아직 부진해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독일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수 증가로 4월18일까지 봉쇄조치를 연장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인구 밀집 지역에 봉쇄조치를 강화해 원유수요 회복에 관한 기대감이 좋지 않다”고 분석했다.

전 연구원은 “수에즈운하 사고로 원유 공급 차질이 단기적 유가를 좌우하겠지만 원유 수요 회복 기대감이 약해 국제유가가 오르더라도 70달러를 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국제유가가 최근 수준보다 상승하면 정유4사로서는 1분기 원유의 재고자산 평가이익을 더 크게 누릴 수 있다.

재고자산 평가손익은 해당 분기의 국제유가에 따라 좌우된다. 해당 분기의 국제유가가 직전 분기보다 높아져 보유하고 있는 원유재고의 가격을 높게 평가받으면 재고자산 평가이익이 발생한다. 반대로 해당 분기 국제유가가 직전 분기보다 낮아지면 재고자산 평가손실을 내는 것이다.

지난해 4분기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산유(WTI) 기준으로 40달러대를 유지했다. 반면 24일 서부텍사스산유(WTI) 기준 61달러에 장을 마감해 정유4사는 1분기 재고자산 평가이익을 볼 수 있다. 이에 수에즈운하 사고에 따른 국제유가 추가 상승이 더해진다면 평가이익이 더 커지는 셈이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수에즈운하 사고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세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바라본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수에즈운하 사고는 단기적 이슈에 불과해 국제유가가 단기적 공급 차질로 잠깐 올랐다가 2분기에는 다시 50달러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4월1일 열릴 석유수출국기구와 기타 산유국 모임(OPEC+)의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5월 이후 자발적 감산량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가능성도 높아 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유4사에선 2분기에 재고자산 평가손실이 오히려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수에즈운하 사고를 섣불리 이익 개선에 도움이 될 사건으로 판단하기 힘들다는 시선이 우세하다.

더구나 정유4사로서는 수에즈운하 사고 여파가 길어져 2분기 국제유가가 1분기보다 더 올라 재고자산 평가이익을 볼 수 있다 하더라도 본격적 이익 개선까지 이어질지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국제유가가 올랐다는 것은 정유제품에 투입되는 원재료 가격의 상승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휘발유나 경유 등 정유제품 수요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는 이상 수익성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정유4사는 올해 실적 개선이 절실하다. 지난해 합산 영업손실 5조7275억 원을 냈다. [비즈니스포스트 성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