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식, DB하이텍 증설하나

최창식 DB하이텍 대표이사 부회장이 반도체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 신규 시설투자에 나설지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DB하이텍은 글로벌 10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이다. 반도체 수요가 많아 파운드리업황이 호조를 보이고 있어 증설에 나설 적기라는 시각이 많다.

DB하이텍은 지난해부터 공장 가동률 100% 상태를 이어오고 있다. 실적 증가가 슬슬 한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회사가 한 단계 더 성장하려면 증설이 필요하다.

최 부회장은 2012년 대표이사 취임 이후 한 차례도 증설투자를 한 적이 없다. 생산효율을 높이는 수준의 보완투자로 생산능력을 조금씩 늘려왔을 뿐이다.

반도체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데는 1조 원 이상의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 DB하이텍 연간 매출이 1조 원에 미치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면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더욱이 DB하이텍의 현금자산은 500억 원 수준이다. 선뜻 대규모 투자에 나설 만한 여건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최 부회장 역시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부 실력을 축적하고 내공을 쌓은 뒤 증설을 진행해야 할 것 같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시장은 DB하이텍의 증설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본다.

DB하이텍의 주력인 8인치(200㎜) 수요가 상당한 데다 DB하이텍처럼 8인치 웨이퍼를 월 10만 장 이상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경쟁력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DB하이텍은 이미 충북 음성 상우공장 인근에서 산업단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 증설을 위한 부지는 충분하다. 상우공장 구축 당시 건물을 두 동 지어 한 동만 사용하고 있어 건물까지 확보돼 있다.

DB하이텍 역시 증설을 염두에 두고 재무여력을 다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재무구조를 꾸준히 개선해 부채비율은 한때 300%가 훌쩍 넘겼으나 이제 50%가 안 되는 수준으로 낮아졌다.

순이익도 2020년 1700억 원을 내 전년보다 60% 가까이 늘었지만 주당 배당금은 전년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배당성향을 10% 미만으로 낮추고 현금을 축적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그룹 차원의 자금 투입과 산업은행의 시설자금 대출 등이 더해지면 증설을 위한 자금 마련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증설이 진행되면 주가 상승의 확실한 방아쇠가 될 수 있다.

◆ 익숙한 8인치 대신 12인치 증설 과감한 도전 나설까

최창식 부회장이 증설을 고민하는 이유는 자금뿐 아니라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신규 생산라인의 종류를 결정해야 하는 대목이다.

DB하이텍은 지름 8인치짜리 웨이퍼를 사용해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지만 반도체업계의 주류는 삼성전자, TSMC 등이 사용하는 12인치(300㎜) 제품이다. 

12인치 웨이퍼를 사용할 때 생산량도 많고 제조원가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2000년대 들어 반도체기업들은 대부분 12인치로 설비 투자를 진행했다. 

글로벌 웨이퍼 생산량에서 12인치와 8인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7대 3 정도로 12인치가 월등하다. 자연히 장비업계도 12인치에 맞춰 장비를 생산하고 이제는 8인치 장비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DB하이텍이 기존과 마찬가지로 8인치 라인을 증설하려 해도 당장 장비를 채워 넣는 일부터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떻게 중고 장비를 확보해 8인치 라인을 구축한다 해도 시장의 대세가 12인치가 된 상황에서 생산성과 수익성이 떨어지는 8인치 반도체의 수요가 계속 유지될지도 미지수다.

그렇다고 12인치 라인을 증설하는 방안도 위험부담은 크다. 

8인치보다 투자비용은 더 많이 들어가는데 이제는 삼성전자, TSMC 등 체급이 다른 기업들과 직접적으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8인치 사업만 해오던 DB하이텍으로서는 12인치 시장에서 경쟁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자칫 증설을 위해 돈은 돈대로 쓰고 기대한 만큼의 투자 결실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일단 최 부회장도 증설을 한다면 12인치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0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8인치 장비를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며 “향후 발전 가능성이나 투자의 합리성 측면에서 12인치가 낫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만 12인치로 사업방향을 전환하는 일은 워낙 큰 도전이다 보니 최 부회장도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룹 수뇌부를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한 것으로 파악된다.

◆ 파운드리 초호황, DB하이텍 증설로 떠민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DB하이텍의 증설투자 가능성을 놓지 못할 만큼 시장의 환경은 파운드리에게 우호적이다. 

최근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감산에 나설 정도로 반도체 수급은 빠듯하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파운드리기업들이 생산능력을 차량용 반도체에 할당하면서 이번에는 스마트폰, TV 등에 사용되는 IT제품용 반도체 공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파운드리업계 1, 2위인 TSMC와 삼성전자는 공격적으로 증설투자에 나서고 있다. TSMC는 올해 30조 원의 시설투자를 예고했고 삼성전자도 미국 오스틴 공장 증설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파운드리업황 호조는 비단 12인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2인치에 밀려 비주류로 취급받던 8인치 파운드리는 전력관리칩(PMIC),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이미지센서(CIS) 등 아날로그 반도체 역시 수요가 늘어나면서 호황기를 맞았다.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애플리케이션처리장치(AP) 등 고성능 연산장치들이 치열한 성능경쟁으로 12인치 미세공정 수요를 대부분 점유하고 있는 가운데 이보다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아날로그 반도체는 자연스럽게 8인치 파운드리를 찾게 됐다.

여기에 최근에는 중국 SMIC가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아 장비와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8인치 파운드리 수급은 더욱 빠듯해졌다. SMIC는 중국 최대이자 글로벌 5위 파운드리업체로 12인치와 8인치사업을 모두 하고 있다.

업계는 8인치시장이 당분간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2018년 월 550만 장 수준이었던 8인치 파운드리 시장이 2022년 650만 장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 DB하이텍 주가는 이미 고공행진

DB하이텍 주가는 파운드리 호황과 증설 기대감 등으로 2021년 들어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DB하이텍은 2년 연속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 2017년에서 2018년은 2년 연속 실적이 후퇴했는데 급격하게 반등한 것이다.

주가는 2019년 초 고작 1만 원 수준이었으나 2020년 초 3만 원 수준까지 올라왔고 2021년 1월에는 7만4300원으로 52주 신고가를 썼다. 불과 2년 만에 주가가 7배나 오른 셈이다.

2월 초에는 5만 원대까지 밀려나며 잠시 조정을 겪었으나 2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4연속 상승하는 등 다시 상승 랠리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DB하이텍과 비교대상으로 자주 거명되는 대만 UMC와 비교하면 여전히 DB하이텍이 저평가라는 의견도 있다. 2월 현재 UMC 시가총액은 약 30조 원으로 DB하이텍의 10배 수준이다.

UMC의 생산능력이 8인치 환산 기준 월 77만 장으로 DB하이텍(월 12만9천 장)의 6배 정도이기 때문에 DB하이텍 주가가 더 오를 여지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창식 부회장도 DB하이텍 주가 상승으로 상당한 수혜를 봤다. 상여금 명목으로 자사주를 받아 보유하고 있었는데 전량 매도해 현금화했다.

DB하이텍은 이번에도 자사주 2만6천여 주를 종업원 상여금으로 지급할 예정이라 최 부회장 역시 다시 자사주를 보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DB그룹 반도체사업 끝내 결실 맺은 DB하이텍

DB하이텍이 역대 최고 실적을 내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한때는 DB그룹의 애물단지였던 곳이다. 

옛 동부그룹 몰락의 원인이 DB하이텍에 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은 1980년대부터 반도체 웨이퍼 생산과 소재 개발을 진행하는 등 반도체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1997년 본격적으로 동부전자를 설립해 IBM과 손잡고 D램사업에 진출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사업방향을 전환해 2000년 국내 최초로 파운드리사업에 뛰어들었다.

김 전 회장은 2004년에는 동부전자보다 몸집이 50배나 큰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두 회사를 합병해 동부아남반도체를 출범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기대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IT버블이 꺼지면서 반도체 수요가 감소한 시기에 차입금 2조4천억 원 규모는 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매년 1천억 원이 넘는 이자를 부담하면서 회사 설립 이후 2013년까지 단 한 차례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DB하이텍은 이 시기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때 투자가 이뤄지지 못했다. DB하이텍이 12인치 생산라인을 구축하지 못하고 여전히 8인치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동산자산 매각과 우량 계열사 합병, 이에 따른 동부일렉트로닉스·동부하이텍 등 회사이름 변경, 심지어 김 전 회장의 3500억 원 사재출연까지 이뤄졌지만 반도체사업은 쉽사리 반등하지 못했다.

결국 채권단인 산업은행 주도로 2014년 매각이 추진됐다. 중국 SMIC 등이 인수를 타진했으나 가격 등 조건이 맞지 않아 끝내 매각이 성사되지 못했다.

매각 실패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 마침 스마트폰, 초고화질(UHD)TV 등 시장 확대로 전력반도체와 이미지센서, 디스플레이 구동칩 등의 수요가 늘어 DB하이텍 실적이 반등했다. 2014년 첫 흑자전환에 이어 2015년 사상 최대 매출 등 독자생존이 가능해지면서 2016년 매각은 없던 일이 되고 만다. 

DB하이텍은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끈질기게 생존해왔는데 반도체사업이 이제 결실을 맞고 있다. DB그룹이 DB하이텍에 깊은 애착을 두면서도 증설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창식, DB그룹 새 도약의 발판될 DB하이텍 성장 짊어져

최창식 부회장은 2012년 김준기 전 회장의 제조업 육성전략에 따라 DB그룹에 영입된 인물이다. 

최 부회장은 삼성전자에서 시스템LSI 제조센터장, 파운드리센터장을 거친 비메모리사업 전문가이다. DB하이텍이 적자를 내던 시절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최고경영자(CEO)로 최 부회장을 데려온 만큼 적잖은 기대를 받았다.

최 부회장은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다. 설비 국산화와 경비 절감 등 원가를 개선하고 글로벌 고객을 확대하며 DB하이텍의 흑자전환에 성공한 뒤 지속적으로 실적을 개선해 가고 있다.

강산이 바뀌는 10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면서 DB그룹 회장도 세대교체가 이뤄졌지만 최 부회장은 여전히 중용되고 있다. 2020년 김준기 전 회장의 장남 김남호 회장이 취임한 뒤 첫인사에서 최 부회장은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해 책임도 역할도 커졌다.

김남호 회장은 그룹 지주회사인 DB뿐 아니라 DB하이텍에도 회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21년 신년사에서도 DB하이텍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는 등 부친의 반도체사업 의지를 승계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DB하이텍은 2019년 기준으로 DB하이텍은 DB그룹 비금융부문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비금융부문 전체의 90%에 육박한다.

DB하이텍이 DB그룹 비금융부문을 떠받치는 기둥을 넘어서 제조업의 부흥을 이끌기 위해서는 어느 시점에 증설을 결단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최 부회장도 이미 60대 후반에 접어들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

DB하이텍은 최 부회장체제 아래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로 탈바꿈을 했다. 백조가 된 DB하이텍이 더 높은 곳으로 비상을 할 수 있을지는 최 부회장에게 달렸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