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하지 못한 삼성 준법감시위, 김지형 지속가능성 시험대 올라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준법감시위원회 지속가능성을 높고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김 위원장은 준법감시위원회를 통해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체계 강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위원회가 존속의 기로에 놓였다.

김 위원장은 재판과 무관하게 삼성그룹에서 준법감시위원회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외부의 부정적 시선을 극복하고 지난해 대국민사과 이상의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따르면 21일 열리는 정기회의에서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결과와 관련한 논의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판부가 지적한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재판부는 18일 준법감시위원회가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징역 2년6개월을 받았다.

준법감시위원회는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2019년 10월 첫 재판에서 총수도 무서워할 실효적 준법감시제도의 필요성을 시사하면서 2020년 2월 출범했다. 재판부가 위원회의 실효성을 인정한다면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고려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준법감시위원회는 1년 가까운 활동기간에 재판부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에 실패했다. 위원회를 이끌어 온 김지형 위원장으로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더욱이 재판이 종료되면서 재판부 주문에 따라 출범한 준법감시위원회의 수명이 다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준법감시위원회는 총수가 마음먹어서 만들었고 총수가 마음먹으면 하루아침에 없어질 조직이다”며 “지속가능성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대로라면 준법감시위원회가 과거 삼성그룹이 외부 의견을 듣기 위해 운영했다가 흐지부지된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삼지모)’의 뒤를 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김지형 위원장의 준법감시 강화 의지는 여전한 것으로 파악된다. 준법감시위원회의 지속가능성을 기대하는 시각이 적지 않은 이유다. 이미 김 위원장은 2020년 말 발표한 송년사에서 위원회의 역할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새해에 위원회의 존재를 부정하는 분들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더욱 애써 나가야 한다”며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선고공판을 일주일 앞둔 11일 이재용 부회장과 만나 지속적 활동을 재차 보장받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2020년 5월 대국민사과 때 재판이 끝나도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미 김 위원장이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체계를 확보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 역시 단기간에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종료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더한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지난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지속가능한 준법경영체계와 관련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전문심리위원이 새로운 유형의 준법의무 위반을 대응할 수 없다고 지적한 부분과 관련해서도 외부 연구용역을 발주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은 재판 과정에서 준법감시위원회를 향해 나온 여러 쓴소리와 요구사항을 듣고 위원회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해 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재판부가 판결문을 통해 지적한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조직의 위법행위 대응, 준법감시활동의 계열사 전반으로 확대, 비자금·차명주식 감시 강화 등의 사항을 보완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향성이 21일 정기회의와 26일 계열사 최고경영자 간담회를 통해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이 준법감시위원회를 위한 부정적 시각을 씻어내기 위해서 위원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의 목소리에 더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일 가능성도 있다.

시민사회와 소통은 준법감시위원회가 출범할 때부터 설정한 3대 의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도 송년사에서 “시민사회와 막힘없이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파기환송심 판결이 나온 뒤 삼성그룹에 준법감시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갈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계열사 감사위원장들의 협의체로 준법감시위원회를 구성하도록 정관을 마련해 제도화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로 대법관 시절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관련 판결에서 무죄 의견을 낸 적이 있다. 

퇴임 후에는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보상 조정위원장을 맡는 등 삼성그룹과 인연을 계속 맺고 있다. 그러나 이번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은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내는 데 이르지 못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