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방식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에서 선별지급이냐 보편지급이냐를 놓고 각각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중심으로 논쟁이 일어났다.

긴급재난금 지급방식은 일단 당정청 합의를 통해 선별지급으로 결정됐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난 논쟁은 민주당 안에서 단순한 이견을 넘어 방향성의 차이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왜 다른 지향점을 내보이는지, 그리고 두 사람의 방향성 차이가 민주당에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 방송 : 이슈톡톡
■ 진행 : 곽보현 부국장
■ 출연 : 이상호 기자

◆ 너무나 판이한 두 사람의 인생 경로. 다를 수 밖에 없는 이낙연이재명

곽보현 부국장(이하 곽) : 일단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상황 간단히 짚고 가죠.

이상호 기자(이하 이) : 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예상대로 이낙연 대표가 60%가 넘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이 됐습니다. ‘어대낙’으로 표현되는 대세론을 확인한 셈인데요.

당대표가 되자마자 첫 시험대로 2차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방식을 둘러싼 당내 이견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당내 이견에 가장 목소리를 높인 것이 현재 시점에서 이낙연 대표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이재명 지사였습니다.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가 의견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이것이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곽 : 그런데 사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한국정치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간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른 것이 어찌 보면 그리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두 사람의 생각 차이가 중요한 걸까요.

이 :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기는 합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비슷한 생각끼리 묶어서 분류를 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구분을 정치에서는 이념적 차이라고 할 수 있죠. 비슷한 이념을 지닌 사람들끼리 모인 정치적 집단이 정당입니다.

기본적으로 정당은 비슷한 정치적 이념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하는데 같은 당에서 그것도 유력한 다음 대선주자인 두 사람이 이념적으로 뭔가 다른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면 단순히 "사람이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간단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곽 : 그럼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가 왜 그렇게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지 한 번 짚어봐야 겠네요. 이유가 뭘까요?

이 : 사람은 살아온 대로 생각한다고 하죠. 두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어느 정도 답이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 모두 대선후보로 꼽히는 등 정치적 입지가 높아지면서 자서전 같은 서적,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 인터뷰 등을 통해 인생사가 많이 공개돼 있습니다. 필요한 부분만 짚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곽 : 일단 어린 시절부터 순서대로 짚어 보죠.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은 어땠습니까.

이 : 이낙연 대표는 1952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습니다. 형제관계는 10남매 였는데 두 형 포함 3명이 어릴 때 사망해 4남3녀 가운데 장남으로서 성장했습니다.

이재명 지사는 1964년 출생으로 경북 안동 출신입니다. 5남4녀 가운데 일곱째지만 마찬가지로 누나 둘이 어릴 때 사망해 다섯째로 자랐습니다.

곽 : 가족관계가 사람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은 큽니다. 아무래도 부모의 관심이나 지원, 가족안에서 역할 등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요.

이 : 이 대표와 이 지사도 여기서부터 차이가 좀 보입니다.

당시 시대가 그랬던 만큼 이 대표나 이 지사 모두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는 점은 공통점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 대표는 비교적 집안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자랐고 이 지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 지사는 영광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뒤 중학교 때부터는 광주로 유학을 갑니다. 광주 북성중학교를 거쳐 지역 명문고인 광주제일고를 졸업하죠. 대학은 서울대 법대로 진학을 합니다.

대신에 다른 형제 대부분은 고향에서 중, 고등학교 정도만 마칩니다.

이와 관련해 이낙연 대표가 자주 꺼내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이번에 당대표가 될 때도 ‘민주당의 은혜’를 들다가  밝힌 이야기 인데요.

이낙연 대표의 아버지는 민주당 지방당원이었고 조합장이 될 기회가 있었는데 배우지를 못해 스스로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때 이낙연 대표의 아버지가 이낙연 대표에게 “내가 굶더라도 너만은 대학에 보내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낙연 대표는 이 말이 지금의 그를 만든 시작이라고도 말합니다.

곽 : 그 시절 드물지 않았던 집안을 대표해 집중적으로 지원을 받으면서 자란 장남이죠.

가족에 대한 책임감, 나아가 그가 속한 조직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어요. 이낙연 대표가 책임감을 자주 언급하는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이 : 다음으로 이재명 지사의 어린 시절을 살펴 보겠습니다.

이재명 지사는 안동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를 오는데 중학교에 진학은 하지 않고 상대원공단에 취직해 공단 노동자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때 이 지사가 왼쪽 손목을 다친 일, 자살을 시도한 일, 고졸이면 공장 작업반장이 될 수 있겠다 싶어 검정고시를 공부한 일 등은 널리 알려져 있죠.

곽 : 이재명 지사는 성장 과정에서 전혀 집안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란 셈이네요.

이 : 그렇습니다. 검정고시를 공부할 때도 이재명 지사의 가족들은 이재명 지사가 공부하는 것을 그렇게 탐탁치 않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이재명 지사의 아버지는 이재명 지사가 일 마치고 밤에 불 켜고 공부할 때 전기요금 아깝다며 어두운 등으로 바꾸고, 학력고사 성적 확인하러 갈 때도 차비 아깝다고 가지 말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82년도 대입학력고사에서 이 지사의 성적은 “서울대 한 두 개 학과를 제외하고는 어느 대학, 어느 학과도 갈 수 있는 점수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당시 전국 수석이 원희룡 제주도지사입니다.

하지만 이재명 지사는 그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도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 등을 받기 위해 중앙대 법대로 진학을 합니다. 

곽 : 이재명 지사가 다소 투쟁적이고 강성이라는 느낌이 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네요.

어린 시절부터 주변 환경을 헤쳐나가며 성장해 왔으니 그게 성격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가 없죠.

주변 환경 때문에 전력을 다 할 수 없고, 자신의 성취를 온전히 거두지 못한 울분도 있을 거고요.

이 : 다음으로 대학 시절을 보면, 저는 두 사람의 선택이 묘하게 엇갈리는 시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곽 : 어떤 점에서죠?

이 : 둘 다 법대로 진학을 했다는 점까지는 같은데 사법시험을 놓고 두 사람은 다른 선택을 합니다. 두 사람 모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죠.

이낙연 대표는 군대에 갔다온 뒤 반 년 정도 고시공부를 하다 포기하고 취직을 선택합니다. 잠시 한국투자신탁에 다녔다가 동아일보 기자가 됩니다.

이낙연은 넥타이를 전날 밤에 고른다’라는 책에 보면 이낙연 대표가 당시 고시공부를 포기한 이유를 놓고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염치가 없었다. 군 전역 후 한 친구가 월급을 쪼개 고시공부를 지원했다. 하지만 일곱 달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고향의 동생들과 친구 보기가 부끄러워서다. 전남 영광에서 7남매 맏이로 태어났다. 분유를 쌀뜨물 수준으로 물에 묽게 타먹고 커온 형편이었다. 형제들을 대신해 상경 진학했으니 느긋하게 고시를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곽 : 고시공부를 포기한 데도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물씬 느껴지네요. 가족은 이낙연 대표에게 든든한 후원자이자 또 미안함의 대상이었을 테니까요.

이 : 이낙연 대표가 가족을 얼마나 생각하는지는 같은 책에 한 구절 더 있습니다.

배우자인 김숙희 여사와 소개팅을 통해 처음 만났을 때 이낙연 대표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합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은 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라고요. 

김숙희 여사가 “그런 건 왜 묻느냐”고 되묻자 이낙연 대표는 이렇게 대답했다 합니다. “실은 제 가족이 그렇습니다”

곽 : 마음을 울리는 대답이네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재명 지사의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이 : 이재명 지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악착같이 공부해서 사법시험에 합격을 합니다

이재명 지사가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한 원동력에는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에 얻은 장애에 따른 콤플렉스가 많이 작용한 듯합니다. 취직도 힘들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고 하고요. 

이재명 지사는 “고시 공부만이 살 길이었다”고 말합니다.

이재명 지사는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인권 변호사, 시민 운동가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곽 : 이재명 지사의 삶은 언제나 절박함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그 절박함이 결국에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성취로 이어졌고요.

이 : 중앙일보에 두 사람의 대학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 하나가 있습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인터뷰 인데요. 이 교수는 이낙연 대표와는 대학 동기, 이재명 지사에게는 대학시절 교수로서 두 사람의 대학생활을 본 사람입니다.

이 교수는 이낙연 대표에 대해서는 “학교 다닐 때 깔끔하게 하고 다녀서 집이 가난한 줄도 몰랐다. 뒤에 알았지만 형편이 안돼서 고시 공부를 못하고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회상해 보니 아르바이트 하느라 힘들어서 그랬는지 학교에선 도드라지기보다 무색무취한 학생이었다”고 말합니다.

이재명 지사와 관련해서는 “당시 중앙대에서 학내문제로 시끄러운 일이 많았는데 이 지사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고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래서 교수들이 학생들을 설득할 때 이 지사를 불러 미리 얘기하면 효과가 있었고 의리도 있어 학생운동 하느라 취직 안 된 후배들을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 데려다 일자리를 주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곽 : 대학생 이낙연이재명. 뭔가 색다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의 지금 이미지와 비슷한 듯도 하네요.

이 :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정치 입문을 살펴보면 여기서도 두 사람의 상황은 참 많이 다릅니다.

이낙연 대표는 정치권의 거물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계에 발을 들입니다. 1989년에 한 차례 권유를 거절했다가 2000년 16대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이 되죠.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지금 문재인 대통령까지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과 모두 가까운 관계를 이어가며 정치인으로서 성장합니다.

곽 : 이낙연 대표의 선거이력만 봐도 비교적 정치인으로서는 안정적으로 살았다는게 느껴지죠.

이낙연 대표는 다섯 차례 국회의원 선거와 한 차례 지방선거 등 모든 선거에서 한 번도 낙선한 적이 없어요.

이 : 반면 이재명 지사는 정치 행보도 그다지 순탄치 못합니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성남시장에 출마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하고 단수공천을 받습니다. 

성남이 한나라당 강세지역이라 가능했던 일이죠. 당시 성남뿐 아니라 수도권에서 전반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한나라당에 크게 밀렸고 이재명 지사도 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십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도전했다가 낙선하고 결국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으로서 행보를 시작합니다.

당시 이재명 지사의 당선도 이대엽 전 성남시장이 3천억 원이 넘는 호화 청사를 짓는 등 성남시에 7285억 원의 부채를 안기면서 여론으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곽 : 이재명 지사는 정치에 입문할 때도 사실상 혼자였네요.

그러다 보니 실패도 있었는데 정말 성남시장 당선이라는 한번 잡은 기회를 악착같이 놓치지 않고 지금의 경기도지사, 유력 대선주자라는 위치까지 올라왔다는 것은 분명 대단합니다.

이 : 두 사람은 살아온 인생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이 대표는 가족의 지원, 서울대 법대, 동아일보, 유력 정치인의 권유로 정치 입문 등 주변 ‘조직’과 기존에 마련된 ‘질서’를 통해 성장한 인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 이재명 지사는 직장이나 정치입문 등 과정에서 모두 큰 조직에 섞여 본 일이 없습니다. 심지어 가족들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했죠. 가정사 때문에 최근까지 정치적 부담이 컸다는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주변이나 조직의 도움보다는 장학금 같은 ‘제도’의 도움을 받고 스스로 ‘개척’하는 삶을 살았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지사에게 주변 환경은 도움을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헤쳐 나가야 할 것이었고 공교롭게도 지금도 민주당 내 주류가 이 지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습니다.

곽 : 그런 두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언행이겠죠.

이낙연 대표 하면 최근까지도 비판을 받았던 것이 지나치게 신중한 언행이었어요. 늘 조심하며 살피는 신중함. 나의 말이 주변에 미칠 영향과 조직 내에서 나의 위치를 언제나 고려하죠.

이 : 대표적 발언이 “직책이 없어 말을 아꼈다”, “당에는 당대표가 있고 내가 앞서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국무총리는 2인자지만 당대표는 1인자”, “당대표가 되면 새로운 이낙연을 보게 될 것이다”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곽 : 반면에 이재명 지사는 발언도 자유분방해요.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옳다 믿는 것과 내가 해야 겠다 생각하는 것을 거침없이 말하죠.

그리고 상당히 직선적입니다. 기교나 꾸밈이 없어요. 그래서 사이다라며 지지도 받지만 적도 많죠.

이 : 이재명 지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말로 저는 ‘합니다’를 꼽아 봤습니다.

이재명 지사가 쓴 자전 에세이 제목이기도 한데요. 이재명 지사가 성남시의 모라토리움을 해결한 뒤에도 “대한민국은 못해도 성남시는 합니다”라고 했죠. 별다른 수식어도 필요 없고 짧으면서 강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선명해서 적을 만들기도 하죠.

최근에 한 대표적 발언으로는 7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서 광화문집회를 연 세력을 향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우리 국민들에 대한 애정이나 연대의식, 이웃에 대한 사랑, 이런 게 완전히 결여된 것 아닌가 정말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예요”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곽 : “정말 사람 맞나 싶다.” 우리 편이 보면 시원한데, 발언의 대상이 들으면 정말 감정적으로 화가 날 만한 표현이죠.

이재명 지사를 둘러싸고 지지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이나 조금 극단적 모습을 보이는데 이재명 지사의 화법도 분명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민주당 대선가도에 물과 기름 될까 아니면 용광로 될까

곽 : 이제 이렇게 너무나 다른 이낙연이재명 두 사람이 민주당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짚어 보죠.

일단 지금의 민주당이 과거의 민주당과 어떻게 다른지 좀 살펴 봐야 할 것 같아요.

이 :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뿌리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없이 올라가면 대한민국 건국할 때까지도 올라갈 수 있을 텐데요 

현재 활동하는 정치인들이 비교적 직접적으로 활동을 한 시기인 군부독재 이후부터만 생각해 보면 민주당 세력의 중요한 정체성과 목표는 독재 타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야권, 재야, 투쟁, 진보 등 이런 표현들이 주로 어울리는 인물들이 중심이었죠.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6·29 선언을 통해 민주화가 이뤄지고 민주당 세력의 목표도 달성될 것 같았습니다.

곽 : 하지만 그렇지 못했죠. 대선 결과는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사실상 군인정권이 다시 이어졌고, 1992년 대통령 선거 때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을 통해 대통령이 되면서 과거를 완전히 끊어내는 느낌이 좀 덜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당선됐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DJP연합을 통해 이뤄낸 것이라 뭔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민주당을 결속하게 하는 힘은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뤄내겠다는 목표에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해 봅니다.

외부의 확실한 적이 있으니 내부에는 다소 이견이 있어도 결속할 수밖에 없게 되죠.

그런데 지금은 군부독재를 밀어내고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 이런 목표나 대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내부 이견이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게 되면서 여러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올 수밖에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 말씀하신 것처럼 일단 의원이 180명 가까이 늘고 이제는 민주당도 대통령을 3명이나 배출하면서 여당으로 지낸 시간이 길어지니까 인적 구성이 다양해집니다. 

과거 군부독재에 투쟁하던 시절에는 김근태 전 의원 등 재야인사들이 주류 구성원이었다면 이제는 진보적 계층에서도 사회운동가부터 장애인, 청년 등 인적 구성이 다양해졌습니다.

그리고 관료, 법조인, 기업인 출신 등 보수적 성향의 인물도 민주당에서 비중이 높아 집니다.

곽 : 그렇게 당에서 논의되는 정책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는 것은 장점일 수 있어요. 당의 지지 외연이 넓어지는 셈이니까요.

진보와 보수 양극단에 있는 정책들 말고 대다수 대중이 지지할 만한 범위에 있는 정책들은 모두 민주당에서 논의되니까 사실 다른 정당은 설 자리가 좁아지죠.

이 : 지금 정의당이 의회에서 정치적 존재감이 줄어든 것도 물론 의석 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차별화한 주장을 내세울 수 없게 됐다는 점이 크게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좌클릭 행보를 보이는 것도 이런 흐름을 의식한 걸로 보이고요.

곽 : 세계적으로도 양대 정당을 오래 가진 국가들은 점차 비슷한 강령과 철학으로 국민을 위한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호텔링 법칙’이라고 하는데 경제학자 호텔링이 이야기한 것처럼 중도진영으로 모이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은 중도를 지향하는 이와 같은 현상이 완전히 정착된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이고요.

정권 재창출이라는 구심력으로 당을 이끌고 가자는 측과 민주당의 본래 이념적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원심력이 대립하는 양상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양상이 앞으로 화합으로 마무리될지 아니면 점점 더 분열 양상으로 갈지는 지켜봐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 이번 긴급재난지원금 지급방법을 둘러싼 이견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여러 차례 벌어질 가능성이 크죠.

곽 : 저희는 앞으로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 같은 유력 대선후보들이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 민주당 내에서는 어떻게 소화되고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