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한국판 뉴딜 추진 의지로 전기차산업 생태계의 육성을 위한 발판이 준비됐다. 시장은 이제 전기차의 심장인 배터리를 주시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른 만큼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3사는 지금의 시장 점유율만큼 차세대 배터리의 기술을 확보도 중요하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 한국판 뉴딜 기치로 배터리 동맹 맺나

▲ (왼쪽부터)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 전영현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현대자동차그룹이 주도하는 ‘전기차 팀코리아’가 배터리3사의 기술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시장의 시선이 몰린다.

14일 배터리업계 관계자들은 현대차그룹을 중심으로 한국 배터리3사가 뭉친 배터리 연구개발 4자협력체의 결성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한국판 뉴딜을 통해 전기차를 포함한 그린 모빌리티산업 생태계의 육성에 2025년까지 20조3천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주도적 역할을 맡게 될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총수들을 잇따라 만나며 전기차산업 확대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해왔다는 점에서 배터리 연구개발 협력체의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 전기차 100만 대 이상을 판매해 글로벌 전기차시장의 10% 이상을 점유하며 상위권 회사로 올라서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 연구개발 4자협력체는 배터리3사가 차세대 배터리 핵심기술을 조기에 확보하고 현대차그룹이 안정적 수요처가 된다는 점에서 4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배터리3사가 연구개발역량을 결집할 이유는 충분하다. 세 회사 모두 전기차배터리 생산능력을 빠르게 늘리며 양적 경쟁력은 충분하게 갖추고 있지만 연구개발분야는 글로벌 경쟁사들에게 확실한 우위를 점유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차세대 배터리 가운데서도 배터리 안정성과 효율이 뛰어나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배터리는 일본 파나소닉의 상용화 목표시점이 2022년으로 가장 빠르다.

다만 배터리3사는 파나소닉의 기술력을 따라잡기 전에 중국 CATL의 추격부터 떨쳐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동안 CATL은 글로벌 배터리회사들이 NCM(니켈, 코발트, 망간을 조합해 만든 양극재)배터리에 집중하는 동안 기술력이 떨어지는 LFP(리튬, 인산, 철을 조합해 만든 양극재)배터리를 생산하면서 부족한 연구개발역량을 중국 정부의 지원책으로 덮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CATL이 지난해 9월 글로벌 배터리회사들 가운데 최초로 고출력 배터리인 NCM811 배터리의 상용화에 성공하더니 올해 6월에는 기존 배터리보다 수명을 5배 늘린 장수명배터리의 양산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최근 첨단 배터리연구소 ‘21C랩’의 건설에도 들어갔다. 

배터리3사는 2020년 들어 5월 누적 기준으로 LG화학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5%, SK이노베이션이 59.6%, 삼성SDI가 33.4%씩 전기차배터리 탑재량이 늘었다. LG화학은 글로벌 전기차배터리시장 점유율 1위에도 올라 있다.

같은 기간 CATL과 파나소닉은 각각 31.7%, 22.1%씩 탑재량이 줄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CATL이 기술력까지 끌어올린다면 배터리3사의 호조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배터리시장 조사기관 SNE리서치의 오익환 부사장은 앞서 5월 차세대 배터리 관련 세미나에서 “2030년이면 CATL이 글로벌 전기차배터리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배터리3사로서는 지금의 전기차배터리시장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개발역량을 끌어모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배터리3사의 연구개발성과가 모두 영업기밀이라 역량 결집이 쉽지 않다는 점은 배터리 연구개발 협력체의 결성의 최대 난점으로 꼽힌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기술 유출 문제로 미국에서 소송전까지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협력체 결성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시선도 나온다. 이미 배터리3사가 공동 연구개발 가능성을 타진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11월 배터리3사는 전고체배터리, 리튬메탈배터리, 리튬황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3종류의 핵심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공동 연구개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공동연구를 위해 1천억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는 구체적 내용까지 나왔지만 2019년 4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이 본격화하면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한국판 뉴딜을 통해 전기차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비전이 확립된 만큼 공동 연구개발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2018년과 달리 현대차그룹이라는 구심점도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은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한국판 뉴딜 국민 보고대회’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3사가 한국 기업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서로 잘 협력해 세계시장에서도 앞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