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내정자는 김대중 정부 때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을 상징하는 인물로 20년 전 열린 6.15 남북정삼회담의 주역이다.

대북정책과 국정원 업무에 전문성을 지니고 있고 정무감각도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국정원장으로 부활한 박지원, 김대중 노무현 이름 들어 각오 보여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3일 브리핑에서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며 현 정부에서도 남북문제의 자문역할을 하는 등 북한 전문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강 대변인은 “오랜 의정활동에서 축적된 다양한 경험과 뛰어난 정치력, 소통능력을 바탕으로 국정원이 국가안전보장의 본연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는 한편 국정원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보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원장에 '비문'을 넘어 안철수 후보를 내세워 문 대통령에 맞선 박 전 의원을 지명한 것은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국정원의 정치관여 논란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뜻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자는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출신으로 정보력과 상황 판단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정치적 메시지를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전달한다는 말도 듣는다.

18, 29, 20대 국회에서 정보위원회 활동을 해 국정원 업무에도 밝은 편이다.

정무감각이 밝고 정보력이 상당해 정치현안에 높은 예측력을 보이며 ‘정치 9단’이란 별명도 얻었다.

박 후보자는 1942년에 전라남도 진도에서 태어났다. 문태고등학교와 단국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했다.

박 후보자는 미국에서 가발사업으로 성공을 거둔 사업가였는데 미국 망 명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줄곧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1987년 평민당 진도군 대통령선거대책위원장을 시작으로 민주당 수석부대변인, 김대중 대표 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당 대변인을 맡았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 공보수석, 문화관광부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거쳤다.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며 대북관계를 막전막후에서 책임졌지만 대북송금사건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후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남 목포시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 뒤 19, 20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에서 당선됐다.

정치를 하는 동안 원내대표, 최고위원, 비상대책위원장, 당 대표 등을 거치는 등 요직을 두루 경험했다.

4월15일 치러진 21대 총선에서는 민생당 소속으로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박 후보자는 국정원장 내정이 발표된 뒤 페이스북을 통해 “역사와 대한민국, 문 대통령을 위해 애국심을 지니고 충성을 다하겠다”며 “앞으로 정치의 ‘정’자도 올리지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며 국정원 개혁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SNS 활동과 전화 소통도 중단할 것”이라며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이희호 여사가 하염없이 떠오른다”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